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 달걀이 먹고 싶어서 삶기 시작했다. 꽤 오랜만에 해보는 일이 살짝 걱정된 것이 사실이다. 찐 달걀이 먹고 싶을 때는 지폐 몇 장을 가지고 편의점으로 달려가곤 했지만, 비도 오고 밖으로 나가기가 귀찮아서 찐 달걀에 도전을 한 것이다. 잘 할 수 있을 거라 스스로 응원하면서 시작했다. 냄비에 물을 넣고 달걀만 넣으면 알아서 잘 익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다소 미심쩍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대안이 있다면 따라 해보려는 의도도 있었다. 식초와 소금을 넣으면 달걀 껍질 벗기는 데 수월하다고 해서 함께 넣었고, 많이 넣으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을까 싶어 소량만 넣었다.
센 불로 올려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4~5분 정도면 적당하겠지 싶어 그 시간 정도는 떨어져 있으려고 했다. 5분이 지난 후 나와 보니 냄비는 팔팔 끓고 있었고 냄비 뚜껑을 열어 보니 달걀 3개가 깨지지 않고 그 모양 그대로였다. ‘잘 되어 가고 있구나!’ 다소 안도감이 생겼다. 걱정으로 시작했던 찐 달걀 만들기가 반은 성공하고 있었다. 불을 줄이고 한 10여 분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그냥 멀뚱하니 있기가 뭐해서 인터넷으로 들어가 보았다. 자주 가는 게시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낯익은 아이디들이 보였다. 일일이 인사를 반갑게 나누었다. 오랜만에 나온 이들도 있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었다.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달걀을 찌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고 25분이 되었을까? 열린 방문 안으로 매캐한 냄새가 들어오고 있었다. ‘아뿔싸! 달걀!’ 그때야 달걀을 삶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방으로 속사포처럼 뛰어나갔다. 주방 안은 연기로 자욱했다.
가스 경보기가 울리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가스 불을 끄고 서둘러 주방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방 안에서 선풍기도 가져왔다. 주방을 가득 채운 연기는 쉽게 빠질 것 같지 않았다. 냄새는 오래 밴다고 하시던 엄마의 말씀이 불현듯 생각났다. 가스레인지 위의 냄비 상태는 처참했다. 까맣게 그을린 냄새는 앞으로 냄비의 기능은 다시 할 수 없을 듯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물은 다 졸아 없어지고 달걀이 바닥에 눌어붙었다. ‘아 나의 찐 달걀이여!’
하얀색이었던 흰자의 색깔은 맥반석 달걀로 착각할 정도로 누런빛을 띠고 있었으며 열기에 못 이겼는지 단단한 껍질은 깨져 냄비 바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달걀 아랫부분은 포기하더라도 윗부분 정도는 어떻게 먹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깨진 달걀을 살펴보았지만 냄새가 잔뜩 밴 달걀은 흰자가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먹을 기회마저 앗아가 버렸다. 눈물을 머금고 세 개의 달걀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찐 달걀을 갈망했던 나의 바람은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20여 분이 지나자 선풍기까지 돌린 효과가 나타났다. 주방을 가득 채웠던 탄내들이 거의 다 빠져나갔다. 방향제만 뿌려 주고 나면 달걀 삶기의 난리 상황은 정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마를 타고 흐르던 땀도 멈췄다. 아울러 놀란 가슴도 다소 진정되었다. 누군가에게 이 상황을 말한다면 하마터면 불이 날 뻔했겠다고 핀잔과 위로를 동시에 받았으리라.
한동안 찐 달걀에는 손이 가지 않을 것 같다. 더불어 달걀 삶기에 함부로 도전할 자신도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가스레인지에 음식을 올려놓고는 불 주위를 한참 동안 지켜보는 습관이 생길 것도 같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은 아마도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닌가 싶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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