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보를 달성하려고 역 광장을 지나니 복지관에서 걸어 놓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치매 예방 도우미와 디지털 교육 도우미를 구한다는 광고다. 그 앞에서 바로 전화를 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다고 했더니 방문해 신청서를 제출하라고 한다.
다음날 재차 문의했더니 치매 도우미는 신청자가 많으니, 디지털 도우미로 신청하면 어떠냐고 한다. 나이를 고려하니 떨어질 것 같아서 망설이고 있는데, 아내가 “밑져야 본전인데 가보는 게 좋잖아.”라고 하는 말에 용기를 내어 집을 나섰다.
옆 동네라지만 거리가 있어 전철을 한 코스 타고 아들이 다닌 고등학교 후문이라 해서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려고 정문으로 돌아갔다. 10여 분을 돌아가는데 졸업생을 만나서 학교의 근황을 들으면서 거니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졸업식 때 본 곳이라 20여 년이 지났지만, 운동장에 인조 잔디가 깔린 것을 제외하고는 강당 앞의 조각상도 그대로라 변한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복지관 3층에 도착해 신청서부터 작성하고 기다리자니 직원이 다가와서 요양보호사와 교원자격증부터 복사하고는 여러 가지 질문을 한다. 디지털 쪽으로 묻기에 “잘하지는 못하지만,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다룰 줄은 안다.”라고 했더니, 2명이 1조가 되어 가정을 방문해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을 지도하니 아주 뛰어나게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며 안심을 시킨다.
몸 상태를 살피면서 ‘건강이 중요한데….’라 하시기에 이때다 싶어 휴대전화를 열어 몇 달간 걷기 기록을 보여주었다. 전 달은 34만 보, 그 전 달은 40만 보를 넘은 걸 보더니 그 정도면 만족이라는 표정이다. 합격자는 한 달에 60시간을 봉사하고 71만 원을 받는다고 알려주는 걸 보면서 합격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돈이 많고 적고는 중요하지 않으며 매일 일할 수 있는 여건만 주어지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복지관을 나왔다.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을까? 아내와 아들에게 전화해 합격한 것처럼 기쁨을 전했다. 둘 다 긴가민가하는 반응이다. 2004년 10월에 퇴사해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인 2019년까지만 해도 고정적인 일자리는 없어도 책 읽는 데도 문제가 없었고 내가 쓴 산문을 실어주는 곳도 여러 곳이었다. 중고 서적을 인터넷으로 파는 장사도 수익은 별거 아니었지만, 손자와 손녀 용돈으로는 부족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매년 한 번 이상은 해외여행으로 힐링도 했다.
코로나 기간은 노인들이 같은 처지라고 위로하고 살았지만, 마스크를 벗고 나니 아내는 하루가 멀다며 모임에 다녀서 우두커니 집 지키는 사람이 되고 보니 너무나 외롭다. 일과래야 한 시간 반 동안 걷는 것, 신문 보고 친구와 전화하는 것 말고는 없으니 ‘이게 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이런 나날의 연속이었는데 두 차례의 연기 끝에 지난 금요일 오후에 드디어 합격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다음 달 3일에 발대식을 하고 9개월간 일할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릉도원을 거니는 기분이다. 어떠한 고난이 있더라도 ‘즐기면서 봉사하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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