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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살 맛 나는 세상

by 앰코인스토리.. 2023. 4. 27.

사진출처 : freepik.com

(지난 호에서 이어집니다) 발대식을 마치고 디지털 교육 도우미 스무 명은 2주간의 교육에 들어갔다. 우리는 60대와 70대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로 구성된 봉사자다. 사회복지사를 통해 대부분을 영상으로 교육받았다. 스마트폰 사용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지원했으나 체계적으로 배우자니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를 들어, 택시를 부르고 타는 것에는 지장이 없지만, 어떤 급의 차를 선택해서 결제하고 취소하는 것을 알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그래도 사회복지사가 심성이 착하고 배려심이 많아 이것저것 질문하는데도 부담이 덜해서 좋다.

마지막 날에는 이 분야에 경험이 많은 두 분의 조언-어떠한 상황에서도 이것도 모르시냐고 하지 말 것이며, 살아온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해주는 자세도 필요하다-이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도우미에 합격하면서 나는 두 가지의 변화를 단행했다. 손해를 감수하고서도 시간을 보내려고 계속해오던 주식 거래를 중단했다. 그리고 새벽에 아파트 내부에서만 1만 보를 걷던 것은 수혜자 집을 오가면서 보낼 수 있기에 5천 보 이내로 축소했다.

드디어 실전! 두 명의 수혜자를 격주로 원하는 기간까지 방문하라는 통보를 문자 메시지로 받았다. 다른 분과 한 조가 되어 처음 방문한 곳은 독거 어르신이 거주하는 아파트다.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주고받고 문자 메시지를 받는 게 전부였다.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고 하셔서 글자를 불러주며 키보드를 입력해 보시라고 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가 아프다면서 누우신다. 고심 끝에 한 글자를 자음과 모음으로 분리한 것을 노트에 적어주고 따라하라고 권해드렸다. 몇 번 하시더니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면서 좋아하신다. 글자판을 누르는 게 힘든 것을 보고 볼펜 뒤에 고무가 붙어 있는 것을 구해드렸더니 이것 역시 땡큐라고 하신다.

옆에 사시는 수혜자의 친구 분이 놀러 오셨다가 지켜보시더니 우리 복지관에 등록하는 보람도 있었다. 더욱이나 이 분이 우리에게 교육받기를 원해서 당분간은 두 분 집을 오가게 되어 한결 마음이 편하다. 매주 4일간은 가정을 방문하고 금요일은 열 개 팀이 모여 경험담을 주고받는 시간이다. 아직 두 번에 불과했지만, 우리를 포함하여 여덟 개 팀은 무난하게 진행했으나 두 개 팀은 원만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수혜자와 조그마한 선물이라도 주고받지 말자는 합의도 도출했다. 지난주에는 월급을 받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도 맛보았다. 보통 직장인에 비하면 소액이지만 보람 되게 쓰려고 부부가 머리를 굴렸다. 작년 여름, 코로나에 걸렸을 때 먹거리를 보내주셨던 친인척과 지인들에게 어육이 풍부한 수제 어묵 세트를 보내기로 결론지었다.

지루하기만 했던 일상이 매일 세 시간의 도우미로 인해 어느 순간 살 맛 나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앞으로 어떠한 수혜자를 만나던, 함께 즐기면서 풀어나갈 것임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