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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새벽이 주는 행복

by 앰코인스토리 - 2020. 6. 16.

 

지금은 새벽 1시 50분. 한밤이라고 할 수도 있고 새벽이라 해도 무리가 없는 시간이다. 라디오를 틀어 93.1메가헤르츠를 맞춰 놓고 커피포트에 물을 끓인다. 참 오랜만에 함께하는 시간이다. 바쁜 일상에 헐떡거리고 살다 보니 이 시간이면 꿈나라에서 곤히 잠에 빠져 있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한참 열정을 불태워야 할 때는 새벽 시간을 늘 이용했다.
달그락달그락 커피포트가 요동을 쳐서 커다란 머그잔 반 정도 물을 따르고 믹스커피 한 봉을 탈탈 털어 넣는다. 까만색으로 번져가는 머그잔 안을 젓가락을 하나 꺼내어 휘휘 저어가자 머그잔은 빠르게 연한 갈색으로 변해간다. 향긋한 커피 내음이 코끝에 닿는다. 바이올린 연주가 묘하게 커피와 잘 어울린다. 차 소리만 간간이 들리는 조용한 새벽과도 무척이나 안성맞춤이다.
새벽은 이렇게 삼박자가 잘 맞는 시간이다. 거기에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수 없다. 열정과 열의를 최고로 끌어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고3 때 새벽은 참 특별했다. 인문계 고3이라면 대학이라는 목표를 잡고 혼신의 노력을 쏟아붓기 위해 새벽을 많이 이용했을 것이다. 나 또한 원하는 대학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시간이 새벽이었다.
일과가 아침을 먹고 나면 학교에 가는 것이었고, 온종일 책과 씨름을 해야 했고, 저녁을 먹고 나면 또 공부를 위해 학교 독서실을 이용해야 했고, 그 시간이 모자르다 싶으면 새벽까지 공부의 시간을 이어갔던 것이다. 철저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한자라도 더 보기 위해 애를 썼었다. 낮이 길기는 했지만 쥐 죽은 듯 조용한 새벽 시간은 낮 시간 서너 배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최고의 몰입에 빠져들 수 있어 공부의 맛을 제대로 실감을 할 수 있었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열의와 열정을 보여주기 위해 새벽에 머리띠를 두르고 환하게 켜 놓은 스탠드 불 아래서 책과 씨름을 하는 장면을 설정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고3의 그 뜨거웠던 새벽을 뒤돌아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책상 위에 작은 탁상시계의 시곗바늘이 한 발 한 발 내딛는 소리만이 유일한 소음이었을 정도로 새벽은 집중을 위한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새벽의 또 다른 즐거움 중 하나는 글쓰기였다. 집중이 잘 되다 보니 라디오 볼륨을 낮춰 놓고 편지며 엽서며 집어 들고 쓰기 시작하면, 편지지 한 장을 이삼십 분 안에 막힘없이 써 내려갈 수 있었다. 어떤 말부터 써야 하나,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할 필요 없이 펜을 잡고 편지지를 펼치고 나면, 마치 곁에서 상대방과 대화를 하는 것처럼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새벽은 연인이 되고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다. 물론 새벽이 지나 다음 날 아침이 되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 참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어 아침이 오기 전에 봉투에 풀칠을 마무리하곤 했다.
창문을 여니 여전히 공기는 알싸하다. 3월이 중순이 지나가고 있지만 새벽 공기는 한겨울의 그것과 맞먹는 것 같다. 혼미해졌던 정신을 바로 고쳐 세우는 데 이만한 특효약도 없을 것 같다. 정신없이 차들이 오고 가는 넓은 도로도 깊은 잠에 빠졌다. 까만 하늘 위에 하나둘 보이는 별들만이 영롱한 빛을 낸다.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하다는 단어를 오늘은 떠올리고 있다.
아마 아침을 먹고 나면 이른 새벽에 눈을 뜬 탓에 졸음이 밀려올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느껴본 새벽의 행복에 대한 대가가 크지 않았으면 한다. 또 언제 새벽과 다시 마주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도 지금 만큼이나 좋은 추억을 회상할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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