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는 두 차례에 걸쳐 프랑스(보르도, 부르고뉴) 와인 라벨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이번에는 스페인 와인 라벨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최근 와인 관련 기사 중에 눈에 띄는 것은 스페인 와인의 약진이었다. 예전에는 프랑스, 이탈리아, 신대륙(미국, 호주, 칠레) 와인들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지만, 최근 불황이 깊어지면서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나고 맛도 좋은 스페인 와인을 찾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스페인 와인이 그동안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메를로에 물린 와인 애호가들에게 좋은 품질과 매력적인 가격으로 파고들기에 성공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필자는 필리핀에 오기 전까지는 스페인 와인에 대한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품종 자체도 생소한 데다가 처음 만났던 스페인 와인의 뒤끝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와인을 적당히 마신 다음 날에는 머리가 아픈 일이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스페인 와인을 마신 다음 날에는 꼭 경미한 두통이 있었다. 하지만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LAN Gran Reserva(스페셜 에디션)와 최근 알게 된 마르께스 드 무리에따 와인들을 계기로 스페인 와인을 다시 보게 되었고, 요즘은 스페인 와인의 매력에 푹 빠져있는 중이다. 다음날 느꼈던 경미한 두통도 잊은 지 오래. 필자가 아는 스페인 와인의 매력은 바디감이 너무 무겁지 않아 안주 없이 가볍게 마시기에 좋고, 향기 또한 달콤하고 은은하여 접근하기 쉽다는 것이다. 물론 가격이 비슷한 다른 나라 와인들에 비해서 품질 대비 충분히 경쟁력이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번 호에는 요즘 뜨고 있는 스페인 와인 라벨은 어떻게 해석하는지 알아보려 한다.
라벨을 읽기 위해서는 스페인의 주요 와인 산지와 숙성 기간에 따른 명칭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서 먼저 간단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와인 산지
스페인에도 수많은 와인 산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Rioja(리오하)와 Ribera Del Duero(리베라 델 두에로)다. 리오하(Rioja) 지역은 스페인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인데, 마드리드에서 북쪽으로 약 250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에브로 강을 따라 120km에 걸쳐 펼쳐진 방대한 지역을 말한다. 19세기 말 필록세라(포도뿌리 혹벌레)가 전 유럽의 와인 산업을 초토화했을 당시, 미리 조처를 한 리오하에는 피해가 거의 없었고 그런 이유로 프랑스 와인 전문가들이 대거 리오하에 정착하였다. 이후 그들이 양조기술을 발전시켜 장기숙성이 가능한 품질 좋은 와인을 생산하여 유명해졌다.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 지역은 필자가 최근 좋아하게 된 지역이다. 신성 와이너리들이 많이 포진한 곳으로, 두에로 강을 따라 형성된 포도밭에는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인 핑구스, 우니코 등의 내로라하는 와이너리들이 있으며 다른 보데가(Bodega)들도 품질이 우수한 와인들을 생산하고 있다. 참고로 스페인에서는 양조장을 보데가(Bodega)라고 부른다.
▲ 스페인 와인 지도
사진출처 : https://goo.gl/xJF0Li
와인 숙성 기간에 따른 분류 (리오하 지역 기준)
스페인 와인의 라벨을 유심히 보면, 낯선 단어들이 눈에 들어온다. 호벤(Joven), 크리안자(Crianza), 리제르바(Reserva), 그랑-리제르바(Gran-Reserva)가 그것인데, 이는 모두 와인 숙성 기간에 따라서 법으로 정해진 와인의 등급 분류에 해당한다. 하지만 숙성기간이 길다고(Gran-Reserva라고 표시되었다고) 꼭 좋은 와인은 아니니, 보데가의 이름을 보고 판단해야 하겠다.
✔ Vino Joven (비노 호벤) : 통에서 숙성을 시키지 않고, 만든 지 1년만에 시장에 나온 와인 (프랑스 보졸레 누보랑 같은 햇와인)
✔ Crianza (크리안차) : 최소 2년 이상 숙성시킨 와인 (1년은 통 숙성, 1년은 병 숙성)
✔ Reserva (리제르바) : 최소 3년 이상 숙성시킨 와인 (최소 1년은 통에서 숙성해야 함)
✔ Gran-Reserva (그랑-리제르바) : 최소 5년 이상 숙성시킨 와인 (통 숙성 2년, 병 숙성 최소 3년)
그럼 이제는 인기 있는 스페인 와인들의 라벨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1. 베가 시실리아 우니코 그랑 리제르바 (Vega Sicilia Unico Gran Reserva)
필자가 활동했던 인터넷 와인 동호회에서 스페인 와인을 유독 좋아하던 분이 있었다. 그분이 와인 셀러에 고이 모셔두고 애지중지했던 와인이 바로 우니코다. 명실상부한 스페인 최고 와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최소 10년 이상 와이너리에서 숙성시켜 시장에 출시되며 40년 이상 장기 숙성이 가능한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출처 : Ribera del Duero
① VEGA-SICILIA (베가 시칠리아) : 보데가(와이너리) 이름이 로고와 함께 나타나 있다.
② COSECHA 2000 (코세차 2000) : 2000년에 수확한 포도로 만들었음을 나타낸다.
③ UNICO (우니코) : 와인 이름이다.
④ Ribera del Duero (리베라 델 두에로) : 스페인 와인 생산지역 이름이다.
⑤ 75cl : 75centilitre = 750mL 와인 용량.
⑥ 14.5% vol : 알코올 도수.
⑦ BODEGAS VEGA SICILIA (보데가스 베사 시칠리아) : 와이너리 이름을 나타낸다.
2. 마르케스 데 무리에타, 카스티요 이가이 그랑 리제르바 에스페시알 (Marques de Murrieta, Castillo Ygay Gran Reserva Especial)
필자가 사랑하는 와인 중 하나가 되었다. 필리핀에서 벌써 네 번째 만났으나 단 한 번도 실망하지 않았던 와인이다. 위대한 리오하 와인이 어떤 것인지 잘 표현하는 와인이 아닌가 싶다. 네이버에서 와인 가격을 검색해보고 깜짝 놀랐지만, 필리핀에서는 12만 원 정도에 구매한다. 특별한 날, 특별한 분을 위한 선물로도 손색이 없는 와인이다.
사진출처 : Rioja
① Marques de Murrieta (마르케스 데 무리에타) : 와이너리(스페인에서는 보데가라고 한다) 이름이다.
② Castillo Ygay (카스티요 이가이) : 와인 이름.
③ Rioja (리오하) : 와인 생산지 이름.
④ Gran Reserva especial (그랑 리제스바 에스페샬) : 그랑 리제르바 급으로 최소 오크통 숙성 2년, 병 숙성 3년 이상 시켜서 출시된 와인이다.
⑤ COSECHA 2005 : 2005년에 수확한 포도로 만들었음을 나타낸다.
3. 마르케스 데 무리에타 리제르바 (Marques de Murrieta Reserva)
마르케스 드 무리에따에서 만든 리오하 와인으로, 이가이보다는 아래 급수이지만 훌륭한 스페인 와인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한국에서는 10만 원 초반대 가격으로 검색되는데, 필리핀에서는 5만 원 아래 가격에 만날 수 있고,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와인이다. 필자가 와인을 좋아하기 시작하는 분들에게 추천하는 와인 중 하나로, 스페인 와인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사진출처 : https://goo.gl/2qN4OY
① Marques de Murrieta (마르케스 데 무리에타) : 와이너리(스페인에서는 보데가라고 한다) 이름.
② RESERVA (리제르바) : 최소 3년 이상 숙성시킨 와인 (최소 1년은 통에서 숙성을 시켜야 함)
③ 2008 : 2008년에 수확한 포도로 만들었음을 나타낸다.
④ RIOJA (리오하) : 와인 생산지 이름.
4. 알레한드로 페르난데즈, 하자 크리안자 (Alejandro Fernandez, Haza Crianza)
예전에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참새 방앗간처럼 들렀던 이마트 와인 냉장고에서 항상 눈에 띄던 녀석이다. 오래된 건물이 라벨에 있고 이름도 Haza이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Haza를 아싸로 읽기도 하여 회식자리에서 흥을 돋우는 와인이라고 한다. 궁금하기만 했었지 만날 기회는 없었는데, 필리핀에 나와서 요 녀석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와인 코너 구석에 얌전히 누워있었는데 생각보다 정말 괜찮았다. 가격도 2만 원대로 한국보다는 훨씬 저렴했고, 2012년 빈티지는 와인스펙테이터 선정 100대 와인 중 당당히 18위에 올라서 크리안자 급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와인이다. 혹시 마트 장터에 하자 와인이 보인다면 꼭 한 번 만나볼 것을 권한다. 리베라 델 두에로 지역의 와인이 어떤 것인지 잘 표현해줄 것이다.
사진출처 : https://goo.gl/dmBlfX
① Ribera del Duero (리베라 델 두에로) : 스페인 와인 생산지역 이름.
② 2011 : 2011년에 수확한 포도로 만들었음을 나타낸다.
③ HAZA (하자, 아싸) : 와인 이름.
④ 75cl : 75centilitre = 750mL 와인 용량.
⑤ 14.5% vol : 알코올 도수.
글을 쓰다 보니,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싶은 스페인 와인이 너무도 많이 남아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는 정열의 나라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것이 투우, 플라멩코, 건축가 가우디, 레알 마드리드(프로축구) 순이었는데, 이제는 와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신성으로 떠오르는 스페인 리베라 델 두에로의 와인들. 기회가 있으면 꼭 한번 만나보도록 권하고 싶다. 혹시 그 와인 한 잔으로 스페인 여행을 계획할지도 모를 일이다.
WRITTEN BY 정형근
우연히 만난 프랑스 그랑크뤼 와인 한 잔으로 와인의 세계에 푹 빠져들었다. 주위에 와인 애호가가 늘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으로 사보에 글을 연재하게 되었으며, ‘와인에는 귀천이 없다.’라는 마음으로 와인을 신중히 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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