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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화분

by 에디터's 2020. 11. 17.


화분을 샀다. 급하게 살 수밖에 없어 모양과 재질, 그리고 가격을 따지지 않고 보이는 화분을 그냥 집고 나왔다. 며칠 전 태풍을 무시했던 게 화근이었다. 실외에 놓아둔 고무나무 화분을 깜박 잊고 있었는데 심한 바람으로 인해 화분이 넘어지고 말았다. 좋은 화분이다 보니 평소 많이 아끼면서 관리를 했는데 한 번의 큰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엄마는 금이 간 화분은 집에 두는 것이 아니라 하시면서 급히 화분 교체를 얘기하시는 바람에 서둘러 화분을 샀다. 

가을이 되면서 분갈이를 해야겠다고 마음은 먹고 있었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았는데, 겸사겸사 같이 진행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마사토와 작은 주머니에 담긴 작은 자갈도 함께 화분에 얹었다. 돌과 흙을 화분 안에 넣고 나니 화분의 무게가 꽤 나갔다. 화분을 가슴에 딱 붙이고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겨우 집에 올 수 있었다. 

금이 생각보다 많이 가 있었다. 1년 이상을 함께 했는데 떠나보내려니 마음이 짠해졌다. 오랫동안 손이 탔다는 것이 이렇게 큰 아쉬움을 남길 줄은 몰랐다. 나무의 뿌리가 다치지 않도록 화분의 가장자리를 살살 긁어내면서 나무와 화분의 분리를 시도했다. 한 번에 끝나지 않을 것을 각오했지만 생각보다 만만치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서너 번의 밀고 당기기를 한 끝에 고무나무를 화분에서 빼낼 수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고무나무를 위해 좀 더 넓은 화분으로 옮겨 줘야 하지 않겠니?”라며 보는 이마다 한마디씩 했는데 나무를 꺼내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무뿌리가 더 이상 뻗어나갈 자리가 없었는지 화분의 모든 흙을 모두 움켜쥐고 있었다. 

더운 여름날 아이스바를 만들겠다며 아이스바 틀 속에 좋아하는 음료를 넣고 냉장고 냉동실에 한참을 넣어두고 기다렸던 막냇동생이 문득 떠올랐다. 하루가 지나 아이스바 손잡이를 쭉 뽑아내자 아이스바 틀을 똑같이 닮은 먹음직스러운 아이스바가 만들어졌었다. 

물 빠짐이 잘 되라는 바람을 듬뿍 담아 커다란 화분 아래는 자갈을 깔았고, 그 위에 마사토를 깔아 흙이 유실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리고 나무 성장에 도움이 될까 싶어 좋은 흙을 넣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드디어 이사할 준비가 완전히 끝났고, 화분에서 꺼낸 나무를 옮기는 일만 남았다. 화분 모양 그대로를 유지한 흙과 뿌리를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마무리를 해나갔다. 화분의 정중앙에 나무가 오도록 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균형 잡힌 나무의 모습을 보자 애쓴 보람이 있었다. 앞으로 어디까지 어떤 모습으로 자라날지 알 수는 없지만 큰 화분으로 옮겨진 나무는 참 편안해 보였다. 물까지 주고 나니 잎에도 생기가 도는 느낌마저 들었다. 


요즈음 반려동물에 이어 반려식물 키우는 일도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좋아하는 나무와 꽃을 사서 키워 보는 것도 좋긴 하겠지만 내 주위에 있는 화분 속에 화초가 좀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넓은 공간으로 옮겨주는 것도 뜻깊을 거라 생각한다. 작은 나무가 1년 지나고 2년이 지나, 더 굵어진 줄기와 풍성해진 잎들을 만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삶의 힐링이 되지 않을까.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