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거리를 걷다 보면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레인부츠를 신은 젊은이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요, 화려한 색감을 입고 젊은 여성들 사이에 패션 아이템 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일찌감치 고무장화 패션을 이끄셨던 분들이 계십니다. 시골 논밭에서 혹은 어시장에서 일하시는 우리의 부모님들, 그분들이 고무장화 패션의 선두주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정말로 고무장화는 어느 나라에서,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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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기업가 히람 허친슨 (Hiram Hutchinson, 1808~1869)이라는 사람이 1853년 프랑스 몽타르지에 연성고무회사를 세우게 됩니다. 인구의 90%가 전원생활을 하던 당시 프랑스에서 고무장화를 팔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였습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웰링턴 부츠라고 들어보셨나요? 영국 웰링턴 공작의 이름을 딴 이 부츠는 19세기 초 영국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부츠였습니다. 허친슨은 초기 제품인 웰리 부츠에 이어 무릎까지 올라오는 웰링턴 부츠 스타일의 고무장화를 만들어 프랑스에서 소위 요즘 표현으로 대박을 터트렸습니다. 이 회사는 훗날 방수신발과 방수의류, 아웃도어의 명품브랜드사로 성장해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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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기고 탄력 있는 고무의 발견이 없었다면 히람 허친슨의 고무장화도, 더 나아가 자전거나 자동차의 바퀴를 감싸는 타이어의 발명도 불가능한 일이었겠지요. 그 일을 가능케 한 인물이 바로 오늘 소개할 찰스 굿이어 (Charles Goodyear, 1800~1860)입니다. 아버지의 철물점을 운영하다 문을 닫게 되자 고무의 성질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게 됩니다. 그와 함께 고무 연구를 했던 나다니엘 헤이워드 (Nathaniel M. Hayward)가 고무에 유황을 첨가하면 탄성이 더 좋아진다는 것을 발견, 굿이어는 그로부터 특허권을 사들였습니다. 1837년에는 정부로부터 우체국의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한 고무가방 제작을 의뢰받게 됩니다. 그러나 고온에 쉽게 녹아버리고 추위에 딱딱하게 갈라지는 열에 약한 고무의 문제점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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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추운 겨울 어느 날, 굿이어는 무심코 유황 섞인 천연고무를 뜨거운 난로 위에다 놓아둔 채 깜박 잊고 외출하고 돌아옵니다. 고약한 냄새와 함께 까맣게 타다 만 고무를 발견하게 되지요. 이전보다 훨씬 단단할 뿐만 아니라 탄력성과 내구성이 좋아진, 그렇게나 자신이 찾고자 연구했던 성질의 고무가 되어 있었습니다. 고무에 유황뿐 아니라 열을 가해야 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것이지요. 이 사건이 바로 찰스 굿이어의 ‘고무가황법’ ‘열가류법’의 탄생으로, 새로운 성질의 고무 발견과 함께 고무산업의 혁신을 일으킨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1844년 특허를 따내고 예상대로라면 그는 곧 벼락부자가 되었겠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생전에 부를 누리기는커녕, 그가 세상을 떠날 때 당시로써는 어마어마한 돈 20만 달러가 넘는 빚을 가족에게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그의 특허를 도용한 사람들과 기나긴 법정 싸움을 해야 했고, 그는 185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고무가황법 특허에 완전히 승소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의 상품들을 전시했던 국제박람회 개최지인 잉글랜드로 건너가 공장을 세우려 했지만 자금난 등으로 실패합니다. 게다가 기술적, 법적 문제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에서 특허권을 잃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 그의 가황고무를 생산하던 회사까지 망하게 되는 정말 엎친 데 덮치는 불운을 겪게 됩니다. 그로 인해 빚을 크게 져서 1855년에는 감옥살이까지 했다고 하니, 그는 물론이고 그의 가족들에게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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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 찰스 굿이어 주니어가 고무를 이용한 자동차 바퀴를 만들었습니다. 그의 딸이 아빠가 만든 자동차 고무바퀴를 보면서 “자동차 중에서 가장 피곤한(tire) 부분이 바퀴인 거 같아요!”라고 말했던 데서 이전까지 러버 휠(rubber wheel)이라고 불리던 자동차바퀴가 타이어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그러나 어쩐지 그의 아들도 그렇게 큰돈은 벌지 못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지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한 타이어 회사 ‘굿이어’도 이 가족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는 프랭크 세이버링이라는 사업가가 발명가 찰스 굿이어를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세이버링은 이 회사를 세우고 타이어를 팔아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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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 타이어는 한 단계 더 발전한 모습이 되어 영국 수의사 존 던롭(John Dunlop)에게도 부를 안겨다 주었습니다. 몸이 약한 그의 아들이 자전거를 타다가 자꾸 넘어지는 것을 평소 안타깝게 생각하며 고민하던 어느 날, 아들이 바람 빠진 공을 들고 와 공기를 넣어 달라고 할 때 한 가지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즐겨 타던 삼륜 자전거 고무바퀴에도 공기를 주입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던롭은 사업적 가능성에 확신을 하고 서둘러 자신의 재산을 정리하여 던롭 공기타이어 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공기타이어는 선풍적 인기를 끌어 불과 7년여 만에 던롭을 영국 재계의 거물 자리로 올려놓았습니다. 또한 독일의 벤츠사와 미국의 포드사에 자동차용 공기타이어를 독점 납품하게 되어 대기업 회장으로 변신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찰스 굿이어의 고무가황법으로 탄생한 새로운 고무는 이처럼 많은 사람에게 때로는 고무장화나 아웃도어 명품으로, 때로는 자전거의 대표적인 브랜드나 자동차 타이어의 유명 브랜드로 자리 잡아 부와 명예를 안겨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고무를 발견한 본인, 찰스 굿이어는 사는 동안 그렇게 정당한 대가와 대우를 받지 못하고 고생만 하고 살았던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발명과 발견 못지않게 그것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지혜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글쓴이 한지숙은
글에도 다양한 표정이 있다고 믿는 자유기고가. 얼굴을 직접 마주하지 않는 인터넷 공간이라 할지라도 글을 통해 많은 이들과 마음을 나누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거울 대신 키보드로 표정 연습에 열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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