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처음 왔을 때 제일 적응하기 힘들었던 점이 바로 ‘걷는 일’이었습니다. 집에서 간단한 시장을 다녀오려 해도 기본으로 20분은 걸어야 하고, 가까운 거리는 택시 잡기도 너무 힘들었거든요. 무질서해 보이는 도로교통과 더불어 중국의 거리가 주는 강한 인상 중 하나는 차도 만큼이나 널찍하게 뻗어있는 자전거 전용 도로였는데요, 출퇴근 시간이면 그야말로 자전거와 전동차가 홍수를 이루고 있어, 웬만한 초보 운전자는 거리를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중국에서 자전거는 생활 일부입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페달을 굴릴 줄만 알면 누구나 자전거를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며, 출퇴근이나 쇼핑 등을 위한 수단으로 자전거가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자전거가 중국인의 생활 일부가 된 데에는 자전거 타기의 권장, 상대적으로 저렴한 자전거 가격, 자전거 전용도로의 확보 등이 일조를 했겠지만, 중국의 많은 도시가 평지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된 이유일 것 같습니다.



자전거와 관련된 이색적인 풍경 중 하나는 자전거 주차장입니다. 큰 건물이나 시장, 지하철역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자전거가 주차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는, 거리 곳곳에 자전거를 수리할 수 있는 점포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또한, 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바람을 넣는다든지 등의 간단한 수리는 편리하게 언제든지 어느 장소에서건 할 수 있지요.


또한, 요즘은 자전거공유서비스 앱이 인기를 끌면서 다시 한번 중국에 자전거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자전거 앱을 이용하면 내 현재 위치에서 이용할 수 있는 각각 자전거의 위치가 나오기에 제일 가까운 위치에 있는 자전거를 구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얼마의 보증금을 내고 자전거에 있는 인식기에 스마트폰을 인식하면 시간당 저렴한 이용료를 납부하고 이용하면 됩니다. 이용 후 다시 제자리로 갖다 놓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용이 끝난 곳에 세워두고 가면 되는데요, 그럼 또 다른 누군가가 그 근처에서 위치를 추적해 이용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따릉이’와 비슷합니다)



처음에 이 서비스가 나왔을 때 거리 중간중간에 자전거가 간혹 가다가 서 있는 경우를 보고 이해를 하지 못했는데, 걷다가 다리가 아파서 앱을 이용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자전거를 이용해보니 정말 좋은 시스템인 것 같더군요. 중국 상하이, 생각보다 편리한 시스템이 있는 재미있는 도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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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 중간시험이 끝나고 금요일은 쉬는 날이라 디즈니랜드 개장 후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을 위해 과감히 디즈니랜드를 가기로 했습니다. 평일이라 입장료가 주말보다는 100위안(17,000원 정도)은 저렴하지만 온 가족이 가는 비용치고는 후덜덜한 면이 있네요.


가족들과 아침 7시 30분쯤 집을 나섰습니다. 참고로 오픈 시간은 아침 9시입니다. 기본 음식물 반입은 되지 않으나 진공포장이 된 음식은 반입할 수 있다 하여, 삼각김밥과 아이들 간식을 소소히 챙겨서 길을 나섰습니다. 디즈니가 생긴 덕에 지하철도 새로 생기고 도로도 새로 만들어져서 집에서 디즈니랜드까지는 30분 정도 걸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평일 아침 일찍이라 디즈니 전용 도로에 차가 많지 않겠다는 것은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디즈니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았네요. 9시 개장이건만 우리가 도착한 건 8시였는데, 티켓팅하는 데만 벌써 줄이 길게 서 있더라고요.



게다가 9시 오픈인데 벌써 티켓팅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하고 생각하고 가방검사를 끝내고 안으로 들어선 순간, (참고로 개인 입장 티켓팅 시에 여권 확인은 필수입니다. 신분을 증명할 만 것이 없다면 아무리 표가 있어도 입장하지 못해요) 디즈니 들어가는 입구에 바리케이드가 있었고, 거기서 사람들이 오픈시간까지 기다린다고 하네요. 오픈시간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9시에 오픈하자 갑자기 “와~!” 함성을 지르면서 놀이기구로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저는 안전에 대한 두려움을 좀 느꼈습니다. 뉴스를 통해 전해 듣던 압사사건이 왜 일어나는지 알겠더군요.


우선 디즈니랜드에서는 계획을 잘 세워야 합니다. 사람이 많은 관계로 자칫 잘못하다가 비싼 입장료를 내고 왔는데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시간을 다 허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선 동쪽으로 돌아 서쪽으로 나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대부분 한국 사람들은 서쪽으로 가서 동쪽으로 나옵니다. 그 이유는 상해 디즈니에만 있는 트론(Tron)이라는 놀이기구가 서쪽에 있기 때문이지요)


먼저 아이들은 놀이기구 타는 곳으로 가고, 저는 줄을 서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는 Fast Pass를 발권하러 줄을 또 서야 했습니다. 한참을 기다리다 Fast Pass를 발권했지만, 이것 또한 오후 1시 꺼 밖에 없었네요. 그래도 아침 일찍 서둘렀던 관계로 사람이 많았지만 놀이기구를 타는데 40분 정도만 줄을 기다렸습니다. 디즈니라는 명성에 걸맞게 디즈니의 여러 캐릭터가 이곳저곳에서 어우러져 아이들과 어른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할 정도로 만들어놨네요. 특히, 디지털 영상들이 어마어마합니다. 놀이기구를 타면서 앞에 보이는 영상들이 실제로 내가 그 안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드디어 그렇게 인기가 많다던 트론! 대기시간은 2시간 30분. 아이들이 꼭 타고 싶다고 합니다. 2시간 30분을 기다려서 트론을 타고 아이들은 너무 재미있었다고 한 번 더 타고 싶어 했지만 저녁 시간이 다 되었고, 다시 2시간을 기다릴 자신이 없었습니다. 



디즈니의 모든 놀이기구는 오후 8시까지 입장할 수 있고, 그 이후에는 디즈니성을 중심으로 불꽃축제와 레이저쇼가 시작됩니다. 겨울왕국의 주제가와 디즈니성에 영상을 상영하면서 동시에 불꽃쇼가 시작되는데요, 저녁이라 사람들이 많이 돌아갔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 또한 저의 착각이었다. 불꽃쇼가 끝나자 사람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데, 멀리서 보니 정말 나가는 길목에 사람들 머리만 보입니다.



집에 돌아오니 밤 10시 정도 되었습니다. 불꽃쇼가 끝나고 주차장까지 나오는 시간만 해도 1시간여가 소요된 것 같네요. 금요일이라 사람이 없을 거란 저의 착각, 여기가 중국이라 생각을 잠시 잊은 저의 착각이 있었지만, 아이들은 너무나 즐거운 하루였다고 말합니다. 그 한마디에 하루의 피로가 싹 없어질 듯도 하지만, 너무나 노곤한 하루이기도 했습니다. 혹시 상해 디즈니를 계획하고 있다면 평일 그것도 화요일에서 목요일 사이에 다녀오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물론 그렇다고 사람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요~여기는 중국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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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 가는 가을에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에는 지난여름에 방문한 청도맥주축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중국 산둥성(山東省) 동부에 있는 칭다오(Qingdao, 靑島)는 황해에 남쪽이 접해 있는 도시로, 1898년 독일의 조계지가 설치된 이후로 중국의 주요 무역항으로 부상했습니다. 한국의 중소기업 또한 많이 진출해 있어 수많은 한국 사람이 사는 곳이기도 하지요. 상해에서 칭다오까지 가는 방법은 가장 빠른 방법으로 비행기와 고속열차(高铁)가 있는데, 비용절감을 위해 고속열차를 탔음에도 7시간 반이나 걸리는 아주 먼 거리입니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보다 거리는 가까우나 직선거리가 아니라 그런지 더 걸린 듯하네요.



칭다오도 나름 관광도시의 면모를 가지고 있고 한국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에 볼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라 바로 맥주 박물관부터 찾기로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칭다오’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맥주이기 때문에 독자분들에게도 매우 친숙한 이름일 것 같네요. 이곳은 앞서 이야기했듯, 독일의 조계지여서 독일의 우수한 맥주 제조기술과 칭다오의 맑고 풍부한 수자원이 결합하여 세계적으로 우수한 품질의 칭다오 맥주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먼저, 맥주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입장권 표지부터 보입니다. 성인은 60위안(한화 약 10,000원)이면 입장료와 맥주 원액 한 잔, 그리고 생맥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티켓을 줍니다. 박물관은 약 100여 년 전 당시 맥주를 생산했던 시설들을 볼 수 있고, 코스 중간중간에 심심하지 않게 맥주를 시음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아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박물관에 흥미를 더해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물론, 현장에서 맛보는 맥주 또한 잊을 수 없는 맛이라 사람들에게 다시 찾도록 하는 그 어떠한 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칭다오에는 칭다오 맥주공장이 두 곳이 있는데 제1공장 맥주가 제2공장 맥주보다 더 맛이 있고 가격도 조금 비싸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현지 사람들 또한 제1공장 맥주를 최고로 쳐주고 있었고요.



언젠가 TV 등을 통해 칭다오의 봉지맥주를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필자 또한 이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으나 주로 길거리에서 팔고 찌는듯한 여름 오후의 날씨에 걸어 다니면서 마실 용기는 나지 않아 포기하기로 하고, 다음 행선지인 맥주 축제장으로 이동해 봅니다.



매해 여름마다 열리는 칭다오 세계맥주축제는 독일의 옥토버페스트에 버금간다는데 독일에는 가보질 못해서 비교할 수 없지만 정말 큰 맥주축제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필자는 몇 해 전 우연히 송도에서 개최한 세계 맥주축제를 가 본 적이 있었는데요, 규모나 장소면에서 비할 바가 못 되는 것 같았습니다. 축제장은 시내 중심가에 넓은 공터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여름에 열리는 이 맥주축제만을 위해서 이 장소를 계속 공터로 유지해 놓는다고 하네요. 이를 통해 얼마나 큰 축제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축제의 첫째 날 밤이 되자 인산인해를 이루며 모여드는 사람들과 맥주회사별로 큰 임시 공연장을 만들어 각종 공연과 맥주를 판매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다시 한 번 대륙의 스케일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네요. 메인 공연장에선 칭다오 맥주만 팔기 때문에 필자와 일행도 운 좋게 자리를 잡고 일반 시중가보다 두 배 비싼 생맥주를 들이키며 젊음의 열기에 한껏 젖어들었습니다. 서툰 중국어와 관광객 복장으로 쉽게 한국 사람임을 알아본 옆 테이블 칭다오 현지 주민들이 스스럼없이 맥주를 들고 우리 테이블을 찾아오면서 축제다운 축제를 즐길 수 있고, 칭다오 주민들 또한 이러한 맥주축제를 매우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연신 “칭다오, 넘버 원!”을 외치며 유난히도 더웠던 칭다오에서의 여름을 맥주로 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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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0.27 19:11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세계 술 소비량이 보여주듯 ‘술 사랑’하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절대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웃 나라 중국도 이에 못지않게 애주가가 많은 나라 중 하나이지요. 비록 우리나라보다 술 예절을 덜 따지는 편이기는 하나, 중국도 중국 나름의 음주문화와 예절이 있답니다.


중국인들은 어떤 술을 마실까


▲ 칭다오맥주

사진출처 : https://goo.gl/h0Ffgs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친구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맥주를 마십니다. 신기한 것은, 한여름에도 미지근한 맥주를 마신다는 것이지요. 물론 냉장된 맥주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 마시는 정도의 시원함을 기대해서는 안 된답니다. 중국 맥주로는,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칭다오(青岛, Qīngdǎo) 맥주가 유명한데요, 본고장인 칭다오에는 칭다오맥주박물관이 있어서 맥주 제조과정과 칭다오 맥주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매년 여름마다 칭다오맥주축제가 열리기도 합니다.


▲ 고량주 판매 모습

사진출처 : https://goo.gl/2EYnVQ


많은 사람은 ‘중국 술’ 하면 고량주(高梁酒)인 배갈(白干儿, báigānr)을 먼저 생각하겠지요? 배갈은 바이주(白酒)의 다른 이름으로, 고량, 조, 수수 등의 원료를 누룩으로 발효시킨 후 증류한 술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나라의 소주와 비슷하지만 도수가 보통 50~60도라 굉장히 높은 편입니다.


▲ 마오타이주

사진출처 : https://goo.gl/GVCufG


중국의 국주(国酒)라 불리는 마오타이주(茅台酒, máotáijiǔ) 역시 바이주의 일종입니다. 스카치위스키, 코냑과 함께 세계 3대 명주로 꼽히지요. 명품 술답게 현지에서는 짝퉁 마오타이주도 유통된다고 합니다.


중국인들의 음주문화


중국에서는 술을 따로 마시기 위해 2차나 3차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중국인의 식사시간은 매우 긴 편으로, 보통 한 자리에서 식사와 술을 같이 하기 때문이지요.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술주정은 금물! 한국인만큼 술을 좋아하는 중국인이라지만, 길거리에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을 구경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인사불성으로 술에 취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큰 실례로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럼 중국에서 생각하는 음주문화 예절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 중국의 술

사진출처 : https://goo.gl/LquIaz


1) 깐뻬이를 외치며 잔을 비운다

우리나라에서는 건배 제의를 하더라도 잔에 있는 술을 다 안 마시기도 하지만, 중국에서는 ‘깐뻬이(干杯, gānbēi)’라는 말 자체가 글자 그대로 술을 비운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잔을 비워야 합니다. 만약 원하는 만큼 마시고자 할 때는 ‘마음대로’라는 뜻의 ‘수이이(随意, suíyì)’라고 하며 마십니다.


2) 술을 받을 때 검지와 중지로 탁자를 두세 번 두드리며 예의를 표한다

이 예절은 사복 차림으로 사찰하던 건륭 황제가 신하들에게 차를 하사할 때 신분 노출을 방지하기 위해 자신에게 무릎을 꿇어 예를 표하는 대신 손가락으로 이를 대신하게 하면서 유래되었다고 하네요.


3) 상대방이 멀리 있을 때는 건배 제의 시 술잔으로 식탁을 가볍게 치고 마신다

원탁에서처럼 여러 명이 갖는 식사자리에서는 굳이 잔을 직접 부딪치지 않고 자신의 술잔으로 원탁을 가볍게 쳐서 이를 대신합니다. 이를 모르고 건배를 하기 위해 일어나 잔을 부딪치려고 하면 다소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겠지요.


4) 상대방이 잔을 다 비우지 않더라도 수시로 잔을 채워준다

상대방의 잔을 채워주는 것을 ‘첨잔(添盞, tiānzhǎn / 같은 말 添杯, tiānbēi)’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따라주는 속도에 맞춰주는 대로 받아 마실 필요는 없겠지요. 그리고 잔을 받는 것도 좋지만 상대방 잔을 채워주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에서도 친구나 사업 파트너를 만날 때 술은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술로 인연을 맺고 정을 쌓는 것도 좋지만, 술자리에서 그 나라의 문화와 예절을 몰라 실수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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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은 8.15 광복절이 있는 의미 있는 달입니다. ‘상하이’라는 말을 들으면 ‘상해 임시정부’라는 단어가 떠오를 정도로 학창시절에 수없이 배웠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필자 또한 그러한 세대이며, 최근 연예계에서도 일부 유명인들의 역사 인식이 문제가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상해 임시정부는 3.1운동 이후 일본 통칭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하여 1919년 4월 11에 각도 대의원 30명이 모여 임시헌장 10개 조를 채택하고, 4월 13일에는 한성 임시정부와 통합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 및 선포하였으며, 이후 1945년 8.15 광복까지 상하이(1919), 항저우(杭州, 1932), 전장(鎭江, 1935), 창사(長沙, 1937), 광저우(廣州, 1938), 류저우(柳州, 1938), 치장(1939), 충칭(重慶, 1940) 등지로 청사를 옮기며 광복 운동을 전개하였다고 합니다. 정말 나라 잃은 국가의 설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사실 상해 임시정부는 한국에서 상해로 관광 오는 단체관광객의 필수 여행 코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방문객들의 표정을 보면 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을 너무 허름하게, 그것도 일반 주택가와 같은 골목 한편에 너무 초라하게 놓인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표정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필자 또한 몇 번의 방문 때마다 똑같은 감정을 항상 느껴왔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현지 주민이 사는 다세대 주택가의 한 집에 1층과 2층이 임시정부 유적지로 보존이 되어 있고, 그 옆집은 사람이 사는 주택과 상업용 미용실로 되어 있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이 사실입니다. 작년에는 내부 수리로 인해 한동안 개방을 하지 않았는데, 수리 이전과 그리 차이를 못 느낄 정도입니다. 당시 오픈식에 현직 대통령도 오셨다는 한인 지역신문을 보도도 있었고, 내부에는 역대 대통령들의 친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방문 사인도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임시청사 내부는 3개 층의 구조로, 1층에는 중국의 여느 가정집과 같은 부엌이 있고, 2층에는 김구 선생의 집무실을 비롯한 집무실과, 3층에는 요인 숙소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 3층이지 정말 좁은 곳에서 얼마나 많은 독립운동가께서 고생했을지 (직접 보시면 잘 아시겠지만) 짐작이 가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처음 오는 사람들은 이곳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일반 도로변의 주택 입구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라는 간판만 있어서 쉽게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장소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도나 휴대전화 앱을 이용한 항공사진 등을 잘 활용해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밖에, 이 부근에는 길만 건너면 뜻밖에 유럽풍의 바(BAR)가 많은 신천지(新天地)라는 유명 관광지가 있습니다. 젊은 한국 방문객이라면 한 번쯤 들렀다 가기를 권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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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속좁은유지니 2016.08.26 16:1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최근에 무한도전에서도 8.15특집으로 LA 도산 안창호 선생님관련 방송할때 많이 뭉클하더라고요.
    특히 이곳은 우리나라에 있어선 중요한 곳인데.. 국가적으로 관리가 있으면 좋겠어요. 주변환경이 그렇다고 들으니 조금 마음이 그렇네요. 중국 상해 가면 꼭 임시정부 방문해봐야 겠어요.

난징(南京)은 중국 명(明)나라의 수도로 베이징(北京)으로 옮기기 전까지 중국에서 가장 번성하였던 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난징조약, 난징 대학살 등 중국 근현대사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로, 상해기차역에서 고속열차로 1시간 40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도시입니다.



필자가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역사의 가장 아픈 상처인 전쟁 관련 전시관, 난징대학살 기념관(南京大屠杀 纪念馆)입니다. (첫 방문지부터 택시요금 바가지에 좀 당황했지만, 관광지인 데다 난생처음 가는 곳이라는 점 때문에 그냥 쓴소리 한 번 하고 넘어가 주는 아량(?)을 보여줬네요)





난징 대학살은 1937년 12월에 자행된 전쟁 범죄로, 40일 사이에 약 30만 명의 중국인이 살해되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기념관 여기저기에서 30만이라는 숫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데, 이 기념관의 존재로 중국과 일본의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픈 역사를 현시대 사람들에게 잊지 말아야 할 교훈으로 삼고 전하기 위해 꾸준히 운영 중이고 입장료도 무료입니다. 전시관을 목적에 맞게 너무 잘 만들어 놓아서 오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건함과 엄숙함을 자아내게 하는 점은, 같은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도 본받아야 할 것 같으며 한국 사람들도 꼭 한 번쯤은 들려야 하는 필수 코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는 길에 택시기사에게 난징에는 일본 사람이 별로 없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뜻밖에도 일본 대기업 샤프(SHARP)가 난징에 공장이 있어서 일본 사람들이 많다는 답변을 해주어 아이러니하기도 했습니다.



다음 이동지는 난징박물관. 1933년에 개관해 한때는 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에 견줄 정도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48년 난징 함락이 확실시되자 국민당 관계자들이 값진 물건을 모두 타이완으로 옮겨가 버렸다고 전해집니다. 1급에 속하는 유물들이 모두 옮겨졌다고는 하나, 지금도 많은 볼거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타이완의 박물관에는 중국의 1급 문화재들이 그리 많아 몇 년마다 순환 전시를 한다고 합니다. 난징박물관(南京博物馆)은 크게 구관과 신관으로 나뉩니다. 구관은 특별전이 있을 때만 개장하고, 신관에는 테마별로 꾸며진 10개의 전시실이 있습니다. 각 전시실에는 얼마나 많은 유물이 있는 건지, 한쪽 구석에는 유물만 아파트형식으로 쌓아 놓은 방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이 밖에도 난징에는 명나라 태조인 주원장의 무덤인 명효릉(明孝陵)이 있습니다. 30여 년에 걸쳐서 건설되었고 주원장은 무덤이 완성된 지 15년 만에 이곳에 묻혔으며, 함께 순장된 관인이 10여 명, 병사와 시종이 46명이라고 전해집니다. 그 옆에는 중국 민주혁명의 선두자인 쑨원의 묘로 호를 따서 만든 중산릉(中山陵)이라고 합니다. 1926년부터 1929년까지 약 3년에 걸쳐 만들어졌으며, 너비가 6.6km, 길이가 7km, 총면적이 약 20㎢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황제의 무덤에만 붙인다는 ‘릉(陵)’으로 불리는 것만 봐도 쑨원에 대한 중국인의 존경심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난징에서 중산릉을 들르지 않는다면 중국인이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쑨원에 대한 중국인의 애정이 깊은데 우리는 일정이 촉박해 들르지는 못했네요. (물론 15,000원이 넘는 입장권 또한 살짝 부담이)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부자묘(夫子庙)입니다. 난징에서 가장 큰 공자 사당으로, 공자를 존경하는 의미의 ‘공부자(孔夫子)’에서 이름이 유래됐다고 합니다. 중국 전역의 공자묘 중에서는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하지만, 강남을 대표하는 건축물이자 난징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손꼽힙니다.


난징은 생각보다 많은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도시라, 관광지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많은 볼거리를 자랑합니다. 한국 기업 또한 많이 진출해 있어서 한국 사람들도 간간이 보일 정도로 많은 사람이 사는 역동적인 도시인 건 확실한 것 같네요. 가족과 하루 이틀 정도의 추천 여행지로 다음을 기약하며, 상하이로 돌아오는 텅 빈 고속열차에 다시 피곤한 몸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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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리장성


중국여행을 계획하면서 제일 기대되었던 곳이 바로 만리장성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버스를 타고 가서 가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약간의 편함을 추구하고자 여행사를 통해 만리장성을 둘러볼 계획을 세웠습니다.


아침 일찍 출발하는 여행사 버스에는 청명절을 맞아 많은 관광객이 이미 탑승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이드가 인원 확인을 한 후에 만리장성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몇 가지 포인트로 먼저 요약하자면, ‘만리장성, 세계 7대 불가사의,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 정도로 기억하면 됩니다.



만리장성은 마치 거대한 용의 형상처럼 길이 놓여있고, 베이징에서는 2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다고 합니다. 중국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 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공사 도중에 수천만 명의 사람이 희생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에는 시체가 쌓여 동쪽 성벽이 만들어졌다는 소문도 있었다고 하네요. 성벽의 높이는 9m에 달하고, 폭은 위쪽이 4.5m, 아래쪽이 9m입니다. 밤낮으로 하루에 40km를 걷는다고 할 때, 만리장성의 동쪽에서부터 서쪽까지 가는 데만 무려 5개월 가까이 걸립니다.


만리장성의 코스는 크게 모전욕과 팔달령 코스, 두 가지로 나뉩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중국 정부에서 만리장성을 관광지로 소개할 때 동양에는 팔달령을, 유럽에는 모전욕을 소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동양 관광객들은 팔달령을 통해 만리장성을 가고, 유럽 관광객들은 모전욕을 통해 갑니다. 모전욕 코스는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한 시간 정도 장성을 따라 걸어 올라가야 하고, 팔달령은 바로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 근처까지 올라간다고 합니다. 당연히 우리는 팔달령으로 코스를 잡았답니다.




만리장성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인파! 역시 중국의 인파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케이블카를 기다리는 데만 해도 너무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겨우 케이블카를 타고 도착해도 엄청난 수의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순례의 행렬처럼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 그늘에서 쉬는 사람들, 인증사진을 찍는 사람들, 제각각 만리장성의 풍경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길게 이어진 만리장성의 한 지점이다 보니 일정 구간까지 걸었다가 돌아오거나 다른 지점으로 내려갈 수도 있는데, 가이드 말이 올라간 길로 똑같이 다시 내려오라 합니다. 청명절로 인해 도착 시간이 늦춰진 데다가 케이블카의 대기시간으로 인해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네요. 멀리서나마 길게 이어진 성벽만큼이나 관광객들의 순례 행렬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필자 또한 순례 행렬에 끼고자 했건만, 이번 여행은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그만 접어야 했습니다.




비록 기대는 저버렸지만, 성벽을 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력이 동원됐으며, 어떻게 저 무거운 돌들을 날랐을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력과 시간이 들였는지, 그들로 인해 이러한 큰 문화유산이 남겨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느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좋은 현장학습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번에는 여행사를 통해서가 아닌 직접 자유롭게 장성을 따라 거닐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렇게 내려오는 길, 아쉬운 마음에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는 제 모습에 그만 웃음이 나왔습니다.




WRITTEN BY 김경수

드넓은 중국 대륙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생생히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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