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륜과 경험이 도움이 된 여행이었다. 쿠알라룸푸르공항은 여러 번이나 해외여행을 다녀온 우리 부부에게도 당혹스러운 곳이었다. 기내를 나서자, 반겨준 곳은 면세점이었다. 그곳을 지나니 드램이 기다리고 있어서 출국장으로 향한다는 사인을 확인하고서야 탑승을 했고, 내리니 다시 면세점들이었다. 걱정하면서 Luggage Claim이라는 글자를 따랐더니 드디어 입국장이 나왔다.

늦었다는 미안함으로 가이드를 만나니 열여덟의 일행 중 선착이었다. 30분이 지나서야 두 명이 합류했고, 한 시간이 지나도 20대 아가씨 두 명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가이드가 다가오더니 “짐이 보이지 않아서 찾는 중”이라기에 “싱가포르로 짐을 부쳤을 것”이라고 했더니 그게 정답이었다. 1시간 반이나 늦은 탓에 백만 불 야경이라고 선전한 ‘푸트라 자야’ 감상시간은 대폭 축소되었고, 환상적이라는 ‘반딧불 축제’도 이미 문을 닫은 후였다.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고속도로와 역사도시인 ‘말라카’를 왕복하는 네 시간여 정도 야자수 사촌인 팜나무가 뒤덮인 숲속이어서 힐링의 시간이었다. 농가도 농작물도 볼 수가 없다는 것이 의아했는데, 이 나라에서 농작물에 종사하는 인구는 10% 미만이란다. 석유 매장량이 많아서 개발도상국이라지만, 화장실마다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물도 잘 안 나와서 우리보다 한참이나 뒤졌음을 알렸다. 경주와 비견할 만하다는 고도 ‘말라카’ 여행에 하루를 할당받았지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차이나타운은 여느 나라와 다를 바 없었고, 식민지 시대의 건물들도 작고 낡아서 아무런 감동도 받지 못해, 못내 서운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다 힌두교 최대성지인 바투동굴에서는 50도 경사의 272개의 죄악을 고해하며 걷는다는 계단을 오르내렸고, 눈에 담은 거대한 황금동상도 신비했지만 웅장한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내부에서 작은 구멍을 통해 올려다본 햇살이 경이로워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힘든 계단 오름을 원숭이가 여행객의 콜라 캔을 낚아채 가는 묘기(?)를 보여서 피로를 잊기도 했다.

이 나라의 가장 긴 교량과 트윈타워를 비롯하여 대형 빌딩 대다수를 국내 5대 건설사가 건축했고, 네일아트를 포함한 미장원이 부유한 화교여성들을 매혹하고 있으며, 수학학원이 성업 중이라 한국인을 존중한단다. 왕궁 뒤로 보이는 가장 비싼 아파트의 주인도 교포라며 가이드는 자부심에 넘쳤다.

One Day Tour인 싱가포르는 이곳과는 많이도 달랐다. 말레이시아가 정적이라면 이곳은 동적이었다. 기내에서 내려다본 해상에는 무역선들로 가득 찼고, 수많은 나라의 국적기들을 보면서 무역과 관광업의 나라임을 한눈에 인식할 수 있었다. 하늘을 찌르는 고층건물이나 아파트도 같은 형태의 모습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중국인답게 축구장 50배 면적에 60만여 종의 식물이 있다는 Botanic 정원과 37m 높이의 Merlion 상이 ‘고요한 동방의 나라’에서 온 여행객의 기를 꺾어 놓았다. ‘Jurong 새 공원’은 세계 최대 규모의 새 테마파크로 400여 종 5,000마리 이상의 새가 서식하고 있다지만, 모노레일을 타고 도는 중에 앵무새와 홍학만 눈에 띄어서 마음이 편했다. 야심작이라고 선보인 ‘All Star Bird Show'는 에버랜드와 비교하면 한 수 아래였다. 화려한 야경 투어는 싱가포르의 부유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원주에서 동참한 50대 부부가 실수를 거듭하는 것을 목격하고 여행 팁을 알려주었더니 식사 시 테이블도 공유하고 헤어질 때는 전화번호를 물으면서 “원주로 한번 오세요. 거하게 대접하겠습니다.”로 우리 부부를 즐겁게 했다. 아직도 패키지 투어로 다른 나라, 다른 마을로 떠나는 일차적인 여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자신을 더 이해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더 깊이 탐험하기 위해, 관계와 사람으로 떠나는 인간다운 장기간의 자유여행을 하고 싶다.                              


글 / 사외독자 이종철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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