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진」을 읽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에서 대출받은 책으로 대출기한이 가까이 다가오다 보니, 겸사겸사 도서관에 오게 된 것이다.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것만 하다 보니 열람실을 굳이 찾을 기회는 없었다. 그런데 책을 읽기 위해 찾은 열람실은 생각한 것보다 아름다웠다. 한동안 뚝딱뚝딱 소리를 내며 공사를 했었는데, 정말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열람실의 이미지라면 긴 다리 책상에 칸막이와 딱딱한 나무 의자가 있는 공간이었는데, 카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모습이었다. 좌석표도 따로 없어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노트북을 켜고 자신의 공부에 몰두하였다.
커다란 카페에 홀로 앉아 커피 한잔을 시켜 놓고 음악을 들으며 노트북에 푹 빠져 있던 친구의 모습이 참 아름답게 보였던 기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문을 열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찾아보았다. 중앙 약간 왼쪽에 탁자와 의자가 비어있었다. 대부분 홀로 공부를 하기 위해 찾다 보니 1인 테이블이 더 인기 있는 모양이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오리진」 2권 하반기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노트북 키보드 소리와 책장을 넘기는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고요한 적막을 수시로 깰 뿐이었다.
집에서 읽을 때보다 몰입도가 높아서인지 읽는 속도를 빨리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모든 것을 잊고 책에만 푹 빠져 있을 수 있었다. 한 30여 페이지를 남겨두고 책에서 눈을 떼었다. 같은 자세로 장시간 있다 보니 어깨와 허리가 결리는 기분이 들어 열람실을 잠시 빠져나온 것이었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했고 어둠이 조금씩 내려앉고 있었다. 복도에는 학교를 파하고 도서관을 찾은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계단을 오르는 혹은 내려가는 학생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문득, 공부에 열정을 갖고 대들던 학창시절이 생각났다. 그때는 도서관이 놀이터이다시피 했다. 거대한 포부와 희망을 품고 주말이면 가까운 도서관을 찾아 도서관 문이 닫힐 때까지 정말 열심히 공부했었다. 친구와 안 풀리는 수학문제 하나를 가지고 이리저리 풀어보면서 대여섯 시간을 씨름하면서 고민고민을 하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많은 학생 틈바구니에서 마음속으로 좋아하던 여학생과 마주치며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아무 말 못 하던 그때가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순수했을 때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도서관 매점의 라면은 유난히 맛이 있어서 친구보다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기 위해 뜨거운 라면을 쉼 없이 흡입했던 그 결기는 지금 돌아보면 부럽기만 하다. 세월이 지나 도서관의 풍경은 많이 변해 버렸지만 자신과의 싸움을 펼쳐 보고자 하는 열정과 열의는 지금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아무리 어려웠던 순간 속에서도 도서관을 찾으면 새로운 힘이 샘솟았고, 꿈 하나만을 좇아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행복감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느낄 수 없었다.
2권의 책을 다 읽고 기분 좋게 반납을 하고 도서관 문을 나섰다. 두 권의 책을 비워낸 가방은 새털만큼 가벼웠다. 하지만 마음만은 지식으로 가득 채울 수 있었고, 도서관에 대한 추억으로 더 많은 행복을 대출받아 나올 수 있었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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