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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6.23 [에피소드] 고자질

 에피소드 

 

“첫 번째 힌트, 매일매일 자라요. 두 번째 힌트, 여자에게는 없고 남자에게만 있어요.” 

어린이 프로인 붕어빵의 퀴즈를 보면서 손자가 귓속말을 한다. “고추야, 고추.” 

“세 번째의 힌트, 만지면 까칠까칠해요.” 


드디어 여덟 살배기가 “수염!”이라고 맞추니 뒤돌아보며 겸연쩍게 웃는 모습도 사랑스럽다. 지난해까지 이들이 하던 스피드 퀴즈를 노트에 정리했더니 다섯 권이나 되었다.


“빵 사이에 고기나 채소, 과일을 넣은 것인데, 간식이나 식사대용으로 먹기도 하는 것은?” 

“샌드위치!” “땡! 햄버거인데.”


곧바로 항의성 반론이다. “햄버거는 빵 위에 까만 참깨가 있다고 해야 하는 거야.” 


일곱, 여덟살짜리들이 부모와 한팀이 되어 경연하던 것을 적어 놓은 것인데, 그들보다 두 살이나 어린 손자가 육십 대인 나보다도 더 잘 설명하고 맞추는 것이 신통하기만 하다. 올 초에는 여자애가 자기와 결혼하기로 그네 엄마한테 허락을 받았다며 자랑이 늘어졌다.


 에피소드2 


“결혼하면 애는 둘을 낳을 건데, 남자는 아빠 이름이고 여자는 엄마 이름이야.”


‘엄마와 아빠를 사랑해서 그랬다고 하니…. 효자 났네! 효자 났어!’ 그저 기특한 생각에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최근에는 그 여자애가 다른 애와 가까이 지내면서 손자가 버스에 올라 옆으로 가도 앉으라는 말이 없단다. 그렇게 서 있는 채로 유치원까지 가고, 그에 인한 스트레스로 눈까지 깜박인다는 아들의 말이다.


“너도 다른 애를 사귀면 되잖아.”

“아니야. 그 애가 다른 애들에게 나와 결혼한다고 말했기에 어쩔 수 없어. 약속은 지켜야 하는 거야.”


백지처럼 순수한 손자에게 이번에 큰 실수를 한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에피소드3 


한 달 만에 온 녀석이 윷놀이에도 지쳐 하기에 아파트에 있는 놀이터 두 곳과 분수대를 거치고 18층으로 올라가려고 현관을 들어서는데, 갑자기 돌아서서 비상계단에 앞발을 걸치고는 말한다.


“할아버지, 걸어서 올라가고 싶어.”

“너무 높아서 안 되니 좀 더 커서 오르면 안 될까?” 순식간에 얼굴을 찡그리면서 바닥에 주저앉을 기세다.


“그럼, 5층까지 가서는 승강기를 타는 거야.”

앞장서서 층수 표지판을 가리키면서 2층, 3층 하더니 어느새 7층이다.


“승하야, 이제 타고 갈까?”

대답은커녕 돌아보지도 않고 올라가기에 계단에 주저앉았다.

”할아버지는 다리가 아파 쉬어야겠다.”

살며시 옆에 앉아 고사리손으로 종아리를 여러 번 만지더니 내 손을 잡아끈다.

“할아버지, 이제 올라가자.”


다시 7개 층을 더 올라가서 승강기 쪽으로 잡아끌었더니 역시 막무가내다. 나는 숨도 차오르고 다리도 무거워 뒤처져 따라가니, 어느새 우리 층이다. 현관문 고리를 잡고는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아빠한테는 절대 말하지 마.”한다. 나도 동의의 뜻으로 그렇게 했다. 그런 약속도 잠시, 거실에 앉아 숨을 고르고는 “승하는 어디에서 힘이 솟는지 18층까지 쉬지 않고 올라왔다.”고 자랑삼아 말을 꺼냈다. 아들은 “어른 말 안 들으면 앞으로는 안 데리고 다닐 거야.”하고 아내는 “이젠 손자 하나도 못 보는 거야.”한다.


바람과는 달리 꾸지람으로 이어지는 것을 중단시키기는 했지만, 녀석은 약속을 어기는 내가 미웠는지 잘 타지도 않는 오리 모양 자전거에 오르내리면서 딴전을 부린다.


‘무엇을 얻으려고 고자질했나. 어른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며 비웃고 있지는 않을까?’


‘후회는 언제나 뒤에 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또 한 번 어기는 경박한 노인이 되었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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