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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가을 운동회

by 앰코인스토리 - 2018. 11. 30.


맑고 파란 가을하늘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금방이라도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그리고 이맘때쯤 되면 어김없이 “백군 이겨라! 청군 이겨라!” 함성이 메아리칠 것만 같다. 뜨거운 늦여름의 태양 빛 아래 선생님과 학생들이 하나 되어 많은 준비를 시작한다. 고학년 남학생은 곤봉체조, 여학생은 부채춤은 매년 정해진 레퍼토리처럼 연습하게 되었고, 모두가 하나 되는 차전놀이는 실전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한 달여 시간 동안 그 많은 땀과 노력을 파란 가을하늘 아래 많은 사람에게 제대로 선보이는 날이 가을 운동회였다. 소풍 때만 되면 우연하게도 비가 오는 날이 많아 잠을 설치기 일쑤였지만, 가을 운동회 날은 늘 맑고 청명한 가을하늘을 선사해주곤 했다. 만국기 펄럭이는 드넓은 공설 운동장에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 모두가 모여 백군과 청군으로 나누어져 조회를 가졌다. 월요일마다 교장 선생님의 훈시는 그렇게도 시간이 가지 않았지만 운동회날 교장 선생님의 인사 말씀은 참 짧고 간결했다.
바쁜 농사일과 집안일은 잠시 미뤄두고 자녀들의 솜씨를 보기 위해 엄마 아빠들이 운동장을 빼곡히 메우고 나면, 나나 친구들은 우리 엄마 아빠는 어디 있을지 찾기 위해 사방을 수시로 두리번거리곤 했다. 100m 달리기가 제일 먼저 시작되고 총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여덟 명의 선수들이 골인 지점을 향해 출발하면 부모님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한 발이라도 먼저 도착하기 위해 이를 악물기도 했다. 1등을 하면 공책으로 부상도 주어졌기에 젖 먹던 힘까지 낼 수밖에 없었다. 100m 달리기를 잘하지 못했던 탓에 가능하면 내가 뛸 때는 덜 빠른 친구들과 한 조가 되어 뛸 수 있길 기도했던 적도 있었다.
해가 머리 위에 뜰쯤 되면 즐거운 점심시간이 찾아왔고, 선생님은 부모님들과 맛있는 점심을 먹고 다시 모일 장소를 다시 알려주시곤 했다. 선생님의 당부 말씀이 끝나기 무섭게 나와 친구들은 쏜살같이 부모님이 잡아 놓은 자리로 달려나갔다. 엄마표 김밥이 찬합 가득 차 있었고,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던 음료수도 그날만은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주신 용돈을 가지고 친구들과 장난감을 고르는 재미도 운동회날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이었다.
오후가 되면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곤 했다. 들뜨고 어수선한 분위기로 처음과 다르게 승패의 갈림길의 순간이 왔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 분위기를 최고조로 장식했던 것은 이어달리기였다. 백군과 청군의 점수 차가 나고 있더라도 커다란 점수를 얻을 수 있기에 이어달리기를 이기면 역전이 가능해서 더욱더 흥미진진했다. 가장 빠르다는 선수들만 모아서 달려야 해서 바통 터치는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징과 북소리가 커지고 모두의 눈이 운동장 트랙으로 쏠리면서 이어달리기도 막바지로 향했다. 그리고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이긴 팀의 환호와 함께 뜨거웠던 가을 운동회의 막이 내려졌다.
하룻밤이 지나고 나면 갑자기 심한 운동을 한 탓에 몸 이곳저곳 안 아픈 데가 없었고, 목이 터져라 응원한 탓에 종일 쉰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운동회의 후유증은 일주일은 지속하였다. 그렇게 힘들어도 가을을 고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운동회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파란 가을 하늘을 볼 때마다 행복할 수 있는 것 또한 가을 운동회를 떠올 수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