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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코로나 블루

by 에디터's 2020. 11. 12.


걷기에 지장이 없을 만큼은 날씨가 좋아야 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순전히 코로나19 때문이다. 하루도 쉬지 않고 야산이나 공원을 돌아서 10,000보 이상을 채우기 위해서다. 누군가는 “한 200년 살려고 그러느냐.”라고 하지만, 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임을 우리는 스스로 안다.

얼마 전, 장마가 계속되었을 때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아파트에서 운영하는 헬스클럽도 문을 닫아서 밥 먹는 것 말고는 집안에서 누웠다 일어났다 하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다. 신문을 읽거나 TV를 보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일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아내라도 곁에 있으면 좋으련만, 혼자서 집을 지키는 일이 달포가 넘었다. 외손자가 태어나서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딸네 집에 있기에 대화를 나누면서 외로움을 달랜다는 것은 다른 세상 이야기다.

침대에 누우면 만상이 떠올라서 수면 유도제를 복용하지 않고는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오죽했으면 한 달에 한 번 정도 안부 전화를 하던 아들이 일주일에 한두 번씩이나 연락을 해왔다.

“웬일로 자주 안부를 묻나?”

“어머니도 동생 집에 가서 심심할까 봐서요.”

“코로나 블루 초기인 것 같아서 비만 안 오면 열심히 걸어 다니고 있다.” 

“그 연세에 마음대로 다니신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에요.”

한 가지 새로 발견한 것은 친구들과 전화로 주고받던 대화가 수다로 변했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만 해도 아내가 친구들과 장시간 전화를 하면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소!”라고 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 나도 감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전화 통화에 이리도 푹 빠져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일주일에 다섯 번. 그것도 요일마다 친구를 정해놓고 삼사십 분씩 알맹이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 친구건 이웃사촌이건 얼굴을 보지 못하니 이런 재미도 없다면 벌써 우울증 환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장마가 물러가니 그나마 살 것 같다. 마스크를 하고 모자를 쓰고는 인적이 드문 야산을 아침 일찍 90분가량 산책을 한다. 사회 속 거리두기가 격상되어 올레길마다 설치해놓은 흔들의자와 긴 의자도 폐쇄되었지만, 비가 멈추어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숲이 우거져서 오솔길은 항상 그늘이고, 늙은이에게도 무리가 가지 않을 높낮이의 연속이라 건강에도 안성맞춤이다. 올봄에야 우연히 이 코스를 찾은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무릉도원이라도 노니 듯 걸어본다. 야외활동 재개로 수면 유도제를 먹지 않고도 잠들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기쁘다.

지난주에는 부모님의 기제사가 있었다. 일 년에 한 번, 유일하게 다섯 형제의 가족들이 모이는 날임에도 혼자서만 절을 올리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아버님, 어머님. 평생 경험 못 한 코로나19로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부디 용서하소서.”


과학자와 의학자들이시여! 모든 능력을 발휘해서 하루라도 빨리 백신이 상용화되어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글 / 사외독자 이종욱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