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동생이 새로운 집을 얻어 이사를 하게 되었다. 짐이 많지 않아 굳이 올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오랫동안 쌓아온 정이란 게 있어 그냥 보내기는 아쉬웠다. 그래서 이사하는 날 찾아갔다. 동생 말대로 짐은 많지 않아, 짐을 차에 싣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생의 물건들이 다 빠지자 빈 공간이 쓸쓸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관문 앞에는 쓰레기가 담겨진 봉투와 함께 화분 두 개가 보였다. “이건 안 가지고 가니?” “죽은 거 같아서 버리고 가려고요.” 동생의 대답이 돌아왔다. 작은 화분 두 개에는 다육식물이 있었다. 그냥 돌아서기에는 너무 안 되어 보였다. “그럼 이건 내가 가져간다.” “그러세요.” 다소 무미건조한 반응에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이사할 때는 누구라도 그러하겠지라며 동생을 이해하려 했다.
동생을 보내고, 화분을 양손에 들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창가에 두 개의 화분을 올려 놓았다. 작고 귀여운 화분에 걸맞지 않은 다육식물들의 모습이 불쌍해 보였다. 윤기 없어 보이는 줄기와 생동감 없는 잎들이 금방이라도 시들어 버릴 것만 같았다. 일단은 물을 주기로 했다. 식물들이 충분히 물기를 머금을 수 있도록 시간의 여유를 두고 물을 틀어주었다. 과연 이렇게 해서 죽어가는 식물을 살려 낼 수 있을까. 자신은 없었지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10여 분 지났을까? 화분 바닥에서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조심스레 화분을 들고 다시 창가로 향했다. 따스한 햇살이 유리창을 뚫고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렸다. 오랜만에 샤워를 한 다육식물들이 햇살과 만나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지 기대감이 컸다.
며칠이 지났다. 화분에 뚜렷한 변화는 없었다. 다육식물도 처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매주 일요일, 습관적으로 아침이면 두 개의 화분에 물을 주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을까? 화분 안에서 변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 죽은 줄만 알았던 줄기에서 작은 생명들이 고개를 내밀었고, 파란색을 잃었던 이파리는 진한 녹색으로 색깔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다육식물은 생명력이 강해 ‘반려 식물’로 좋다는 꽃집 사장님의 말씀이 그때 떠올랐다. 뻣뻣하기만 했던 잎이 부드러움을 가지게 된 것은 식물이 살아 보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었음이라.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작은 일에서 큰 기쁨과 희망을 얻어 가는 기분이었다.
살려보고자 하는 강한 의지나 열정을 가지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한 번쯤 해보자는 진심을 담아 도전했던 일이 예상치 못한 기적을 발휘한 것이다. 어쩌면, 이 두 식물은 자신들을 살게 해줘서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똑같은 일과에 익숙해지면서 감정이 메말라 있었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을 때 찾아온 기적과 같은 일이라, 의미가 남달랐다.
아직도 두 개의 화분 위 다육식물은 잘 자라고 있다. 상처와 아픔을 겪었지만, 더욱 씩씩하게 두 팔을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고 있다. 작은 화분이 너무 비좁은 거 같아서 올봄이 되면 큰 화분의 갈아줄까 생각 중이다. 아울러, 푸석푸석해진 흙을, 영양분이 가득 담긴 흙들과 섞어 좀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려 한다. 그리고 오래오래 함께 하면서 좋은 일을 함께 하고자 한다. 빛나는 햇살 아래 두 개의 화분은 오늘도 아름답게 숨 쉬고 있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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