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친구와 캠핑을 계획하면서 침낭을 사게 되었다. 여름이면 별문제 없지만 겨울로 넘어가는 가을이나 겨울에 캠핑은 조그만 틈으로 들어오는 겨울바람도 온몸을 얼게 한다는 친구의 설명 때문이었다.
문득 군대에서 혹한기 훈련할 때가 생각났다. 군용으로 나온 침낭은 가볍고 보온력이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었다. 군장을 메고 갈 때면 어깨가 짓누르는 침낭의 무게 때문에 침낭만 빼고 갔으면 하는 마음이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텐트를 치고 겨울바람을 맞고자 흙을 쌓고 텐트 이음새를 단단히 묶어도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 낼 재주는 없었다. 군복을 입은 채로 전투화만 벗고 침낭을 열고 들어가야 꽁꽁 언 몸을 녹일 수 있었다. 정말 얼굴만 내밀고 잔다는 것을 야지 훈련을 가서 처음으로 배웠다.
밤이 길어갈수록 빠르게 수은주는 떨어져 내려갔다. 텐트 안에도 한기가 몰려와 냉랭한 공기로 가득 찼다. “아이구 추워!”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무사히 아침을 맞이하고 눈을 떴을 때, 텐트 안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 앉았고 전투화는 차고 단단하게 얼어 있었다. 침낭이 없었으면 밤 한숨을 못 자고 그 추위와 싸웠을지도 모르겠다. 꽤 오래 전의 기억이지만 침낭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금세 그날의 추억이 소환되었다.
인터넷에 들어가 어떤 침낭을 고를까 싶어 이리저리 찾아보았다. 친구가 말했던 침낭이 제일 좋아 보여서 결제를 했다. 며칠 후, 집 앞으로 택배가 배달되어 있었다. 원하는 색깔이 다 품절되는 바람에 썩 내키지 않는 색깔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펼쳐 보고 마음에 안 들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 생겼다. 포장지를 뜯고 드러난 색은 군대에서 쓰던 침낭과 비슷한 색이었다. 순간 ‘다른 곳을 더 둘러볼 걸!’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지퍼가 있는 침낭 안의 재질 길이는 그런대로 쓸 만했다. 그래도 내가 원하는 색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미련이 생겨났다.
며칠이 지났다. 캠핑을 가기 전에 기회가 되면 한번 사용해 보고 어느 정도일지를 가늠해 보기 위해 침대 옆에 말아두었다. 그런데 우연히 그날 저녁, 이불에 위로 커피를 쏟는 실수를 해버렸다. 이불이 커피색으로 금방 물들었다. 수건으로 재빨리 훔쳐 냈지만 얼룩이 번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끈적끈적한 느낌이 들어 그냥 덮고 잘 수는 없었다. 고민 끝에 세탁하는 방향으로 정했다. 정말 하지 않던 실수였다. 엄마는 “침대 위에서 뭐 먹지 말랬지?”라며 한 마디를 하셨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이불 속을 빠져나오기 싫어 그랬던 것이 대형 사고가 되고 만 것이다.
선택지는 없었다. 옆에 두었던 침낭을 펼쳐야 할 때가 왔다. 지퍼를 열면 이불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하기에 이불로 펼쳐 덮어 보았다. 침대에서 굳이 침낭 형태까지는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몇 분이 지났을까. 찬 기운이 스며들자 발가락이 시렸다. ‘양말을 신고 자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몸을 다시 세워 침낭 지퍼를 올려 보았다. 사방의 한기를 막는 게 낫겠다 싶었다.
침낭으로 몸을 밀어 넣자 몇 분 되지 않아 몸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발 밑에 스며들던 찬 기운을 더는 느낄 수 없었다. 침낭과 함께하는 이 겨울이 꽤 든든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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