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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kor Centennial Hall _ ZONE 1

by 미스터 반 2022. 6. 21.

 

주경야독과 청운의 꿈
In Search of His Dreams with Diligence and Sincerity


1926년 열다섯의 김향수 명예회장은 건강상 이유로 교육자의 꿈을 포기해야 했지만,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학업에 대한 열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을 모은 돈으로 청운의 꿈을 가슴에 품고 일본으로 향했다. 그때 나이 열일곱이었다. 

 

자전거 사업을 배우던 시절의 김향수 명예회장

 

일본 나가사키에서 자전거 사업으로 성공한 형님에게 사업을 배우고, 나고야의 한 무역상사에 들어가 무역실무를 익히며 틈틈이 독학했다. 이러한 경험은 신의를 바탕으로 근면·성실하면 이루지 못할 게 없다는 확신을 주었고, 이는 훗날 아남을 일구어내는 값진 교훈이 되었다.

 


 

국가 기간산업으로 자전거 산업 육성
Fostering the Bicycle Industry

 

한국으로 돌아와 1939년 설립한 일만무역공사는 자전거, 나사, 양품, 잡화, 식료품 등을 일본에서 수입해서 국내와 만주 등지에 판매하는 무역상사였다. 종업원이 40여 명으로 당시 국내기업으로서는 상당한 규모였다. 사업 경험과 근검절약 정신, 집념과 인내를 갖춘 김향수 명예회장은 상공업계에서도 능력 있는 젊은 사업가로 인정받았다.
해방을 맞은 1945년 9월, 김향수 명예회장은 회사명을 아남산업공사로 변경하고 사업 분야도 자전거 수입 판매에서 자전거 부품 생산으로 전환했다. 조국의 경제발전에 기계공업 육성이 필수라 생각한 김향수 명예회장은 국가 기간산업으로 자전거 산업 육성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1956년 8월, 한국자전거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여 본격적인 자전거 부품 생산에 돌입했고, 이후 국내 자전거 조립품의 80~90%까지 담당하면서 국내 자전거 산업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자전거 부품 조립공장 내부

 


 

조국을 위한 여정
A Journey towards National Development

 

김향수 명예회장은 자전거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후, 조국 발전의 길을 모색하고자 1957 9월 김주진 회장과 함께 미주와 유럽으로 첫 번째 해외 산업시찰을 떠났다. 자전거 산업 실태를 살펴보던 그해 10월 소련의 세계 최초 인공위성 발사 성공을 보며, 부존자원이 적은 한국은 우수한 두뇌를 활용한 기술 발전과 수출 증진만이 선진국을 향한 길이라 판단했다.

1967 1, 56세의 김향수 명예회장은조국을 위해 마지막으로 기여할 일을 찾자는 굳은 결심 하에 두 번째 해외 시찰에 나섰다. 당시 미국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던 장남 김주진 회장과 함께 세계 선진 기업과 기업인을 두루 방문한 후, 미래지향적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반도체 산업이야말로 조국의 미래를 담보한다고 확신했다. 1968년 회갑을 목전에 두고 주위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명감 하나로 국내 최초로 반도체 사업에 착수했다.

 

세계 일주를 떠난 김주진 회장과 김향수 명예회장
유엔대표부사무실에서 이태영 박사, 임병직 주미대사와 함께
뉴욕 월가에서 금융전문가와 함께

 

본래, 김주진 회장은 1954년 서울대학교 법대에 입학하였으나, 1955년에 “더 큰 세상을 보고 싶다”며 홀로 도미,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빌라노바대학교에서 경제학 교수를 역임하고 있었다.

 

미국 유학길에 오른 김주진 회장, 여의도 공항

 

이렇듯 두 차례에 걸친 해외 산업시찰 이후, 1968년 김향수 명예회장은 아남산업주식회사를 설립해 한국 최초로 반도체 사업에 착수하였고, 김주진 회장은 미국에서 Amkor Electronic, Inc.를 설립해 아남/앰코의 반도체 역사가 시작되었다.

 


 

인재육성과 장학사업
Nurturing Talent

평소 인재육성을 중히 여기던 김향수 명예회장은 1949년 박열 의사가 세운 박열장학회를 후원하며 장학사업을 시작했다. 전쟁으로 잠시 중단되긴 했으나 종전 후 김향수장학회를 설립하면서 재개했다. 장학생들의 미국 유학을 돕고자 당시 한미재단 이사장 제임스 올워드 밴 플리트 장군을 장학회 고문으로 추대하고, 출연금을 증식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혼란한 국내 정세 탓에 또 한 번 중단되고 말았지만, 반도체 사업 성공 후 인재양성과 이윤의 사회환원을 목적으로 아남 직원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다시금 장학 사업을 펼쳐나갔다.

 

김향수 명예회장이 강진 학생들에게 장학증서를 수여하고 있다.
박열 장학회를 후원하던 시절, 박열 의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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