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바디스 파인>은 2009년 작품이다. 로버트 드니로가 프랭크로 드류 베리모어가 막내딸 로지로 등장한다. 현재 2018년임을 생각하면 벌써 10년 지난 영화지만, 영화에 푹 빠져 있다 보면 지금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된다.

<에브리바디스 파인>을 처음 접한 것은 작년으로 기억한다. 편히 쉬고 있는 일요일 오후 볼만한 프로그램이 뭐가 있을까 싶어, 이리저리 리모컨을 돌리던 중 EBS 방송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프랭크가 기차에 앉아 자신이 자랑스러워 하는 자식들의 사진을 보며 마주 앉은 이들에게 자랑하는 장면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인터넷에 들어가 줄거리를 찾아보니, 오랫동안 같이 살고 있던 부인과 사별하면서 적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자식들을 보러 가기 위해 기차를 타게 된 것이었다. 평소 지병이 있던 프랭크는 비행기는 탈 수 없었다. 기대와 설렘으로 첫째 아들 데이비드를 만나기 위해 집을 찾았지만 바람을 맞게 되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첫째 딸 에이미를 찾게 되었고, 에이미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 중에 손자와 사위의 관계가 좋지 않음을 알고 서둘러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둘째 아들 로버트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멋진 지휘자로 성공한 줄 알았지만 로버트는 가끔 등장하는 타악기 연주자였다. 실망감은 컸지만 크게 내색할 수 없었던 프랭크는 마지막 기대를 하며 막내딸 로지를 만나러 간다.


어찌 보면, 참 평범한 이야기다. 언젠가 한 번쯤 보았던 드라마의 줄거리처럼 느껴지고 우리의 일상과도 맞닿아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특히 학구열이 높은 우리나라 부모님을 생각하면 자식이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하게 성장하는 것은 모두의 꿈일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자식이라 하지 않았던가. 부모님의 기대만큼 성장할 수 없는 게 오히려 현실일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무리해서 프랭크는 비행기를 타고 가슴을 잡고 쓰러지면서 응급실에 실려 간다. 그 와중에 과거 회상 장면이 등장한다. 먹구름이 몰려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리기 일보 직전, 아빠인 프랭크는 네 명의 아이들을 엄하게 다그치고 있다. 이윽고 세찬 비가 내리는 와중에 아이들은 모두 집 안으로 도망가고, 프랭크만이 홀로 그 비를 맞게 된다. 그동안 잊었던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되었다. 마치 욕심 많은 스크루지가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듯, 아이들이 잘 되기 위해 했던 행동들이 오히려 자녀들에게는 부담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리고 <Christmas together>라는 피아노 연주곡이 잔잔하게 깔리며 아빠와 자녀들은 행복한 저녁 식사를 하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가족의 끈끈한 정이 잊혀가고 있는 시대다. 저녁이 있는 삶을 부르짖곤 있지만 온 가족이 한 식탁에 둘러앉아 한 끼 식사하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경쟁과 성공에 매몰되어 가는 요즘, 힘든 어깨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하루 있었던 이야기들로 이야기꽃을 피워보는 것은 어떨까.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사진출처 : 네이버영화 http://movi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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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맹추위에 외출하기도 귀찮고 불안해서 요즘 들어 어쩔 수 없이 보게 된 게 홈쇼핑의 여행상품선전이다. 다녀온 곳을 추억에 잠기게 하고 못 가본 곳은 풍경만으로도 기분을 업그레이드해준다. 어느 채널이나 ‘본 상품은 국적 항공기라 품격이 다르고 마일리지도 ○○○○만큼 제공됩니다.’ 비싸지만 혜택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객을 모집하고 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열차보다도 많이 타본 국적 항공기의 마일리지가 수십만 마일을 넘었다. 해외 출장은 주로 이등석을 이용했다. 국내선은 5년간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울산이나 포항 아니면 김해로 날아다녔다. 당시는 제2국적항공사가 취항한 지 일천하여 정상적으로는 편도에 500마일이 제공되었지만 2회에 한 번쯤은 1,000마일씩 제공-지금과 비교하면 5배 정도의 수준이다-하여서 눈송이처럼 불어났다.


국내선은 앞쪽에서 2, 3번 줄이 VIP석인데 내게도 혜택이 주어져서 왕회장이나 국회의장의 옆에 앉아가는 영광(?)을 누린 적도 여러 번이었다. 품질 문제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었기에 출장이 곤혹스러울 때가 많았지만, 대학 동기들이 여러 곳에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어, 실보다는 득이 커 지금도 그들에게 고마움을 보낸다. ‘고진감래’랄까? 90년대만 해도 그동안 싸인 보너스 마일리지로 수월하게 아내와 아들이 미국을 여행하고, 우리 부부는 태국을 이등석으로 편안하게 다녀왔으며, 친구와는 시드니 4박 5일간의 모든 비용을 마일리지로 해결했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수속 중에 본인도 몰랐던 ‘200번째 탑승을 기념하여 라운지 무료이용권을 드린다.’고 하여 일행들의 부러움을 산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국내선은 물론 국제선의 탑승장도 시장처럼 변하고 쇼핑에도 마일리지가 주어지면서 공짜 여행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다. 매년 한 번 꼴은 해외여행을 다녔기에 무료나 승급을 요청했지만, 영업소 직원조차도 어떤 기준으로 배정되는지를 모른다면서 ‘이 기간에는 좌석이 없습니다.’로 일관했다. 국내 여행에도 사용하고 침구류와 워킹화를 구매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사용할 곳이 영화 구경이나 항공사가 운영하는 호텔과 리조트로 한정되어 있다. 쉬운 게 영화 예매인데 이건 이해가 힘들 정도로 마일리지 차감이 많다. 궁여지책으로 자식들을 패밀리회원으로 묶었지만, 여전히 수십만 마일이나 남아서 애물단지로 변한 지가 오래다.


그런 차에 막내 처제가 안식년을 맞아 미국 언니 집으로 간다는 소식에 아내도 덩달아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5개월을 남겨둔 시점이라 ‘이때다.’ 싶어서 영업소를 찾았더니 15일간을 체크하고는 하루가 그것도 이등석으로만 이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내는 건강상태가 양호하지 않아서 내가 동행하기를 원하는 장거리 여행도 비토 놓는 처지라 원하는 좌석이기도 하다. 처제들과 상의를 거듭하여 그저께 매표를 마쳤다. 7명이 동행인데 바로 아래 처제도 같은 등급으로 가기로 했기에 아내는 기백 만 원 가까이 절약하게 되었음을 알았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했던가. 탑승 때는 웃음으로 환영해 주더니 사용할 때는 찬밥 신세니 이것도 갑질 아닌가 싶다. 여전히 삼식이 신세에 오랜만에 아내한테 점수를 따서 당분간이나마 편안하게 밥 얻어먹을 처지가 된 것 같아 실소를 금치 못한다.


사외독자 /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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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은 절편으로 해결하고 나왔다. 언제부터인가 떡집을 가게 되면, 가장 먼저 고르는 떡이 절편이 되었다. 시루떡, 바람떡, 인절미, 송편, 모시잎떡, 백설기 등등, 각가지 떡이 다양한 색으로 눈길을 끌기는 하지만, 하얀색의 네모진 절편은 가장 마음에 드는 떡이 되었다. 가끔 쑥을 집어넣은 비취색의 절편이면, 영양가를 함께 잡을 수 있어 더욱 더 마음에 든다.

사실, 절편은 좋아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는다. 꽤 오랫동안, 떡하면 팥고물을 입힌 시루떡을 최고로 생각한 적도 있었고, 노란 콩가루를 함께 먹는 재미에 인절미에 제일 먼저 눈길을 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팥은 빨리 쉬고, 먹을 때마다 팥고물이 떨어지는 바람에 시루떡을 먹고 나면 방을 다시 치워야 한다는 게 꽤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가끔 설익은 팥 알갱이가 입안에서 씹힐 때면 기분이 개운하지도 않았다. 인절미는 고소한 콩가루는 좋은데, 시루떡만큼이나 콩가루가 이리저리 날려서 옷에 묻고 바지에 묻으면 그거 털어내다 오히려 더 많은 범위에 콩가루가 묻어 낭패를 몇 번 겪었다.

그러다 보니, 그냥 그대로 떡 ‘절편’이 좋아지게 된 지도 모른다. 절편은 쫀득쫀득함이 살아있을 때 먹어도 좋지만, 하루 이틀 지나 가래떡처럼 굳어지고 나서 먹는 게 나는 참 좋다. 찐득찐득하게 떡살이 손가락에 달라붙지도 않고, 물기가 빠진 떡을 꽤 오래 음미하면서 씹을 수 있어 좋다.

절편하면, 잊혔던 옛 추억을 한 장 한 장 꺼낼 수도 있다. 시골에는 잔치가 많았다. 누구누구네 결혼식, 회갑연, 돌잔치 하면 의례 해야 할 음식은 떡이었다. 그 중에도 절편은 여기저기 단골메뉴로 자주 등장했었다. 부모님이 동네잔치를 다녀오시면 늘 들고 오시던 떡이 절편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절편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맛이 없었다. 최소한 단맛이라도 나야 했는데 그냥 떡의 본연의 맛밖에는 없었다. 그게 참 싫었었다. ‘왜 저런 떡을 해야 하지? 먹지도 않는 떡을!’ 참 궁금했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떡이란 의미를 가장 충실하게 실천하는 떡이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맘때가 되면 엄마를 졸라, 맛 나는 가을배추를 사다가 된장국을 해달라고 조른다. 그냥 먹어도 단맛이 강한 가을배추에 된장 하나만 풀어서 만든 된장국인데, 그 어떤 된장국보다 시원하고 개운할 수 없다. 엄마는 엄마의 손맛이라도 우기는데, 계절과 재료가 주는 하모니이니라!

절편이나 배추 된장국이나, 어떤 본질에 다양한 색과 맛 그리고 첨가물을 입히는 것보다 정말 단순하지만, 그 핵심 그대로가 오히려 더 정겨울 때가 있는 거 같다. 어찌 보면, 우리네 삶도 결국은 아름다운 옷과 장신구, 그리고 신발로 치장은 하지만, 상대방에 나의 진심을 알릴 방법은 진심 어린 나의 마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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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달력을 하나 얻어 왔다. 그리고 곧바로 작년 달력을 걸어 놓았던 그 자리에 내년 달력을 옮겨다 달았다. 뿌듯했다. 내년 한 해 하는 일 모두가 잘 이루어질 거 같은 기대감이 충만했다. 디지털이 대세인 요즈음 달력을 고집하는 나는 어찌 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인식될 수도 있겠으나, 달력은 달력 이상의 의미와 추억을 가져다 주었기에 달력에 목을 매는지도 모르겠다.

달력이 참 흔했던 시절이 있었다. 사장님들이 마케팅 차원에서 자신의 회사 혹은 가게를 알리기 위해 명함 대신 연말이면 으레 달력을 내밀던 차에 20여 개의 달력이 들어와 버린 적도 있었다. 한방에 2개씩 달아도 남아도는 바람에 가장 예쁘고 멋진 달력을 찾아 바꿔 다는데 저녁 시간을 소비하기도 했었다.

요즈음 금융회사에서 주는 숫자만 큰 달력은 항상 순번이 뒤로 밀리기 일쑤였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연예인이라면 한 번쯤 달력의 표지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었다. 달력을 달고 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한달 한달 넘겨 가며 부모님 생신과 형제자매들의 생일을 까만 볼펜으로 꾹꾹 눌러 가며 적었고, 그 다음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빨간 날 찾기에 열을 올렸었다. 일요일 다음 월요일이 빨간 숫자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동생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자축을 했었다. 하지만 국경일이 없는 11월이나 국경일이 일요일 겹쳐진 달에는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미리 1년을 훑어보고 나면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 여행을 다녀온 느낌을 받았다. 이 방 저 방 다 달고 남은 달력은 장롱 옆으로 한데 몰아넣었다. 달력을 주신 분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었고 좋은 종이가 귀했던 때라 그냥 버리기는 무척이나 아까웠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남은 달력의 용도는 책의 표지 쌓는 데 이용되게 되었다. 빠르면 연말에 늦으면 개학 후 새 학년 교과서를 받아 오게 되었다. 긴 시간 동안 동고동락해야 하다 보니 1개월만 지나도 교과서 표지는 너덜너덜해지기 일쑤였다. 그 표지를 싸는 데 달력만큼 좋은 게 없었다.

좋은 그림의 달력이라면 그림이 밖으로 나오도록 숫자로 가득 찬 달력은 숫자가 없는 하얀 뒷면이 앞을 보도록 쌓게 되었다. 10여 권 넘는 교과서를 싸는데 족히 1년 치 달력이 들어가는 셈이었다. 최대한 예쁘게 싸 보겠노라며 자와 가위까지 총동원하여, 교과서 크기를 맞춰가며 이리 재고 저리 재고 온갖 노력을 가했다. 동생들과 누나 그리고 나의 책과 달력으로 방안이 꽉 차 버렸다. 저녁 식사까지 다 끝난 터 TV를 보고 계시던 엄마까지 합세해서 방안은 이야기꽃으로 가득했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막냇동생은 엄마가 잘못 잘랐다고 울음보를 터뜨리면서 울음과 웃음소리가 뒤섞여 난장판으로 변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추운 겨울 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지나고 보니 그것도 하나의 추억거리가 되어 버렸다. 달력이 점점 귀해지면서 먼 훗날엔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살짝 들기도 하지만 미디어 시대가 도래하면서 라디오는 도태될 거란 예상이 멋지게 빗나가 버렸듯이 디지털 기기가 주류를 이루는 세상에서도 달력도 꿋꿋이 살아남아 연말이 되면 공짜로 달력을 얻어가는 기쁨을 빼앗아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불어 달력에 대한 추억을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달력은 계속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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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이상을 무위도식했지만, 평일과 공휴일은 많이도 다르다. 아파트 창을 통해 바라보는 거리의 모습에서부터 분위기가 판이하다. 인적과 차량도 드물어 활기까지 다운시킨다. 신문이 오지 않으니 긴 새벽을 견디느라 마음은 허탈해지고, 볼만한 TV프로는 한밤중에 몰려 있고, 주식시장도 폐쇄되니 죽을 맛이다.

추석이라고 아들 가족은 하루, 사위 가족은 이틀간 다녀갔지만 예전과는 달랐다. 지난 추석까지만 해도 윷놀이로 웃음보가 터졌고 손자가 심심하다고 하여 딱지치기나 팽이 놀이를 하느라 피곤했지만, 이젠 그리운 과거사가 되어버렸다. “○○야, 윷놀이 준비하자.”며 한판이 끝날 때마다 주라고 준비한 봉투를 내밀었지만 “할아버지, 윷놀이는 설에 하는 놀이야.”라며 일언지하로 퇴짜다. 온종일 같이 있었건만, 방에 들어가서 동생이나 고모하고 놀거나 TV를 보느라 우리 늙은이가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았다. 어느새 짝사랑 상대로만 바라보아야 할 때가 되었나 보다.

직장생활 때는 교통체증에 시달리면서 부모님을 찾았다. 다섯 형제가 나름대로 준비한 선물들을 보면서 흐뭇해하시던 그분들이 새삼 눈앞에 어른거린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누군가가 들고 온 갈비를 뜯고, 구두상품권을 돌리면서 삼 대에 걸친 스물두 명이 푸짐한 명절을 보냈었다. 그날 오후면 다들 처가로 가서 백년손님 대접도 받고 귀가 때는 양가 어머님이 알뜰살뜰 모아둔 농산물들로 룸미러를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4일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는데 10일이라니. 더구나 2박 3일은 아내가 사위와 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훌쩍 떠나서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되었다.

하루는 같은 처지의 친구와 덕수궁 근처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식당마다 손님이 많아서 여러 곳을 수소문하고 다녔지만 ‘동병상련’이라고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마침 10여 년간 일반인의 통행이 제한되었던 덕수궁 돌담길의 일부 구간이 개방되었다는 뉴스가 생각나서 그곳을 돌아보기로 했다. 서울시가 영국대사관과 논의하여 개방되었다는 이 길은 대한문 옆을 지나 정동극장까지 이어지는 기존의 덕수궁 돌담길보다 더 아름답고 고즈넉한 매력을 품고 있었다. 가을 공기를 느끼며 느릿느릿 거닐어 본 이 길은 돌담과 마주 보는 영국식 붉은 담장과 단풍, 낙엽으로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담장이 낮고 곡선이 흐르는 모양으로 구성된 게 우리와는 달라서 걸으면서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집에 오니 예상대로 아내는 있었지만, 이야기 상대인 사위가 보이지 않았다. 구순인 장모님이 손수 가꾸신 먹을거리를 강남에 사는 아들집에 갖다 주라고 서둘러 보냈다고 한다. 조금 있으니 딸한테서 전화가 왔다. “짐만 주고 가려고 했는데 오빠가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라고 해서 현관을 들어서니 오빠와 언니가 반가이 맞아주는데, ○○는 오빠를 쳐다보면서 ‘조금 전에는 그냥 가지, 귀찮게 왜 오려고 하는지 몰라라고 하더니 그렇게 반가워?’ 오빠가 민망한지 ‘내가 언제 그랬어.’ ‘아빠는 거짓말쟁이야!’ ○○는 화를 내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는 내가 간다고 해도 나오지도 않아.”

딸이 섭섭할 만도 한데 “나는 오빠 마음을 이해해. 갑작스러운 방문이라 치워야 할 것이 많아서 언니 들으라고 한 말이잖아.” 그러고 보니 어제 라디오에서 들은 통계치가 떠오른다. ‘네덜란드에서 6세부터 77세까지의 남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하루 중 거짓말 횟수가 가장 많은 연령대는 10대로 2.9회고 가장 적은 연령은 6~8세로 0.9회라니 바로 손자의 연령대다.’ 젊으나 늙으나 ‘말하기 전에 두 번 생각하라.’가 금언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긴 연휴였다.


글 / 사외독자 이성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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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를 거의 마쳐가고 있을 때쯤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형 난데요, 오늘 저녁 우리 집에 와 주소.”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 “와 보면 알아요!” 후배 해준이가 저녁 식사 초대를 한 것이었다. 평소 삼겹살 없으면 밥을 못 먹는 친구라 넌지시 한 가지를 물어봤다. “해준아, 삼겹살 좀 사 가랴?” “그냥 오이소! 삼겹살 사 오면 안 돼요.” 뜻밖이었다. 저녁 식사 초대에 빈손으로 가면 머쓱할 듯싶어 물어봤는데, 뜻밖에 단호한 대답에 잠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냥 빈손으로 오이소!” 과연 무슨 일일까? 궁금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던 일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후배의 집으로 향했다. 해준이는 뭐 그리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하며 집 앞까지 마중 나와 있었다. “뭐가 그리 좋으니?” “집에 들어가서 가르쳐 줄게요.” “애인이라도 생겼니?” “애인보다 더 좋은 거.”


해준이의 집을 다시 찾은 지 1년이 되었다. 현관문을 들어서자 익숙한 냄새하며 신발들이 보였다. 바로 엊그제 본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서자, 사뭇 달라진 환경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해준이가 혼자 사는 탓에 1년 전 화장실 풍경은 정리정돈 되지 않고 아무렇게나 배열된 치약, 칫솔로 핀잔을 줬던 기억이 있었는데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우렁각시가 나타나 매일매일 청소하며 관리해 주는 듯한 느낌 이랄까. “해준이 점점 수상해. 살림이라도 차렸니?” “하하하!” “배고프지예! 이리와 저녁부터 드시소.” 경상도 친구라 서울 표준말과 경상도 사투리 뒤섞여 나오곤 했다. “뭘 차려 놓았길래 숨돌릴 틈도 없이 저녁 식사를 권할까?” 주방으로 들어섰다. ‘와! 이게 뭐지?’ 해준이를 떠올리면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그림의 식탁 풍경이었다. 닭 가슴살, 채소 샐러드, 달걀흰자…. “삼겹살은 안 보이네.” “내 삼겹살 끊었소.” “정말?”


식탁에 앉자마자 해준이의 얘기는 시작되었다. 얼마 전, 배가 자꾸 나와 병원에 갔더니 복부 비만으로 진단이 나왔고 의사 선생님이 운동과 채소 위주의 식단을 권유했다는 것이었다. 바로 헬스클럽 가서 등록을 했고, 헬스 트레이너는 닭 가슴살과 달걀흰자 얘기를 꺼냈다는 것이다. 평소 삼겹살을 좋아하긴 했지만 비만은 거리가 멀어서 안심했던 해준이에게 복부 비만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이런 것만 먹고 버틸 수 있겠니?” “일단 뱃살을 빼야 하지 않겠는겨!” 해준이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삼겹살을 과감히 버리고 달걀흰자를 선택했을 때는 비장한 결심이 숨어 있었으리라.


닭 가슴살과 달걀흰자는 TV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나의 눈앞에 나란히 놓이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해준이의 정성이 담긴 저녁 식사를 마쳤다. 늘 밥이나 찌개국이 나의 저녁 식사 메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건 편견이었다. 샐러드 한 접시도 훌륭한 저녁 만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해준이 덕분에 색다른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나도 이제 건강에 대한 생각을 좀 더 진지하게 해봐야겠다. 고마워.” 후배의 저녁 식사 초대는 의외로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줬다.


글 / 사외독자 한상대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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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특히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고성에서 내려다보거나 고속도로에서 마주치는 지붕이 빨간색으로 뒤덮인 광경을 ‘동화 속 작은 마을’로 부르고 싶었다. 그런 광경은 보고 또 보아도 감동적이니 어쩌면 좋으랴! 홈쇼핑의 여행상품을 보다가 설렘을 이기지 못하고 내일이라도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눈에 들어왔다. 해변을 끼고 빨강 지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발칸의 ‘크로아티아’다.


그 풍경에 매료되어 안내하는 대로 여행경비 일체를 일시불로 결재 - 보통은 예약금으로 30만 원을 내고 확정되면 나머지를 낸다 - 했다. 그러나 한 여행사로부터는 해피콜을 받고 다른 곳은 인터넷에서 확인한 결과, 내가 원하는 여행 조건이 아니라 취소했다. 발칸 지역으로 가는 국적기나 직항편이 없다는 것이 첫 번째 결격사유다. 모스크바항공이나 터키항공을 이용해야 하므로 먼저 그들 나라에 도착 후 갈아타기 위하여 몇 시간을 기다린다는 게 여간 난감하고 짜증 나는 게 아니다. 하필이면 자정을 겨우 넘긴 시간에 떠나고 도착하므로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성격도 문제지만, 8일간의 일정이 6박 8일도 아닌 5박 8일이다. 동유럽을 경유해서 여행한다면 문제 될 게 없지만, 갔던 곳을 다시 찾는다는 것은 시간 낭비에다 경비만 가중될 뿐임을 여러 번 경험했기에 고려 대상이 아니다. 다른 요인으로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독방을 써야 하는데, 독방 차지가 인근 국가인 동유럽이나 서유럽보다 고액이라 심기가 불편하다. 현재의 심정은 이렇지만, 빨강 지붕이 자주 눈에 밟히면 모든 악조건을 감수하고 훌쩍 비행기를 탈지도 모른다.


눈을 돌려 우리의 현실을 보면 어떤가. 대도시는 물론 소읍까지 성냥갑을 포개 놓은 것 같은 아파트의 비중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게 걱정이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전에 통계청이 밝힌 2016년 인구주택 총 조사에서 아파트 가구 수가 1,000만 가구를 돌파하여 주택의 60% 이상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느새 숨 막히는 아파트단지 속에 파묻힌 꼴이다. 지금까지는 좁은 땅에 많은 인구가 살아야 하므로 아파트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게 아님을 알 수 있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땅덩이 크기나 인구 밀도가 우리와 비슷한데, 여러 번이나 일본을 다녀왔지만 아파트 단지를 쉽게 볼 수 없었다. 인터넷으로 조사해 보니 아파트는 10%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주상복합형태의 주거지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우리처럼 열광적이지는 않은가 보다.


김준만 교수는 그의 저서 ‘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에서 우리 민족의 아파트 선호현상을 분석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사회문화적 동질성으로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구별 짓기’의 결과물로 아파트 등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대표적인 형태로 강남의 고가 아파트, 학교, 외제 자동차, 명품 등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했다. ‘빨리빨리 문화’, ‘대세 추종 쏠림 현상’ 등도 한몫 했다고 적고 있다. 도시 중산층이 더는 아파트로 ‘구별 짓기’ 를 하지 못한다는 확신을 가지면 아파트 단지는 급격히 사양길로 들어설 것이라는 예측도 하였다. 강남지구는 인프라가 확보되어 교통이 편리하고 문화시설이 집중된 지역이라 아파트 가격이 비싼 줄로만 알았는데 주거지를 재산으로 생각하는 심리까지 있다니 곤혹스럽다.


그나저나 60년 뒤, 손자가 삭막한 아파트 단지에 갇혀 살면 어쩌나 하다가도 한 달이 멀다 하고 변하는 세상인데 그때쯤에는 세계가 하나이거나 대륙 별로 통일될 게 아닌가! 어디든 원하는 지역에 살수도 있고, 하루에도 여러 곳을 여행할 수 있을 텐데 무엇이 아쉬울까! 냉동 처리되었다가 그때쯤 해빙되어서 생활하는 모습을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 망상을 품는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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