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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내복

by 앰코인스토리.. 2022. 12. 7.

사진출처 : 크라우드 픽

12월에 접어들자마자 몰라보게 추워졌다. 한낮에는 영상으로 올라간다는 보도를 듣고 외출을 하려다 문밖으로 서너 걸음 떼다가 도로 들어와야 했다. 옷 속으로 파고드는 한기가 시베리아 바람 저리가라였다. ‘진짜 영상이 맞는 거야?’ 궁시렁거리는 소리를 들으셨는지 엄마도 한마디를 거드셨다. “그것 봐라. 오늘 추울 거라 했지?” 엷은 미소를 머금으며 다시 방문을 닫고 들어가셨다. 한 해 한 해가 다르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추위와 맞서는 게 자신이 없어진다. 롱 패딩으로 온몸을 감싸 안은 후에 다시 신발을 신었다. 중무장을 한 탓일까? 온몸이 후끈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찬바람도 마주치자 옷 속 이곳저곳으로 냉기가 스며들었다. 팔짱을 끼며 최대한 온몸을 움츠렸다. 들어오는 바람을 막아보려 애썼다. 12월 초부터 이리 추우면 두세 달이나 남은 겨울과 어떻게 싸워야 할까. 그저 갑갑하기만 했다.

전통시장으로 막 접어들었지만, 날씨 탓일까? 평소보다 사람이 많이 줄었다. 시장 골목을 거침없이 걸어보는 게 참 오랜만이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나물 종류를 사고 먹음직스러운 생닭 한 마리를 사기 위해 10여 m를 더 걸었다. 엄마한테 닭볶음탕을 해 먹자고 조를 생각이었다. 더는 찬바람에 시장 구경은 어려울 거라 보고 몸을 돌려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시장 입구에 다다르자 옷가게가 보였다. 찬겨울이 올지 어떻게 알았는지 겨울 방한용품들을 잔뜩 진열해 놨다. 무늬만 옷 가게인 듯싶었다. 그리고 문득 눈에 띄는 게 있었다. 겨울철 필수품이라는 내복이라는 글자였다. 주인장이 손수 쓴 모양이었다. 아! 그리고 보니 추위를 잘 타는 엄마는 12월이면 내복을 꺼내 입곤 하셨다.

내복을 골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 주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엄마께 최고로 어울리는 내복을 사보려 마음먹었다. 확실한 치수를 알지 못해 전문가인 주인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게 되었다. 치수가 제대로 맞지 않으면 또 한 번의 걸음을 해야 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평소보다 더 꼼꼼하게 따져 물었다. 주인은 여러 가지 질문 공세에도 싱글벙글 웃으며 조근조근 답변을 해주었다. 세 가지의 물건을 내 앞에 꺼내 놓았다. 그중 하나를 내게 골라가라는 것이었다. 선택의 순간이다. 상자 뚜껑을 열어 내복에서 느껴지는 감촉까지 일일이 비교해 보았다. 엄마가 제일 좋아할 색상은 우선순위에 두고 결정하려 했다. 분홍색의 내복을 선택했다. 다소 선홍빛이 돈다는 게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다. 내복까지 가방에 담고 집으로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방문을 열고 엄마께 내복을 보여 드렸다. 선물이란 게 주는 사람도 기분 좋고 받는 사람도 기분 좋아야 한다. 엄마의 반응을 살폈다.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었다. 혹시나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을 하실까 봐 있는 말 없는 말을 섞어가며 엄마의 기분을 맞춰 드렸다. 옷 가게 주인의 눈썰미가 뛰어난 건지 딱 맞는 치수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딱 알맞은 크기였다. 합격점을 받았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더군다나 엄마가 좋아하는 색상이라고 하니 기쁨은 두 배였다. “올겨울은 따뜻하게 보낼 것 같다.” 엄마의 진심 어린 한 마디였다. 엄마가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고 나니 나도 내복을 하나 사 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복 없이 한겨울을 버티곤 했었지만 올해 추위는 시작부터가 심상치 않다. 버티다 버티다 더는 안 될 것 같다 싶으면 나도 내복을 사러 가게 문을 두드려야겠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