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간 적이 있었다. 넓디넓은 공간에 바닥은 나무로 이어 붙인 형태라, 마치 시골집의 마루와 같았다. 왁스칠이 되어 있어 미끌미끌한 느낌이 들었다. 한여름이면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도 있었지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맘 때쯤이면 나무 바닥임에도 찬기운이 느껴졌다.
그러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한쪽 구석에 있는 문 하나를 열고 10여 단으로 쌓인 방석을 하나씩 집어 드는 일이었다. 아직도 생각나는 그 방석들은 빨간색 계열의 그림이 그려진 방석이었다. 네모난 형태였으며 어린이 한 명이 앉아도 사방으로 한 뼘 정도 공간이 남을 정도로 크고 푹신푹신했다. 장난기가 있는 친구들은 방석 두 개를 꺼내 와 겹쳐 앉기도 했다. 남보다 우위에 서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리라. 한 시간을 앉아도 푹신함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나무바닥의 한기가 서려 있어도 방석 주위는 늘 따스함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의자나 소파가 일상화되지 않았던 시절, 아는 지인을 찾아가면 주인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한쪽 구석에 쌓인 방석을 내놓는 일이었다. 손님이 앉기 전에 종종걸음으로 방석을 들고 와 방석을 내미는 일은 상대방에 대한 최고의 배려이기도 했다. 방석 하나를 받아 든 것뿐이지만 방석 위에 걸터앉으면 마음이 그렇게 편해졌고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되었고 상대방에 대한 경계감이 사라졌다. 방석이 주는 힘이라고나 할까?
한동안 항상 고집했던 방석이 있었다. 누나가 결혼하면서 받았던 방석이었는데, 엄마가 그냥 깔고 앉기에는 아깝다며 장롱 속에 고이 모셔 두기만 했다. 그러다 방석을 여러 개 쓸 일이 생겨 그 방석까지도 꺼내야 할 일이 있었다. 분홍색이었고 다른 방석에 비해 통통해 보였다. 손에 닿는 촉감이 좋은 걸 보니 재질이 좋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앉자마자 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방석보다 키가 더 큰 만큼 푹신함이 한결 더했다. 그날의 좋은 느낌이 좋아서였을까? 틈만 나면 그 방석을 꺼내 앉고 일을 함께 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났을까? 많은 시간을 같이 하다 보니 방석 커버는 색도 바랬고 한 쪽 귀퉁이는 바느질했던 올이 풀리면서 그 방석과 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는 방석이라는 존재를 한동안 잊고 살았다. 방석을 크게 쓸 일이 없었고 집안으로 누군가를 초대할 일도 많이 줄어서였다.
그러다 올여름 노트북이 작업이 많아지면서 하루 10시간씩 노트북과 씨름해야 했다. 의자에 앉아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일은 쉽지 않았고, 의자의 상태까지 안 좋아지면서 방바닥까지 내려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 최대한 노트북을 높은 위치에 설치해 놓고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작업을 했지만, 문제는 딱딱한 바닥이었다. 많은 시간을 앉아 있다 보니 엉덩이에 굳은 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얇은 이불을 네다섯 번 포개어 깔고 앉기도 해봤지만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결국 방석 하나를 구입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동안 잊고 있던 방석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방석 하면 네모난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일단 깨보라는 생각이었을까? 다양한 형태의 방석들이 즐비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방석도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던 모양이다. 연두색의 동그란 방석을 하나 집어 들었다. 정말 가벼웠다.
노트북을 켜는 동안 봉투 안에서 방석을 꺼내 들고 노트북 앞에 놓았다. 딱딱한 바닥을 금세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안락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는 수고도 덜 수 있었다. 꽤 오랜 시간동안 함께 할 것 같다. 방석이 주는 좋은 기운을 가지고, 한동안 신나게 달려봐야 겠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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