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오래된 메일 친구가 있다. 때로는 엄마 같고 때로는 누나 같고 또 어떨 때는 친구 같은 메일 친구다. 오랫동안 많은 메일을 주고받다 보니 가족과 같은 따스함이 느껴지는 그런 사람. 초등학교 선생님이시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선생님께서는 우리 담임 선생님이 되셨다. 큰 키에 예쁜 얼굴과 낭랑한 목소리, 그리고 좋은 성격에 반 남자아이들의 우상이시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선생님과 참 많은 곳을 함께 돌아다녔다. 우리가 사는 곳이 수도권에 인접해 있는 섬이었고 전적지로 유명했던 곳이라, 자전거를 타고 한 시간을 달리면 갈 수 있는 곳이 많았다.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때가 되면 선생님을 졸라서 낚시도 갔었고, 가을에 산천초목이 예쁘게 옷을 갈아입을 때면 가까운 뒷산으로 올랐었고, 문화재 공부한답시고 전적지를 돌면서 기행문을 쓰기도 했었다. 그 어느 때보다 한 해가 빨리 지나가 버렸다. 졸업식을 마치고 마지막 교단에 올라선 선생님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이시기도 했었다. 선생님도 사범대학교 졸업하자마자 첫 부임지였던지라 시간이 날 때마다 우리와 함께했던 시간을 자주 떠올리곤 하셨다.
한번은 선생님께서 맛있는 음식을 차려 주신다고 선생님의 좁은 자취방에 우리를 초대했었다. 10여 명이 들어가 앉기에는 비좁았지만, 선생님이 사는 신비의 공간을 둘러본다는 기쁨에 불평불만을 하는 친구들은 없었다. 빙 둘러앉은 우리 중앙에 상을 펴게 되었고, 선생님의 야심작이 방문이 열리면서 들어왔다. 커다란 냄비 담긴 것은 라면이었다. 실망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때 선생님은 이보다 많은 라면은 절대 먹어 보지 못했을 거라면서 한 젓가락을 떠보기를 재촉하셨다. 순식간에 라면은 동났고 우리는 국물까지 싹싹 비웠다. 상상 이상의 라면 맛이었다. 선생님 왈 “이 라면에는 사랑이 듬뿍 담겨 있어 맛있을 수밖에 없단다.” 보조개가 예뻤던 선생님의 그때 미소를 아직도 잊지를 못한다.
그렇게 교단에서 열정을 불사르며 아이들 교육에 매진하셨고, 아이들과 좀 더 친해지기 위해 아이들과 많이 어울리고자 노력하셨던 그 선생님이 이제는 명예퇴직을 선택하셨다는 메일이었다. 정년까지는 4~5년이 남았지만, 이제 그 많던 열정이 다 소진된 것 같다는 문구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정말 오랫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답메일을 서둘러 보냈다.
한평생 한 분야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참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님을 나는 오늘 더 존경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모쪼록 오랫동안 지켜 오셨던 교단에서의 성실함과 꾸준함을 잘 이어나가, 앞으로 시작하는 새로운 일에서도 멋진 결과를 만들어 내셨으면 좋겠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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