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키오 다리 위에서




하루종일 돌아다니니 피곤하지 않아?

사진제공 / ATK 생산기획팀 길현진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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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지 2014.07.05 00:05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멋지네요ㅎ

  2. 수지 2014.07.05 00:05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멋지네요ㅎ

 에피소드 

 

“첫 번째 힌트, 매일매일 자라요. 두 번째 힌트, 여자에게는 없고 남자에게만 있어요.” 

어린이 프로인 붕어빵의 퀴즈를 보면서 손자가 귓속말을 한다. “고추야, 고추.” 

“세 번째의 힌트, 만지면 까칠까칠해요.” 


드디어 여덟 살배기가 “수염!”이라고 맞추니 뒤돌아보며 겸연쩍게 웃는 모습도 사랑스럽다. 지난해까지 이들이 하던 스피드 퀴즈를 노트에 정리했더니 다섯 권이나 되었다.


“빵 사이에 고기나 채소, 과일을 넣은 것인데, 간식이나 식사대용으로 먹기도 하는 것은?” 

“샌드위치!” “땡! 햄버거인데.”


곧바로 항의성 반론이다. “햄버거는 빵 위에 까만 참깨가 있다고 해야 하는 거야.” 


일곱, 여덟살짜리들이 부모와 한팀이 되어 경연하던 것을 적어 놓은 것인데, 그들보다 두 살이나 어린 손자가 육십 대인 나보다도 더 잘 설명하고 맞추는 것이 신통하기만 하다. 올 초에는 여자애가 자기와 결혼하기로 그네 엄마한테 허락을 받았다며 자랑이 늘어졌다.


 에피소드2 


“결혼하면 애는 둘을 낳을 건데, 남자는 아빠 이름이고 여자는 엄마 이름이야.”


‘엄마와 아빠를 사랑해서 그랬다고 하니…. 효자 났네! 효자 났어!’ 그저 기특한 생각에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최근에는 그 여자애가 다른 애와 가까이 지내면서 손자가 버스에 올라 옆으로 가도 앉으라는 말이 없단다. 그렇게 서 있는 채로 유치원까지 가고, 그에 인한 스트레스로 눈까지 깜박인다는 아들의 말이다.


“너도 다른 애를 사귀면 되잖아.”

“아니야. 그 애가 다른 애들에게 나와 결혼한다고 말했기에 어쩔 수 없어. 약속은 지켜야 하는 거야.”


백지처럼 순수한 손자에게 이번에 큰 실수를 한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에피소드3 


한 달 만에 온 녀석이 윷놀이에도 지쳐 하기에 아파트에 있는 놀이터 두 곳과 분수대를 거치고 18층으로 올라가려고 현관을 들어서는데, 갑자기 돌아서서 비상계단에 앞발을 걸치고는 말한다.


“할아버지, 걸어서 올라가고 싶어.”

“너무 높아서 안 되니 좀 더 커서 오르면 안 될까?” 순식간에 얼굴을 찡그리면서 바닥에 주저앉을 기세다.


“그럼, 5층까지 가서는 승강기를 타는 거야.”

앞장서서 층수 표지판을 가리키면서 2층, 3층 하더니 어느새 7층이다.


“승하야, 이제 타고 갈까?”

대답은커녕 돌아보지도 않고 올라가기에 계단에 주저앉았다.

”할아버지는 다리가 아파 쉬어야겠다.”

살며시 옆에 앉아 고사리손으로 종아리를 여러 번 만지더니 내 손을 잡아끈다.

“할아버지, 이제 올라가자.”


다시 7개 층을 더 올라가서 승강기 쪽으로 잡아끌었더니 역시 막무가내다. 나는 숨도 차오르고 다리도 무거워 뒤처져 따라가니, 어느새 우리 층이다. 현관문 고리를 잡고는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아빠한테는 절대 말하지 마.”한다. 나도 동의의 뜻으로 그렇게 했다. 그런 약속도 잠시, 거실에 앉아 숨을 고르고는 “승하는 어디에서 힘이 솟는지 18층까지 쉬지 않고 올라왔다.”고 자랑삼아 말을 꺼냈다. 아들은 “어른 말 안 들으면 앞으로는 안 데리고 다닐 거야.”하고 아내는 “이젠 손자 하나도 못 보는 거야.”한다.


바람과는 달리 꾸지람으로 이어지는 것을 중단시키기는 했지만, 녀석은 약속을 어기는 내가 미웠는지 잘 타지도 않는 오리 모양 자전거에 오르내리면서 딴전을 부린다.


‘무엇을 얻으려고 고자질했나. 어른은 모두 거짓말쟁이라며 비웃고 있지는 않을까?’


‘후회는 언제나 뒤에 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또 한 번 어기는 경박한 노인이 되었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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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코코리아의 K4 산악회에서는 2014년 신년을 맞이하여 1박 2일 코스로 제주도 한라산 눈꽃 산행을 다녀왔습니다. 첫날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 일정은 우수영(右水營)항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로 이동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제주도에 도착해서 찾아간 곳은 관광지로 유명한 섭지코지였습니다. 역시나 많은 외국인과 관광객들로 붐볐으며, 맑은 날씨 속에 모두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지요. 주린 배를 달래기 위해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해녀들이 운영하는 조그마한 식당이었습니다. 해녀들이 갓 잡아온 소라, 멍게, 해삼으로 게눈 감추듯 배고픔을 달랜 후, 첫날 일정의 하이라이트인 다랑쉬오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있는 다랑쉬오름은 월랑봉(月郞峰)이라고도 합니다. ‘높은 봉우리’라는 뜻으로 제주도 오름 중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지요. 해넘이 시간에 맞춰 정상에 도착해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도 남겨봅니다. 우리는 이렇게 아쉬운 첫날을 마무리했습니다.



둘째 날, 우리는 백록담으로 가는 여덟 시간 코스와 영실로 가는 다섯 시간 코스로 나뉘어 산행길에 나섰습니다. 한라산은 일주일 전에 내린 폭설로 인해 초입부터 하얀 눈꽃으로 멋진 풍경이 펼쳐져, 등산 중 눈길을 돌리는 곳마다 연신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오는 비경 천지였습니다. 백록담 정상 전, 진달래 대피소에서 나누어 먹는 컵라면의 맛도 아주 기가 막혔습니다. 반드시 이곳에서만 느껴볼 수 있는 진미 중의 진미였지요.


 

서둘러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우리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 속에 섰습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백록담의 설경을 한눈에 담고, 인증 사진으로도 남기는 행운도 얻었습니다. 아쉽지만 한라산의 절경을 가슴에 품고, 다음을 기약하며 이내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서른네 명의 인원이 모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던 신년 산행이었습니다.


산악회에 참석해주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며, 2014년에도 K4 산악회에 많은 관심과 참석 바랍니다. 우리 사원들 모두가 건강해지는 그날까지!


글 / K4 산악회 총무 김준호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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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 탐구생활 ]


 

 

Have you planned for this summer vacation yet?

여름휴가 계획은 짰니?

 

 

I’m going to Hawaii but I don’t know if I could take 5 days off.

하와이에 가려고 하는데 5일씩이나 회사를 빠질 수 있을진 모르겠다.

 

 


You should get approval from your boss now or else your plan will go down the drain.

그럼 지금 상사에게 허락을 받아야 해. 안 그러면 네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어.

 


I know. Thanks for your advice.

그래, 맞아. 충고 고마워.

 


 Go down the drain :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다, 물거품이 되다


이 대화에서 B는 여름휴가를 5일씩 내면서 상사에게 허락을 받지 않은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으니, 친구 A가 미리 말씀드리고 허락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합니다. ‘Or else~’는 ‘그렇지 않으면 ~하다’라는 뜻으로, 앞의 문장과는 반대의 의미가 나오면서 미리 허락을 받지 않으면 휴가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으니 염두하라는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 Take days off : 휴가를 내다

• Approval : 승인, 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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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Semiconductor)


반도체(半導體, semiconductor)란 전기가 잘 통하는 도체와 통하지 않는 절연체의 중간적인 성질을 나타내는 물질이다. 오늘날 전자기기에 널리 사용되는 반도체들은 열, 빛, 자장, 전압, 전류 등의 영향으로 그 성질이 크게 바뀌는데, 이 특징에 의해 매우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반도체’라는 말은 ‘semiconductor’의 ‘semi-(반)’와 ‘conductor(도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초기의 반도체 재료는 주기율표에서 4족 원소인 게르마늄이 사용되었으나, 오늘날에는 대부분 실리콘을 주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의 윌리엄 브래드포드 쇼클리(William Bradford Shockley)는 도체나 진공 속으로만 다니던 전자가 완전 도체도 절연체도 아닌 반도체라는 고체 안에 존재하면서 흥미로운 특성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하였다.


▲ <사진> 윌리엄 브래드포드 쇼클리 (1910~1989)





Posted by  Mr.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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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교과서나 위인전에도 빠지지 않는 인물을 한 명 꼽으라면 헬렌 켈러를 들 수 있다. 헬렌 켈러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시각과 청각장애를 극복한 여성이라는 점과 설리번 선생에게 말을 배운 일화들이 희미하게 기억날 것이다. 여기서는 좋은 동반자들과 인생을 보냈던 사람이자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고 했던 활동가로서 헬렌 켈러의 또 다른 모습을 소개한다.


ⓒ Litchfield Literary Books' Blog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년~1968년)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삼중고에 시달렸던 장애인 여성이다. 우리가 아는 헬렌 켈러의 이야기는 설리번 선생을 만나 글을 배우는 데서 시작해 래드클리프 대학을 입학하는 데서 끝난다. 래드클리프 대학은 하버드 대학이 남학생만 받던 시절에 보완적 역할을 했던 여학교였기에, 어떤 어린이용 위인전에서는 아예 하버드대학교라 표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대부분 위인은 성인기의 업적에 따라 위인으로 불린다. 어린 시절에 천재였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위인으로 칭송받는 사람은 없다. 헬렌 켈러는 ‘미수(米壽)’라고 하는 88세까지 살다 갔다. 60년이 넘는 그녀의 진짜 인생은 어디로 갔을까. 비장애인의 일방적인 시선이나 학벌 중심 사회의 편견도 버려두고, 우리가 몰랐던 헬렌 켈러의 인생을 따라가 보도록 하자.



인형을 손바닥으로 느끼다


ⓒ New England Historic Genealogical Society


헬렌 켈러는 1880년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서 H. 켈러(Arthur H. Keller), 어머니는 케이트 애덤스 켈러(Kate Adams Keller)였다. 켈러 부부가 아이를 낳았을 때, 헬렌은 평범한 아기였다. 그러나 생후 19개월째에 성홍열과 뇌막염에 걸려 뇌와 위에 급성 출혈이 일어났다. 잠깐 스쳐 지나간 병이었지만 이때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가지게 된다. 그녀는 다행히 한집에 사는 요리사의 딸 마르타 워싱턴과 어울리며 자랐다. 마르타가 수화를 이해할 수 있었던 덕에 일곱 살 무렵에는 수십 가지의 수화를 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마르타와의 소통이 헬렌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켈러 부부는 딸의 장애를 알고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장애인 교육에 관한 책을 읽고, 전문가들을 만나러 다녔다. 장애는 고칠 수 없지만 그것을 딸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비장애인과 다름없이 교육하기로 결정한다. 수소문 끝에 펄킨스 시각장애학교를 졸업한 앤 설리번(Anne Sullivan, Johanna Mansfield Sullivan Macy, 1866년~1936년)을 가정교사로 받아들인다. 스무 살의 설리번 선생이 일곱 살의 헬렌을 만났고 둘은 50년 가까이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첫 만남에서 설리번 선생은 인형을 선물하고 헬렌 손바닥에 인형이라는 뜻의 철자 ‘doll’을 적는 것으로 교육을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는 주변 사물들의 흐릿한 윤곽을 더듬으며 철자를 하나하나 손바닥으로 배웠다.

ⓒ Litchfield Literary Books' Blog


여기까지가 흔히 아는 헬렌 켈러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영화 <미라클 워커(The Miracle Worker)>의 인기가 큰 몫을 했다. 헬렌은 대학 시절인 1903년 「내가 살아온 이야기」라는 자서전을 썼다. 이것을 바탕으로 1959년 연극 <미라클 워커>(1959)가 나왔고, 그녀의 사후에는 이 연극을 각색한 동명의 영화가 1979년 상영된다. 영화는 TV용으로 다시 만들어져 1979년과 2000년에 방영되었다. TV영화는 우리나라 방송에서도 이따금 틀어주곤 한다.


동반자들의 헌신적인 조력


설리번 선생의 끈질긴 노력이 유명해지는 바람에, 마치 헬렌 켈러가 집에서만 교육받은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쉼 없이 정규교육을 받았다. 1888년 만 여덟 살이 되자 설리번이 다녔던 펄킨스 시각장애학교에 등록했고, 6년 후인 1894년에는 라이트 휴머슨 청각장애학교와 호레스 만 청각장애학교가 있는 뉴욕으로 이사했다. 그 후 케임브리지 여학교를 거쳐 래드클리프 대학교에 다닌 것이다. 래드클리프를 졸업할 때 영어, 독일어를 포함해 5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설리번은 헬렌과 늘 동행했고, 교사로서가 아니라 동료로 남았다. 설리번의 남편 존 메이시까지 세 사람은 시각장애인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죽는 날까지 함께 활동했다.


ⓒ Litchfield Literary Books' Blog


1914년부터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설리번 선생은 1936년에 사망했다. 1914년부터 헬렌의 곁을 지킨 사람은 폴리 톰슨이었다. 처음에 톰슨은 집에서 그녀를 돌보는 역할로 고용되었으나 점차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넓혔고 마침내 헬렌의 비서가 된다. 40년 가까이 그녀의 곁을 지켰고, 설리번 선생 이상으로 헬렌 켈러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1957년 톰슨이 발작으로 몸져눕자 헬렌은 위니 코베리라는 간호사를 고용했다. 톰슨을 돌보기 위한 일이었지만 1960년 톰슨이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난 뒤에도 코베리는 계속 남아 그녀를 돌봤다. 헬렌의 마지막 10여 년은 코베리가 함께한 것이다.



여성, 노동자, 장애인과 함께한 인권운동가


ⓒ Litchfield Literary Books' Blog


헬렌 켈러의 인생 초반 20여 년보다 60여 년의 중후반이 거의 가려져 있던 이유는, 그녀의 직업이 인권운동가였기 때문이다. 회복할 수 없는 장애를 입은 미국 사회의 억압과 부조리를 고발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어떤 이들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헬렌은 전 세계를 다니며 민주주의, 여성주의, 사회주의를 설파하고 실천했다. 또한, 열두 권의 책을 쓴 작가이자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훌륭한 연설가이기도 했다.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3년 후, 미국은 뒤늦은 참전을 선언한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독일에 선전포고한다.”라는 명분을 내세우자 헬렌 켈러는 반발하고 나섰다. “(미국 백인들이) 수많은 흑인을 학살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지배자는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녀야말로 평생을 여성의 선거권과 참정권, 노동 인권, 반전과 평화, 사형제 폐지, 인종차별 철폐,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 Litchfield Literary Books' Blog


헬렌의 사회운동은 전쟁을 옹호하고 차별을 조장하는 사람들의 공격을 받았다. 이런 사람들은 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편견을 그대로 드러냈다. 대표적인 비난은 ‘그녀가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민주사회의 시민이 자신의 주권을 행사할 때 배후 조종자가 있을 것이라 매도하는 경향은, 1900년대의 미국도 지금의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체적 장애보다 사회의 장애를 극복하는 데 더 큰 노력을 기울였던 헬렌 켈러. 헬렌은 1968년 정말로 눈을 감는다. 1961년부터 뇌졸중을 앓았던 그녀는 마지막까지 미국 시각장애인재단을 위해 일하고 떠났다. 헬렌 켈러는 인생의 동반자였던 앤 설리번과 폴리 톰슨 옆에 묻혔다. 그리고 눈 없이도 세상을 똑바로 보았고 청력이 사라져도 타인의 신음을 들을 줄 알았던 위대한 정신의 표본으로 우리 곁에 남았다.


ⓒ Litchfield Literary Books' Blog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보거나 만질 수 없다. 그것들은 가슴으로 느껴야만 한다.”
“혼자서는 약간의 일을 할 수 있다. 함께라면 우리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어둠 속에서 친구와 걷는 것이 환할 때 혼자 걷는 것보다 낫다.”
“나는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는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할 수 없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글쓴이 김희연은 _ 사보와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자유기고가다. 사회, 문화, 경제 분야에 두루 걸쳐 갖가지 종류의 글을 쓴다. 글쓰기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행운을 얻어서 늘 고마운 마음을 품은 한편으로, 쓸데없는 글로 인해 웹이나 인쇄매체에 들어가는 종이와 바이트, 그리고 독자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 외부필자에 의해 작성된 기고문의 내용은 앰코인스토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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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날씨가 좋아 도쿄 인근 공원에 다녀왔다. 공원의 이름은 ‘안데르센 공원’.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안데르센 동화를 테마로 한 공원이다.


▲<사진 1> 안데르센 공원 표식


특히 아이들이 놀기 좋게 꾸며진 물놀이장, 놀이기구 등이 설치되어 있어서 유원지 같은 느낌도 든다. 도쿄 인근에는 이러한 종류의 공원이 여럿 있는 걸로 아는데, 아마도 버블 시절 자산가가 자신의 취미 혹은 취향대로 테마파크를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종류의 공원 중 문을 닫은 곳도 여럿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안데르센 공원은 사람들이 북적일 정도로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햇살 좋은 봄날이면 아이들을 마음껏 뛰놀게 두고 텐트 안에서 낮잠을 청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 2> 덴마크풍 건물


우선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북유럽풍의 빨간 건물 두 채가 보인다. 분수, 안데르센 동상, 풍차도 눈에 띈다. 풍차에서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니, 이 중 한 건물은 안데르센이 직접 다녔던 학교 건물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흔히 듣는 말인 ‘고집’ 혹은 ‘집착’이라는 뜻의 ‘코다와리’처럼, 비용과 노력이 많이 들더라도 안데르센의 학교를 재현하려는 것 자체를 코다와리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품질에 대한 고집, 장인 정신, 요리사의 맛에 대한 집착 등이 모두 이 코다와리에서 나온다는 다큐멘터리를 언젠가 본 적이 있다. 이 말이야말로 일본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진 3> 벌거벗은 임금님의 재현


다른 한쪽 건물은 기념품 가게다. 안데르센의 모국인 덴마크의 장난감들을 한쪽 코너에 장식해서 팔고 있었다. 그리고 분수와 풍차 근처를 둘러보다 보면 인어공주, 벌거숭이 임금님, 미운 오리 새끼 등 안데르센 동화를 모티브로 한 장식들이 눈에 띄어 절로 미소 짓게 한다.


여기를 조금 벗어나면 제법 큰 연못이 나온다. 이곳에는 노 젓는 배를 빌려서 탈 수 있다. 30분에 3,000원 정도이니 그다지 비싼 가격도 아니다. 필자도 아이와 함께 배를 탔는데, 정작 어른들이 노 젓기가 어색해 세 번 정도는 다른 배와 부딪히기도 했다. 일단 배끼리 부딪히면 상대방 잘못이라 하더라도 일본 사람들은 서로 적극적으로 사과한다. 그런 모습을 보며 참 일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4> 공원 곳곳에 있는 안내판


조금 더 걸으니 큰 물놀이장이 나온다. 어른 무릎 정도 깊이라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겨도 된다. 이날 기온이 그다지 높지 않았음에도 다들 들어가 놀고 있었다. 우리 아이도 물에 들어가고 싶어 했지만 여벌 옷을 준비해 오지 않아 얼른 미끄럼틀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주변을 보니 나무 사이사이에 줄이 걸려 있었다. 그 줄로 만든 다리와 그네 등 그야말로 아이들이 하루를 만끽할 수 있게 잘 꾸며져 있었다. 이외에도 말타기 체험장 등 여러 가지 탈것들도 많았다. 어른들도 같이 탈 수 있는 게 많아서 무서워하는 아이들은 부모들이 함께했다.


올해는 유난히 봄 날씨가 변덕스러운 탓에 정말 오랜만에 가족끼리 외출했던 것 같다. 아이가 웃으며 뛰어노는 모습을 보니 왠지 마음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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