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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123

[에피소드] 농구 어린 조카들을 데리고 공원 놀이터에 갔다. 따뜻한 집 안에 있기만 갑갑하다고 해서 야외로 나오긴 했지만, 겨울로 막 들어서는 길목이라 바람이 차가웠다. 꽁꽁 무장시키긴 했지만 코끝에 닿는 공기는 오랫동안 노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기세였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며 공원매점으로 조카들을 유도했고 따뜻한 게 있을지 골라보려 했지만 어린 조카들이 마실 따스한 음료는 찾지 못하고 과자 한 봉지씩만 들고나왔다. 좋아하는 조카들을 데리고 집으로 향하는 순간, 매점 옆 실외 농구장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운동복 차림의 학생들이 이 코트, 저 코트를 넘나들며 쉴 새 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멋진 폼은 아니더라도 친구들끼리 어울리는 게 마냥 좋은 듯싶었다. 한때 나도 농구공 하나 들고 이 코트를 자주 찾곤 했다... 2019. 2. 19.
[에피소드] 首丘初心 수구초심 어르신 대우를 받은 지도 오래되다 보니, 首丘初心이라고, 젊은 시절의 추억이 불쑥불쑥 돋아나곤 한다. 그러던 차에 지난번 여행에 동행한 부산친구가 초청을 해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은 첫 직장의 사연들이 묻혀있는 장소들을 돌아보기로 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입사시험을 보려고 들어간 D 여고의 교문에서부터 추억을 더듬었다. 그곳에서 횡단보도와 철길만 건너면 바로 첫 근무지다. 늘어나는 수출물량을 채우느라 구내식당에서 세 끼니를 때우며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휴일이라고는 한 달에 하루나 이틀뿐, 20개월간 청춘을 불살랐던 그곳은 상상도 못 한 재래시장의 주차장이 되어 나를 맞았다. 단층의 정미소로 출발하여 필요할 때마다 쌓아 올린 7층 건물은 외관으로는 번듯했지만, 담장 안에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 2018. 9. 21.
[에피소드] 사라진 마을 고속도로를 나와서 자동차 전용도로인 50리 길을 단숨에 달려 샛길로 접어드니 환호성이 터진다. “저기 좀 봐. 부항댐을 가로지른 출렁다리와 집라인(zipline)이야.” 소문으로 듣고 인터넷에서 첫인사를 나눈 그 물건들이 위용을 드러낸다. 다시 산등성이 사이로 새로 조성한 신작로를 10여 분 달리니 목적지다. 신축한 회관에 도착하니 재종동생이 반가이 맞이한다. 아버지와 어머니, 때로는 동생이 반기더니,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 어색하다. 그때는 노인들이 모인 방을 찾아서 큰절을 드렸는데, 이제는 우리 또래가 어르신이라니. 흐르는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다행이랄까? 아흔을 넘긴 어머님과 각별하시던 분께서 양손을 부여잡으며 “엄마 생각나지. 전에는 나와 같이 절을 받았는데…”라는 울먹임에 나 역시 .. 2018. 8. 24.
[에피소드] 떡볶이는 맛있다 우리 집 근처에는 꽤 유명한 떡볶이집이 있다. 유명한 맛집으로 소개될 크기와 환경은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맛 하나만은 끝내준다. 테이블 두세 개가 간신히 들어갈 비좁은 공간이지만, 때를 가리지 않고 모여드는 손님 때문에 온종일 떡볶이를 쉬지 않고 만들어야 하는 곳이다. 떡볶이 생각이 나서 큰맘 먹고 찾아가면 늘 다정한 미소로 주인장이 맞아주신다. 그리고 넉넉한 인심은 한번 찾아온 손님을 오랜 단골로 만드는 비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맛있는 떡볶이 한 접시를 받아들고 기다란 떡을 콕 콕 찍어보고 있노라면, 문득 내가 떡볶이를 언제부터 먹게 되었더라 떠올려 보게 된다. 중학생 때도 먹고 있었고 초등학생 때도 떡볶이는 주 간식이었기에 그 시작이 언제부터인지 확실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꽤 많은 떡볶이를 먹어.. 2018. 8. 21.
[에피소드] 낚시 시간이 날 때면 란 TV프로그램을 즐겨봅니다. 좋아하는 연예인인 이덕화, 이경규, 그리고 마이크로닷이 세대를 뛰어넘어 낚시로 하나가 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원하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인내를 필요로 하는 낚시에 재미와 감동을 함께 선사하고 있다고 말을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자리돔, 광어, 우럭, 장어, 놀래미 등등 많은 물고기를 볼 수 있는 즐거움도 쏠쏠합니다. 한참 동안 프로그램에 푹 빠져 보고 있노라면 문득 옛날 생각이 나곤 합니다. 섬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게 되어서 낚시할 기회는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낚시에 흥미가 그리 많지 않았던 탓에 친구들이 낚시하러 가자고 하면 ‘오늘은 집안일 때문에 바빠!’ ‘오늘은 엄마랑 시장에 가기로 했어!’라며 핑계를 대곤 했습니다. 그러.. 2018. 8. 3.
[에피소드] 독서가 취미라니 방금 도착한 월간지를 펼치고서 채 가시지 않은 잉크와 종이 냄새를 맡는다. 향이 가슴으로 전해지면서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기 말이 되면 다음 학기에 배울 책들이 교실 앞에 수북이 쌓이고, 우리들은 선생님의 호명할 때까지 숨죽여 기다린다. 찢어지거나 끈으로 묶은 자욱이 있는 책이 자기에게 돌아오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차례가 되어 국어, 셈본, 자연 등의 책을 들고 오면서 맡아보던 그 냄새를 지금도 잊지 못하고 새 책만 보면 코를 들이민다. 어느 종이나 나름의 냄새를 보유하고 있지만, 새하얀 모조지에서 풍기는 것이 좀 더 진하고 오래 지속되어 미술책이 단연 인기 1위였다. 그런 연유로 고교 때까지 매년 적어내는 취미란의 단골이 독서였다. 요즘의 학생들이야 독서가 취미 축에나 드느냐고 하겠지만.. 2018.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