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복을 입고 운동장에 들어섰다. 운동장을 위를 밟을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가 난다. 나는 이 소리가 참 좋다. 흙이 밟히는 촉감도 더불어 좋다. 운동장에서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좋아한다. 앞을 바라보면 훤하게 트여서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곤 한다. 서서히 걷는 것도 운동장을 도는 것도 좋지만,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빠르게 운동장을 트랙을 달리는 것도 개운함을 느끼게 한다. 100m 달리기 선수가 된 것 마냥 폼을 잡고 있는 힘껏 달리고 나면, 한참 운동을 하고 난 것처럼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운동장이 더 이상 돌기 힘들 때면 운동장 바로 옆에 만들어 놓은 시멘트 스탠드 계단에 털썩 주저앉고 만다. 다리가 후들후들 대고 연신 가쁜 숨을 몰아 쉬어야 제대로 된 호흡으로 가는 과정을 밟는다. 그렇게 계단에 엉덩이를 깔고 나면 시간이 지나면 운동장에 대한 추억들은 새록새록 떠오른다.
“형! 빨리 쳐!”
“알았어!”
알루미늄 방망이를 맞고 하늘 높이 높게 뜬 공은 동생의 글러브 속으로 들어갔다. 정확하게 공이 들어가는 모습에 동생은 크게 기뻐하며 환호성을 울렸다. 꽤 잘 쳤다고 생각했지만 동생이 좋은 자리에 가 있었던 것이었다. 야구공으로 하기엔 사람이 다칠 수 있어 테니스공을 사서 공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비거리가 멀리 날아가지 않아 동생이 잡기에는 참 좋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스무 번 정도 방망이에 공을 맞추고 나면 공격과 수비를 바꿔가며 운동장을 쉴 새 없이 뛰어다녔다. 참 열심히 뛰어다니며 토요일 오후 시간을 만끽하곤 했다. 한참을 달리고 나서 땀범벅이 되고 나면 운동장 음수대 수도꼭지로 달려갔다. 수도꼭지를 틀어 머리를 밀어 넣고 머리카락을 적셨다. 참 시원했다. 그리고 나서 집에서 싸온 스포츠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 나면 빠르게 온몸을 휘감아 도는 느낌을 받곤 했었다.
“오늘 네가 잘 했다.”는 말에 동생은 씽긋 웃어 보였다. 여러 번 시간을 내어 동생이랑 운동장으로 발걸음을 했었다. 스탠드 계단에 앉아 있으면 그 낭랑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가끔 드라마에서는 사랑하는 연인이 해가 진 운동장에서 어슴푸레한 조명을 받으며 함께 달리기를 하는 모습이 보여지기도 했다. 언제였을까? 친하게 지내던 동네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달리고 싶다고 나오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만난 곳이 운동장이었다.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야간시대에도 문이 열려 있었다. 해가 진 뒤에 보여지는 운동장은 또다른 신비감을 주었다. 자율학습을 하고 늦은 시간에 집을 향할 때면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으로 향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에 운동장을 제대로 보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하늘 봐. 아름답지 않니?”
그리고 올려다본 하늘은 참 새까맸다. 문득 다른 곳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별 하나 별 하나가 콕콕 박혀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한번 달려볼까?” “왜 이 시간에 달려?” “시원하고 좋잖아. 사람도 없고 조용하고. 나 먼저 간다!” 운동을 하는 친구라 제법 빨리 달려나갔다. “나도 간다!” 친구를 따라잡기 위해 뛰어나갔다. 여자치곤 빠른 친구라 쉽사리 간격을 좁히긴 어려웠다. 콘크리트 스탠드 계단에 쓰러지다시피 걸터앉았다. “너 생각보다 무척 빠르다.” “내가 좀 빠르지.”
그렇게 숨을 고르며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눴다. 솔직하고 담백한 얘기를 나누면서 그 친구와 제법 거리도 가까워졌다. 이후로도 그 친구와의 만남은 운동장이 편했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만나자 하면 운동화 하나 갈아 신고 나가면 그만이었다. 그런 추억이 아름답게 남아 있어서일까? 누군가를 만나고 나면 한번쯤 이렇게 묻고 싶어진다.
“운동장에서 달리기 한번 하지 않을래요?”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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