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아버지의 면도기


남자들이 귀찮아하는 일이 하나 있다. 하지만 싫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바로 ‘면도’다. 여성들이 매일매일 화장을 하고 고치고 지우는 일을 반복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갖고 있다면, 남자들에게는 이 면도가 참 골치 아픈 일이다. 수염이 빨리 자라는 친구들은 아침에 한 번 하고 오후에 다시 한번 면도를 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고객을 상대하는 직업이라면 깔끔한 이미지는 필수이기 때문에 면도는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거품을 내서 얼굴에 바르고 면도기로 이쪽저쪽 오가며 면도하는 일이 귀찮아서 큰 마음먹고 전기면도기를 사는 친구들도 종종 봤다. 여성들에게 화장품만큼이나 필수품이며 매일 함께해야 하는 친구와 같은 물건이 면도기인 것이다.
내가 면도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화장실 거울 앞에 놓여 있었던 아버지의 면도기 때문이었다. 은색 빛깔을 띠었으며 메탈 재질을 하고 있었기에 손으로 들어 보면 묵직한 느낌이 났으며 미끄러지지 말라고 손잡이는 홈이 나 있었다. 무엇보다 신기했던 것은, 손잡이 하단을 돌리면 뚜껑이 반으로 열리고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 다시 닫히는 것이었다. 뚜껑이 열리면 그 안에는 날카로운 면도날이 들어가는 자리가 있었다. 면도기 옆에 면도날 한 통이 함께 있었던 이유를 그때야 알 수 있었다. 얇고 날카로운 면도날은 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날카로운 날을 보고만 있어도 온몸이 저렸다. 면도기를 가지고 장난하는 모습을 엄마나 아버지가 보기라도 하시면 “다친다. 장난치지 마라.”라며 엄하게 꾸짖곤 하셨다. 그래도 면도기에 대한 촉각과 모양, 그리고 그 생김새는 늘 눈길을 가게 했다.
볕이 좋은 날이면 작은 거울 하나를 꺼내 들고 아버지는 마당으로 나오셨다. 비누로 잔뜩 거품을 내서 얼굴 주위에 바르고서는 아버지의 면도기로 쓱쓱 수염을 깎았다. 우리 삼 형제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 아버지 가까이에서 면도가 끝날 때까지 보곤 했다. ‘사각사각’ 수염이 깎이는 소리 속에 말끔하게 바뀐 아버지의 얼굴은 세월을 거꾸로 먹는다는 말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 면도기를 10년 이상 사용하셨다. 좋은 면도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의 면도기와 같은 면도기는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 삼중 날 면도기를 사다 드린다고 해도 쉽게 고집을 꺾지 않았다. 매일매일 함께하다 보니 정이 들으셨던 모양이었다.
하도 오래된 면도기다 보니 한번은 청소를 해드려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반나절 식초를 넣고 물속에 담가 두었지만 곳곳에 베인 세월의 때는 쉽게 벗겨낼 수 없었다. 못 쓰는 칫솔로 치약과 비누를 교대로 묻혀 가면서 30여 분을 씨름했지만 처음 그 빛깔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면도날 주위에 숨어 있었던 찌든 때를 걷어 내자 한결 청결해 보이기는 했다. 저녁 밥상머리에서 말수 적었던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오늘 면도는 더 잘 되더라!”
오늘도 아침에 제일 먼저 일어나서 하는 일은 세수다. 세수하면서 꼭 빼먹지 않는 일은 면도다. 하룻밤 사이 여기저기 나 있는 수염을 보면서 가끔은 내 몸속에 장기들이 나름대로 원활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느끼기도 한다. 그걸 감사하면서 기분 좋게 면도를 시작하기도 한다. 아울러 다시 한번 아버지의 오래된 면도기를 떠올려 보게 된다. 아버지가 아버지의 면도기를 오래오래 아끼셨듯, 나 또한 함께하고 있는 나의 면도기에 대한 무한 애정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표시한다. ‘멋진 얼굴 만들어 줘서 고맙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인천)

'Community >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피소드] 닭서리의 추억  (0) 2019.01.11
[포토에세이] 겨울비  (0) 2019.01.08
[에피소드] 아버지의 면도기  (0) 2019.01.04
[에피소드] Right here waiting  (0) 2018.12.28
[시 한 편] 쉬어 가자  (0) 2018.12.25
[에피소드] 말이 돼요  (0) 2018.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