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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5,000원 미용실

by 앰코인스토리 - 2019. 4. 30.


‘앗! 수요일이다.’ 미용실에 도착해서 문이 잠겨 있는 것을 보자마자 수요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머리 좀 깎아야겠다며 집을 나섰었다. 날이 많이 풀렸다고 해도 한낮에 부는 바람조차 겨울바람의 매서움이 많이 남아있다. 다시 그 찬바람을 맞으며 털레털레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집에서 10여 분의 거리를 걷는 것을 마다하며 이 미용실을 찾는 이유는 가격이 저렴해서이다. 조금 넓다 싶은 미용실이면 커트 한번 하기도 부담스러운 값을 내야 한다. 가끔은 억울할 때도 있었다. 앉자마자 뚝딱뚝딱하면 “다 되었습니다, 손님.” 그러면 서둘러야 일어서야 했다. 채 30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아! 아까워.’ 그래서 우리 동네에는 저렴한 집이 없으려나 눈을 씻고 찾아봤지만, 물가도 오르고 인건비도 오르는 상황에서 밑지는 장사를 하려는 가게는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공원으로 운동을 하고 나서 그날따라 평소와 다른 길을 가고 싶어졌다. 그 길을 따라가는데 마주친 미용실이 5,000원 미용실이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진짜 5,000원일까 궁금해서 창피함을 무릅쓰고 미용실 문만 살짝 열고 물어보았다. 가게 원장님이 한참 손님의 머리를 손질 중이었다. “사장님 죄송한데요, 진짜 가격이 5,000원인가요?” “네, 커트는 5,000원입니다. 한번 기회 되면 오세요.” 그게 그 미용실 사장님과 첫 만남이었다.
며칠 후 5,000원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잘라보기로 했다. 5,000원이라는 가격에 많이 못 미친다면 비싸도 다른 미용실을 이용하리라 마음을 먹고 시도를 해 본 것이었다. 중년의 남자 원장님에게 머리를 맡긴 것은 초등학교 시절 일명 스포츠형 머리를 자르기 위해 이발소를 찾은 후 처음이었다. 미용사의 풍미와는 다소 동떨어진 미용실 원장님의 가위질이 시작되었다. 꼬박 30여 분을 엉덩이에서 쥐가 날 정도로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다. 꼼꼼함과 세밀함이 여성 원장님들 저리가라였다. 때마침 찾아오는 손님도 없는 탓에 머리 손질은 길게 이어진 듯했다.
문득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났다. 목욕탕에 갈 때면 어머니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목욕비는 다 뽑고 와야 한다고. 그래서 목욕탕을 한번 가면 퉁퉁 부른 때를 때 수건을 가지고 밀고 또 밀었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5,000원 미용실에서는 5,000원은 다 뽑고 5,000원 서비스를 더 받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후로 5,000원 미용실에 단골이 되었다.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한여름의 뙤약볕을 뚫고 한겨울에는 찬바람을 맞아 가며 커트를 위해 미용실을 찾게 되었다.
수요일의 헛걸음을 뒤로하고 금요일 오전에 미용실을 찾았다. 금요일 오후와 주말을 피해 손님이 적은 시간 때를 이용하자고 마음을 먹고 미용실 문을 두드렸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이 있었다. 파마하는 손님 두 분에 남자 커트 손님 한 분까지 꽤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원장님은 “한 40분은 기다리셔야겠는데요?” 말씀하셨다. 갈까 말까 잠시 고민을 했다.
하지만 또 되돌아가서 다음 기회를 엿봐야 한다는 게 싫었다. 가급적 빨리 기다리기로 결정을 내려 버렸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두 분의 파마 손님은 모두 머리 감고 말리는 과정만을 남겨 두었다는 것이었다. 원장님은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 짜증을 낼 법도 한데 참 차분하게 손님 한 분 한 분의 머리에 정성을 기울이셨다. 긴 시간 동안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지루하기도 했지만 원장님이 손님을 대하는 진심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는 게 기쁘기도 했다. 나의 차례가 되어 의자에 막 앉는 순간, 염색 손님과 커트하려는 남자 손님이 동시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보면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은 장사하는 데 있어서는 큰 강점인 듯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5,000원! 크면 크고 작다면 작은 가격이다. 하지만 요즈음은 5,000원 한 장 가지고도 할 만한 것이 많지 않고, 한 끼 식사를 하려 해도 마땅한 메뉴를 고르기 어려운 금액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5,000원 미용실에 가는 날이면 기분이 좋아지는지 모르겠다. 저렴한 값으로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고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만큼 한 달 동안 나를 짓눌렀던 무거운 짐들이 한꺼번에 잘려나가는 기분이 드니 말이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