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래, 그 역사로의 시간여행

 

소래포구 어시장을 나온 발걸음이 소래역사관을 향합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니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닿을 수 있는 곳! 소래시장에 왔다면 역사관 또한 꼭 들르기를 추천해요. 규모는 크지 않지만 소래지구 역사에 대해 재미있고 알차게 전시해 놓았더라고요.

 

 

2012년 개관한 소래역사관은 급속한 신도시 개발과 도시화로 사라져가는 소래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아름다운 옛 모습을 보존하고자 건립된 인천광역시 남동구 최초의 공립박물관입니다. 전시실은 다양한 체험전시와 영상물을 통해 4가지의 재미있는 전시 테마를 구성하였는데요, 입장료도 500원! 얼른 내고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전시는 2층부터 시작합니다. 이곳에는 소래갯벌ZONE과 수인선ZONE이 전시가 되어 있습니다. 먼저 전시장 초입, 그 시절 소래역 대기실을 재현한 세트장에서 관람이 시작합니다. 소래역은 수인선 개통 당시 소래철교와 초구 인근에 있는 역입니다. 나무 벤치와 중앙의 난로, 매표소 또한 그 시절 그 모습을 완벽히 재현하고 있네요.

 

 

 

소래 지역 옛 모습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소래갯벌ZONE에서는 소래 지역의 유래와 갯벌에서의 삶, 개항기 이양선의 출몰과 그 방비책인 논현포대지, 장도포대지의 모습 등을 볼 수 있습니다.

 

▲ 댕구산 안쪽에 설치된 장도포대

 
장도포대는 조선 고종 16년(1879년), 인천으로 진입하는 이양선을 막기 위하여 화도진을 구축할 당시 축조된 포대인데요, 화도진 관할 가장 남쪽에 있었으며, 댕구(대완구)가 있다 해서 댕구산포대라고도 합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화도진도’에서 이곳에 3개의 포좌가 설치됐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는데, 2개는 바다 쪽을 향하고 있고 1개는 동남쪽을 향하고 있어 각각 외곽과 내곽 수비가 목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역사관에 소개된 장도포대는 인근에서 그 실물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소래포구를 가로지르는 소래철교 옆에 40m 정도 높이의 구릉(논현동 111-13 외 2필지)에 있습니다. 댕구 혹은 댕구산이라고 불리는 구릉은 해발 40m 정도 높이의 자그마한 섬인데, 처음에는 ‘장도’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장도포대는 댕구산 안쪽, 바다를 향해 배치되어 있습니다.

 

▲ 바다를 향해있는 장도포대

 

구한말 서해를 통해 들어온 이양선은 우리 영해를 무단으로 드나들었고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설치된 장도포대,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신식 화포와는 상대가 되지 못했는데요, 그래도 바로 바다와 인접해 있어 적에게 어느 정도의 위협은 주었으리라 추측해 봅니다. 2001년 4월 2일 인천광역시문화재자료 제1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수인선ZONE입니다. 이곳에서는 수인선의 지난 역사를 살펴보고 수인선을 따라 달렸던 협궤열차를 추억해 볼 수 있습니다. 수인선의 건설과정과 협궤열차, 소래철교 등 수인성 개통에서 패지까지의 과정을 살펴봅니다.

 

 

수인선은 1905년 경부선 개통 이후 국내 제1의 무역항으로 군림하던 인천 경제가 침체 일로를 걷고 있는 것을 우려한 인천 거주 일본인들이 상권을 경기 내륙까지 확대하기 위해 건설한 철도입니다.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의 사설 철도부설과 운영은 일제가 국유철도 건설에 따르는 재정상의 제약을 타개하고 식민지 수탈에 필요한 철도망을 신속히 완성하기 위해 민간에 그 건설과 운영을 장려한 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소래철교 1978, 김용수

 

수인선은 일반 철도보다 좁은 폭(1.2m)을 가진 협궤선입니다. 인천의 송도와 경기도 수원 사이에 부설되었던 철도로 1937년 8월 개통 이후 경기 내륙지방으로 미곡, 소금, 해산물 등을 공급하는 통로 역할을 담당하며 호황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도로 교통의 발전으로 이용객과 화물이 현저히 줄어들어 경제성이 크게 낮아졌고 결국 1995년에 폐선이 되었지요.


 

▲ 장도포대지에서 월곶방향을 바라보며 찍은 소래철교

 

옛 수인선 철교에는 이제 기차가 다니지 않습니다. 대신 사람들이 건널 수 있는 다리로 변신하였습니다. 인천광역시 남동구 논현동과 경기도 시흥시 월곶동을 잊는 수인철교는 오늘도 두 지역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합니다.

 

 

2층 관람을 끝내고 전시장 1층으로 내려갑니다. 1층에는 소래염전ZONE과 소래포구ZONE을 만나 볼 수 있는데요, 먼저 소래염전 ZONE. 이곳에서는 소금밀대 밀어보기, 소금창고, 다양한 소금체험하기 등등. 각종 염업 도구의 전시와 함께 다양한 체험, 게임을 통해 국내 제일의 천일염 생산지였던 소래염전의 생생한 과거를 살펴봅니다.

 

 

소래염전은 주안, 소래, 남동 등 염전지대의 천일염 성행에 깃대 한국 최초로 천일제염을 개척한 선구지로 1930년경 공사를 시작해 1934년 첫 소금을 생산한 이후 1996년 패염전이 되기까지 한국 최대의 소금생산지로 존재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소래 갯벌로 들어오는 바닷물을 이용하여 소금을 생산하였고 이 소금은 소래포구를 통하여 수인선 협괘열차나 배로 인천항으로 옮겨져 일본으로 보내졌습니다. 소래염전의 소금은 생필품 만이 아니라 일제의 전쟁을 위한 화약 제조용 군수품으로도 쓰였는데요, 그 시절 강제로 동원되었을 우리 선조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소금보다 짠 눈물은 그네들의 고통을 대변한 말일까요

 

 

마지막 테마인 소래포구ZONE입니다. 이곳에서는 소래 지역의 어업과 경제생활, 포구의 형성과 발전 등, 소래포구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만나 볼 수 있는데요,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당시 어시장 풍경과 그곳의 사람들을 재현한 디오라마입니다. 그 엄청난 디테일에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아이들은 물론 어르신들 또한 그들의 추억을 떠올리며 재미있게 감상하실 수 있을 듯합니다.

 

 

전시의 마지막은 70&로 축소 재현한 협궤열차의 관람과 함께합니다. 소래를 알리는 표지판, 열차 안으로 들어가자 좁은 통로에 11자로 배열된 의자들이 보입니다. 그곳에 앉아 그대로 시간여행을 떠나봅니다. 그 시절 소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995년 12월 31일 마지막 운행을 할 때까지 반세기 넘는 세월,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함께 한 협궤열차. 이제 그 추억의 열차를 내려 현실로 회귀하니 이만 소래 지역의 시간여행을 마쳐봅니다. 
 

주  소 : 인천 남동구 아암대로 1605 (논현동 680-2)
운  영 : 매일 10:00~18:00 (1월 1일, 설날, 추석 당일 휴관), 월요일 휴무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휴관)
관람료 : 어른 500원, 청소년⋅군경 300원, 어린이 200원



글쓴이 엄용선

잼이보는 하루를 사는 자유기고가 & 여행작가. 1인 프로젝트그룹 ‘잼이보소닷컴’ 을 운영하며 주변의 소소한 잼이거리에 촉을 세운다. 밥 먹고 사는 일은 자유로운 기고로 이어지며 여행, 문화, 예술 칼럼을 비롯해 다양한 취재 원고를 소화하고 있다. 마음이 동하는 일을 벗삼는 프로젝터로의 삶을 꿈꾸며 여행과 생각, 사람과 글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메일 wastestory@naver.com 블로그 blog.naver.com/waste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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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했던 무더위에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어느덧 겨울의 초입인 듯 매서운 바람에 옷깃을 부여잡습니다. 계절은 어찌 저리 눈 깜빡할 사이 안면을 바꿔 버리는 걸까요? 아니, 그보다 가을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안녕하세요, 앰코가족 여러분! 이번 앰코인스토리에서는 활기찬 어촌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인천 소래포구를 다녀왔습니다. 지금부터 함께해 볼까요?

 

활기찬 어촌의 삶, 인천 소래포구


 

▲ 소래포구 재래어시장 입구

 

소래포구를 가는 길, 수인선 소래포구역 2번 출구를 나오자 벌써 코끝으로 짠내음이 파고듭니다. 더불어 바람 또한 만만치 않네요. 단단히 옷깃을 여밉니다. 5분 정도 걸었나요? 드디어 소래포구 어시장에 당도했습니다. 여전히 북적북적한 활기에 찬 모습이 참 좋은 그런 곳입니다.

 

 

소래포구 종합어시장, 줄여서 소래어시장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수도권 최고의 해산물 관광지인 이곳은 4계절 맛을 찾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데요, 계절별 대표 활어를 싱싱하게 서비스하고 경쟁력 있는 가격과 양으로 유명합니다. 그날그날 어획해 신선한 생선을 공급받는 소래어시장에서는 새우와 꽂게 등 다양한 어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과히 서해 먹거리의 보고라 할 만합니다.

 

 

소래포구는 일제강점기 때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이 있는 황량하고 한적한 어촌이었습니다. 1933년 소래염전이 들어서고 1937년 국내 유일의 협궤열차가 다니는 수인선이 개통됨에 따라 발전된 곳인데요, 일제는 염부, 즉 소금을 나르는 인부와 소금을 수송하기 위해 나룻배 한 척을 운행하였는데 이 나룻배가 소래에 배를 대면서 소래포구가 처음 생성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입니다. 특히 전쟁 이후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소래포구로 들어와 살면서 주거지가 형성되었는데요, 당시만 해도 소래포구는 밤이면 귀신이 나온다고 할 정도로 황량하고 한적한 어촌이었다고 하네요.
주민들은 1960년대 초반, 5~6척의 돛단배를 이용해 생선을 잡고 가까운 바다에서 새우를 잡아 새우젓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주로 수인선 열차를 이용하는 인천과 부평, 서울 등지가 판매처였지요. 이후 인천 내항의 준공으로 소형어선의 인천항 정박이 어렵게 되자 대안으로 부상한 소래포구가 갑자기 활기를 띠게 됩니다. 그리고 포구가 활성화된 이후 소규모의 어업이 이뤄지다 동력선의 보편화로 인해 어업이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소래포구가 지금과 같은 활기를 띠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렇게 환경이 변화하자 1973년 소래의 주민 450여 명이 힘을 합쳐서 소형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부두인 물양장을 완성합니다. 이후 물양장을 중심으로 200여 개에 달하는 각종 수산물을 파는 상점들이 들어섰으며 1974년 새우 파시가 개설되면서 소래 어시장은 본격적으로 문을 열기 시작합니다.

 

 

 

늦가을 새우가 풍년입니다. 손가락보다 큰 새우가 20마리에 만원! 소래포구에서만 만날 수 있는 착한 가격입니다. 그 옆의 꽂게도 튼실하니 속이 꽉 차 보입니다. 멍게 해삼은 물론 활어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팔딱팔딱 힘찬 활어의 물질에 사방으로 튀는 물도 이곳 소래포구 어시장에서 만나는 진풍경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젓갈을 좀 샀습니다. 밥도둑이 좀 필요했거든요. 소래포구 젓갈상가를 가를 진입하자 여기저기 호객행위에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그중 한 곳에 멈춰 서서 젓갈을 살 오징어, 낙지, 명란, 창란젓은 물론 멍게, 빙젓 등등. 윤기 좔좔 새빨간 자태가 보기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갑니다. 정량보다 많이 퍼줬다며 부러 생색을 내는 상인, 활짝 웃음과 함께 ‘감사합니다’ 답례를 잊지 않습니다.

 

 

 

 

 

소래포구의 다양한 먹거리 또한 방문객들의 침샘을 자극하는데요, 활어회는 기본, 대하 철 대하구이를 비롯, 조개찜, 해물탕, 매운탕 등등 눈으로만 봐도 벌써 배가 부릅니다. 특히 이곳은 새우튀김이 유명한데요, 제법 큰 새우가 든 튀김이 10마리 만원이니 속된 말로 이곳에선 먹는 게 남는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주소 : 인천 남동구 소래역로 12 (논현동 680-1)
운영 : 상설
홈페이지 : www.sorae49.com



글쓴이 엄용선

잼이보는 하루를 사는 자유기고가 & 여행작가. 1인 프로젝트그룹 ‘잼이보소닷컴’ 을 운영하며 주변의 소소한 잼이거리에 촉을 세운다. 밥 먹고 사는 일은 자유로운 기고로 이어지며 여행, 문화, 예술 칼럼을 비롯해 다양한 취재 원고를 소화하고 있다. 마음이 동하는 일을 벗삼는 프로젝터로의 삶을 꿈꾸며 여행과 생각, 사람과 글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메일 wastestory@naver.com 블로그 blog.naver.com/waste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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