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기웃기웃 저물어가는 12월 말, 이맘때면 으레 어디론가로 일출을 보러 가고 싶어진다. 그래서 떠난다. 오메가 모양으로 붉게 타오르는 태양을 기대하며 목포로 떠나는 새벽 기차에 몸을 실었다.
앰코인스토리가 추천하는 목포 여행 코스
땅의 끝
새로운 시작
넘치는 희망으로 출렁이게 하소서
- 명기환, 땅끝의 노래 중
목포역에서 내린다. 차로 갈아타고 두 시간 남짓 달려본다. 목포의 구도시, 신도시, 대불공단을 지나 밤길을 쌩쌩 달린다. 왠지 서울의 공기보다는 차갑지 않게 느껴진다. 그렇게 도착한 전남 송지면 땅끝. 아직은 컴컴한 바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바다인지 알 수 없다. 새벽 문을 연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조금씩 여명이 밝아오는 땅끝에서 ‘땅끝’이라는 바위를 끼고 서본다. 희미하게 바다가 느껴진다. 갈두 선착장에는 보길도로 떠나는 여객선의 이른 뱃고동 소리가 울린다. 유명한 일출 장소 바로 옆에 불빛을 훤히 밝히고 서 있는 여객선이라니. 좀 무드가 깨진다. 그러기를 30분여. 파도도 예사롭지 않고 아무래도 바위틈을 비집고 솟아오를 해는 보이지 않을듯하다. 삼각대를 접으며 뒤에 놓였던 전망대 길을 더듬는다.
비탈길에 놓인 모노레일을 타고 갈두산(156m) 정상으로 오른다. 그래, 그제야 태양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동그랗고 빨간 여우구슬 같기도 하고 망망한 하늘에 걸린 붉은 단추 같기도 하다. 그렇게 태양은 양도 위에 올라, 새벽 기차의 수고로움을 타고 달려온 관람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한반도의 기운이 모이는 곳이라 불릴만하다. 땅끝전망대며 갈두리 봉수대, 끝이 보이지 않는 우리 땅의 끝, 바다며, 국토순례의 시발지로 꼽히는 이곳이 바로 그곳이다. 이맘때면 일몰도 오후 5시 30분 내외라고 하니 그것을 보러 와도 괜찮겠다.
백두산의 정기와 호남정맥이 거쳐서 내려온 땅끝의 기맥. 멀리 파도가 거세게 칠 때마다 심장이 둥둥거리며 울리는듯하다. 맑은 날에는 주변 흑일도, 백일도, 어룡도, 장구도, 노화도, 소안도, 보길도가 한눈에 들어온단다. 짙은 안개를 헤쳐보며 겨우 아담한 꽃섬과 양도를 시야에서 건져낸다. 다시 너른 바다를 내려다본다. 이곳이 나에게 마침표가 아닌 쉼표임을 기억하며.
다시 차로 40분에서 50분 정도 달리면 곧 해남의 영봉, 두륜산(703m)이 나타난다. 해남면 삼산면 구림리.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된 천년고찰 대흥사로도 잘 알려진 산이자 다도해와 한라산을 내려다볼 수 있는 국내 최장거리 케이블카가 있는 산. 공중에 대롱 매달려 1,600m를 6분 정도 실려 간다. 마침 불어온 겨울바람에 약간 기우뚱거리는 스릴까지. 8개 암봉에 연꽃형 산세로 그리 험하지 않아 평소 두세 시간 정도면 가련봉 정상까지도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정상에서 만난 전남관광홍보관이 반가웠다. 진도홍주며 해남고구마며 전남의 명물이 전시된 아담한 전시관이자 쉼터다. 다시 내려와 케이블카에 오른다. 뜻밖에 웬만큼 안개가 걷힌 산의 정경이 다 내려다보인다. 아, 울긋불긋한 가을 산이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목포역으로 다시 향하는 길에 두 곳을 들러보기로 한다. 천연기념물 500호로 지정된 갓바위. 출렁이는 바다 위에 놓인 길을 타고 어지러이 그의 정면에 서본다. 오랜 세월 풍화혈(風化穴)로 인해 조각품 같은 형상을 하고 두 개의 바위가 아슬하게 섰다. 전설 속에 등장하는 아버지바위와 아들바위란다. 아련한 사연을 담고 있는 그 위로 구름이 덮이더니 진눈깨비가 내린다. 겨울 바다와 눈이다. 아까 땅끝 해안선과는 달리 낮임에도 불구하고 쌀쌀한 기운이 덮쳐온다. 바다 위로 놓인 길이 마구 출렁이기 시작했다.
목포에 왔다면 당연히 <목포의 눈물>과 <목포는 항구다>라는 노래를 떠올릴 터. 갓바위에서 멀지 않은 곳, 엘피판에서 흘러나오는 가수 이난영의 목소리가 애처롭게 떨려온다. 삼학도가 내려다보이는 난영공원. 국내 최초로 수목장을 했다는 가수 이난영. 아담하게 생긴 그녀의 얼굴이 새겨진 바위 뒤로 이곳 주민의 말처럼 “니스를 칠한 듯 빤딱이는” 한 나무를 본다. 양옆으로 그녀의 남편과 그녀의 오빠가 작곡했다는 두 개의 노래비가 섰다.
여기서 삼학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본래 섬이던 것을 메웠는데, 다시 740m의 수로를 만들어 복원 중이란다. 아주 옛날, 한 청년을 사모한 세 여인이 죽어 학이 되어 떨어진 자리가 섬이 되었다는데, 밤이면 이 세 개의 섬을 잇는 산책로를 거닐며 밤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고 한다. 차를 타고 난영공원을 나와 목포역으로 달리는데, 오른쪽으로 엉뚱한 풍경이 펼쳐진다. 기찻길 옆 바로 1m 차이로 놓인 1층짜리 상가들. 주민들도 기찻길이 먼저 생긴 건지, 상가가 먼저 생긴 건지 모르겠다. 인근 공장 때문에 최근에도 하루에 1번 정도는 운행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 또한 없어진다고 하니, 좀 섭섭하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곳에 있는 목포어시장을 들렀다. 홍어 냄새가 그득하다. 싱싱한 생선을 기대했는데 그와 반대로 아주 꼬득꼬득 말려놓은 생선으로 가득한 곳. 머리띠처럼 말려놓은 먹갈치며 한 통 그득한 갈치속젓이 지나가는 구경꾼들의 군침을 돌게 한다. 어시장은 그리 크지 않다. 가락시장에 비하면 10분의 1 정도. 하지만 목포의 내음을 담아가기에는 충분하다.
목포역 주변은 구경할 것으로 치면 천지다. 유달산, 고하도, 북항, 삼학도, 갓바위 문화타운, 유람선, 바다분수…. 아주 깨끗한 거리처럼 주민들의 마음도 가게 주인들의 마음도 인심이 따뜻하고 후한 곳이다. 따로 자가용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목포역에서 내려 시티투어 버스를 이용해도 유명한 곳을 다 가본다고 하니 기억하자. 역사의 아픔, 깨끗한 거리, 복원되는 자연을 떠올리면 이제 으레 목포를 떠올릴 것이다. 자꾸 뒤를 끌어 잡는 시선들을 뒤로하고 어렵사리 기차에 오른다. 언젠가 바다가 가득한 이곳에 다시 오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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