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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부채


무더운 날씨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날 지경이다. 이제 초여름인데 30도를 훌쩍 넘어 버리니, 올해 여름은 어떻게 버텨내나 걱정이 앞선다. TV를 틀어보니 유럽도 불볕더위로 몸살을 앓고 있는 모양이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온난화에 대한 경고가 불현듯 떠오른다.
밖은 한낮도 아닌데 벌써 이글거리는 태양의 열기로 가득하다. 외출은 해야 하는데 한 걸음 떼기가 겁부터 난다. 최대한 시원하게 입는다고 차려입었는데도 온몸이 화끈거린다. “빠진 거 없니?” 엄마가 다시 한번 확인 중이시다. “네.”라는 대답을 했지만 이런 더위에는 에어컨을 통째로 들고 다니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엄마는 당신께서 쓰시던 휴대용 선풍기를 쑥 내미신다. “날도 더운데 이거라도 있으면 한결 도움이 될 거야.” 갑작스러운 제안에 잠시 고민도 해보았지만 더운 날씨에 무언가 손에 들고 다닌다는 게 썩 내키지 않아 거절을 했다. 그마저도 짐이 될 것만 같았다. 그러자 엄마는 서랍을 열어 부채 하나를 꺼내셨다. “이거 한 번도 쓰지 않았던 거야!” 엄마의 손을 여러 번 타서 가져가기를 거절하는 걸로 생각하신 모양이다. 부채마저 거절하면 엄마 마음에 상처가 될 듯싶어 못이기는 척하며 받아 들었다. 접는 부채였다. 덩치가 크지 않아 휴대하는 데는 큰 불편이 없어 보였다.
어느새 휴대용 선풍기가 대세가 된 요즈음 많은 이들이 모인 곳에서 골동품 취급을 받을 수 있는 부채를 꺼내 든다는 게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부채를 펴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정하고 냉방시설이 잘되어있는 곳으로 찾아 움직였다. 그런 노력 덕분이었을까. 해가 지는 시간까지 뜨거운 태양과 마주하는 일은 없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길 횡단보도 앞 신호등과 마주하게 되었다. 파란불까지는 아직 여분의 시간이 필요했다. 신호등 뒤에는 휴대폰 대리점이 있었고, 다른 가게와 마찬가지로 최신 유행곡을 바닥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크게 틀어 놓았다. 그 소리를 피하고 싶어 한 걸음을 더 내디뎠고, 바로 옆에는 자그마한 탁자가 놓여 있었다. 탁자 위에는 작은 바구니가 놓여 있었는데 바구니 안에는 부채와 얼음팩이 놓여 있었다. 휴대폰 대리점의 마케팅 상품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하나씩 가져가세요!’라는 문구도 같이 있었다.
솔직히 ‘가져가도 필요는 없는데, 없는데….’라며 참으려 했지만 사람들이 하나씩 꺼내 가는 모습을 그냥 보고 있기 어려워 나도 하나 집어 들었다. 부채를 잡았다. 홍보용 부채답게 플라스틱 손잡이와 부채살, 그리고 둥그스런 부채머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해가 들어간 저녁 시간이라 굳이 부채 바람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지만, 공짜로 얻었다는 기쁨을 표현하고 싶은 나머지 세게 바람을 만들었다. 시원했다. 그리고 종일 함께했지만 제대로 펼쳐 보지 못했던 엄마의 부채도 짝 펼쳐 바람을 일으켜 보았다. 꽤 시원했다. 활짝 펼쳐진 부채 속에 그림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켰다. 남의 시선을 의식했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 냈다. 자연의 바람 버금가는 것으로 여겼던 부채 바람의 진면목을 짧게나마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직도 많은 날을 더위와 싸워야 한다. 온몸을 얼게 할 정도의 에어컨 바람도 좋지만 에어컨에 쉼을 주는 중간중간 부채의 은은한 바람도 함께 쐬어 보는 지혜를 가져야겠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