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에 서유럽과 미 서부지역은 꼭 다녀오너라. 유럽에서는 인류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배우게 될 것이고 서부에서는 자연의 웅장함과 신비로움을 알게 되리라.’며 자식과 조카들에게 여행 이야기가 나오면 내 경험을 들려주곤 했다. 집콕하는 시간이 많은 나에게 가장 재미있게 보는 TV프로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세계 테마 기행’이다. 여행했던 곳을 방영할 때는 뿌듯함에 빠져들면서 빛바랜 사진첩을 뒤지고 여행 후기를 읽으며 즐거움을 보탠다.


이번에는 발칸지역의 빨간 지붕과 푸르디푸른 아드리아 해와 맞닿은 고성을 보고 있자니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이 가슴이 설레어서 여행사를 찾았다. 직원에게 프라하(Praha)와 찰스부르크(Salzburg)를 포함한 발칸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8박 9일에 인터넷으로 조사한 금액보다 50만 원이 저렴한 직항 편을 제시한다. 최소 출발인원에 2명이 부족한 땡처리 상품이지만, 웬 떡이냐며 두말 않고 가계약을 한 흥분을 채 삭이지도 못하고 아내에게 여행 안내서를 내밀었다. 하루 동안 가타부타 언급은 없지만, 딸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 같더니 “나이가 몇인데 열두 시간 비행에 다섯 시간을 이동하면 허리가 버텨나겠어? 갈려면 혼자나 가셔.” 라고 한다.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읽었더니 버스로 다섯 시간에서 다섯 시간 반을 이동하는 구간이 세 곳이나 되는지라 아쉬움만 남긴 채 포기했다. 그렇지만, 출국 수속만 밟고 나면 잡념이 사라지고 가슴이 뻥 뚫리는 기쁨을 잊지 못해서 제주도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대만을 선택하고 나들이 기분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차창 너머로 마주치는 아파트의 외벽이 거무칙칙하고 비까지 오락가락하는 우중충한 날씨에다 이른 출발에 영화촬영지라는 상가도 문을 열지 않아 우울했지만, 예루 지질공원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그쳐서 바닷속에 있던 바위와 암석들이 긴긴 세월을 거치면서 해면 위로 솟아오른 갖가지 형태의 만물상들이 다소나마 기분을 풀어주었다. 터키와 여기가 유일하다지만, 자연의 창조적 조형미를 보여준 카파도키아의 기암과는 규모나 형태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대만 제1경인 태로각 협곡을 오가는 무궁화급 열차는 현대에서 1987년에 제작한 것인데도 외관이나 내부가 새것 같고 편안했다. 웅장함과 동식물 생태계가 잘 보존된 곳이라지만 서부 3대 캐니언에서 마주친 감동에 비하면 빈약했다. 그러나 6.25사변 때 중공군과 맞서겠다며 30만 대군을 집결시켰다가 미국의 반대로 무산된 서러움을 아슬아슬한 절벽에다 172킬로에 걸친 길을 냈다는 설명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경상남북도 크기의 땅에도 무한한 지하자원과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어 2만 명의 한국 관광객을 매달 오게 한다는 것도 대단했지만, 60세 이상의 모든 부부에게 준다는 다양한 복지정책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번 여행에서 두 가지 색다른 경험을 했다. 타이베이의 랜드마크인 101층 건물의 89층 전망대까지 세계에서 제일 빠르다는 승강기에 오르내리니 머리가 띵하고 어질어질해서 간신히 아내 팔에 매달렸다가 빈 의자에 한참을 눕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다들 멀쩡한데 나만 받은 쇼크에 만감이 교차하면서, 황산의 낭떠러지 계단을 오르내리며 노익장을 과시한 일 년 전의 호기는 어딜 가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도 빈말이 되고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는 말이 실감 나서 아쉬움만 더해간다.


귀국 날에는 여유가 많아서 아침을 먹자마자 호텔 인근을 한 시간가량 배회했다. 특산물 판매점에 들러 선물도 사고 청과물가게도 두리번거리다가 첫날 접한 발 마사지가 뒷목까지 시원하게 했다는 마누라의 감탄사를 기억하며 마사지가게의 문을 두드렸으나 열리지 않았다. 휴지와 꽁초를 줍고 불법스티커를 제거하는 오토바이 탄 아가씨를 만나 도움을 청했다. 영어로 대화가 되질 않아 손짓으로 대신했더니 휴대전화에 오픈시간을 찍어준다. 그 뒤로 패밀리마트와 우체국을 둘러보며 사거리 구석구석을 휘젓고 있자니 그녀가 다시 나타났다. 이쪽저쪽을 손짓하는 걸로 봐서는 20분을 찾아 헤맸다는 표시로 이해했다. 다행히도 전화통화가 되었다며 내민 휴대전화 창에는 ‘11:00~02:00’가 찍혀있었다. “땡큐!”라고 인사한 후에도 이방인에게 비친 내심이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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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465901853 2016.06.14 19:57 Address Modify/Delete Reply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미얀마 여행기] 자전거로 누비는 깔로의 구석구석


(지난 호에서 이어집니다) 먹고 마시고 수다를 하다 보니 어느새 돌아갈 시간이 임박했습니다. 돌아갈 땐 버스를 타라 했으니 무작정 흙길을 따라 걷습니다. 터미널이나 정류장이 딱히 없는 이곳에서 그 길을 걷다 보면 그 끝에 큰길이 나오는데요, 그곳에서 깔로(Kalaw)를 향하는 아무 버스나 잡아타면 그만입니다. 특별한 표식이 없는 버스는 대개 봉고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빈자리는 고사하고 차 지붕까지 승객들로 빼곡한 형국인데, 그래도 타겠다니 서로의 엉덩이를 좁혀 기어이 한 자릴 마련해 줍니다.



버스는 약 한 시간을 달려 깔로에 도착했습니다. 예정보다 늦어진 귀가에 저물어가는 해는 어슴푸레 기운을 몰아오고, 피부로 닿는 공기는 벌써 서늘합니다. 내일은 자전거를 빌려 깔로 인근을 좀 돌아볼 생각입니다. 다음날 인레를 향하는 트레킹을 생각하면 무리는 금물이기에 슬슬 미얀마의 속도로 다니렵니다. 숙소를 오는 입구 적당한 가격의 마사지샵도 봐둔 참이거든요. 오늘은 그만 방으로 돌아가 따뜻한 차 한 잔에 몸을 좀 녹여야겠습니다.


자전거로 누비는 깔로의 구석구석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 향한 곳은 숙소 인근 자전거 대여점입니다. 튼튼해 보이는 애마 한 대를 골라잡아 안장의 높이를 조절합니다. 내친김에 1박 2일 트레킹도 신청하니, 오늘은 신나게 깔로의 구석을 누비리라 마음을 먹습니다. 중심지를 벗어난 깔로는 더없이 조용합니다. 이따금 우렁찬 바이크 소리만 한없는 정적을 깰 뿐, 지면을 가르는 두 바퀴 마찰음만 요란합니다. 길이 되는 곳은 무작정 가봅니다. 그러다 종종 막힐 때면 자전거 머리를 돌리면 그만이니 갈 길은 다시금 펼쳐집니다. 산간지방이라 오르막이 만만치 않다지만 그만큼 신나는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힘들어도 힘이 나는 여정입니다.


산골짜기 구멍가게에는 아리따운 아가씨가 있네요. 가게 앞으로 낮은 테이블이 깔렸고, 앉은뱅이 의자를 차지하고 담배를 태우는 동네 청년들의 수다는 분명 아가씨를 향한 것이겠지요. 게 중 한 사람이 대범하게 다가가 대놓고 작업을 걸어오니 아가씨의 어쩌지도 못하는 수줍음은 인상 깊습니다.



오르막이 계속될수록 기력은 빠르게 쇠합니다. 숨이 턱까지 차고 다리는 후들후들, 목이 타고 뱃가죽은 말라갑니다. 마침 지나는 길에 작은 식당을 만났으니 털썩 한 자리를 차지하고 우선 숨부터 돌립니다. 시원한 청량감이 식도를 타고 넘는 맥주는 찌릿합니다. 이어서 나온 국수는 미얀마의 대표적인 서민음식 ‘모힝가(Mohinga)’인데요, 메기 육수를 베이스로 한 걸쭉한 국물은 그 맛이 흡사 우리네 추어탕과 비슷하여 한국인들의 입맛에 특히 잘 맞습니다. 저렴한 가격까지 더해 여행 내내 모힝가를 달고 다녔습니다. 특유의 조리법에 따라 그 맛이 조금씩 다른데, 감히 이곳 깔로의 모힝가를 최고로 치는 건 어쩌면 더했을 허기 덕이려니 생각합니다.




든든함에 가속이 붙은 페달이 거침없는 질주를 이어갑니다. 어디선가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면 산속 마을 작은 학교에는 웃음꽃이 만발합니다. 불심의 나라 미얀마에서 교회는 분명 낯선 풍경입니다. 호기심에 기웃대니 어디선가 나타난 관리인이 대뜸 문을 열며 “밍글라바(MINGALA BAR)!” 웰컴 인사를 건네 옵니다. 작고 아담한 교회는 관리가 잘 된 덕에 구석구석 반들반들 윤이 납니다. 한쪽으로 낡은 성경책이 차곡차곡 쌓여 있고, 곳곳에 관리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으니 이곳 예수님의 표정에도 어딘지 인자함이 더해 보이네요.



교회를 나와 또다시 달리는 흙길입니다. 돌부리 장애물을 가벼이 넘나들고 어느덧 당도한 고지에서 눈앞으로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을 크게 한숨 들이킨다. 짙푸른 숲 속에 드문드문 마을은 존재하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옥들이 정겨운 곳, 모든 것이 적당히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하는 이곳에서 내리막에 저절로 굴러가는 바퀴처럼 살면서 언제고 다시 찾을 그 풍경을 조용히 가슴에 담아봅니다.


‘쿵쿵쿵’ 심장박동을 듣는 기술. 미얀마에 가면 아름다운 산간마을 깔로(Kalaw)를 만날 수 있습니다.




글쓴이 엄용선

잼이보는 하루를 사는 자유기고가 & 여행작가. 1인 프로젝트그룹 ‘잼이보소닷컴’ 을 운영하며 주변의 소소한 잼이거리에 촉을 세운다. 밥 먹고 사는 일은 자유로운 기고로 이어지며 여행, 문화, 예술 칼럼을 비롯해 다양한 취재 원고를 소화하고 있다. 마음이 동하는 일을 벗삼는 프로젝터로의 삶을 꿈꾸며 여행과 생각, 사람과 글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메일 wastestory@naver.com 블로그 blog.naver.com/waste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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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여행기] 아름다운 이야기를 찾아 깔로(Kalaw)로 떠나다


깔로(kalaw)는 인레(Inle)까지의 트레킹으로 유명한 미얀마 동북부 작은 산간마을입니다. 대부분 여행자들이 인레를 향하는 여정에서 별 뜻 없어 지나치는 깔로의 새벽, 길 위에 남겨진 이는 저 혼자뿐입니다. 버스에서 내리자 강한 한기가 엄습합니다. 에어컨이 절실했던 바간(Bagan)에서의 기억은 아득하고, 당장은 뜨끈한 열기구가 시급합니다. 준비 안 된 서늘함에 고통은 배가 되니, 탁탁 부딪히는 이는 소리만 요란합니다.



이곳에 오게 된 건 순전히 한 권의 소설책 때문인데요, 얀 필립 젠드커의 첫 번째 장편소설 「심장박동을 듣는 기술」이 그것입니다. 앞 못 보는 소년 틴윈과 걷지 못하는 소녀 미밍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그 감동적인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이 바로 이곳 깔로입니다.



깔로는 작은 마을입니다. 미리 찾아둔 숙소는 마을의 중심에서 좀 벗어난 곳에 있는데요, 그래 봤자 도보 10분 정도의 거리라지만 작은 산간마을 깔로의 도량형에 그곳은 엄연히 바깥으로 치부됩니다. Kalaw railroad hotel이라는 곳인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기차역 인근에 있습니다.


칙칙폭폭, 헤호(Heho)까지 기차여행



해가 뜨자 눈을 뜹니다. 밝아진 햇살은 다행히도 온기를 전해오니 오늘은 인근 헤호(Heho)까지 기차여행을 하기로 합니다. 레일로드 호텔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숙소를 나서니 바로 기차역이 보입니다. 마을도 작지만, 그보다 더 작은 깔로 기차역은 우리네 시골 간이역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드문드문 오가는 열차는 아직 때가 아닌지라 제법 한산한 역사는 적막감마저 감돕니다. 사무실에 들러 티켓을 발권하려니, 저처럼 기차여행을 목적으로 온 외국인 여행객 몇몇이 눈에 띕니다. 11시 30분 출발 예정인 기차는 오후 2시경 헤호를 도착할 예정이니 여정은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됩니다. 돌아오는 기차 편이 따로 없는지라 헤호에서는 버스를 타야 한다는데, 구체적인 방법은 그곳을 가서 알아봐도 늦지 않습니다. 



출발 시각이 임박하자 하나둘 모여드는 사람들로 어느새 역내도 제법 복잡합니다. 만남과 이별이 공존하는 그곳에서 기쁨과 슬픔을 나누면서 아이들은 뛰어놀고 개들은 킁킁댑니다. 그리고 상인들은 어쨌든 밥벌이에 여념 없는 모습이니 역사의 풍경은 깔로 또한 매한가지네요.




헤호까지의 여정은 눈부셨습니다. 기차는 느리게 움직였고,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들은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아름다움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너른 평원, 그곳을 덧입은 알록달록 색채들 감탄을 자아냅니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두둥실…. 2시간 30분이 어찌 지났는지 모를 파노라마의 연속에서 기차는 천천히 헤호 역사로 접어듭니다.




헤호의 시골길을 걷습니다. 작은 황토길, 소는 누워 낮잠을 자고 닭들은 총총총 발걸음이 바쁩니다. 동네 아이들은 삼삼오오 전쟁놀이에 빠져있는데요, 무기라곤 길바닥의 돌멩이가 전분지라 제 몸 보호해줄 방호벽 뒤에 숨어 절호의 찬스를 엿봅니다. 외국인이 좀처럼 출몰하지 않는 이곳에서 마을 사람들과 나는 서로의 구경꾼이 되어 적나라한 눈길을 주고받습니다. 그들의 멀뚱한 표정에 ‘밍글라바’ 약효는 신통하니, 금세 웃는 표정에 사이의 벽을 허뭅니다.



“밥 먹었어요?”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청년은 한국과 인연이 깊습니다. 대전과 그 등지에서 약 6년간 일한 적이 있다는 그는, 때문에 제집 앞을 지나는 한국인을 그냥 보내줄 수가 없나 봅니다. 거의 잡아끌리듯 초대된 제가 어쩌지도 못하는 환대 속에 있습니다. 그가 내온 음료수를 멀뚱히 받아 들고, 미처 첫 모금을 넘기지도 못한 채 눈알만 굴려댑니다. 작은 공간, 단출한 살림살이, 벽에 걸린 가족사진은 이 집의 식구를 나타내니 필히 대가족이 분명합니다. 앞치마를 두른 노모가 방긋 웃는 인사를 건네옵니다. 곧이어 청년의 형과 누나들이 등장했습니다. 어설픈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 오는 그들은 청년보다 앞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고 합니다.


미얀마를 여행하면서 한국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미얀마 현지인을 만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때마다 그들이 한국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가졌는지 몰라 조금 조심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한국에서 물론 좋았던 기억, 나빴던 기억 다 있어요. 하지만 저는 되도록 좋았던 것만 기억하려고 해요.” 한국사람이라니 무조건 반겨주는 그의 허물없음이 해피 바이러스가 되어 어느새 같이 깔깔대고 있지만, 이면의 죄스러움 또한 불편한 진실로 존재합니다. (다음 호에서 계속됩니다)




글쓴이 엄용선

잼이보는 하루를 사는 자유기고가 & 여행작가. 1인 프로젝트그룹 ‘잼이보소닷컴’ 을 운영하며 주변의 소소한 잼이거리에 촉을 세운다. 밥 먹고 사는 일은 자유로운 기고로 이어지며 여행, 문화, 예술 칼럼을 비롯해 다양한 취재 원고를 소화하고 있다. 마음이 동하는 일을 벗삼는 프로젝터로의 삶을 꿈꾸며 여행과 생각, 사람과 글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메일 wastestory@naver.com 블로그 blog.naver.com/waste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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