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어렵고 재미없다는 편견에 맞서
우리는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할까?
인문학은 무엇일까요? 인문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 자리에서 명쾌한 대답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찾아보았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인문학’은 ‘언어, 문학, 역사, 철학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아니, 역사와 철학 ‘따위’라니요. 이 설명에 따르면 인문학의 위상이 한낱 학점이나 올려주는 ‘교양수업 따위’로 전락한 이유가 보이는 듯해서 조금 씁쓸합니다.
한자사전에 따르면 ‘인문학(人文學)’은 ‘인간(人間)과 인간(人間)의 문화(文化)에 관심(關心)을 두는 학문(學問) 분야’라고 나옵니다. 글자 그대로 인간의 문명을 총체적으로 들여다보는 학문인 것이지요. 영어사전은 ‘인문학’을 ‘(the) humanities'라고 말합니다. 그야말로 인간, human에 대한 공부임을 명시합니다. 학문명백과에서 ‘인문학’을 찾아보면, ‘주로 인간과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나 사상, 문화를 중심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나옵니다. 인간의 가치와 관련된 제반 문제를 연구하는 학문이지요.
이렇게 인문학의 정의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학문이 바로 인문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문학이 어렵고 재미없다고 생각합니다. 중고등학생 때는 선생님이 입시를 위해 읽으라던 책 목록이 인문학 서적들이어서 지레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대학생이 되어 교수님이 추천해 주시던, 두껍고 읽기 어려운 책들 - 주로 신화, 철학, 역사와 세계사 같은 책들 - 이 인문학을 어렵게 느끼도록 했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철학, 사학, 미학 등을 전공하는 인문학 전공자에 대해 ‘밥 벌어 먹고살기 힘들겠다’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편견도 인문학이 죽어가는 데 한몫을 합니다. 인문학을 돈벌이가 되지 않는 것, 쓸모없는 것의 범주에 넣어버리니 일부 대학에서조차 인문학을 축소하려고 듭니다. 대학조차도 생산과 효용, 이윤을 목적으로 삼는 기업의 경영방식을 따라갑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인문학 열풍은 이상한 쪽으로 흘러버렸습니다. 인문학을 공부해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인문학 경영, 인문학 인간관리, 인문학 처세술 같은 잘 먹고 잘사는 법의 범주에 인문학이 끼워 맞춰졌습니다.
잘 먹고 잘살고 싶으면 자기계발서를 열심히 읽으면 되지 우리는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걸까요?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일 겁니다. 동물은 필요에 의해서만 움직이지만 사람은 당장 쓸모가 없어도 상상하고 창조하는 일에 매달립니다. 지금 당장 써먹을 수 없는 것들, 시와 예술이 지닌 쓸모없음이 인간을 구원합니다. 장석주 시인은 ‘영혼이 녹아 들어가는 듯한 죽음과 커다란 재난이라는 압도적인 경험에 마주칠 때, 바흐의 음악을 들으며 마음의 위안을 구하고, 스피노자나 레비나스의 철학책을 읽으며 삶의 잔혹함을 견디는 힘을 얻는다’고 말했지요. 인간만이 이런 쓸모없음의 유용함을 찾아낼 수 있고, 그리하여 인간만이 문명을 만들어 냅니다.
문명의 번성은 인문학의 발흥과 맥을 같이 합니다. 인문학은 진실과 정의의 가치를 심어주고, 지혜와 통찰을 키웁니다.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생각하게 하지요. 인문학은 정신의 사막화를 막고 물신주의로 치닫는 위험을 벗어나도록 돕습니다. 인간의 품성과 심미적 자질을 길러주는 인문학이 없다면 사회는 후퇴합니다. 야만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인문학의 몰락은 한 사회와 한 나라의 몰락으로 나아갑니다.
물질 만능의 사회, 야만의 사회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문학은 필요합니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인문학은 자기 성찰의 계기를 부여합니다. 앎의 기쁨, 나눔의 행복을 알게 합니다. 삶을 품격 있게 만듭니다. 인문 도서를 읽으며 나의 시간이 얼마나 풍요로워질 수 있는지 직접 체험해보시길 바랍니다. 2018년을 즐겁게 시작하시면 좋겠습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에 대한 품격 있는 응답
「라틴어 수업」,
한동일 지음, 흐름출판
라틴어라니, 영어도 중국어도 아니고 웬 라틴어? 베스트셀러로 승승장구하는 이 책이 궁금해 읽기 시작했습니다. 읽어보니 이 책은 단순한 라틴어 수업이 아니었습니다. 라틴어의 체계를 말하며 공부하는 자세를 돌아보고, 라틴어에서 파생한 유럽의 언어를 이야기하며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화, 사회, 제도, 법, 종교를 살펴봅니다. 어학 수업이 아니라 수려한 인문교양 수업에 가깝습니다. 그의 라틴어 강의가 타 학교 학생들과 교수들까지 청강하러 올 정도로 인기였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한국인 최초, 동아시아 최초로 바티칸 대법원의 변호사가 된 저자는 유학 시절 경험한 이야기와 자신에 대한 성찰을 들려주는데, 심지어 글 속에 매번 겸손함이 녹아납니다. 끝없는 공부와 도전으로 이루어진 삶이 힘들고 지칠 때 이 책을 읽는다면 저자의 부드러운 다독거림에 마음이 따뜻하고 유연해질 것 같습니다.
17개의 동화를 읽는 시간, 인문학이 필요한 순간
「동화 넘어 인문학」,
조정현 지음, 을유문화사
성냥팔이 소녀는 왜 죽을 지경이 되어서야 성냥을 떠올렸을까요? 발의 감각이 없어지고, 배가 고파 정신마저 흐려진 그 순간이 되어서야 성냥을 생각하다니. 소녀가 조금만 더 일찍 성냥을 생각했다면, 따뜻한 모닥불을 피워서 모여든 사람들에게 먹거리를 얻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저자는 몸을 따뜻하게 해줄 불씨가 처음부터 자기 자신 안에 있음을 지적합니다. 저자는 이솝의 우화에서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읽어내고, 「로빈슨 크루소」에서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를 읽어내고, 「인어공주」에서 롤랑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읽어냅니다. 「피터 팬」에서 니체를 엮어내고, 「소공녀」에서 장 지글러를 말하지요. 17편의 동화에 17편의 인문학책을 연결하는 저자의 글솜씨가 대단합니다. 쉽고 재미있게 읽다 보면 누구나 자기 안에 인문학이라는 성냥이 있음을 깨닫게 될 겁니다.
마음의 일요일을 찾아주는 인문학책
「일요일의 인문학」,
장석주 지음, 호미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늦잠에서 깨어난 일요일 오후, 햇볕 환한 마당에 나무 의자를 내놓고 여유를 부리며 일요일을 보내자고. 그래서 ‘일요일을 위한, 일요일에 의한, 일요일에 펼쳐 읽기 좋은 책’을 써냈습니다. 1년에 우리가 맞이하는 52개의 일요일에 한 편씩 느릿느릿 읽을 수 있도록 52가지의 풍요로운 인문학적 사유를 담았습니다. 지친 몸을 쉬어가는 일요일처럼, 마음에도 진정한 쉼과 여백이 필요합니다.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문학비평가인 저자의 근사한 문장들이 천천히 마음으로 스며들어 오래 머뭅니다. 가보지 못한 장소들, 한 번도 보지 못한 식물과 풍경들, 낯선 미지의 시간 속으로 뛰어들어 ‘내면의 광합성’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
「걷기의 인문학」,
레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역, 반비
걷기가 왜 인문학적 탐구의 주제가 되는 걸까요? 저자는 이에 대해 대단히 설득력 있는 근거들을 제시합니다. 새로운 장소는 새로운 생각이며 새로운 가능성입니다. 세상을 두루 살피는 일은 마음을 두루 살피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세상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하듯, 마음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합니다. 걷기는 생산 지향적인 문화와는 애초부터 거리가 있는 행위이며, 그 자체가 수단이자 목표인 행위입니다. 이는 인문학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특성이지요. 저자는 마음을 가장 잘 돌아보기 위해서는 걸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 걷기의 역사가 생각의 역사를 구체화한 것임을 알 수 있어요. 걷기의 역사를 통해 인간 문화의 역사를 말하는 이 책을 통해 아름답고 위대한 걷기의 힘을 실감하시길 바랍니다.
글쓴이 배나영은
남다른 취재력과 감각있는 필력을 여러 매체에 인정받아 자유기고가와 여행작가로 일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기획자에서 뮤지컬 배우에 이르는 폭넓은 경험을 자양분 삼아 글을 쓴다. 현재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하며 여행과 삶을 아름답게 조화시키는 방법을 궁리 중이다. 블로그 baenadj.blog.me/
※ 외부필자에 의해 작성된 기고문의 내용은 앰코인스토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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