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탈이 났다. 유쾌하게 친구와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귀가했는데 갑자기 허리가 뻐근했다. 자고 일어나면 낫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웬걸, 아침에는 침대에서 일어나기조차 힘들었다. 그러자 하룻밤 사이에 사소한 일들이 굉장한 일로 바뀌어 버렸다. 세면대에서 허리를 굽혀 세수하기,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거나 양말을 신는 일, 기침을 하는 일,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 내게는 더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별수 없이 병원에 다녀와서 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냈다. 비로소 몸의 소리가 들려왔다. 실은 그동안 목도 결리고 손목도 아프고 어깨도 힘들었노라, 눈도 피곤했노라, 몸 구석구석에서 불평을 해댔다. 언제나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던 나의 몸이, 이렇게 기습적으로 반란을 일으킬 줄은 예상조차 못 했던 터라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중이다.


이때 중국 속담이 떠올랐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 예전에 싱겁게 웃어넘겼던 그 말이 다시 생각난 건, 반듯하고 짱짱하게 걷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실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괜한 말이 아니었다. 아프기 전과 후가 이렇게 명확하게 갈라지는 게 몸의 신비가 아니고 무엇이랴!


얼마 전에는 젊은 날에 윗분으로 모셨던 분의 병문안을 다녀왔다. 몇 년에 걸쳐 점점 건강이 나빠져서 이제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눈을 깜빡이는 정도에 불과했다. 예민한 감수성과 날카로운 직관력으로 명성을 날리던 분의 그런 모습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한때의 빛나던 재능도 다 소용없구나,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돌아오면서 지금 저분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혼자서 일어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고, 그런 아주 사소한 일이 아닐까. 다만 그런 소소한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는 너무 늦었다는 점이 안타깝다.


우리는 하늘을 날고 물 위를 걷는 기적을 이루고 싶어 안달하며 무리를 한다. 땅 위를 걷는 것쯤은 당연한 일인 줄 알고 말이다. 사나흘 노인네처럼 파스도 붙여 보고 물리치료도 받아 보니 알겠다.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은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크게 걱정하지 말라는 진단이지만 아침에 벌떡 일어나는 일이 감사한 일임을 이번에 또 배웠다. 건강하면 다 가진 것이다.


오늘도 일상에 감사하며 살자! 그런데 왜, 우리는 늘 불행하다고 생각할까. 욕심이 많아서일 것이다.’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없다고 한다. 기쁨이 없다는 이야기는, 결국 행복하지 않다는 말일 터. 감사하는 사람만이 행복을 움켜쥘 수 있고,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이라는 정상에 이미 올라가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하면 되지, 행운을 바란다면 욕심이겠다. 오늘, 숨 쉴 때마다 감사함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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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2월 31일, 그때가 문득 떠오른다. 유명한 예언가의 예언처럼 1999년 멸망으로 2000년을 정말 볼 수 없을까 궁금하면서도 많이 두려웠다. 일찍 잠을 청해서 2000이라는 숫자를 찍는 그 순간을 애써 모면하려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떠 가장 먼저 했던 일이 창문을 열고 사방을 둘러 보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전날과 하나도 다른 게 없는 평온한 풍경들, 그리고 사람들을 보면서 살아있음에 눈물 나도록 기뻐하면서 환호를 했다. 그리고 어느덧 2017년 2000년을 보내고도 17년이나 흘러 봄 향기 가득한 아침 공기를 마시고 있다. 2000이라는 숫자가 주었던 묵직한 중압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바쁜 일상을 살다 보니, 1999년은 까마득한 옛날이 되어 버렸다.


그런 와중에 「일의 미래」란 책을 마주하게 되었다. 막연한 공포감에 휩싸였던 1999년 12월만큼이나 알 수 없는 미래와 마주하고 있는 지금의 길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찾았던 책을 보게 되었다. 요즈음 TV나 인터넷에서는 ‘4차 산업’이라는 단어를 심심치 않게 보고 듣게 된다. 과연 4차 산업은 무엇이며 4차 산업의 영향과 미래는 어찌 될 것인가를 알고 싶어, 소위 미래학자란 사람들이 쓴 책까지 읽어 보았지만 시원한 대답을 얻지는 못했다.


관련 분야의 전문가란 사람들은 4차 산업이 가져올 긍정적인 면에만 장황하게 써 내려 가려 하지, 4차산업이 실현되면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 제시는 없었다. 4차 산업으로 보다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고,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며 뜬구름 잡는 장밋빛 미래만을 제시하는 데 열을 올리곤 했다. 자율주행차의 보급으로 장거리 운전 시에도 차 안에서 운전 대신 IOT 기술을 접목한 콘텐츠를 구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예를 주로 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용을 읽으면서 늘 가슴 한편이 답답했던 것은, 모든 이에게 그런 꿈같은 일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을까 라는 물음표 때문이었다.


그런데 선대인 님이 쓴 「일의 미래」에서는 그런 뜬구름같은 거품을 모두 빼고 4차 산업이 가져올 우리 일자리와 미래, 그리고 삶에 대한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듯 담아냈다.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자율주행차와 전기차의 보급으로 인해 교통사고가 줄어들 것이라는 언급이었다. 9시 뉴스를 보면 하루도 빠지지 않는 단신 뉴스가 교통사고다. 누가 어디서 어느 구간을 지나다 사고 났고 몇 명이 다쳤다는 뉴스인데, 가끔 대형사고로 인해 많은 사상자를 냈다는 식의 뉴스는 많은 이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기도 했다. 만약 똑똑한 자율주행차나 전기차가 대중화된다면 먼 미래에는 교통사고라는 말도 사라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책은 4차 산업의 성장으로 앞으로 사라져야 할 일자리나 업종을 논리적인 근거와 상황을 들어 조목조목 쉽게 설명하였고, 아울러 그런 미래를 미리 내다보면서 지금 우리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방법을 제시했다. 청년실업 문제로 많은 젊은이가 공무원시험으로 내몰리고 있고, 불안한 미래에 결혼을 포기하고 자녀 갖기를 망설이는 부부들이라면, 한 번쯤 각자의 현실을 되돌아보고 지금부터 무엇보다 시작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만들어 줄 것이다.


‘유비무환’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2000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아무 일 못하고 하루하루를 허비했던 1999년의 시간이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너무나 아깝게 느껴진다. 미래가 어찌 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미래에 대한 예측과 예상을 하고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면, 우리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가속도를 높이고 있는 4차 산업의 혜택을 우리가 모두 함께 누릴 수 있을 거라 믿어본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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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재미있는 취미 하나가 있다. 숨은그림찾기다. 시간이 날 때마다 혹은 여유 시간이 생길 때마다 숨은그림을 찾느라 열중한다. 숨은그림찾기를 언제부터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숨은그림찾기가 주는 매력이 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숨은그림찾기를 하다 보면 집중할 수 있어 좋다. 오로지 숨어 있는 그림을 찾는, 온 정신을 다 쏟을 수 있다는 그 점이 참 좋다.


보통 5개, 많게는 10개의 숨은 그림을 숨겨 놓고 찾게 된다. 숨은 그림을 많이 하다 보면 숨어 있을 만한 자리를 먼저 보게 되고, 그 자리를 집중해서 보다 보면 세밀하게 숨겨져 있는 팽이, 수저, 비행기, 새 등을 찾아내곤 한다. 그 숨겨진 대상을 찾아낼 때의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숨어 있는 그림을 금방 찾아냈습니다 라고 자랑이라도 하듯 펜으로 찾은 대상에 여러 번 동그라미를 친다.


그런데 문제는 남은 한두 개의 숨은 그림이다. 5개 중 한 개 혹은 10개 중 한두 개 정도는 상당한 인내와 시간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숨은그림찾기를 만드는 이의 자존심이라고나 할까! 10분 동안 들여봐도 나타나지 않을 때는 조금씩 조바심이 나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한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혹시 잘못 만들어진 게 아닐까?’ 스스로 의심을 하게 된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숨은그림찾기 책자를 뒤집어 살펴보기도 한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훑어보기도 하고 위에서 아래로 빼먹은 것이 없는지 꼼꼼히 체크한다. 그래도 나오지 않는 숨은그림이라면 약이 바짝바짝 오른다. 찾던 것을 그만두고 책자를 덮어버린다. 더는 찾다간 얼굴이 빠알갛게 달아오르고 맥박수가 2배로 빨라 질 거 같아, 일단 후퇴를 고한다. 그러나 못 찾은 숨은 그림 하나는 온종일 머릿속을 뱅뱅 돌아 찜찜함으로 남는다.


다시 집중력이 생겨나고 숨은그림찾기에 대한 열의가 불타오르기 시작하면, 그때 한 개의 숨은 그림을 찾기 위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한다. 한 시간이 흘러 뚫어지게 책자를 응시하다 보면 정말 어이없는 곳에서 마지막 숨은 그림은 나타나곤 한다. 가장 가까운 곳에 엉성하게 숨어 있는 것을 보면서 허탈함 마저 들곤 한다.


그런데 그것은 모든 숨은 그림을 찾고 나서 드는 긴장 이완이 더 올바른 표현일 수 있겠다. 금메달을 향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한 경기, 한 경기를 치르고 마침내 결승전에 올라 마지막 경기까지 이기고 났을 때 금메달의 기쁨보다는 모든 게 끝났다는 허망함이 더 컸다는, 어떤 이의 인터뷰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오늘은 어떤 그림들이 어떤 곳에 꼭꼭 숨어 있을지 숨은그림들을 매섭게 노려 보려 한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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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60대로 결혼 37년 차다. 아직도 가끔은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하는 편인데, 특히 짜거나 매운 음식 때문에 그러기도 한다. 왜냐하면 아내는 고혈압 초기에다 6~7년 된 허리디스크 때문에 정형외과와 한방병원에 다니다가 디스크 수술을 한 지 2개월째고, 나는 회사를 나오고서 얻은 당뇨가 9년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내는 딸아이 생각에 맛을 중요시하고 나는 건강을 우선시하기에 발생하는 해프닝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내는 아파트의 통장 일을 보고 있고, 나는 60세에 취득한 공인중개사 자격증으로 일 년 전부터 집 근처에 사무실을 열고 있어 소일거리가 되고 있다. 요사이는 부동산 경기의 침체로 여유시간이 많은 편인데, 이게 또한 다행인 것이 아내의 디스크가 심해진 작년부터는 무거운 가공식품이나 과일 같은 장보기를 내가 맡게 되었고, 수술 후에는 동사무소의 심부름과 쓰레기 버리기가 추가되어도 별로 부담이 안 되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봄을 맞아 입맛도 돋울 겸, 건강에 도움이 되는 먹을거리를 사려고 아내와 함께 우리 동네에서 가까운 재래시장을 찾았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시장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우리나라도 직격탄을 맞고 있음에도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는 물가 때문인지 알뜰하게 사려고 연신 노심초사하는 주부들이 많다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알게 되었다. 아내 역시 같은 처지인지라, 진열된 갖가지 상품들을 만지작만지작하다 말뿐 그대로 내려놓기 일쑤였다. 결국, 아내는 주로 채소와 생선과 과일 등을 조금씩 샀다. 나는 아내를 도와줄 요량으로 시장에 따라왔기에 비닐봉지를 몇 개 들고 아내 뒤를 졸졸 따라다닌 셈이 되었다.


그래도 집에 돌아오기 전에 아내는 코끝이 빨간 내 모습을 보고는 여자 동기들 모임 때 가끔 와 봤다는 칼국수 집으로 안내(수를 떠올리면 어릴 적, 옆집엔 분명 방앗간 규모였는데 간판엔 ‘국수공장’이라고 적혀있던 집 생각이 난다. 규격화된 나무틀에 뽀얀 국수를 치렁치렁 널려 말리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던 곳, 숨바꼭질하면서 햇빛 아래 늘어진 국수 뒤로 숨어들었던 기억)했다. 좁지 않은 1~2층이 손님으로 가득했다. 알고 보니 모든 국수요리가 2,500원으로 저렴하고 맛도 있다고 소문난 집이었다. 먹기 바쁘게 다음 손님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게 불편했지만, 일반 음식점에서 파는 5,000원짜리보다 얼큰하고 개운하면서도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었다. 몸과 마음이 얼어있던 아내와 나는 따끈따끈한 훈기와 저렴한 가격에다 넉넉한 인심으로 사랑스러운 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 눈길을 끄는 횟집에서 아내는 내가 좋아하던 바다장어 회(요사이는 횟집에 가더라도 영양가가 높고 감칠맛이 나는 광어나 농어를 시키지만 소득이 많지 않았던 젊은 시절에는 바다장어가 저렴한데다 쫄깃하게 씹히는 맛에 시장에서 떠와서 먹었다)를 기억하고는 수월찮은 가격인데도 한 접시 사 넣었다. 소주 한잔과 곁들일 생각에 군침이 돌았다.

그래서 앞으로 나는 아내와 장을 볼 때는 대형마트보다는 재래시장에 자주 들를 생각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야 말로 살갑고 애틋한 정감을 새록새록 샘솟게 할 수 있는 길이요, 우리 주변의 영세한 상인들을 도와주는 길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날 우리 부부는 어서 빨리 경제가 회복되어 나라는 물론 재래시장도 활성화되기를 소망하면서 시장에서 서서히 빠져나왔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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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빛바랜 사진첩을 꺼내, 엄마와 옛날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든 게 디지털로 통하는 시대라 사진은 구시대의 유물로 바뀌어 가고 있지만, 가끔 꺼내 보면, 오늘을 사는 동력이며 내일을 위해 뛸 수 있는 에너지가 되곤 한다.


젊은 시절 참으로 고왔던 엄마는 어느새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패어 있고, 흰머리가 검은 머리카락보다 많아지긴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온화한 미소는 변함이 없다. 내가 태어나기 전이라 온통 처녀 시절은 흑백사진으로만 채워져 있지만, 그 오랜 세월 동안 사진첩에 남아 있다는 게 고마운 일이다. 나는 사진 찍는 게 많이 어색한 나머지, 어린 시절 사진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하도 이상해서 “왜 내 어린 시절 사진은 조금 남아 있어요?“라고 물었던 적도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진을 찍기 위해 표정을 짓고 자세를 취한다는 것은 영 어색하지 않을 수 없다.


커다란 사진첩에 반은 흑백사진이라면, 또 다른 반은 컬러사진이다. 컬러사진이 막 나오기 시작하면서 아버지는 거금을 들여 유명 브랜드의 사진기를 사 오셨는데, 그 일을 잊을 수가 없다. 가족 모두 둘러앉아 사진기라는 것을 구경하면서 기뻐했었다. 필름을 집어넣고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사진 한 장이 뚝딱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밤새 설레었다.


필름 한 통에 24장 혹은 36장의 사진을 찍고 나서야 필름을 현상소에 맡길 수 있었던 터라, 하루라도 더 빨리 어떤 모습의 사진이 나왔을까? 궁금해서 보이는 대로 이곳저곳을 찍으러 다녔다. 필름을 맡기고 사진을 찾으러 가던 날, 아침부터 긴장을 했다. 사진관을 운영하시는 주인아저씨는 투명색 비닐 봉투에 현상되어 나온 사진들과 현상된 필름을 같이 넣어 주시곤 했었다. 사진기 다루는 게 서툴렀던 초창기에는 소위 햇빛이 들어가 못 쓰는 사진이 많아서, 애초 예상했던 사진의 장수가 모자라기 일쑤였다.


그렇게 모이고 모인 사진들이 사진첩에 한 장 한 장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조카가 태어나면서는 조카에게 뭔가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매년 같은 장소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자세를 취한 사진을 찍어주던 생각이 난다. 조카의 초등학교 전까지의 모습이 연속된 파노라마처럼 사진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주위를 둘러봐도 사진관을 찾기가 쉽지 않다. 누구나 쉽게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사진을 현상해서 한 장 한 장 사진을 사진첩에 꽂는 풍경도 이제는 보기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사진첩을 열면 사진 한 장 한 장 속에 담겨있던 추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이사를 해도 장롱 밑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사진첩을 가장 먼저 꺼내어 두 겹 세 겹으로 포장하는 엄마의 수고를 이제는 이해할 것만 같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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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댐공사로 수몰되는 바람에 보상문제를 해결하려고 시골에 갔다가 국밥집에 들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손님이 많아 자리가 없었다. 한 식탁에 할머니 혼자 국밥을 드시기에 합석을 하자며 양해를 구하였다. 할머니는 밥 따로 고기국 따로인 따로국밥을 들고 계셨다. 이상하게도 할머니는 국은 한쪽에 밀어 놓고 밑반찬에 밥만 드셨다. 다른 곳에 밥집이 있는데 왜 국밥집에 와서 밥만 드시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밥을 다 드신 할머니가 등에 진 가방을 내려 그 속에서 검정 비닐봉지를 꺼내었다.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국을 비닐봉지에 국물 한 방울 남김없이 다 쏟아 담았다. 한 겹 더 봉지로 싸더니 가방에 넣고는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나가시는 것이다.


궁금증을 풀려고 주인아주머니께 물었더니 “요즈음 농촌에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혼자 아니면 노부부만 사는 집이 많아요. 힘든 농사일 때문에 대부분 관절 계통의 질병을 앓고 사시지요. 아마도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에게 주려고 고깃국을 챙긴 모양입니다. 돈이 아까워서 한 그릇 가지고 두 분이 한 끼를 때우는 거지요.” 불현듯, 어제 동생한테서 들은 이야기도 떠오른다. “우리 동네에 노부부만 사시는 분이 있는데 자식들이 합세하여 지난겨울에 전기 코일 난방을 해드렸어요. 원래 온돌이 있었는데 자식들이 나무하는 것을 염려하여서 해드린 것이지요. 편하게 따뜻하게 겨울을 나시라는 염원으로 놓아드린 것인데, 노인네는 냉골이 된 방에서 떨면서 겨울을 나고 계신답니다.”


하기사, 우리 부모님도 그러하셨다. 동생이 기름보일러로 교체해 드렸더니 냉방으로 지낸다시기에 전기장판을 보내드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켜고 아버지는 끄는 것’으로 평생을 티격태격하시다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전기 요금이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닐 터이고 기름값은 자식들이 추렴하여 드리는데 그 돈이 너무 아까워서란다. 길바닥에 떨어진 검불 떼기만 주워서 때도 따뜻한 겨울을 날 터인데…. 도시에 사는 자식들은 농촌의 어르신들이 ‘편하고 따뜻하게 겨울나는 법’을 모른다. 진짜로 모른다.


글 / 사외독자 이성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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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겨울 방학 방학에 대한 기쁨은 채 1주일을 가지 못했다. 시골에서 방학은 방안에서만 보내기엔 무척이나 답답하고 지루했다. 하지만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엄마는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추운 날씨에 감기라도 걸리면 1주일 동안 골골해야 했고, 눈밭을 헤매고 다니다 보면 양말이며 바지며 두꺼운 외투까지 여기저기 성한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네 집으로 놀러 가기 위해서는 찬 바람을 뚫고 30여 분을 걸어야 했기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점심을 먹고 나면 주로 찾는 곳이 집 앞에 쌓아 올린 낟가리 자리였다.


추수가 다 끝난 밭에는 겨울철 소의 먹잇감으로 주기 위해 볏짚을 집처럼 쌓은 낟가리가 있었다. 겨우내 소들에게 먹여야 했기 때문에 꽤 높게 올릴 수밖에 없었다. 낟가리의 높이가 높다 보니 찬바람은 막아주고 해가 드는 양지에서 햇빛을 쐬고 있노라면, 군불을 땐 온돌방처럼 따스했다. 혼자면 심심할 것 같아서 잘 놀고 있는 동생들을 꼬셔서 데리고 나가게 되었고, 마당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흰둥이도 안아서 낟가리 있는 곳으로 향했다.


며칠 전 많은 눈이 온 탓에 대지는 하얀색으로 변해 있었고, 연속되는 영하권 날씨에 눈이 녹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낟가리의 양지바른 곳은 사정이 달랐다. 햇살이 오랫동안 비춘 탓일까? 눈이 얼다 녹다를 반복하면서 만들어진 고드름이 매달려 있었다. 길이도 다양하고 굵기도 서로 달랐다. 동요 고드름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고드름 안은 수정처럼 맑고 깨끗했다. 장난꾸러기 동생들은 신이 나서 고드름을 뚝뚝 꺾어 서로서로 칼싸움을 했다. 하지만 서너 번 부딪히자마자 부러져 땅바닥으로 고꾸라져 버렸다.


나도 하나 가장 작은 고드름을 잘라 우리 흰둥이에게 보여 주었다. 강아지는 맛 나는 먹거리를 인양 고드름을 이리저리 핥았다. 그 모양이 참 귀여워 보였다. 어느새 동생들도 고드름을 똑똑 잘라 입 안에 넣고 오도독오도독 깨물고 있었다. 막냇동생이 건네는 고드름을 받아 나도 깨물어 보았다. 아무런 맛도 없었지만 깨물면 깨물수록 기분이 좋아졌다.


올해 최강한파가 찾아 왔다고 TV에서는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얼마 전, 눈이 온 탓에 어느 집 처마에는 작은 꼬마 고드름이 얼어있었다. 눈 구경이 쉽지 않은 요즈음이라 고드름 보기가 어려운데, 참 오랜만에 보게 된 것이었다. 어린 시절 낟가리에서 보았던 그 맑디맑은 고드름은 아니겠지만, 그 모양만은 변함이 없었다.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고드름 속에서 잠자고 있었던 고드름의 추억이 오늘은 또렷해진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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