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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3.26 [와인과 친해지기] 파리의 심판과 릿지 몬테벨로

Judgment of Paris


파리의 심판(Judgment of Paris)은 와인에 자부심이 대단했던 프랑스인들에게 찬물을 끼얹고 미국 와인을 다시 보게 만든 사건으로 유명하다. 파리에서 와인샵을 운영하던 영국인 스티븐 스퍼리어는 캘리포니아 와인의 맛을 보고 놀라게 되었고, 와인의 세계에 나타난 지 10년밖에 되지 않은 미국 와인의 수준이 프랑스 와인에 비해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해보려는 재미난 시도를 하였다. 프랑스 대표 와인과 미국 대표 와인을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여 어느 와인이 최고인지 오로지 맛으로만 점수를 매겨보자고 제안한 것이었는데, 사실 이 이벤트는 프랑스 와인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자는 홍보행사로 기획한 것이었다.


1976년 5월, 파리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프랑스인 8명을 포함한 와인 감정가 9명이 참석하였고, 샤르도네로 만든 화이트와인과 카베르네 소비뇽 위주의 레드와인을 각각 10개씩 출품해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점수를 매겨 평가하는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참고로, 블라인드 테이스팅이란 와인의 상표를 가려 어떤 와인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시음하는 것으로, 선입견에 휘둘리지 않고 와인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심판원 각자는 자신이 맛이 없다고 생각한 와인에 대해서는 틀림없는 미국 와인으로 맛과 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맛과 향이 훌륭한 와인은 프랑스 와인이고 역시 대단하다며 후한 점수를 매겼다. 그런데 결과는 그들이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위대한 프랑스 와인이 분명하다며 가장 높은 점수를 받고 1위로 뽑혔던 와인은, 레드와인 부분에서는 Stag's Leap Wine Cellars, 화이트와인 부분에서는 샤토 몬텔레나였다. 모두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이었던 것이다. 품평회에 참석했던 와인 감정가들은 물론이고 이 사실을 접한 프랑스 와인 업자들은 그만 충격에 빠졌다.


프랑스 평론가들은 장기숙성을 할수록 위대해지는 프랑스 와인의 진가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며 울분을 터트렸고, 평가 결과에 오류가 있었다는 식으로 미국 와인에 대한 폄하도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미국 와인을 보는 시각은 확실히 달라졌다.


그로부터 정확하게 30년 후, 스퍼리어가 다시 프랑스 와인과 미국 와인의 재대결을 기획하였고, 30년 전에 출품되었던 그 와인들이 그대로 출품되어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였다. 프랑스 와인은 오래 묵힐수록 맛있어진다고 믿고 있었던 프랑스 사람들은 이번에는 확실히 승산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오히려 그 결과는 더욱 참혹했다. 레드와인 1위부터 5위까지를 미국 와인이 전부 휩쓸어버린 것이다.


▲ 파리의 심판에 출품되었던 레드와인 평가 순위

출처 : 올 댓 와인


이 사건으로 세계 와인 애호가들은 미국 와인을 비롯한 신세계 와인을 다시 보게 되었고, 그중 최대 수혜는 바로 미국 캘리포니아 지방 와인이 받았다.


1976년 파리의 심판 때 5위를 차지했으나 30년이 지난 2006년에 레드와인 1위를 차지한 릿지 몬테벨로 와인은 스탠퍼드 대학교 과학자 3명이 몬테벨로 포도밭(몬테벨로 빈야드는 샌프란시스코 만과 몬테레이 베이(Monterey bay) 사이에 위치한 산타크루즈 마운틴(Santa Cruz mountains)에 있다)을 구매하였고, 그 땅의 잠재력을 알아본 폴 드레이퍼(Paul Draper)가 와인메이커로 합류함으로써 최고의 와인을 만들어 낸다. 그는 최고의 포도에서 최고의 와인이 나온다는 철학으로, 최신 방식보다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와인을 만드는 데, 미국산 오크통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필자는 2011년 미국 여행 중에 그동안 맛보고 싶었던 몬테벨로 와인 한 병을 고이 모셔왔었고, 4년간 아끼고 아끼다가 필리핀으로 파견 오기 전에 필자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형님과 마련한 자리에서 드디어 만났다. 소믈리에 나이프를 챙겨오지 않아서 횟집에 있는 허접스러운 와인 따개로 코르크를 열려고 했지만 스크루 부분이 너무 좁게 만들어져 있어서 도무지 코르크가 뽑히질 않았다. 다시 스크류를 돌려서 넣고 하다가 급기야는 코르크 부분이 마모되어 도저히 코르크를 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귀한 와인에 초보같이 이런 실수를.... 결국은 코르크를 밀어 넣어 아까운 와인도 좀 흐르게 되었던 작은 사고가 있었지만, 그렇게 힘겹게 만난 몬테벨로 와인은 너무나도 훌륭했다. 레드와인이 이렇게 부드럽고 우아할 수가 있다니. 레드와인과 참치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것 같았지만 부드럽게 숙성된 릿지 몬테벨로 와인과 참치의 모든 부위는 너무도 잘 어울렸다.


▲ 릿지 몬테벨로 2007 빈티지 (사진을 자세히 보면 병 안에 둥둥 떠있는 코르크가 보인다)


그 날 만났던 몬테벨로의 느낌은 마치 몬테레이 해변 너머 산기슭에서 둥실 떠올라 마을과 바다를 포근하게 어루만지고 파도 위에 부서지는 달빛과도 같이 한없이 부드러웠고 마음을 움직이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 미국 캘리포니아 몬테레이 해변에서 보았던 둥근 보름달


각종 규제에 얽매이고 전통 방식을 고집하는 프랑스와는 달리 미국은 자유 경쟁주의에 근거하여 와인을 만든다. 최소한의 규제를 통해 와인메이커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결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그들은 프랑스 보르도와 비슷한 기후조건과 토질, 지형을 갖춘 곳을 인공위성으로 찾아서 포도원을 세우고 프랑스 장인에 뒤지지 않는 노력과 열정을 쏟는다고 하니 위대한 와인이 나오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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