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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글레노리 노란 우체통] 사막의 지문

by 에디터's 2022. 4. 13.

사진출처 : unsplash.com

가을이 울룰루 빛처럼 도착했다. 그 오지의 햇살이 사막 한가운데 거대한 바위를 꿈꾸듯 물들이더니, 우리 집 배나무 끝으로 그 붉은 빛이 닿았다. 내륙의 붉은 사월의 바람도 3천 2백 킬로미터 떨어진 시드니에 닿는 것은 언제나 시간문제였다.
목이 칼칼한 혼미한 통증 속에 모래둔덕이 보이고, 그 너머에는 드넓은 사막이 펼쳐져 있다. 사막 중천에 낮달처럼 희미하게 휘청휘청 걸어가는 원주민들이 바위 사이로 보이는 듯했다. 길을 잃은 듯 걷는 이들의 뒷모습이 눈에 익기도 했다. 찢긴 모래바람에 지척을 가늠할 수 없는 가운데도 알 것 같은 건, 까슬까슬한 나의 이십 대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 저녁에는 여지없이 기침을 했다. 이십 대를 묻어버린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이 계절만 되면 찾아오는 인후통이라니. 멈추지 않는 기침소리는 허공을 울리다가 흩어지는 다 못한 말들의 잔해처럼 들렸다. 사막은 그 쓰디쓴 말들을 조용히 받아 적고 있었다.
서둘러서 옷장에 넣어두었던 긴 소매들과 겨울 이불을 꺼내어 거풍을 시켰다. 거짓말같이 되돌아오는 계절 속에는 말라붙은 덤불들도 거칠게 끼어 왔다. 그 시린 기억 몇 줌도 볕에 나란히 펼쳐 두었다.


누구나 한 번쯤 죽고 싶을 만큼 힘든 벽을 만났을 것이다. 나의 이십 대도 가끔 그랬다. 모래알 같은 시간들이 덧없이 흘렀고 해도 해도 안 된다는 절망의 빛이 일찍 찾아와 버린 탓이다. 친구들이 누비는 세상은 밝고 에너지가 넘쳐 보이는데 나는 쳐진 고개를 어쩌지 못한 채 땅만 보고 다녔다. 모래밭은 가도 가도 단단한 육지로 이어질 것 같지 않고 어딘가에서 벼랑을 만나 알 수 없는 허공으로 미끄러질 것만 같았다.
남들처럼 살아보자는 생각이 불끈 들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몇 가지 계획을 세우고 도전도 해봤다. 바이엘 교본을 사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3개월이 지나고 체르니 30에 들어가자 시들해지면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니는 듯 발걸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또 우표 수집에 열을 올렸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되고 귀한 우표들에 꽂혀 서너 권이 될 때까지 우표 동호회를 한동안 들락거렸다. 그것도 곧 관심이 식었다. 모래밭은 점점 황폐해져 갔다. 뭔가를 찾은 듯 초상화를 배우겠다고 화실을 몇 달 다니다가 그도 그만두고 나는 바람 든 무처럼 바싹바싹 지레 늙어가고 있었다.
남들처럼 결혼을 했다. 아이들이 네 살과 두 살이 되어도 남편의 해외근무는 길어졌다. 난 시집 식구들 틈에서 영혼 없는 젊은 엄마로 허겁지겁 살았던 것 같다. 길이가 다른 현실과 비현실의 두 다리가 모래구멍에 푹푹 빠져들어만 갔다. 그런 가운데 그 스물아홉이 된 것이다. 연기가 솟고 있던 베수비오 화산처럼 뭔가 곧 터질 것만 같았다. 십일 월이 거의 끝나갈 무렵, 기어이 목까지 치닫는 갈급증으로 허리가 꺾이고 자주 누웠다. 서른이 된다는 불안, 더 이상 오아시스는 보이지 않고 그만 모래 그늘 아래 묻혀 버릴 것 같았다. 오래전부터 겁을 먹던 나이, 엄마의 넋두리처럼 손톱 한 마디씩 날렸다는 그 아홉 수인지도 몰랐다.


친구 하나 없는 서울이었고 고향은 너무 멀었다. 이십대 말이 벼랑처럼 아슬아슬했던 그런 상황에도 매일 무릎을 꿇는 일은 잊지 않았다. 한밤 중 벼락같이 울리는 소리에 정신을 퍼뜩 차리곤 했다. 무조건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체념 속에서도 해 지는 아름다운 사막이 섬처럼 가물가물 떠올랐다. 그때마다 언젠가는 걷고 말리라는 다짐을 잊지 않았다.
아홉 수를 피해보려고 이민을 택했을까. 불안감이 찾아올 때마다 손톱 끝을 쥐었다. 바다를 건너온 고단한 운명이라고 기가 죽곤 했는데 지나고 보니 다행이었다. 그 펄펄 끓어오르던 열기를 송두리째 거친 오지에 쏟아 붓고 나서야 사막에 대한 환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호랑이 입 속 같던 세 번의 아홉이 겨우 끝나가고 있었다.
무릎이 꺾일 때마다 치닫던 탈주에 목이 말랐었고 그때마다 모래바람은 더 먼 곳을 향해 등을 밀기도 했던, 나를 끊임없이 부추기던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역마살을 찾아보니 긴 거리에 지친 말을 두고 쉬고 있던 다른 말로 갈아타서, 당차게 길을 또 떠나라는 것이지 달려온 말을 죽이라는 뜻이 아니었다.
두려워했던 아홉을 건너올 때마다 곁에서 새 힘을 채워준 뭔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잘 견뎌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긴 세월을 함께 건너온 애틋한 사람들을 가만 돌아보기도 했다.


시드니는 올여름 내내 비만 오다 끝났다. 그 덕에 초록이 우렁우렁 퍼졌다. 그 사이로 여름이 가고 황홀한 사월이 왔다. 시드니 사월은 해가 질 때가 가장 장관이다. 뒤틀리며 말라가는 붉은 고추 빛이다. 고통스러운 몸짓으로 에보리진의 시간을 지켜왔던 울룰루도 지금쯤이면 붉은 바위꽃으로 피어 장관을 이루고 있겠지, 더 이상 울지 않아도 되는 바위 곁에 비껴가는 노을처럼 기대고 앉아, 넋을 놓고 있다 보니 금세 뚝 떨어지는 저녁 기온에 집안일을 서두르기도 했다.
오늘은 낮에 말려두었던 겨울 양털이불을 깔아놓고 얇은 것들은 털어서 집어넣었다. 빌리 조엘의 <피아노 맨>을 크게 틀어놓았다. 저 쓸쓸한 피아노 선율을 타고 나뭇잎마다 앞 다투어 뜨거운 시절을 접을 것이다. 그 길을 따라 내 얼굴도 사막의 겹 주름을 닮아가겠지. 이제는 또 다른 언덕으로 홀연히 사라지는 모래 바람을 무심히 바라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