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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여행을 떠나요

[광주 여행] 지친 일상을 달래는 사유의 공간, 2편 시인 문병란 기념관

by 앰코인스토리.. 2022. 12. 16.

시인 문병란 기념관,
시인 문병란의 집

 

<죽순 밭에서>, <새벽의 차이코프스키>, <장난감이 없는 아이들> 등을 통해 일평생 반독재 항쟁을 지속했던 민족시인 故 문병란의 자택이 지난 2021년,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단장을 마치고 <시인 문병란 기념관>으로 재탄생하였습니다. 그의 시 <직녀에게>는 남북 분단의 아픔을 견우와 직녀에 빗대 가슴을 울렸으며 이는 대중가요로도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광주 동구 지산동에 위치한 문병란 시인의 집, 함께 가보실까요?

 

한평생 남북통일을 노래한 민족시인이자 독재정권에 날선 저항시로 맞섰던 문병란 시인. 광주 동구가 시인의 작품과 생애를 기리기 위해 그가 살았던 지산동 집을 문화공간으로 단장하였습니다. 이곳은 시인이 작고하기 전까지 기거했던 곳으로 1층에는 시인의 발자취와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는 전시 공간을 조성하였으며, 2층 서재는 원 모습을 보존해 방문객들이 시인의 흔적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1층 전시 공간에는 시인의 연혁과 함께 생전 그가 발표했던 저서 및 시기별 대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칭은 서은(瑞隱)으로 1953년 전라남도 화순에서 태어난 문병란 시인은 일평생 시 창작을 통해 현실의 부조리를 극복하고자 하였습니다. 실존적인 고독이나 부당한 해직과 복직으로 맞닥뜨린 삶의 현실은 역사의식에 바탕을 둔 시 세계를 열어가는 근간이 되었는데요, 그가 발표한 시들에서는 ‘반인간적인 모든 모순을 극복하고 진실과 역사 앞에 자유로워야 한다’는 시인으로서의 신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시집 <죽순 밭에서>, <새벽의 차이코프스키>, <장난감이 없는 아이들> 등을 발표하며 ‘문학은 처음에도 인간, 최후에도 인간이 주제임을 잊지 말자’고 강조해왔던 문병란 시인. 1975년부터 자유실천문인협회에 가입하여 반독재 항쟁에 본격적으로 참여해 온 시인은 일생 시 창작과 시 교육을 함께 하다가 2015년 9월 25일 향년 80세를 일기로 타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생전에 기거했던 안방에 발을 디딥니다. 시인의 영혼이 깊게 배어 있는 공간, 그 한가운데 있다는 것은 참으로 묘한 기분을 전합니다. 오래된 가구들과 소품들, 벽에는 시인이 머물렀던 당시 안방의 모습이 액자 속 사진에 담겨 있는데요, 별반 다르지 않은 전시 공간에 있자니 그 숨결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공간을 둘러보던 눈이 벽에 걸려있는 시 <아내의 샹송>에서 한참을 멈춥니다. 다 같이 한번 감상해 볼까요?

 

계절이 먼저 오는 변두리

40평짜리 작은 단독 주택

 

부엌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도마질 소리

 

딸각 딸각 딸각

이 저녁도 인생은

4분의 3박자로 흐른다

 

기쁜 일 슬픈 일

가다가 엇 박자도 섞으며

아내는 지금

쇠고기 반근을 다지고 있을까

 

인생은 30촉 백열등

그 불빛처럼 쓸쓸해도

도마질 소리는

궁,상,각,치,우로 흐른다

 

사랑하는 사람아, 해넘이

고운 노을 등에 지고

그대 어디쯤 흔들리고 있는가

 

가난한 아내의 식칼 끝에 묻어나는

소슬한 음악, 한 접시 노을이

식탁위에 곱게 타고 있다.

 

 

안방을 나선 발걸음이 시인의 집 2층을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자 한쪽 벽으로 시인의 문구가 시야에 들어옵니다. 그의 시 <땅의 연가> 중의 일부를 발췌한 것으로 ‘나는 땅이다. 길게 누워있는 빈 땅이다.’라는 문장은 왠지 모르게 가슴에 와 깊이 박힙니다. 무등산의 무등(無等)은 급이 없음, 즉 급을 따지지 않고 모두를 포용한다는 의미라고 해요. 시 창작과 시 교육을 통해 일평생 반독재 항쟁에 참여해온 시인 문병란. 스스로 무등이 되기로 한 그의 절개가 느껴지는 문구 같아 오래도록 발길이 멈추었는데요, 소외된 사람들과 약자들, 민중들이 무등산에 기대어 상처를 치유하고 희망을 일궈 왔듯이 그의 시도 꼭 그러했을 것입니다.

 

시인의 서재는 정갈한 느낌을 줍니다. 방 한가운데 놓인 앉은뱅이 책상은 작지만 옹골찹니다. 그 위에는 시인의 친필 원고가 놓여있는데요, 마치 조금 전에도 이곳에서 원고를 집필하셨을 것만 같은 생생함이 인상적입니다. 양쪽 벽으로는 책들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으며 뒤쪽으로 TV와 전축이 배치되어 있어요. 그곳에 쌓여있는 CD를 보니 시와 노래는 땔 수가 없는 것이 맞나봅니다. 한쪽에 덩그러니 놓인 기타 또한 시인의 낭만을 대변하는 공간에서 생전 시인의 숨결을 느껴봅니다. 옷가지와 가방 쓰다 만 원고들, 시인의 가방 안에는 반려된 시들이 잔뜩 들어있었으며 이는 방 한쪽에 쌓아두었다고 해요.

 

과거 <뉴욕타임즈>는 시인 문병란을 ‘화염병 대신 시를 던진 한국의 저항 시인’으로 소개한 바 있는데요, <망령의 노래>, <타오르는 불꽃>, <부활의 노래> 등등 그 제목만 봐도 뜨거워지는 가슴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故 윤상원 열사의 영혼결혼식에 바쳐진 시 <부활의 노래>는 숱한 5.18 관련 영화와 서적에 깊은 영감을 주었어요. 시인은 5.18 민중항쟁 당시 수배를 당해 고초를 겪기도 하셨는데요, 굴하지 않고 일평생 5.18 정신을 계승해 광주 민주화 정신에 기여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였다고 합니다.

 

광주 동구는 <시인 문병란의 집>을 시작으로 한국 서양화단의 대가로 불리는 故 오지호 화백의 가옥과 6월 항쟁의 상징인 故 이한열 열사의 집 등을 새롭게 단장해 시민들을 위한 인문산책길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해요. 지역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역사적 자원들을 잘 보존하고 기억하고 계승하는 것도 주민들의 삶의 질을 더 풍부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인문도시 동구의 행보를 열렬히 응원합니다.

 

Travel Tip. 시인 문병란의 집

✔️ 광주 동구 밤실로4번안길 16

✔️ 매일 10:00~18:00 (월요일 휴무)

✔️ 062-608-8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