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사러 갔다 지나는 길에 땅콩이 하도 맛이 있어 보이길래 무심코 땅콩 한 되를 샀다. 보통 물건을 하나 사려면 전통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야 결정하지만 그때는 처음 보자마자 사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래도 한 번에 덥석 사기는 부담스러워 그 가게를 위아래 왔다 갔다 하며 손님의 동향을 살피던 기억은 남아있다.
가게 한편에서는 작은 가마솥에 땅콩을 3분의 1을 채워 돌리고 있었다. 바로 옆에 볶는 것처럼 고소한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작은 되 하나면 며칠은 먹을 수 있겠거니 생각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땅콩 봉지부터 풀었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보니 뚜껑을 겨우 닫을 수 있는 정도였다.
땅콩은 어떤 맛일까. 하나 집어 들었다. 갓 볶아낸 땅콩이라 아직 따스한 온기가 식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껍질도 생각보다 잘 벗겨졌다. 하얀 속살이 드러났고 고소한 향이 가득했다. 잠시 후,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일품일뿐더러 단단하지 않아 잘게 부수는 데도 문제가 없었다. 하나만 먹어 보겠다는 생각을 바꿔 몇 개를 더 까 보기로 했다. 갓 지어낸 밥이 맛이 있듯, 따스한 온기가 남아있을 때 몇 개를 더 입 안에 털어낼 생각이었다. 먹을수록 또 먹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바쁜 일을 끝내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노트북을 켜는 동시에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땅콩을 마우스 가까이 끌어당겼다. 시간이 지나서였을까. 따스했던 땅콩에 온기가 많이 가셨다. 글을 쓰면서 땅콩을 집어 들었다. 궁금했던 입 안에 생기가 도는 듯했다. 언젠가 땅콩과 같은 견과류는 머리에 좋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과연 그럴까 의심을 하기도 했다. 한참을 고심해서 한 줄 한 줄 옮기던 여느 때와 달리 글의 속도가 붙는 것은 하나씩 까먹고 있는 땅콩의 힘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A4 용지 한 장의 글을 쓰고 나니 용기 안이 땅콩 껍질로 가득했다. ‘참 많이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용기 안을 뒤져도 땅콩은 찾을 수 없었다. 아쉬움이 밀려왔다. 좀 천천히 먹을 걸 싶었다.
며칠은 갈 수 있을 거란 나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하루 만에 동이 난 것이다. 작은 거 한 되 정도면 많을 거란 생각이 틀린 것이다. 땅콩은 많이 먹으면 느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늘 지배를 해왔기에 한꺼번에 많이 먹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 집 땅콩이 참 맛이 있고 괜찮구나 싶었다. 이후로는 액수를 올렸다.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10,000원어치도 가능하겠다 싶었다. “땅콩이 참 맛있네요.” 너스레를 떨자 “그렇죠. 국산입니다.” 주인장은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한 주먹 더 드려요.” 하시며 한 주먹 땅콩을 집더니 함께 넣어주셨다.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제법 무거운 땅콩 봉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더없이 즐거웠다.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갓 볶아낸 땅콩의 온기와 향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봉지를 열어 플라스틱 용기에 담았다. 세 개를 가득 채우고도 두 주먹 정도의 땅콩이 남았다. 최소한 서너 날은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감이 밀려왔다.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쓴다. 그리고 땅콩도 함께한다. 기분이 좋아진다. 왠지 머리도 맑아지는 듯하다. 키보드 치는 손도 한결 가벼워진다. 땅콩이 주는 새로운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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