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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낚시

by 앰코인스토리 - 2018. 8. 3.


시간이 날 때면 <도시어부>란 TV프로그램을 즐겨봅니다. 좋아하는 연예인인 이덕화, 이경규, 그리고 마이크로닷이 세대를 뛰어넘어 낚시로 하나가 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원하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인내를 필요로 하는 낚시에 재미와 감동을 함께 선사하고 있다고 말을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자리돔, 광어, 우럭, 장어, 놀래미 등등 많은 물고기를 볼 수 있는 즐거움도 쏠쏠합니다.


한참 동안 프로그램에 푹 빠져 보고 있노라면 문득 옛날 생각이 나곤 합니다. 섬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게 되어서 낚시할 기회는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낚시에 흥미가 그리 많지 않았던 탓에 친구들이 낚시하러 가자고 하면 ‘오늘은 집안일 때문에 바빠!’ ‘오늘은 엄마랑 시장에 가기로 했어!’라며 핑계를 대곤 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이 하도 성화를 해서 날을 잡아 바다낚시를 가게 되었습니다. 낚싯대 하나 들고 가면 되는 줄 알았지만 친구들은 참 많은 것을 준비했습니다. 고추장, 파, 마늘, 양념, 김치, 휴대용 버너, 냄비, 라면 등을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지기까지 했습니다. “누가 이사 가냐?”는 말을 꺼내자 친구들은 깔깔깔 거리며 웃어댔습니다.


어쩌면, 그때 처음으로 한번 움직이기 위해서는 참 많은 준비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이 빠진 바닷가는 참 좋았습니다. 동해안이나 남해안의 하얀 백사장은 아니었지만, 유유히 흐르는 바닷길과 마주한다는 것만으로 행복했습니다. 서둘러 낚싯대를 드리우고, 물고기를 낚기 위해 강태공이 된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나보다 한 10~20년을 훌쩍 뛰어넘은 어른들을 보고 있는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가을이나 되어야 큰 놈으로 여러 마리를 잡을 수 있는 데.’라는 친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친구는 물고기를 건져 올렸습니다. 미끼가 없는 상태에서 바보처럼 잡힌 물고기의 이름을 묻자 친구는 “망둥어.”라고 짧게 답하고 잽싸게 바닷속으로 낚싯바늘을 던졌습니다. 그때 처음 신기하고 재미있는 녀석, 망둥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반나절은 걸려야 물고기 서너 마리 구경하겠구나 예상했는데, 한두 시간이 채 되지 않아 너덧 마리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너희들은 낚시광이었구나!”라고 하자 친구들은 박장대소하며 웃었습니다. 이윽고 한 친구가 “가을이면 한 시간 만에 100마리도 넘게 잡어.”라고 말을 해줬습니다.


“잡을 만큼 잡았으니 이제 매운탕 해 먹고 가자.”라는 친구의 말에 서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한 친구는 물고기를 능숙하게 손질했고, 또 다른 친구는 버너를 켜고 냄비에 물을 부었습니다. “내가 오늘 솜씨 자랑 제대로 좀 할게.” “진짜 믿어도 되는 거야?” 나는 반신반의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낚시를 좋아하는 친구들이다 보니 믿어 보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파, 마늘과 김치, 그리고 물고기를 넣고 고추장까지 푸는 모습이 완전히 초보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라면까지 탈탈 넣으니 그럴싸한 라면 매운탕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뚜껑을 덮고 기다리는 친구의 모습은 의기양양해 보였습니다.


드디어 뚜껑이 열리고 구수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어떤 맛일까 궁금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숟가락을 냄비에 갖다 댔습니다. 뜨거운 국물을 호호 불어가며 입안으로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야외 나오면 어떤 음식이든 꿀맛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정말 맛있다.” “그래 정말 맛있다.” “내가 뭐랬냐?” 각자의 그릇에 라면을 가득히 얹고는 게눈 감추듯 먹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냄비는 라면하며 국물까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라면 끓이는 솜씨가 있다.”라는 말에 친구는 얼굴 가득 미소가 퍼져갔습니다. 


누군가 내게 “지금까지 가장 맛있는 매운탕은 어떤 것이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때 그 친구가 끓여준 그 매운탕을 이야기합니다. 많은 재료와 갖가지 양념이 비싼 생선이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바다에서 친구들과 함께한 그 추억이 살아 숨 쉬던 그 맛을 그 어느 것도 따라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