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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돌탑

by 앰코인스토리.. 2022. 10. 11.

사진출처 : 크라우드 픽

언젠부터인가 산을 오르는 입구 부근에 돌탑이 만들어졌습니다. 인심 좋은 아주머니를 닮은 듯한 모양으로 넉넉하고 푸근해 보였습니다. 공들여 쌓아 비바람에도 끄덕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몇 주 후 다시 마주한 돌탑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 망그려져 있었습니다. 며칠 전의 날씨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비바람이 심했던 날이 있었습니다. 커다란 나무들도 뿌리째 뽑힐 정도의 심한 바람이라는 보도를 본 기억이 났습니다. 산길을 뚜벅뚜벅 걸어 올라가자, 잔가지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빗물 자욱이 선명한 곳은 바윗돌이 드러날 정도로 흙이 쓸려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산마루에 오르자 시원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마에 흐르던 땀을 수건으로 재빨리 훔쳐냈습니다.

이윽고 다른 등산로를 이용해 한 꼬마가 씩씩하게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인 듯 보였고, 헉헉거리면서도 나무 계단을 쉴 새 없이 오르고 있었습니다. 30m 뒤에 꼬마의 형으로 보이는 학생과 할아버지가 보조를 맞추어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혼자 줄행랑을 놓고 있는 꼬마를 향해 천천히 가자며 종용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숨을 골랐다고 생각하여 나는 다시 발을 옮겨보려 했습니다. 정상을 앞두고 너무 늘어지면 발걸음이 무거워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첫발을 내디딘 것입니다. 산 정상에서 본 하늘과 나무들은 온통 파란색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눈까지 맑아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눈을 감고 크게 심호흡을 하고 나니 온몸에 산소가 가득 찬 느낌이었습니다. 아직은 따가운 햇살의 기세가 강하다 보니 오래 머무를 엄두는 내지 못했습니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 조금 전 보았던 할아버지와 꼬마 2명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동생의 고속질주는 끝이 난 듯 세 사람이 한데 모여 정상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힘겨운 길인지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 대며 힘듦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밀며 끌며, 세 사람은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오는 길과 다른 등산로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나무 계단으로 제법 잘 만들어진 길이라 내려가는 데 수월할 것 같았습니다. 10개 정도의 계단을 내려가고 보니 유실된 계단이 보였습니다. 작은 돌멩이들이 여기저기 나뒹구는 바람에 한 발 한 발 내딛기가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남아있는 로프를 잡으며 낑낑대야 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씨름하다 보니 다시 나무 계단이 나타났고, 후들대는 다리를 진정해 보고자 계단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인적이 드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자연의 소리가 듣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툭’ 하는 소리에 눈을 황급히 떴습니다. 어디서 나는 소리였을까,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무언가 떨어진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계단 아래 떨어진 상수리 열매의 껍질을 발견했습니다. 소리의 크기로 보아서는 이게 맞겠다 싶었습니다. 바람이 불면서 나뭇가지에 어렵게 붙어 있었던 열매껍질이 툭 하고 떨어진 것입니다. 껍질 안을 살피고자 얼굴을 껍질 가까이에 가져다 댔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열매는 이미 떨어져 땅바닥을 구르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껍질이 떨어진 것은 흔히 있는 자연 현상. 크게 의미를 부여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몸을 일으켜 내려가려는 순간 문득 허물어진 돌탑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 도토리 껍질과 우연히 마주쳤던 작은 꼬마가 떠올랐습니다. 돌탑은 누군가가 어떤 바람을 가지고 쌓았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올라오는 사람들이 하나하나 돌을 올려놓다 보니 탑 모양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탑을 쌓으면서 무언가는 원하는 게 있었을 것이고, 그 바람이 이루어지도록 간절히 바랐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일종의 영험한 기운을 받고 싶었을지도요. 계단을 헉헉거리면서도 성큼성큼 오르던 꼬마의 마음도 계단을 제일 먼저 오르면 바라는 소원이 이루어질 거란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돌탑 안에는 특별하고 위대한 힘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하는 나의 상상은, 도토리 껍질 속에 아무것도 없듯이 비바람에 허물어진 돌탑 안에도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허물어진 돌탑 위에서는 또 다른 누군가가 다시 돌을 올려놓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근사한 돌탑이 또다시 만들어질 거라 나는 믿습니다. 꺾일 듯 꺾이지 않고 이 세상을 지탱해 오듯, 사람들의 바람도 계속될 테니까요.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