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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123

[에피소드] 벌초를 하면서 지난 토요일 오전, 하필이면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태풍이 남해까지 다가와서 내일까지 많은 비가 오리라는 예보다. 우비를 걸치고 장화를 신고서 동생 뒤를 따랐다. 동네를 휘도니 오랜만에 보는 맨드라미며 샐비어가 반긴다. 하지만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간단한 벌초가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부모님의 쌍분을 찾아 동생이 예초기와 낫으로 깎아 놓으면, 나와 조카는 갈퀴로 끌어서 한쪽으로 모으는 일을 한다. 가까이 있는 조부 묘역까지 끝내고는 준비해간 술과 다과를 차려놓고 절을 올린다. 작은할머니 산소는 멀기도 하다. 할머니가 두 분이라 할아버지 묘를 중심에 두고 양쪽으로 떨어져 모시다 보니 그렇게 되었단다. 그냥 걷기에도 힘이 든다. 앞서가는 동생이 낫으로 우거진 잡초와 칡넝쿨을 쳐내고 가지를 자르지만 작년에 간.. 2017. 9. 29.
[에피소드] 선물 며칠 전 엄마와 가까운 마트에 갈 기회가 생겼다. 이것저것 살 것이 많아서 짐꾼으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집까지 걸어오게 되었는데, 마침 양말이 여러 켤레가 놓인 상점을 지나게 되었다. “양말도 사야 하는데….” 말꼬리를 흐리며 이 양말 저 양말을 훑어보셨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것이 없으셨는지 오래 머물지 않으셨다. 그리고 며칠 후, 엄마가 잘 가시던 전통시장을 지나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의 단골 양말가게를 지나게 될 때쯤 ‘양말을 사야 하는데….’하던 엄마의 혼잣말이 떠올랐다. 지갑에서 2,000원을 꺼내 손에 쥐고 양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때는 여름이라 통풍이 잘되는 양말이면 좋겠다 싶어 발등이 시원한 양말로 몇 가지를 골랐다. “누구 주려고?” 후덕한 인상을 하신 .. 2017. 9. 25.
[에피소드] 공항을 다녀오며 40일간이나 처제 집에서 놀다 오는 아내를 맞으러 딸과 함께 공항에 갔다. 막내동서가 안식년을 맞았다는 소식에 일사천리로 수속을 밟아서 처가 쪽 식구 일곱 명이 켄터키주 루이빌을 다녀오는 길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애틀랜타를 2박 3일간씩 다녀온 것 말고는 세탁소 일을 거들면서도 하루하루가 즐거웠다니, 남다른 피붙이의 정에 놀랄 뿐이다. 그사이, 세월이 참으로 빠르다는 사실, 혼밥을 먹기에 불편할 게 없는 세상으로 변했다는 사실, 젊은 시절에는 이틀도 혼자 있기가 싫었는데 이제는 견딜 만한 세태로 변모했다는 현실이 많이도 혼란스러웠다. 거기다가 사정은 제각각이지만, 1년이면 반 정도를 지방에 내려가서 혼밥을 먹는 동기생을 둘이나 발견했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나만 삼식이로 다른 세상에 살았나! 요사이 시.. 2017. 8. 29.
[에피소드] 자전거 여행 뜨거운 한여름 아이들에게는 특권이 주어진다. 여름방학! 물놀이도 마음대로 갈 수 있고, 엄마와 아빠와 해수욕장도 갈 수 있으며, 시원한 계곡에 발 담그고 맛있는 수박을 먹을 기회가 주어진다. 이런 신나는 여름방학 나와 친구들은 특별한 모험을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중2가 되어 맞이한 여름방학이었다. 중3이 되면 고등학교 입시 준비로 여름방학을 책상과 씨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시간을 비교적 여유롭게 쓸 수 있는 중2의 여름방학을 이용하기로 했다. 친구 두 명과 나는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며칠 전부터 과연 무얼 해보면 좋을까, 고민에 빠졌다. 내린 결론은, 강화도 한 바퀴 완주였다. 섬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5대 섬으로 크기가 꽤 큰 편에 속했던 터라, 도보로 도는 것은 무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2017. 8. 25.
[에피소드]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네 손자가 뜬금없이 "할아버지, 속담 이어가기 하자. 내가 먼저 할게." 한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 갑자기 머리가 멍멍한 게 아무것도 생각나질 않는다. "할아버지 뭐하는 거야. 심심해! 딱지치기하면 안 될까?" 꾸물대는 내 손을 잡아 끌고 작은방으로 들어간다. 여러 번 해본 숙달된 솜씨인지라 능숙하게 두꺼운 패드를 깔고 딱지를 10장씩 두 패로 나누는 손자에게 “학교서 받은 상장 가지고 오라고 했는데 가져왔냐?” 하니 며느리 가방을 뒤지더니 비닐커버 속에 넣은 상장과 금장트로피를 끄집어내어 보여준다. 표창장 1장과 상장이 2장, 그리고 공차.. 2017. 7. 25.
[에피소드] 어금니 안녕! 병원을 가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치과는 가장 싫어한다. 한때는 큰 비용 때문에 주저하는 이가 많았다. 의료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라 치과에 가면 다 돈이라는 생각으로 아픈 것을 참고 참다가 결국 못 버텨서 어쩔 수 없이 가게 된다. 요즈음은 과거와는 달리 생각도 많이 달라지고 비용도 많이 절약할 수 있어, 치과에 대한 극도의 공포가 엄습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시끄러운 기계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오금이 저리는 것은 매한가지다. 한때 나는 치과와 문을 닫고 살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치과를 처음 찾았던 것이 고등학교 때였으니, 나의 치아에 대해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꼭 좋은 것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건강을 자신하던 이.. 2017. 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