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진」을 읽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에서 대출받은 책으로 대출기한이 가까이 다가오다 보니, 겸사겸사 도서관에 오게 된 것이다.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것만 하다 보니 열람실을 굳이 찾을 기회는 없었다. 그런데 책을 읽기 위해 찾은 열람실은 생각한 것보다 아름다웠다. 한동안 뚝딱뚝딱 소리를 내며 공사를 했었는데, 정말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열람실의 이미지라면 긴 다리 책상에 칸막이와 딱딱한 나무 의자가 있는 공간이었는데, 카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모습이었다. 좌석표도 따로 없어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노트북을 켜고 자신의 공부에 몰두하였다.

커다란 카페에 홀로 앉아 커피 한잔을 시켜 놓고 음악을 들으며 노트북에 푹 빠져 있던 친구의 모습이 참 아름답게 보였던 기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문을 열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찾아보았다. 중앙 약간 왼쪽에 탁자와 의자가 비어있었다. 대부분 홀로 공부를 하기 위해 찾다 보니 1인 테이블이 더 인기 있는 모양이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오리진」 2권 하반기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노트북 키보드 소리와 책장을 넘기는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고요한 적막을 수시로 깰 뿐이었다.

집에서 읽을 때보다 몰입도가 높아서인지 읽는 속도를 빨리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모든 것을 잊고 책에만 푹 빠져 있을 수 있었다. 한 30여 페이지를 남겨두고 책에서 눈을 떼었다. 같은 자세로 장시간 있다 보니 어깨와 허리가 결리는 기분이 들어 열람실을 잠시 빠져나온 것이었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했고 어둠이 조금씩 내려앉고 있었다. 복도에는 학교를 파하고 도서관을 찾은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계단을 오르는 혹은 내려가는 학생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문득, 공부에 열정을 갖고 대들던 학창시절이 생각났다. 그때는 도서관이 놀이터이다시피 했다. 거대한 포부와 희망을 품고 주말이면 가까운 도서관을 찾아 도서관 문이 닫힐 때까지 정말 열심히 공부했었다. 친구와 안 풀리는 수학문제 하나를 가지고 이리저리 풀어보면서 대여섯 시간을 씨름하면서 고민고민을 하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많은 학생 틈바구니에서 마음속으로 좋아하던 여학생과 마주치며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아무 말 못 하던 그때가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순수했을 때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도서관 매점의 라면은 유난히 맛이 있어서 친구보다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기 위해 뜨거운 라면을 쉼 없이 흡입했던 그 결기는 지금 돌아보면 부럽기만 하다. 세월이 지나 도서관의 풍경은 많이 변해 버렸지만 자신과의 싸움을 펼쳐 보고자 하는 열정과 열의는 지금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아무리 어려웠던 순간 속에서도 도서관을 찾으면 새로운 힘이 샘솟았고, 꿈 하나만을 좇아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행복감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느낄 수 없었다.

2권의 책을 다 읽고 기분 좋게 반납을 하고 도서관 문을 나섰다. 두 권의 책을 비워낸 가방은 새털만큼 가벼웠다. 하지만 마음만은 지식으로 가득 채울 수 있었고, 도서관에 대한 추억으로 더 많은 행복을 대출받아 나올 수 있었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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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의 일이다. 아내한테는 하루가 멀다고 안부전화가 오지만, 내게는 그런 행운이 드문 편인데 아들한테서 연락이 왔다. “아버지, 세종시에 집을 계약했습니다. 손자도 같이 가기로 했고요.” “수고했다. 이제 정상으로 돌아가는구나!”

아들 가족이 여러 조건이 갖추어졌다는 지역에 살고 있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황금기를 헛되게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아들은 세종시에서 출퇴근하고 며느리는 서울 소재 금융회사에 다니다 보니, 손자 손녀를 돌보아줄 사돈댁 옆에서 엉거주춤 사는 것이 벌써 7년 차다.

재작년 말에 며느리가 공채 합격으로 아들이 있는 곳으로 출퇴근하게 되었다. 며느리의 합격은 그 분야에선 드문 일로 잠시나마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는지라 불편과 어려움이 뒤따랐다. 아들이야 여전히 주말부부 신세지만, 며느리는 새벽 6시에 통근버스를 타거나 7시에 출발하는 SRT를 이용하느라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가까이에 산다고는 하지만, 사부인도 같은 시간대에 며느리와 맞교대를 해서 손자 손녀를 돌봐야만 했다. 처가 신세를 지는 게 우리 때와는 다르다지만, 그분이 받는 피곤과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우리라.

언제인가 라디오에서 40대의 흙수저가 한 말이 생생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봐도 대학을 나왔다면, 아버지 세대가 역사상 가장 행복할 것 같아요. 소수인지라 주위의 부러움도 받았을 거고, 혼자 벌어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었으니까요. 우리는 그런 조건을 다 갖추고 맞벌이를 해도 허겁지겁하는 세대 아닌가요. 미래는 더욱더 불안하고요.” 휴일도 없이 뼈 빠지게 일한 우리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으니 얼핏 생각해선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아파트를 재계약할 시기가 다가오고 손자는 안 가겠다고 버텨서 고민 중인 시간이 꽤 길었나 보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손자는 외할머니가 할마 역할을 해주기로 하고 손녀만 데리고 이주하는 것으로 알려와서 가슴 한쪽에는 커다란 돌덩이가 걸려있었다. 그러던 것이 신학기를 한 달여 앞두고 손자가 “가 보고 안 좋으면 다녔던 학교로 되돌아갈 거야.”라는 조건부 동참이라지만,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희소식이다. 이주 예정인 아파트를 검색해보았더니 손자가 다닐 초등학교는 횡단보도만 건너면 되고, 손녀는 며느리가 출근길에 데려가서 1층에 있는 유치원에 맡기고 퇴근 시에 동참한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초등학교 홈페이지에는 ‘학부모 돌봄 모임’이 잘 구성되어 있어서 맞벌이에게도 적잖은 도움이 될 것 같아 한결 마음이 편하다.

다음에 만나면 며느리에게 이 말만은 꼭 해주고 싶다. “그동안 고생 많았고 대견한 며느리를 두어서 자랑스럽구나. 사부인에게도 우리 부부는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고 전해라.”


글 / 사외독자 이수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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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다인과 채아라는 예쁜 조카가 있다. 한 명은 초등학생 또 다른 한 명은 유치원생. 부모님들이 가장 예뻐할 때가 그 시기란 말처럼, 정말 순수 그 자체의 아이들이다. 가끔 얘기를 들어보면 세 살 터울의 언니와 동생답지 않게 잘 싸운다고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끔찍이 아껴 줄 때가 많다. 며칠 전 대전에 갈 일이 있었다. 이 두 아이에게 무슨 선물을 해줄까 고민하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이 났다. 때마침 동생 내외가 시내로 쇼핑을 하러 나가야 한다고 하기에 자연스레 두 아이를 봐주게 되었다. 자주 보는 얼굴이 아니라 서먹서먹한 시간이 10여 분 흐를 때쯤, 아이 둘을 모아 놓고 옛날이야기를 해주게 되었다. 낯설어 말도 붙이지 못하고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기를 반복하던 아이들은, 나의 얘기가 시작되자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금세 바뀌었다.

“옛날옛날에 다인이와 채아라는 자매가 엄마 아빠와 행복하게 살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네 식구는 야외로 캠핑을 나가게 되었지요. 엄마와 아빠가 짐을 푸는 사이, 두 아이는 밖으로 나가게 되었답니다. 따스한 햇볕이 비추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새들, 나무들, 그리고 시원한 바람이 두 아이를 무척 행복하게 만들었지요. 그런 와중에 다람쥐와 마주치게 되었고 다람쥐를 따라 달려가던 아이들은 길을 잃어버리게 되었어요. 날은 점점 어두워져 사방이 깜깜해질 때쯤, 아이들은 불빛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나버려 몹시 배가 고팠던 자매는 그 집으로 향했답니다.”

어느새 다인과 채아는 이야기 속에 쏙 빠져 버린 듯 나의 이야기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한 호흡 쉬고 뜸을 약간 들이자 “그래서 삼촌 어떻게 되었어?” 채아가 졸라댔다.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하면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집은 과자와 초콜릿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나오지 않았고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벽으로 된 과자를 잘라 먹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문이 슬그머니 열리고 안에서 누군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누구냐? 코가 큰 한 할머니가 나왔던 것이었습니다.”

다인이가 물었다. “삼촌, 그 할머니가 혹시 마귀할멈이야?” 채아도 거들었다. “까만 망토의 할머니 맞지?” “그래, 엄청 무서운 할머니. 채아와 다인이는 막 울었을까? 안 울었을까?” “음, 나는 울었을 거 같아.” 겁이 많은 다인이가 대답했다. 이야기는 막바지를 향해 달려갔다.

“할머니가 큰 가마솥 물을 끓이고 있는 틈에 용기 있는 다인이가 마귀할멈을 펑 차고 나서 채아와 다인이는 손을 잡고 그 집을 빠져나왔데요.”

“와! 만세!” 아이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삼촌이 해준 얘기가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다인이와 채아에게 물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느낀 점 하나씩 말해봐.” 채아가 먼저 말을 했다. “응, 발차기 연습을 열심히 하자.” “그래, 매일매일 발차기 연습하기로 하자. 약속!” 채아는 빙그레 웃었다. “그럼 다인이는?” 초등학생인 언니답게 “어디 나갈 때는 엄마 아빠한테 말하고 나가야 해요.” “그래, 엄마아빠가 걱정할 수 있으니까.” 짝짝짝 손뼉 치며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지금은 중학생이 된 조카에게 유치원 시절에 처음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를 현대판으로 각색해서 들려준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아이가 그 이야기를 자신의 아빠에게 그대로 얘기해줬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헨젤과 그레텔을 어린 조카들에게 들려주는 이유는, 둘이 힘을 모으면 어떤 역경과 고난도 이겨 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어서다. 불투명한 미래를 안고 살아가야 하지만, 형제, 남매 혹은 자매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의지한다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 것을 은연중에 느끼게 하는 것이다. 옛날이야기를 다 듣고 난 아이들은 나와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다. 다음에 만나면 좀 더 재미있는 얘기를 해줘야겠다고 마음을 먹어본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이미지 출처:  wikimedia.org  (by. Arthur Rackham, <Hansel und Gre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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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시즌이다. 이맘때면 초등학교 졸업식 때 진학하지 못하는 서러움으로 눈물바다를 이루었던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로 이어지던 졸업식 노래가 이별의 노래로 둔갑하였고, 나는 그때를 못 잊어서 부지불식간에 흥얼거린다. 아울러 새로운 동문을 맞이하는 동창회장님께서 “부모와 마찬가지로 모교도 바꿀 수 없는 인연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나 역시 사회생활을 영위하면서 숱하게 부딪히는 난제들을 동문이라는 울타리를 치고, 더 쉽게 편하게 해결할 수 있었음을 여러 번이나 경험했다.


과거 타이어 회사에 근무하던 중, 종합상사를 꿈꾸는 집안 형님의 부름에 의해 회사를 옮겼다. 예기치 못한 과분한 대우를 받았지만 이직한 지 49개월 만에 무리한 확장을 이기지 못하고 부도가 났다. 몇 년을 방황하다가 중견 자동차 부품 회사의 품질담당 부서장으로 입사했다. 생산품목이 전장품이라 불량이 나면 직접 운전자에게 영향을 주는지라, 타사 제품보다 사소한 불량이라도 클레임이 제기되는 횟수가 잦았다. 입사 한 달도 못 되어서 기다렸다는 듯이 자동차 회사로부터 품질문제 건으로 불려가게 되었다. 이번 건은 2년 전부터 반복되는 문제로 완전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아 소비자의 불만이 이어지는 상태였다.


며칠에 걸쳐 세운 대책이었지만, 잔뜩 긴장해서 약속된 회의실에 도착했다. 10여 명이 두 시간이나 얼굴을 맞대고 대책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을의 처지에서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데, 주관 부서장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게 누군가! 공식적인 자리라 정식인사는 못 했지만 눈인사를 나눈 그는 군에 입대하기 전 1년여를 같은 하숙방에서 희로애락을 나누던 3년 후배였다. 회의 결과, 우리가 제시한 대책에 문제가 없음이 판명 나고 그대로 수용하기로 하였다. 물론 우리 측에서도 전보다는 빠르고 알찬 대책으로 대응을 했다.

전공이 달라서 학창시절에는 얼굴만 기억할 뿐인 졸업동기 P학형은 “솔직히 말해서 지방대학 출신들이 서로를 배려하지 않으면 누가 할 거냐?’면서 중역실을 개방하여 커피타임도 갖고 식사도 나누면서 가족, 학교, 직장관계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주고받았다. 지금도 가끔 전화로 서로가 ‘눈물 나게 고마운 동문’이라고 추켜세운다. 그도 차량판매 캠페인 때 도와주었던 일을 두고두고 고마워했다.


나는 행운아였다. 자동차 회사뿐만 아니라 품질마크 등을 취득할 때도 인연들을 만나 해결책을 찾았다. IMF로 그 회사를 나와 소기업 부사장으로 경영을 책임지고 있을 때도 동문의 열성과 후원 덕분에 상당한 물량을 거래할 수 있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 돕고 돕는 마음이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지금도 그러한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글 / 사외독자 이종철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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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바디스 파인>은 2009년 작품이다. 로버트 드니로가 프랭크로 드류 베리모어가 막내딸 로지로 등장한다. 현재 2018년임을 생각하면 벌써 10년 지난 영화지만, 영화에 푹 빠져 있다 보면 지금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된다.

<에브리바디스 파인>을 처음 접한 것은 작년으로 기억한다. 편히 쉬고 있는 일요일 오후 볼만한 프로그램이 뭐가 있을까 싶어, 이리저리 리모컨을 돌리던 중 EBS 방송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프랭크가 기차에 앉아 자신이 자랑스러워 하는 자식들의 사진을 보며 마주 앉은 이들에게 자랑하는 장면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인터넷에 들어가 줄거리를 찾아보니, 오랫동안 같이 살고 있던 부인과 사별하면서 적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자식들을 보러 가기 위해 기차를 타게 된 것이었다. 평소 지병이 있던 프랭크는 비행기는 탈 수 없었다. 기대와 설렘으로 첫째 아들 데이비드를 만나기 위해 집을 찾았지만 바람을 맞게 되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첫째 딸 에이미를 찾게 되었고, 에이미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 중에 손자와 사위의 관계가 좋지 않음을 알고 서둘러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둘째 아들 로버트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멋진 지휘자로 성공한 줄 알았지만 로버트는 가끔 등장하는 타악기 연주자였다. 실망감은 컸지만 크게 내색할 수 없었던 프랭크는 마지막 기대를 하며 막내딸 로지를 만나러 간다.


어찌 보면, 참 평범한 이야기다. 언젠가 한 번쯤 보았던 드라마의 줄거리처럼 느껴지고 우리의 일상과도 맞닿아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특히 학구열이 높은 우리나라 부모님을 생각하면 자식이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하게 성장하는 것은 모두의 꿈일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자식이라 하지 않았던가. 부모님의 기대만큼 성장할 수 없는 게 오히려 현실일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무리해서 프랭크는 비행기를 타고 가슴을 잡고 쓰러지면서 응급실에 실려 간다. 그 와중에 과거 회상 장면이 등장한다. 먹구름이 몰려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리기 일보 직전, 아빠인 프랭크는 네 명의 아이들을 엄하게 다그치고 있다. 이윽고 세찬 비가 내리는 와중에 아이들은 모두 집 안으로 도망가고, 프랭크만이 홀로 그 비를 맞게 된다. 그동안 잊었던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되었다. 마치 욕심 많은 스크루지가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듯, 아이들이 잘 되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 오히려 자녀들에게는 부담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리고 <Christmas together>라는 피아노 연주곡이 잔잔하게 깔리며 아빠와 자녀들은 행복한 저녁 식사를 하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가족의 끈끈한 정이 잊혀가고 있는 시대다. 저녁이 있는 삶을 부르짖곤 있지만 온 가족이 한 식탁에 둘러앉아 한 끼 식사하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경쟁과 성공에 매몰되어 가는 요즘, 힘든 어깨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하루 있었던 이야기들로 이야기꽃을 피워보는 것은 어떨까.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사진출처 : 네이버영화 http://movi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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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맹추위에 외출하기도 귀찮고 불안해서 요즘 들어 어쩔 수 없이 보게 된 게 홈쇼핑의 여행상품선전이다. 다녀온 곳을 추억에 잠기게 하고 못 가본 곳은 풍경만으로도 기분을 업그레이드해준다. 어느 채널이나 ‘본 상품은 국적 항공기라 품격이 다르고 마일리지도 ○○○○만큼 제공됩니다.’ 비싸지만 혜택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객을 모집하고 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열차보다도 많이 타본 국적 항공기의 마일리지가 수십만 마일을 넘었다. 해외 출장은 주로 이등석을 이용했다. 국내선은 5년간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울산이나 포항 아니면 김해로 날아다녔다. 당시는 제2국적항공사가 취항한 지 일천하여 정상적으로는 편도에 500마일이 제공되었지만 2회에 한 번쯤은 1,000마일씩 제공-지금과 비교하면 5배 정도의 수준이다-하여서 눈송이처럼 불어났다.


국내선은 앞쪽에서 2, 3번 줄이 VIP석인데 내게도 혜택이 주어져서 왕회장이나 국회의장의 옆에 앉아가는 영광(?)을 누린 적도 여러 번이었다. 품질 문제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었기에 출장이 곤혹스러울 때가 많았지만, 대학 동기들이 여러 곳에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어, 실보다는 득이 커 지금도 그들에게 고마움을 보낸다. ‘고진감래’랄까? 90년대만 해도 그동안 싸인 보너스 마일리지로 수월하게 아내와 아들이 미국을 여행하고, 우리 부부는 태국을 이등석으로 편안하게 다녀왔으며, 친구와는 시드니 4박 5일간의 모든 비용을 마일리지로 해결했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수속 중에 본인도 몰랐던 ‘200번째 탑승을 기념하여 라운지 무료이용권을 드린다.’고 하여 일행들의 부러움을 산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국내선은 물론 국제선의 탑승장도 시장처럼 변하고 쇼핑에도 마일리지가 주어지면서 공짜 여행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다. 매년 한 번 꼴은 해외여행을 다녔기에 무료나 승급을 요청했지만, 영업소 직원조차도 어떤 기준으로 배정되는지를 모른다면서 ‘이 기간에는 좌석이 없습니다.’로 일관했다. 국내 여행에도 사용하고 침구류와 워킹화를 구매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사용할 곳이 영화 구경이나 항공사가 운영하는 호텔과 리조트로 한정되어 있다. 쉬운 게 영화 예매인데 이건 이해가 힘들 정도로 마일리지 차감이 많다. 궁여지책으로 자식들을 패밀리회원으로 묶었지만, 여전히 수십만 마일이나 남아서 애물단지로 변한 지가 오래다.


그런 차에 막내 처제가 안식년을 맞아 미국 언니 집으로 간다는 소식에 아내도 덩달아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5개월을 남겨둔 시점이라 ‘이때다.’ 싶어서 영업소를 찾았더니 15일간을 체크하고는 하루가 그것도 이등석으로만 이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내는 건강상태가 양호하지 않아서 내가 동행하기를 원하는 장거리 여행도 비토 놓는 처지라 원하는 좌석이기도 하다. 처제들과 상의를 거듭하여 그저께 매표를 마쳤다. 7명이 동행인데 바로 아래 처제도 같은 등급으로 가기로 했기에 아내는 기백 만 원 가까이 절약하게 되었음을 알았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했던가. 탑승 때는 웃음으로 환영해 주더니 사용할 때는 찬밥 신세니 이것도 갑질 아닌가 싶다. 여전히 삼식이 신세에 오랜만에 아내한테 점수를 따서 당분간이나마 편안하게 밥 얻어먹을 처지가 된 것 같아 실소를 금치 못한다.


사외독자 /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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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은 절편으로 해결하고 나왔다. 언제부터인가 떡집을 가게 되면, 가장 먼저 고르는 떡이 절편이 되었다. 시루떡, 바람떡, 인절미, 송편, 모시잎떡, 백설기 등등, 각가지 떡이 다양한 색으로 눈길을 끌기는 하지만, 하얀색의 네모진 절편은 가장 마음에 드는 떡이 되었다. 가끔 쑥을 집어넣은 비취색의 절편이면, 영양가를 함께 잡을 수 있어 더욱 더 마음에 든다.

사실, 절편은 좋아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는다. 꽤 오랫동안, 떡하면 팥고물을 입힌 시루떡을 최고로 생각한 적도 있었고, 노란 콩가루를 함께 먹는 재미에 인절미에 제일 먼저 눈길을 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팥은 빨리 쉬고, 먹을 때마다 팥고물이 떨어지는 바람에 시루떡을 먹고 나면 방을 다시 치워야 한다는 게 꽤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가끔 설익은 팥 알갱이가 입안에서 씹힐 때면 기분이 개운하지도 않았다. 인절미는 고소한 콩가루는 좋은데, 시루떡만큼이나 콩가루가 이리저리 날려서 옷에 묻고 바지에 묻으면 그거 털어내다 오히려 더 많은 범위에 콩가루가 묻어 낭패를 몇 번 겪었다.

그러다 보니, 그냥 그대로 떡 ‘절편’이 좋아지게 된 지도 모른다. 절편은 쫀득쫀득함이 살아있을 때 먹어도 좋지만, 하루 이틀 지나 가래떡처럼 굳어지고 나서 먹는 게 나는 참 좋다. 찐득찐득하게 떡살이 손가락에 달라붙지도 않고, 물기가 빠진 떡을 꽤 오래 음미하면서 씹을 수 있어 좋다.

절편하면, 잊혔던 옛 추억을 한 장 한 장 꺼낼 수도 있다. 시골에는 잔치가 많았다. 누구누구네 결혼식, 회갑연, 돌잔치 하면 의례 해야 할 음식은 떡이었다. 그 중에도 절편은 여기저기 단골메뉴로 자주 등장했었다. 부모님이 동네잔치를 다녀오시면 늘 들고 오시던 떡이 절편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절편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맛이 없었다. 최소한 단맛이라도 나야 했는데 그냥 떡의 본연의 맛밖에는 없었다. 그게 참 싫었었다. ‘왜 저런 떡을 해야 하지? 먹지도 않는 떡을!’ 참 궁금했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떡이란 의미를 가장 충실하게 실천하는 떡이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맘때가 되면 엄마를 졸라, 맛 나는 가을배추를 사다가 된장국을 해달라고 조른다. 그냥 먹어도 단맛이 강한 가을배추에 된장 하나만 풀어서 만든 된장국인데, 그 어떤 된장국보다 시원하고 개운할 수 없다. 엄마는 엄마의 손맛이라도 우기는데, 계절과 재료가 주는 하모니이니라!

절편이나 배추 된장국이나, 어떤 본질에 다양한 색과 맛 그리고 첨가물을 입히는 것보다 정말 단순하지만, 그 핵심 그대로가 오히려 더 정겨울 때가 있는 거 같다. 어찌 보면, 우리네 삶도 결국은 아름다운 옷과 장신구, 그리고 신발로 치장은 하지만, 상대방에 나의 진심을 알릴 방법은 진심 어린 나의 마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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