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날씨가 추워지면서 패딩점퍼에 귀까지 덮는 털모자를 쓰고는 아직도 필요한 게 있을 것 같아 거실을 두리번거린다. 휴대전화는 거추장스러워서 제쳐 두고 만보계도 챙기고 자그마한 라디오는 필수다. 일자리가 있는 사람들은 건강을 위하여 산을 오르겠지만, 나 같은 사람은 시간을 보낼 목적을 겸해서 산을 찾는다. 같은 연배, 같은 처지인 사람을 만나길 원하지만, 대다수가 눈길 한번을 안 주며 고독을 즐기고, 아주머니들만 짝을 지어 수다 떨며 살 빼기 한다고 야단이다.
메뚜기도 6월이 한철이라고, 삼사십 대 때는 출근 전에 뛰면서 이 산등성이를 오르내렸는데, 이제는 숨차면 쉬고, 약수터에서 물 한 컵 들이켜고, 같은 처지 만나면 못난 세상 비판하고, 1만 보를 채우기 위해서는 능선을 돌고 또 돈다.
산이란 참으로 신비한 존재다. 친구를 만나는 것도 두 시간 정도면 식사하고 이야기까지 바닥나서 싱거워지는데, 집 나설 때 망설였다가는 산허리만 올라서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기운이 솟는 매력이 있다. 산이 간직한 오묘한 조화 탓으로 어제와 오늘내일을 다른 모습으로 맞이해주는 비결 때문일까! 계절 따라 피는 꽃을 볼 수 있고,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숨이 턱 끝까지 차도록 걷고 또 걸은 끝에 마시는 공기에는 말로서 표현하기가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 같은 길이 지루하면 옆길로 빠져 내리막길을 선택하고, 내일은 정상으로 올랐다가 우회전하고, 이렇게 개발한 코스가 일곱 개나 되니 어떻게 이 산을 외면할 수가 있나.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이 정도의 야산은 그대로 밀어붙여 도로를 개설했는데, 터널 위로 모래 깔고 루핑 치고 콘크리트에다 잔디까지 입혀서 야생동물 통로를 만든 신설도로를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관광하러 미국과 캐나다 국경선을 달리며 야생동물보호 펜스와 통행로를 보면서 느낀 감동을 이곳에서도 느낄 수 있다니.
허리띠 졸라매고 휴일도 없이 쌓아 올린 GDP 증가로 환경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했음을 실감한다. 그러나 청정한 공기와 더불어 자연을 즐기고는 음료수나 술병을 심지어는 집에서 가져온 쓰레기까지 버린 것을 보니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든다.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한 게 미안해서 그것들을 동네 쓰레기장까지 운반하지만, 늘어나는 물량에 힘이 빠져서 이 일도 시들해지고 있다.
무심히 걷자. 온 몸이 피곤해질 때까지 오래오래 걷자. 그것이 진정으로 내 몸의 바람 아닐까? 피곤 속에 몸을 맡길 즈음이면 두루치기를 안주로 한 소주상이 아내의 눈 흘김 속에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되리라. 백수면 어떻고 노인이면 어떠하랴. 오늘도 무료함을 극복하고 건강을 위해 이렇게 걷는다.
글 / 사외독자 오준환 님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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