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엔지니어] 존 해리슨, 크로노미터로 해상 위치확인을 가능케 하다
1714년 어느 날, 영국의 내로라하는 발명가, 과학자, 지식층들이 런던에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의회가 내건 어마어마한 상금 200만 파운드(현재 가치로는 수백만 파운드)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1707년 10월 영국 전함 4척이 영국 본토를 코앞에 두고도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해 좌초되어 2,000여 명이 수장되어 버린 사건 이후로 영국에서는 ‘경도’를 통한 정확한 위치 파악이 대국민적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뱃사람들의 탄원서가 앤 여왕에게 전달되었고, 뉴턴과 핼리 (만류인력법칙과 핼리혜성을 발견한 바로 그 사람들)가 중심이 된 ‘경도위원회’가 생겨납니다. 바로 이 위원회에서 포상금을 내걸고 정확한 경도 측정 장치 발명을 종용하게 된 것이지요.
그보다 훨씬 이전에 대항해 시대를 거치면서 나라마다 원활한 해상교류와 정복을 위해 경도의 중요성은 계속 대두하여 왔지만, 누구 하나 뾰족이 정확한 경도를 측정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18세기 초까지 과학자나 이름난 수학자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여러 가지 방법이 시도되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가령, 천문학자들은 달이 특정한 별을 지나는 시점을 기준으로 경도를 측정하기 위하여 수십 년간 별과 달의 위치를 관찰, 기록하여 도표를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40년간 이 일만 종사한 왕실 천문학자가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절실한 마음이었는지 느껴지는데요. 그러나 이 또한 날씨가 흐린 날이나 달이 보이지 않는 낮 동안은 사용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진자시계’를 통하여 경도를 알아내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배의 흔들림조차 극복하지 못할 때가 많았고, 극심한 기온 차를 견디지 못하거나 시계에 쓰이는 윤활유 상태 등에 따라 쉽게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곤 했습니다. 이로 인해 항해시간 등을 어림짐작하여 항해하다가 종종 오판하여 망망대해를 헤매거나 굶어 죽는 일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은 전적으로 신의 은총이라 여겼지요.
▲ 존 해리슨 초상화
사진출처 : http://goo.gl/zdZRNE
바로 이럴 때 하늘의 별과 같이 나타난 이가 바로 존 해리슨 (John Harrison, 1693~1776)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1735년, 계속된 경도 측정 실패로 경도위원회의 존재마저 흐지부지 희미해질 무렵, 존 해리슨이 캐비닛 크기만 한 H1이라는 놀라운 경도측정시계를 들고 나타난 것입니다. 하루 오차가 3초에 불과한 이 시계는 3년간 바다 위에서의 정확성 실험도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예정대로라면 그는 당연히 어마어마한 포상금의 주인공이 되고, 국가적 축하도 받게 되겠지요? 그러나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일이 그에게 일어납니다.
▲ 국립해양박물관에 전시된 H1
사진출처 : http://goo.gl/XWaFJs
H1을 발명한 존 해리슨은 명성을 크게 얻고 있던 과학자도, 수학자도, 그렇다고 천문학자도 아닌 목수 일과 시계 수리를 업으로 삼고 있었던 한 평범한 시민이었습니다. 당연히 지식층들로 이루어진 경도위원회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자신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일이 된 것입니다. 더군다나 ‘중력이 변하는 바다 위에서 정확하게 작동하는 경도측정시계란 불가능하다’고 주장해온 뉴턴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이 판명되는 순간이었습니다.
▲ 퇴각식 탈진기 원리
사진출처 : https://goo.gl/mLbeNc
위원회는 온갖 이유를 들어 심사를 미루고 심지어는 H1 설계도와 완성품을 압수하기도 했습니다.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 내라고 협박도 당했고요. 그 후로도 해리슨은 30년여 년 동안이나 기득권층의 시기심과 질투로 고난을 겪어야 했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그의 발명은 발전을 이루어 갔습니다. 온도에 민감하지 않은 보정진자 고안, 마찰이 작은 퇴각형 탈진기, 태엽을 감는 중에도 작동이 멈추지 않는 장치 등을 발명했습니다.
▲ H4 내부 모습
사진출처 : https://goo.gl/TwS8Di
1759년, 그는 손바닥 크기만 한 그의 네 번째 항해용 태엽시계 H4, 바로 크로노미터 (chronometer)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는 배가 흔들려도 진동속도가 달라지지 않았고, 정밀도가 높아 정확한 경도 측정이 가능해져 해상지도가 만들어지는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안전한 바닷길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결국, 그의 공로가 인정되어 세상을 떠나기 직전 3년 전인 1773년에야 상금을, 그것도 전액은 아니고 일부를 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존 해리슨은 명예회복이 되었다는 것에 위로를 받고 조금이나마 편히 눈을 감았을까요?
▲ 존 해리슨의 크로노미터 H5
사진출처 : https://goo.gl/LjfkQn
나보다 나은 남을 인정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인 듯합니다. 위대한 업적을 지닌 뉴턴과 핼리와 같은 대학자들도 인간의 본성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지금 나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주는 크로노미터가 내 마음의 위치까지 파악해 줄 수 있다면 어떨까요. 나의 감정이 너무 격해지거나 다른 사람의 기분까지 상하게 하는 단계로 벗어나지 않도록 안전한 범위 내에 머물게 내 감정의 위치를 조절할 수 있는 크로노미터, 하나쯤 갖고 싶지 않으세요?
글쓴이 한지숙은
글에도 다양한 표정이 있다고 믿는 자유기고가. 얼굴을 직접 마주하지 않는 인터넷 공간이라 할지라도 글을 통해 많은 이들과 마음을 나누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거울 대신 키보드로 표정 연습에 열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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