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전화가 왔다. 고시원을 운영하는 형님의 전화였다. “동생아, 형이 며칠간 머리 좀 식히러 가야겠다. 잠시 가게 좀 봐주라.” 한다. 안 한다는 대답도 하기 전에 형님은 다시 “좋은 횟감 잡아 올게.” 라며 뿌리칠 수 없는 제안을 먼저 내놓으셨다. 낚시광 본능이 발동한 모양이었다. “그러지요.” 짧게 대꾸를 했다. 전화기 속에서 들려오는 기쁨의 환호성이 제법 크게 들렸다. 소풍을 떠나는 아이처럼 신나 보였다. 


며칠 후에 형님을 보내고, 고시원 사무실을 지키게 되었다. 깔끔하다고 자부하던 형님이었지만, 책상에 쌓인 먼지 하며, 한 번도 청소를 하지 않은 것 같은 쓰레기통은 자신의 색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냥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된다고 말했지만, 한 번 손을 대기 시작하자 해야 할 일이 줄줄이 사탕처럼 계속 나왔다. 주방까지 청소를 다 마칠 때쯤, 식사를 하기 위해 냄비를 하나 들고 들어서는 이가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이 얘기 저 얘기 몇 마디를 건네게 되었다. 한국말이 서툰 조선족 아저씨였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며, 자신이 하는 일을 얘기해주었다. 사무실을 오래 비워 둘 수 없었기에 긴 시간 얘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라는 말까지 해주고는 주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6시가 막 넘었을 때쯤, 노크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자, 전날 주방에서 마주쳤던 아저씨가 일을 마치고 귀가한 모양이었다. 한 손에 들린 까만 봉지를 통째로 내밀었다. “드세요!” 하시면서. “이게 뭐예요?” “공사장에서 새참으로 나왔던 빵을 모아 온 겁니다. 나는 빵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먹는 이들이 없으면 다 버려지는 거라 아까워서 내가 다 가지고 왔습니다.” 아저씨의 손이 부끄러울까 싶어서 서둘러 봉지를 받아들었다.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그런데 왜 저한테…?” “어제 내 얘기를 들어줘서, 고마운 마음에 보답이나 한다는 생각에 챙겨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


봉지 안에는 초코파이, 반달케이크, 보름달 빵 등 서너 가지의 빵들이 담겨있었다. 저녁 전 출출했었던 터라 초코파이를 하나 꺼내어 먹기 시작했다.

봉지 안에서 뒤섞여 있던 탓이었을까. 부스러기가 많이 생겨나있었다. 내가 그분에게 해준 것은 보잘것없는 친절이었다. 몇 마디 말을 건네고 잠시 들어준 것이 다였다. 하지만 타향살이를 하고 있었던 그분에게는 큰 친절로 다가왔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마음을 표시하기 위해, 비록 생채기 난 빵들이었지만 모아서 가져다주어야겠다고 다짐을 했던 모양이다. 전혀 꿈꾸지 않았던 일상의 작은 감동이었다. 고시원 형님이 고시원을 잠시만 봐줘! 할 때마다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는 이유는 아마도 이 때문이랴. 그날 저녁은, 마음이 담뿍 담긴 빵을 먹고 또 먹으면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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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생들이 운영하는 카페를 기웃거리다가 ‘아프리카 30일 배낭여행’을 발견하고, 수많은 동물사진을 보면서 미지의 세계에 동참하게 되었다. 70대에 아프리카라. 드넓은 초원에 기린과 얼룩말들이 무리 지어 거닐고, 사자의 표독스러운 모습 옆에 반바지 차림의 친구가 못내 부럽다. 가끔 1박 2일 모임 때도 새벽에 1,111m의 황악산을 단숨에 다녀오던 그였다. ‘대단하다. 몇 년 전부터 생각만 했지, 건강이 걱정되어 나서지를 못했는데…. 신념과 건강이 부럽다.’고 댓글을 달았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한다면 제일 앞자리에 들어갔을 아프리카 여행. 그중에서도 사파리 투어는 두고두고 여한이 남는다. 이참에 에버랜드라도 다녀올까. 무료입장권도 있는 데다 ‘소뿔도 단김에 빼라’고 다음날 부부가 나들이에 나섰다. 여행주간이 끝난 지가 며칠 되지 않았고, 평일이라 그런지 입구는 한산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오거나 유치원 이하의 어린이를 동반한 젊은 부부와 연인들이 주를 이루었다.




곤돌라를 타고 내려가서 1시간가량을 기다리고서야 사파리 월드를 위한 백호버스에 탑승했다. 여행은 날씨와 가이드의 말솜씨에 따라 기분이 엄청 달라지는 법인데, 구름 한 점 보이지 않고 미세먼지도 비껴간 날에 따뜻한 데다 구수한 설명 덕에 웃으면서 구경할 수 있었다. 뛰어난 소화력을 가져서 죽은 고기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하이에나는 생각보다 덩치가 크고 힘 좋게 생겼다. 왠지 야윈 것 같은 수컷사자는 사파리 생활이 무료한지 고민이 많아 보인다. 초원을 달리지도 못하고 먹이사냥을 해본 적도 없을 테니 긴장감이 없어서인가. 몸길이가 무려 2m 80cm라는 곰의 덩치는 정말로 대단하다. 그래도 운전기사가 던져주는 먹이를 냉큼 받아먹을 때는 날렵하기만 하다.



다음은 로스트밸리. 이곳은 수륙으로 이동이 가능한 버스가 땅 위를 운행하다 물속에서는 모터로 움직인다. 육지를 달리던 차가 배로 바뀌는 순간, 나와 아내는 몹시 시시해했고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으며 엄마아빠들은 아이들을 위해 더 크게 소리를 질러댔다. 아프리카 사슴은 가슴팍의 털이 멋있게 보였는데 암컷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과시용이 아니라 체온 조절용이란다. 생후 5개월 된 코끼리는 하루에 100kg이 넘는 먹이를 먹는 먹보다. 차가 다가가자 기린은 차 안까지 머리를 들이밀고 큰 혀를 내밀며 먹이를 달라고 보채는 게 귀엽기도 하다.



두 곳을 둘러보는데 걸린 시간이 30분이고 말만 사파리지, 사육하는 동물들이라 대부분이 잠을 자거나 무기력한 게 섭섭했지만, 이렇게라도 체험하지 못하면 늘 사파리를 그리워하고 있었을 테니 그만해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이곳저곳에 높이 설치된 어트랙션 구조물에서 커다란 함성까지 들리지만, 나이든 이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서 후크선장의 해적선을 타고 빙글빙글 회전하는 ‘피터 팬’으로 막혔던 스트레스를 풀려고 아이들과 젊은이 틈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그것도 순방향으로 2분 역방향으로 2분이 다였으니 여전히 2%가 부족하다.



세계 최고의 낙하 각도에서 즐기는 스릴 롤러코스터를 멀리서 지켜보면서, 나도 한창때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디즈니랜드’를 두 번이나 입장해서 저보다 더한 스릴도 체험했다는 추억을 되살리며 아쉬움을 달랜다. 8시 45분에 집을 나서서 돌아오니 오후 6시 45분, 직장시절의 일과를 보낸 셈이다. 에버랜드에서 보낸 4시간 반을 제하면 5시간 반을 차를 타고 버텨서 피곤할 듯도 하지만, 깨끗한 환경에서 동심의 세계로 빠져든 탓인지 평소보다 더 가뿐한 하루였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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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지 중에서 오지인 첩첩산중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는 집에서 10리 길로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만한 신작로를 걸어서 다녔다. 할머니는 멀리서도 손자 모습이 보이는 모실방우까지 자주 마중 나오셨다. 손자가 할머니를 발견하고 뛰어오면, 자세를 낮추어서 껴안고는 엉덩이를 툭툭 두드리며 “아이고! 내 강생이가 핵교 다녀왔구나!” 하고 기뻐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로부터 60년이 흘렀다.


내게는 초등학교 2학년인 손자와 그보다 네 살이 어린 손녀가 있다. 손자가 태어나던 날, 병원에서 아이를 유리창 너머로 보았다. ‘생명의 탄생’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내 자녀가 낳은, 나의 대를 이을 나의 분신이라는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손자(손녀)가 태어나면, 보고 싶을 때 보고 만지고 싶을 때 만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사람마다 집집이 손자(손녀) 키우는 방법이 다를 줄 안다만, 아들 내외가 맞벌이하느라 처가댁 가까이 살면서 외가에서 키우고 돌보고 있는 처지라 그건 언감생심이었다. 2~3주에 한 번꼴로 데리고 온다지만, 그게 성에 찰 리 없었다.


유치원에 들어간 손자에게는 식사를 같이하는 외조부모는 가족이 되어있었고 우리 내외는 타인이었다. 위로해주는 사돈 말씀, “사돈, 걱정 말아요. 애들이 크면 자기 핏줄 찾아 간대요. 외조부모는 나중에는 허당이래요.” ‘글쎄 그럴까’ 뭔가 씁쓸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누군가 말하듯 ‘이 시대는 새로운 모계사회로 돌아간다.’라는 억장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손자가 초등학생이 되고부터는 한 달에 한번 보기도 어려워졌고, 목소리도 듣기 어렵다. 가끔 전화를 하면 “할아버지, 지금 숙제 중이거든. 내가 시간 나면 전화할게요.”라고는 끊어버린다. 아쉬움과 서운함이 남아있었는데, 사돈 내외가 12일간 유럽여행을 떠나면서 우리 부부가 돌보게 되어 실상을 알게 되었다.


아내는 5일간(1박 2일이 두 번), 내게도 이틀이 배정되었다. 손자가 보여주는 일과표에는 학교에서 학원으로 잠시 집에 들렀다가 다시 학원으로 가는 시간표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과외가 다섯 개나 되어서 토요일까지도 짬이 없었고, 5시쯤 집에 도착하면 어린이 프로를 보거나 숙제하기에 바쁘다. 손자(손녀)는 언제 어디에 있는 간식을 몇 개나 먹어야 할지도 줄줄이 외우고 있었다. “왜 그렇게 많은 학원엘 보내나?” 하니 아들 말로는 “애가 좋아하고 다른 애들도 그러니까….”라고 한다. 아무래도 내가 먼저 손자에게 전화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다.

손자는 제일 먼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봐야 한다며 8시 20분에 집을 나가고 손녀와 둘이 남았다. “어떤 장난감을 좋아하는지 한번 볼까?” 양팔을 까짓것 벌리고는 “안 돼, 내 거야!” 한다. “할아버지 물건은 마음대로 만지고 고장도 냈잖아.” 하니,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알았어. 마음껏 하세요.” “아니야, 남의 물건을 만지려면 허락을 받고 만져야 한다. 알았지?” 마지못한 표정으로 그런다. “알았어요.”

전에나 지금이나 손자(손녀)가 집에 온다면, 만사 제쳐 두고 마루를 쓸고 닦고 난리를 친다. 애들이 집에 도착할 때쯤이면 아파트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다가 현관을 들어서면 나는 두 팔을 벌리고 “아이고! 내 손자(손녀) 왔구나.” 하고 끌어안는다. 마치 내 할머니가 나를 끌어안고 그랬던 것처럼.


세상이 바뀌고 또 바뀌어도 가족의 내리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세대는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게 아닌가! 손자(손녀)를 안을 때마다 할머니가 생각나는 것은, 할머니의 손자사랑이 고스란히 내 손자에게 전해지는 것 같고, 그때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빠져든다.


글 / 사외독자 이성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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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을 참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매달 발행된 연재만화를 사보기 위해 엄마가 주는 용돈을 차곡차곡 모으기도 했다. 만화책이 서점에 놓이는 날이면, 학교 끝나기 무섭게 만화책을 사기 위해 서점으로 달려갔다. 두툼한 만화책에는 10여 가지 이상의 만화가 연재되곤 했다. 집에까지 가서 보는 것을 참지 못해, 집으로 가는 길에 손에 들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며 가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여러 가지 만화가 함께 있다 보니, 재미있을 만하면 꼭 끊어서 다음 편을 사도록 만들었다. 또 한 달을 기다려야 하는 아쉬움이 설렘 뒤에는 꼭 남았다.


보물섬을 다 보고 나면, 남은 한 달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서 시험 없는 주말이면 친구를 따라 만화방에 갔다. 처음 만화방에 들어서던 날, 수많은 만화책으로 빼곡하게 차 있는 그 광경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작가 이름별로 정돈된 만화책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는데, 보기만 해도 행복했다. 가는 시간이 아쉬워 10여 권을 서둘러 뽑아서 친구와 정신없이 읽었다. 책이란 것에 그렇게 몰두했던 적은 태어나 처음이었던 것 같다. 서너 시간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배가 출출할 때쯤 되자, 친구는 라면을 사주겠다고 했다. 자고로 만화방에 오면 꼭 해봐야 하는 일이 있는데, 그게 라면이라 했다. 뜨거운 물을 붓고 한 젓가락 떠먹는 라면의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느낌이었다.


눈이 많이 오는 겨울방학이면 밖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엄마는 옷 버린다고 눈밭에 나가서 뒹구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았다. 그러면 TV를 보다가 잠을 자다가 한참을 방바닥을 박박 긁다가 보는 것이 다 본 만화책이었다. 연재만화는 부피가 큰 나머지, 1년 치 정도 되면 책꽂이 위아래로 다 채울 정도였다. 그러면, 그 1년 치를 다 꺼내 처음부터 다 읽곤 했다. 교과서만 예습, 복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만화책도 복습을 하게 된 것이었다. 까끌까끌한 재질의 만화책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재미를 새삼 다시 보면서 찾았다.


요즈음은 만화방 찾기가 쉽지 않다. 예전만큼 성업을 하지 못해서인지 시내를 한참 돌아다녀도 만화방이라는 간판을 찾기가 어렵다. 더불어, 매월 만화만을 연재하는 만화책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가끔 TV 채널에서 방영해주는 만화를 보면서 그때의 일을 회상할 뿐이다. 학창시절, 만화는 친구가 되었고, 친구가 만화와 함께했던 그 시간은 추억의 사진 속에 남아있다. 언젠가 친구는 자신의 소장품 1호는 만화책이 될 거라며 호언장담을 했었는데, 나중에 그 친구를 만난다면 쌀쌀한 봄 밤에 읽을 만화책을 얻어 와야 할 것 같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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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컥 탈이 났다. 유쾌하게 친구와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귀가했는데 갑자기 허리가 뻐근했다. 자고 일어나면 낫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웬걸, 아침에는 침대에서 일어나기조차 힘들었다. 그러자 하룻밤 사이에 사소한 일들이 굉장한 일로 바뀌어 버렸다. 세면대에서 허리를 굽혀 세수하기,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거나 양말을 신는 일, 기침을 하는 일,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 내게는 더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별수 없이 병원에 다녀와서 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냈다. 비로소 몸의 소리가 들려왔다. 실은 그동안 목도 결리고 손목도 아프고 어깨도 힘들었노라, 눈도 피곤했노라, 몸 구석구석에서 불평을 해댔다. 언제나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던 나의 몸이, 이렇게 기습적으로 반란을 일으킬 줄은 예상조차 못 했던 터라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중이다.


이때 중국 속담이 떠올랐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 예전에 싱겁게 웃어넘겼던 그 말이 다시 생각난 건, 반듯하고 짱짱하게 걷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실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괜한 말이 아니었다. 아프기 전과 후가 이렇게 명확하게 갈라지는 게 몸의 신비가 아니고 무엇이랴!


얼마 전에는 젊은 날에 윗분으로 모셨던 분의 병문안을 다녀왔다. 몇 년에 걸쳐 점점 건강이 나빠져서 이제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눈을 깜빡이는 정도에 불과했다. 예민한 감수성과 날카로운 직관력으로 명성을 날리던 분의 그런 모습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한때의 빛나던 재능도 다 소용없구나,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돌아오면서 지금 저분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혼자서 일어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고, 그런 아주 사소한 일이 아닐까. 다만 그런 소소한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는 너무 늦었다는 점이 안타깝다.


우리는 하늘을 날고 물 위를 걷는 기적을 이루고 싶어 안달하며 무리를 한다. 땅 위를 걷는 것쯤은 당연한 일인 줄 알고 말이다. 사나흘 노인네처럼 파스도 붙여 보고 물리치료도 받아 보니 알겠다.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은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크게 걱정하지 말라는 진단이지만 아침에 벌떡 일어나는 일이 감사한 일임을 이번에 또 배웠다. 건강하면 다 가진 것이다.


오늘도 일상에 감사하며 살자! 그런데 왜, 우리는 늘 불행하다고 생각할까. 욕심이 많아서일 것이다.’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없다고 한다. 기쁨이 없다는 이야기는, 결국 행복하지 않다는 말일 터. 감사하는 사람만이 행복을 움켜쥘 수 있고,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이라는 정상에 이미 올라가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하면 되지, 행운을 바란다면 욕심이겠다. 오늘, 숨 쉴 때마다 감사함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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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2월 31일, 그때가 문득 떠오른다. 유명한 예언가의 예언처럼 1999년 멸망으로 2000년을 정말 볼 수 없을까 궁금하면서도 많이 두려웠다. 일찍 잠을 청해서 2000이라는 숫자를 찍는 그 순간을 애써 모면하려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떠 가장 먼저 했던 일이 창문을 열고 사방을 둘러 보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전날과 하나도 다른 게 없는 평온한 풍경들, 그리고 사람들을 보면서 살아있음에 눈물 나도록 기뻐하면서 환호를 했다. 그리고 어느덧 2017년 2000년을 보내고도 17년이나 흘러 봄 향기 가득한 아침 공기를 마시고 있다. 2000이라는 숫자가 주었던 묵직한 중압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바쁜 일상을 살다 보니, 1999년은 까마득한 옛날이 되어 버렸다.


그런 와중에 「일의 미래」란 책을 마주하게 되었다. 막연한 공포감에 휩싸였던 1999년 12월만큼이나 알 수 없는 미래와 마주하고 있는 지금의 길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찾았던 책을 보게 되었다. 요즈음 TV나 인터넷에서는 ‘4차 산업’이라는 단어를 심심치 않게 보고 듣게 된다. 과연 4차 산업은 무엇이며 4차 산업의 영향과 미래는 어찌 될 것인가를 알고 싶어, 소위 미래학자란 사람들이 쓴 책까지 읽어 보았지만 시원한 대답을 얻지는 못했다.


관련 분야의 전문가란 사람들은 4차 산업이 가져올 긍정적인 면에만 장황하게 써 내려 가려 하지, 4차산업이 실현되면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 제시는 없었다. 4차 산업으로 보다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고,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며 뜬구름 잡는 장밋빛 미래만을 제시하는 데 열을 올리곤 했다. 자율주행차의 보급으로 장거리 운전 시에도 차 안에서 운전 대신 IOT 기술을 접목한 콘텐츠를 구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예를 주로 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용을 읽으면서 늘 가슴 한편이 답답했던 것은, 모든 이에게 그런 꿈같은 일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을까 라는 물음표 때문이었다.


그런데 선대인 님이 쓴 「일의 미래」에서는 그런 뜬구름같은 거품을 모두 빼고 4차 산업이 가져올 우리 일자리와 미래, 그리고 삶에 대한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듯 담아냈다.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자율주행차와 전기차의 보급으로 인해 교통사고가 줄어들 것이라는 언급이었다. 9시 뉴스를 보면 하루도 빠지지 않는 단신 뉴스가 교통사고다. 누가 어디서 어느 구간을 지나다 사고 났고 몇 명이 다쳤다는 뉴스인데, 가끔 대형사고로 인해 많은 사상자를 냈다는 식의 뉴스는 많은 이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기도 했다. 만약 똑똑한 자율주행차나 전기차가 대중화된다면 먼 미래에는 교통사고라는 말도 사라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책은 4차 산업의 성장으로 앞으로 사라져야 할 일자리나 업종을 논리적인 근거와 상황을 들어 조목조목 쉽게 설명하였고, 아울러 그런 미래를 미리 내다보면서 지금 우리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방법을 제시했다. 청년실업 문제로 많은 젊은이가 공무원시험으로 내몰리고 있고, 불안한 미래에 결혼을 포기하고 자녀 갖기를 망설이는 부부들이라면, 한 번쯤 각자의 현실을 되돌아보고 지금부터 무엇보다 시작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만들어 줄 것이다.


‘유비무환’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2000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아무 일 못하고 하루하루를 허비했던 1999년의 시간이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너무나 아깝게 느껴진다. 미래가 어찌 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미래에 대한 예측과 예상을 하고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면, 우리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가속도를 높이고 있는 4차 산업의 혜택을 우리가 모두 함께 누릴 수 있을 거라 믿어본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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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재미있는 취미 하나가 있다. 숨은그림찾기다. 시간이 날 때마다 혹은 여유 시간이 생길 때마다 숨은그림을 찾느라 열중한다. 숨은그림찾기를 언제부터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숨은그림찾기가 주는 매력이 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숨은그림찾기를 하다 보면 집중할 수 있어 좋다. 오로지 숨어 있는 그림을 찾는, 온 정신을 다 쏟을 수 있다는 그 점이 참 좋다.


보통 5개, 많게는 10개의 숨은 그림을 숨겨 놓고 찾게 된다. 숨은 그림을 많이 하다 보면 숨어 있을 만한 자리를 먼저 보게 되고, 그 자리를 집중해서 보다 보면 세밀하게 숨겨져 있는 팽이, 수저, 비행기, 새 등을 찾아내곤 한다. 그 숨겨진 대상을 찾아낼 때의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숨어 있는 그림을 금방 찾아냈습니다 라고 자랑이라도 하듯 펜으로 찾은 대상에 여러 번 동그라미를 친다.


그런데 문제는 남은 한두 개의 숨은 그림이다. 5개 중 한 개 혹은 10개 중 한두 개 정도는 상당한 인내와 시간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숨은그림찾기를 만드는 이의 자존심이라고나 할까! 10분 동안 들여봐도 나타나지 않을 때는 조금씩 조바심이 나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한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혹시 잘못 만들어진 게 아닐까?’ 스스로 의심을 하게 된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숨은그림찾기 책자를 뒤집어 살펴보기도 한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훑어보기도 하고 위에서 아래로 빼먹은 것이 없는지 꼼꼼히 체크한다. 그래도 나오지 않는 숨은그림이라면 약이 바짝바짝 오른다. 찾던 것을 그만두고 책자를 덮어버린다. 더는 찾다간 얼굴이 빠알갛게 달아오르고 맥박수가 2배로 빨라 질 거 같아, 일단 후퇴를 고한다. 그러나 못 찾은 숨은 그림 하나는 온종일 머릿속을 뱅뱅 돌아 찜찜함으로 남는다.


다시 집중력이 생겨나고 숨은그림찾기에 대한 열의가 불타오르기 시작하면, 그때 한 개의 숨은 그림을 찾기 위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한다. 한 시간이 흘러 뚫어지게 책자를 응시하다 보면 정말 어이없는 곳에서 마지막 숨은 그림은 나타나곤 한다. 가장 가까운 곳에 엉성하게 숨어 있는 것을 보면서 허탈함 마저 들곤 한다.


그런데 그것은 모든 숨은 그림을 찾고 나서 드는 긴장 이완이 더 올바른 표현일 수 있겠다. 금메달을 향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한 경기, 한 경기를 치르고 마침내 결승전에 올라 마지막 경기까지 이기고 났을 때 금메달의 기쁨보다는 모든 게 끝났다는 허망함이 더 컸다는, 어떤 이의 인터뷰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오늘은 어떤 그림들이 어떤 곳에 꼭꼭 숨어 있을지 숨은그림들을 매섭게 노려 보려 한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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