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http://goo.gl/3X7kFv
아마도 필자와 같이 10~20대에 1990년대를 학창시절로 보낸 분들에게 ‘왕가위 신드롬’이란 문화적 신조어는 그다지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1995년 국내에 상륙했던 홍콩 왕가위(王家卫)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 《중경삼림(重慶森林)》. 당시 국내외 젊은이들은 스텝 프린팅과 장뤼크 고다르의 전매특허였던 ‘점프 컷’이라는 독특한 영상기법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한 그만의 비범한 영상 기법과 독특한 개똥철학적 보이스 오버, 그리고 영화에 삽입된 The Mamas & the Papas의 <California dreaming>과 Cranberries의 곡을 멋지게 리메이크한 왕정문의 테마 <Dreams>에 열광했고, 《중경삼림》이라는 영화 자체는 물론, 왕가위 감독의 작품들과 영화적 스타일 하나하나가 유행처럼 번져 나가게 되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Cultural phenomenon)’으로 자리 잡게 되었지요.
사진출처 : https://goo.gl/gJrgPE
당시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두하기 시작했던 세기말적인 포스트 모더니즘의 문화 세력 중 일부는 그러한 왕가위 현상을 어느 정도는 경계하는 눈치였으니, 당시 ‘세기말 블루스’라는 시집 한편으로 ‘진보와 타협이 공존하는 한계’는 있었지만 자기만의 독특한 시적인 언어로 어느 정도 비평적, 대중적 인지도를 쌓아가던 신현림 시인은 그녀의 시 <중경삼림을 보고 돌아온 밤>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아래층 여자가 또 교성을 지르는군 아아,
심란하네 아아 아파트 건물도 심란해서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림’을 듣네
오늘 개봉한 ‘중경삼림’을 생각하지 역시 왕가위 감독이네
그래도 그의 ‘아비정전’이 좋아
여기서 언급된 《아비정전(阿飛正傳)》(1990)은 1988년 《열혈남아(旺角卡門)》로 혜성처럼 등장해 홍콩영화계의 뉴웨이브를 이끌고 갈 신진세력의 한 명으로 주목받은 그가, 장국영, 유덕화, 장만옥, 장학우, 양조위, 유가령 등 홍콩 최고 스타들을 캐스팅해 의욕적으로 왕가위표 아트필름을 표방한 두 번째 연출작이었지만 홍콩에서의 흥행 참패는 물론 국내에서는 일부 관객들의 환불 요청 소동으로까지 번지게 된 문제작으로, 원래는 2부작으로 기획된 작품이었으나 흥행 참패에 따른 제작사의 압력으로 인해 반쪽짜리 기획으로 남게 된 불운의 작품입니다. (그런 연유로 다음 2부작에 출연할 계획이었던 양조위가 엔딩씬 한 씬만 찍고, 추후 이 영화의 후 속편을 찍지 못한 일화는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신현림이 그녀의 시에서 언급했듯이, 지나친 《중경삼림》 영화 한 편의 영향으로 인해 그의 저주받은 걸작이 평가절하되며, 왕가위라는 걸출한 감독이 단순히 1990년대의 청춘의 스타 감독으로 치부되는 것이 꽤나 불편했던 이들은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필자 또한 당시 동년배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중경삼림》에 열광할 당시 그러한 일시적 문화적 현상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고 있던 터였고, 그에 대한 반항적 심리가 발동해 《중경삼림》을 결국 개봉 당시 극장에서 보지 않고 비디오로 출시된 1995년 겨울에야 관람했으니, 이만하면 제가 얼마나 삐딱선을 달렸는지 상상이 가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었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주위의 다른 분들이 왕가위의 최신작에 대해 경배를 보내며, 차기작들에 대해 러브콜을 계속 보낼 즈음 그에 대한 삐딱선의 연장선으로 필자가 계속 다시 보고 또다시 보곤 했던 그의 이전 영화가 바로 이 영화 《아비정전》이었으니까요.
사진출처 : https://goo.gl/aYm8j8
이 영화 《아비정전》은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청춘과 성장에 대한 아트필름이기도 하지만 고독과 그리움에 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왕가위와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한 호주 출신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과의 첫 협업 작품으로, 이 영화의 주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모노톤과 블루톤의 영상 미학은 바로 고독과 그리움의 또 다른 이름이며, 그 뒤 7년 뒤에 나올 또 다른 걸작 《해피 투게더(春光乍洩)》에서 그러한 등식은 완성되지요. 물론 이 영화의 또 다른 공동 주연 역할은 바로 나른하고 몽환적인 영상과 기묘한 조화를 이루는 음악들입니다. Los Indios Tabajaras의 <Always In My Heart>. 몽환적인 기타선율 사이로 흘러나오던 장국영의 나른한 내레이션은 바로 이 영화의 고독과 그리움의 설명해 주는 함축적 의미의 원천입니다.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늘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에 꼭 한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라고….
너무나도 수많은 CF 및 영화에서 패러디되며, 이제는 고전으로 자리 잡은 속옷 차림의 장국영의 댄스씬에서 흘러나온 맘보풍의 Xavier Cugat의 <Maria Elena>. 그리고 유덕화와 장만옥의 이별 시 그리고 영화 속 떠남과 그리움이라는 테마와 맞물렸던 Xavier Cugat의 <Perfidia>, 그리고 양조위의 유일한 등장인 라스트씬에서 나왔던 Xavier Cugat의 <Jungle Drums> 등, 극 중 삽입된 고전적 스코어들은 소문난 팝송 키드로 알려진 왕가위 감독의 음악적 식견을 보여주는 좋은 예들이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의 잊을 수 없는 부분은 바로 극 중 아비로 변한 故 장국영일 것입니다.
너와 나는 1분을 같이 했어. 난 이 소중한 1분을 잊지 않을 거야. 지울 수도 없어. 이미 부정할 수 없는 과거가 되어 버렸으니까.
그가 극 중 수린진(장만옥 분)에게 날린 작업성 멘트 대사 한마디가 극 중의 수리 진은 물론 현재를 살아가는 그의 팬들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 팬들에게 그렇게 파급력이 큰 대사로 다가올지는 그 역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미 그는 가고, 영화는 남았으나 그와 함께한 이 영화 속 100분간의 러닝타임이 쉽게 지나갈 시간이나 영원할 수도 있다는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공감을 표하고 있으니까요. 마치 영화 속 수리진이 “1분이 쉽게 지날 줄 알았는데 영원할 수도 있더라고요.” 라고 말했듯이 말이지요. 바로 ‘몽환적인 고독과 그리움의 영상과 음악의 미학’이라고 명명된 이 말은, 이제 그를 다시는 볼 수 없는 이들의 그에 대한 또 다른 헌사가 아니었을까요?
사진출처 : 아비정전 영화 속 장면
아비정전 - Maria Elena
영상출처 : https://youtu.be/qxkOWF450-E
아비정전 - 오프닝
영상출처 : https://youtu.be/fMe06Q8Bp4M
Los Indios Tabajaras - Always In My Heart
영상출처 : https://youtu.be/bhMqmdzLcRM
아비정전 - Perfidia
영상출처 : https://youtu.be/qDUbtz-_7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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