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전통 놀이 문화관에 대한 명칭 공모전을 보게 되었다. 전통 놀이라는 단어를 보면 가슴이 뛴다. 그리고 설렌다. 전통을 딱히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래전부터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해왔던 것이라 그런지 가슴이 뜨거워지는 듯싶다. 어떤 좋은 이름을 붙여볼까? 서너 시간 동안 머리를 싸매 보았다. 하지만 쉽게 떠오르는 단어는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 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교과서에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책꽂이를 꽂혀 있었던 백과사전을 찾았던 기억을 되살려 본 것이었다. 전통 놀이라는 단어를 입력해 보니 모니터 한 면 가득 전통 놀이에 대한 글들이 있었다.
어떤 것을 가장 먼저 읽어볼까? 쉽게 클릭하기 어려웠던 탓에 가장 앞에 있던 글부터 읽기 시작했다. 꽤 많은 전통 놀이들이 보였다. 20여 가지가 넘는 우리 고유의 놀이가 소개되었다. 어린 시절에 나도 내 동생들도 해봤던 놀이가 제법 보였다. 자치기, 제기차기, 구슬치기, 고무줄놀이, 연날리기 등등 참 많았다. 그중에서도 팽이치기에 한동안 시선은 머물게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입학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라 하교 시간은 늦을 수밖에 없었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갈 때쯤 집에 도착했다. 이미 동생들은 집에 와 있었다. 그리고 앞마당에서 무언가 재미있는 놀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무언가에 푹 빠져 있는 동생들이 궁금해서 마루에 책가방을 던져 놓고 동생들 곁으로 다가갔다. 팽이였다. 책에서 팽이를 보기는 했지만 실물로 보는 것은 처음이라 신기했다. 초록색에 깔때기 모양을 한 팽이는 재미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굵은 실로 팽이의 몸통을 전부 동여매고 나서 힘껏 던지자, 실이 풀리면서 팽이는 신나게 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꼿꼿하게 서 있기를 한참 동안 한 후 좌우로 심하게 요동치면서 서서히 멈춰 버렸다. 뾰족한 꼭지로 평평한 바닥을 지탱하고 서 있다는 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어 보였다. 나도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쓰러진 팽이를 얼른 주워 들었다. 동생은 팽이를 돌리는 방법을 곧 설명해 주었다. 쉬었다.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자신도 있었다.
팽이 아래부터 꼼꼼하게 실로 감기 시작했다. 그 누구보다 오랫동안 멋지고 우아한 팽이의 회전을 자신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있는 힘껏 팽이를 밀어 던졌다. 100m 단거리 경주 선수가 스타트 블록을 차고 나가듯, 모든 에너지를 내뿜은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팽이는 제대로 서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얼굴을 들지 못할 지경이었다. 쉽게 봤던 일에 큰코다치듯 기고만장했던 나의 자존심은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만 것이었다. 그러나 한 번으로는 끝날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세 번이고 한 번의 실수는 병가지상사라는 말도 있지 않았던가. 구겨진 자존심을 얼른 회복하고 싶어서 팽이를 얼른 주워 들었다. 빨갛게 달아오르는 얼굴빛을 동생들은 본 모양이었다. 입 다물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정말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 비장하게 실을 팽팽하게 감기 시작했다. 두세 번 던지는 시늉을 해보고 나서 던질 준비를 했다. 다시 한번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힘을 빼고 최대한 좋은 각도로 던져 보았다. 이번에는 잘 될 거 같았다. 느낌도 좋았다. 손을 떠나는 감도 괜찮았다. 실이 풀리고 땅바닥 위에서 팽이는 회전을 시작했다. 되었다 싶었던 찰나, 팽이는 사방으로 심하게 요동치더니 얼마 가지 못하고 맥없이 쓰러져 버렸다. 충격이었다. 다시 해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놀이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그 후로도 여러 가지에서 고전을 했다. TV용 게임기가 처음 보급되었을 때 동생을 졸라 게임에 손을 댔다가 10전 전패를 했다. 대학교 때 MT에 가서 ‘소 발바닥 곰 발바닥’을 하면 벌칙은 내 차지였다. 팽이를 처음 배우던 그때 자존심을 버리고 동생들에게 제대로 배웠더라면 놀이에 대한 감각을 깨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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