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남과 앰코의 시작
Anam and Amkor: the Beginning
자전거 시장 동향을 살피기 위해 세계를 일주한 김향수 명예회장은 전자산업으로 시선을 돌렸다. 특히 트랜지스터(TR), 집적회로(IC) 등 반도체 분야에 관심을 쏟았다. 반도체 산업이 빨리 뿌리내릴수록 조국 근대화가 앞당겨지리라는 확신으로, 1968년 3월 김향수 명예회장은 반대를 무릅쓰고 반도체 사업에 착수했다.
서울 화양동에 아남산업을 설립하고 다이 본더 2대, 와이어 본더 3대로 공장 가동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당시는 미국이 세계 반도체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형국이었다. 특히나 한국에서는 미지의 영역이었기에 아남은 2년 넘게 수주가 없어 도산위기에 빠졌다.
부친이 조국에 대한 최후의 봉사로서 반도체에 뛰어든 열정과 헌신을 깊이 이해한 장남 김주진 회장은 교편마저 내려놓은 채, 사전 지식도 없던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어 1968년 앰코를 설립하였다. 김주진 회장은 집 차고를 사무실로 개조하고, 미국인 엔지니어 Mr. Polino와 함께 마케팅에 주력했다. 이때부터 아남이 한국에서 생산을 담당하고 앰코가 미국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아남/앰코 동반자 관계가 시작되었고, 반도체 패키징 산업의 선도기업으로 급성장했다.
첫 주문, “Excellent!”
“Excellent!”
김주진 회장이 앰코를 설립하여 마케팅을 하면서 마침내 1970년 아남은 첫 샘플 제작 의뢰를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제작한 반도체 샘플 200개는 ‘Excellent’ 판정을 받았다. 샘플이 합격하자, 첫 주문이 들어왔다. 미국 전자회사 SSS (Solid State Scientific Industrial, Inc.)사가 메탈 캔(Metal Can) 타입 IC 500개를 주문한 것이다.
밤을 밝혀가며 만든 패키지 500개도 역시 ‘Excellent’라는 평가를 받아냈다. 그해 아남은 불과 종업원 7명으로 SSS사에 21만 달러 물량을 수출했다. 아남의 첫 수출이자 한국 반도체의 첫 수출이었다. 산업보국을 향한 김향수 명예회장의 결단과 김주진 회장의 부친에 대한 효심에서 비롯된 아남과 앰코의 역사는 이렇게 막을 올렸다.
국내 최초의 컬러 TV 탄생
Korea’s First Color TV
1971년 마쓰시타전기의 신제품 개발 전시회에서 김향수 명예회장이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던 반도체 샘플을 본 마쓰시타 임원진은 아남의 기술력에 놀라 서둘러 한국 공장을 방문, 컬러 TV 합작을 제안했다. 합작계약을 위해 마쓰시타를 방문한 김향수 명예회장에게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이 약속한 면담시간은 15분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소신대로 “신의.”라고 답한 김향수 명예회장에게 크게 감명받은 마쓰시타 회장은 1시간 40분가량 담소를 나눴다. 이후 두 사람은 사업적 교류를 넘어서 신뢰와 존경을 쌓아나갔다.
이후 마쓰시타와 아남의 합작으로 설립된 한국나쇼날전기㈜는 1974년 1월, 국내 최초 컬러 TV CT-201을 생산했다. 김향수 명예회장은 1972년 마쓰시타와의 합작계약서에도 ‘우리는 한국 경제건설에 기여할 것을 제1의 목적으로 하며, 기술의 토착화를 근본으로 한다’는 조항을 명시할 만큼 조국의 발전을 늘 염두에 두었다.
아남그룹의 성장과 발전
Evolution of the Anam
1968년 국내 최초로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을 거둔 아남은 사업을 점차 다각화했다. 1974년 국내 최초 컬러 TV를 생산했고, 1975년에는 오디오와 LED 전자손목시계를, 1977년에는 국내 최초로 LCD 전자손목시계를 시판했다. 한편 1978년 배선기구, 1979년 반도체 설계, 1986년 건설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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