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들에게 물었습니다.

“시제를 보고 자유롭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5행시로 지어주세요”

 

재치 있는 의견을 주신 일곱 분의 사원께는 쌀쌀한 가을을 포근히 덮어줄 담요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당 선 작


뜨 : 뜨거웠던 청춘 끝자락에

거 : 거짓말처럼 다가온

운 : 운명 같은 사람

단 : 단란한 가정 이뤄 도란도란 아이들

합 : 합창 소리 들으며 행복합니다

> 품질보증부문 품질보증2팀 김미선 사원


뜨 : 뜨거운 피와 정열을 가진 그대들이

거 : 거대한 무언가에 이끌려

운 : 운명처럼 앰코에 모였네

단 : 단결하듯 하나 되어 힘을

합 : 합친다면 천년만년 영원하리!

> K4 제조1부문 제조2팀 김영일 대리


뜨 :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거 : 거룩했던 명장 이순신의 영화 (명량을 보고 난 후)

운 : 운명은 하늘에 맡겨둔 채

단 : 단 열두 척의 배로

합 : 합심하여 왜군을 무찌른 이순신 장군이 자랑스럽다

> K4 제조1부문 제조3팀 김지연 사원


뜨 : 뜨거운 눈물을

거 : 거두시던 아버지

운 : 운 좋게 앰코에

단 : 단 한 번의 기회를 잡아 효도

합 : 합니다

> K4 제조5팀 김현식 사원


뜨 : 뜨는 해를 보는듯한 벅찬 감동을 품고

거 : 거대한 파도를 헤치고 아시아의 남쪽으로 뻗어 가는 야망처럼

운 : 운집된 인파를 이끌어갈 리더십을 발휘하여

단 : 단단하게 성장할 앰코를 위해

합 : 합쳐야 할 우리의 마음들!

> K4 제조1부문 제조3팀 이존구 과장


뜨 : 뜨겁지는 않지만

거 : 거짓 없고

운 : 운명같이 이어져

단 : 斷(끊을 단) 끊어지면 아픔이고

합 : 合(합할 합) 합해지면 기쁨인 가족愛!

> K4 제조1부문 제조3팀 전민혜 사원


뜨 : 뜨겁고 강렬한 여름 태양도

거 : 거대한 태풍과 폭우도 우리의 의지를 막지 못할 것입니다

운 : 운에만 기대는 것보다는

단 : 단 1%의 오차도 없는 치밀함과 전 사원의 최선의 노력을 바탕으로

합 : 합심하여 우리의 목표를 꼭 성취합시다!

> 물류부문 K4 물류팀 최덕룡 차장




우 수 작


뜨 : 뜨거운 함성이 가득하고

거 : 거리에는 붉은 악마의 열띤 응원이 넘쳐난다

운 : 운명을 결정짓고 지난 수년간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단 : 단 한 번의 결정적 기회!

합 : 합심하여 전 국민이 승리를 기원하는 월드컵 결승전! 파이팅!

> 품질보증부문 품질보증2팀 박영은 사원


뜨 : 뜨내기들은 가라

거 : 거침없이 헤쳐나가

운 : 운명을 바꾸며 세상에

단 : 단비 같은 존재가 되어 어디서나

합 : 합의하지 않고 꿈을 키워가는 젊은 그대들이여, 뜨거운 단합을 보여주자!

> 물류부문 K4 물류팀 박윤정 사원


뜨 : 뜨거운 열정으로 일궈낸 우리의 앰코!

거 : 거의 모든 시간을 바친 우리의 앰코인!

운 : 운이 좋았다고 하지만 앰코인 노력과 땀이 없었다면

단 : 단결 단합이 없었다면

한 : 한 세대가 지나가도 일궈내지 못했을 앰코 자랑스런 앰코인 화이팅!

> K4 제조4팀 방승민 과장


뜨 : 뜨거운 여름이

거 : 거의 사그라질 때쯤에

운 : 운동장에 아이들 시끌벅적 소리

단 : 단풍잎을 곱게 물들이는 가을이 오는 소리인가

합 : 합니다

> 사외독자 이승호


뜨 : 뜨뜻한 아래목도 없는

거 : 거실에 앉아 있자니

운 : 운동장 한가운데 겨울바람을 맞는 기분이 든다

단 : 단 한 번으로 담요가 당첨된다면 가을에서 겨울까지

합 : 합쳐서 가장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을 텐데!

> K4 제조4팀 정영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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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에바 두아르테 데 페론(María Eva Duarte de Perón, 1919년 5월 7일 ~ 1952년 7월 26일), 아니 에비타(Evita)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인물이 있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것 말고는 뚜렷한 직책이 없었는데도 오늘날 세계의 많은 사람이 에비타를 기억한다. 살아 있을 때 이미 아르헨티나의 신화가 되었고,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과 마돈나가 출연한 영화를 통해서 세계적 전설로 남은 에비타를 소개한다.


▲ <사진 1> 에바 페론

출처 : australfilms.com


“아르헨티나여, 날 위해 울지 말아요(Don’t Cry For Me Argentina).”라고 노래하는 여인의 음성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세계적인 뮤지컬 <에비타>에 나오는 아주 유명한 곡이니. 에비타는 에바 페론의 애칭이고, 앞의 곡은 칭송과 욕설을 한몸에 받았던 그녀의 심경을 절절하게 노래하고 있다. 달콤한 부와 명성을 누렸으면서도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그녀의 짧고 화려한 삶을 들여다보자.


부와 명성은 내가 끌어들인 게 아니에요. 세상은 내가 바랐다고 여기지만, 그것들은 허상이에요. 약속했던 해결책이 되지 못했죠. 해답은 항상 여기 있었어요. 나는 당신들을 사랑해요. 당신들도 나를 사랑하길 원하죠. 날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


And as for fortune, and as for fame I never invited them in. Though it seemed to the world they were all I desired. They are illusions. They're not the solutions they promised to be. The answer was here all the time. I love you and I hope you love me. Don't cry for me Argentina.



동영상 <Don't Cry For Me Argentina - Madonna - Lyrics>

출처 : 유튜브 (http://youtu.be/XYymFWsBxk0)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지만 세상에는 사랑받고 싶어


1919년,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에서 마리아 에바 두아르테가 태어났다. 에바의 아버지는 작은 마을 로스톨도스의 부유한 농장주인 후안 두아르테였다. 그러나 에바의 어린 시절은 풍족하지 못했다. 어머니 후아나 이바르구엔이 아버지의 정식 아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에바는 후안과 후아나 사이의 넷째 딸이었고, 아래로 여동생이 한 명 더 태어났다. 에바와 자매들은 아버지에게 법적인 딸로 인정받지 못했고, 결국에는 버림을 받았다. 어머니와 다섯 딸은 ‘후닌’이라는 곳으로 거처를 옮긴 후, 단칸방에서 가난하게 지내야 했다.


▲ <사진 2> 물방울 모양의 수영복을 입은 에바

출처: en.wikipedia.org


소녀 시절의 에바는 어머니 쪽 친척들의 도움으로 살며 학교에 다녔다. 예쁘장한 외모의 에바는 그에 걸맞은 재능도 가지고 있었다. 학교 연극이나 연주회에서 빛을 발했고, 아예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1935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진출해 모델, 연극배우, 영화배우, 라디오 성우 등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나간다. 에바 페론에게는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얼굴을 무기로 밑바닥을 전전하던 가난하고 악착같은 소녀 이미지가 덧씌워 있다. 그러나 절반 정도는 사실이 아니다. 에바는 스무 살 무렵 이미 유명한 연예인으로 자리 잡았었고, 라디오 방송국을 소유할 만큼 경제적으로도 성공했다.


후안 페론과 에바의 첫 만남은 1944년에 이루어진다. 당시 후안은 아르헨티나의 노동부 장관이었고 같은 해 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그 해에는 6,000명 이상이 숨진 산후안 대지진이 발생했는데, 후안 페론이 기획한 이재민을 위한 모금회에 에바가 참석했다. 스물다섯의 아름다운 아가씨는 단숨에 후안을 사로잡았고, 이듬해 두 사람은 정식으로 결혼한다. 후안에게는 사별 후 두 번째 결혼이었고 그는 에바보다 스물네 살이 많은 중년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천사


에바 페론이 된 에바는 남편과 함께 대통령 선거를 준비한다. 후안 페론은 육군 대령 출신으로, 군사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노동조합이 그의 주요한 지지 기반이었고, 에바와의 결혼으로 대중적인 인기까지 얻게 된다. 이때부터 에바는 어린 시절의 애칭 ‘에비타’로 널리 알려진다. 후안은 다른 군부 세력들의 견제를 받아 체포되는 시련을 잠시 겪고 나서 1946년 과반이 넘는 득표를 통해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 된다.


▲ <사진 3>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는 에바

출처: australfilms.com


후안과 에바 페론의 집권기에 대한 평가는 아직 논란의 대상이다. 페론 정권은 1947년 7월 아르헨티나의 외채를 모두 갚았다. 페론 집권기 동안 병원 4,000여 개, 학교 8,000여 개를 설립했고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했다. 이 시기에 빈부 격차가 줄어들고 양성평등이 확립되었다. 에바는 이 기간에 영부인이라기보다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부통령에 가까운 역할을 했다. 에바 페론 재단을 만들어 각종 자선사업을 지원했고, 여성페론당을 통해 여성운동에도 이바지했다.


빛나는 영광 뒤에는 그림자도 짙다. 페론 집권기 이후 경제 대국이던 아르헨티나의 경제성장률이 형편없이 떨어졌다는 것이 그 증거다. 또한, 페론 부부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라는 구호가 독재를 위한 허울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페론 부부는 스스로 자신들을 우상화했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 그러던 1952년, 후안 페론은 재선에 성공했지만 에바는 자궁암과 척수백혈병으로 급작스레 세상을 떠난다. 그녀 나이 불과 만 33세의 일이다.


동영상 <Eva Peron's Final Speech (1951)>

출처 : 유튜브 (http://youtu.be/Dr7ymWtnHWc)



죽어서도 남편의 후처까지 대통령으로 만든 여성


에비타의 죽음은 아르헨티나 전체를 들썩이게 했다. 장례는 한 달이나 치러졌고, 에바의 시신은 미라로 만들어졌다. 후안 페론은 에바의 죽음 이후 빠르게 몰락했다. 페론 부부의 허세와 부패가 서서히 드러난 탓일까. 후안 페론의 탄압에 분노한 가톨릭계가 군부와 손을 잡았고, 군부에 의해 대통령에서 쫓겨난 후안은 1955년 망명길에 올랐다. 새 군부는 살아 있는 후안 페론뿐 아니라 죽어 버린 에바 페론도 무서워했다. 그녀의 시신은 탈취되어 여기저기를 떠돌았고, 나중에는 남편조차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에바 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서였다.


아르헨티나의 정치경제는 점점 도탄에 빠졌고 호시절에 대한 막연한 향수는 더욱 강해졌다. 후안 페론은 망명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1973년에 다시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 된다. 그의 새 아내인 이사벨 페론이 부통령으로 지명되어 옛날의 에바처럼 후안과 함께했다. 대통령 자리에 오른 지 열 달도 안 돼 후안 페론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이사벨이 그 자리를 잇는다. 이사벨은 국민의 지지를 모으기 위해 남편의 전처인 에바의 시신을 대통령 관저로 옮겼다. 그러나 이사벨 페론은 다시 쿠데타로 대통령직에서 2년도 안 돼 물러났다. 그제야 에바 페론의 시신도 24년 만에 가족 묘지에서 쉬게 되었다.


▲ <사진 4> 후안 페론과 에바 페론

출처 : wikimedia.org 


‘불꽃 같은 삶’이라는 물린 문구가 에바 페론의 일생만큼 어울리기도 어려울 것 같다. 사생아, 밑바닥 삶, 연예인, 영부인, 짧은 생애, 그리고 죽어서도 이용당한 시신까지, 뭇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들이다. 에비타는 세상의 사랑을 받겠다는 야심이 있었고, 죽는 순간까지도 그에 따르는 노력을 했다. 자신을 업신여긴 사람들에 대한 복수에 가차 없었고, 당시 남미와 유럽 사교계의 여왕답게 사치를 즐기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아르헨티나의 아이들, 빈민과 노동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들을 위해서 활동하기도 했다. ‘거룩한 악녀’ 또는 ‘비천한 성녀’라는 모순된 설명이 잘 어울리는 것은, 살펴본 바와 같이 그녀의 삶 자체가 모순을 품고 있어서다.


에비타처럼 극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우리 삶 대부분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착각하고 있어서 그렇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그다지 일관되지 않은 편이다. 어느덧 한 계절이 넘어가고 있다. 삶의 모순과 화해하며 자신에게는 겸손해지고 타인에게는 너그러워지는 가을 되시길.


동영상 <1951-1952 The Final Year of Evita Peron>

출처 : 유튜브 (http://youtu.be/4JjZ3VEp8mw)



글쓴이 김희연은 _ 사보와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자유기고가다. 사회, 문화, 경제 분야에 두루 걸쳐 갖가지 종류의 글을 쓴다. 글쓰기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행운을 얻어서 늘 고마운 마음을 품은 한편으로, 쓸데없는 글로 인해 웹이나 인쇄매체에 들어가는 종이와 바이트, 그리고 독자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 외부필자에 의해 작성된 기고문의 내용은 앰코인스토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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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합의 노래, 뜨거운 가슴으로 모여라


단합(團合)


영어 : unity, unite, join

일어 : だんけつ(団結, 단결)

중어 : tuánjié (團結, 단결, 화합)


[활용]

단합만

 

[파생어]

단합하다, 단합되다

 

[같은 말]

단결 : 많은 사람이 마음과 힘을 한데 뭉침 (團結)

 

[순화]

뭉침


Posted by  Mr.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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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미국의 서른두 번째 대통령이다. 37대부터 40대까지 네 번 당선되어 사망 직전까지 무려 12년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한 그의 임기 중에는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이 들어 있었다. 어려운 시기에 국민에게 사랑받은 대통령의 행적을 좇아가며, 책임 있는 위치에서 주변과 잘 소통했던 그의 모습을 찾아보고 배워보자.


▲ <사진 1> 1933년의 루즈벨트

출처 : www.en.wikipedia.org


미국 대통령제는 4년 임기에 중임제를 택하고 있다. 아무리 인기가 높아도 8년이 지나면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년 1월 30일 ~ 1945년 4월 12일)는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4선 대통령이 되어 12년간 임기를 이어갔다. 4년 중임제는 그의 사후에야 논의가 되어 1951년 수정헌법에 채택되었다.


독재나 유신이 아닌 선거로 장기 집권을 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루스벨트는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이라는 유례 없는 난국을 거쳐야 했다. 그 결과, 7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미국인들에게 존경받는 정치 지도자로 기억되고 있는 그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명문가 자제, 루스벨트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1882년 미국 뉴욕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제임스 루스벨트는 철도회사 부사장에다가 그의 가문은 대대로 유복한 지주였다. 그의 집안은 민주당 지지자였지만 먼 친척뻘인 시오도어 루스벨트는 프랭클린이 탄생한 해에 공화당 소속으로 뉴욕 주 하원의원이 된다.


이 시오도어는 훗날 대통령이 되었고, 루스벨트 가문은 프랭클린까지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하게 된다. 제임스 루스벨트는 전처인 레베카 하워드에게서 장남을, 후처인 사라 델러노에게서 프랭클린을 두었다. 어머니 사라는 자신의 유일한 자식인 프랭클린을 엄하게 키웠고, 프랭클린은 어머니를 무서워했다고 전한다.


▲ <사진 2> 1899년, 부모님과 함께한 루즈벨트

출처 : www.en.wikipedia.org


부유한 집안에서 개인교습을 받으며 자란 프랭클린이 정식으로 학교에 다니게 된 때는 14살 무렵이다. 명문 사립학교에 다니다가 하버드대에 진학해 정치와 역사를 전공하고 컬럼비아 로스쿨까지 마쳤다. 이어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조카딸인 엘리너와 결혼하고, 비슷한 시기에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다.


▲ <사진 3> 1904년, 루즈벨트와 그의 아내 안나 엘리너의 모습

출처 : www.en.wikipedia.org


1910년 아직 젊은 나이의 프랭클린은 뉴욕 주 상원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하고, 이후 재선에 성공해 우드로 윌슨 대통령 시절에는 해군성 차관보까지 지냈다. 이윽고 정치에 들어선 지 10년 만에 민주당 부통령 후보에 지명됐을 때까지, 프랭클린의 인생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그럭저럭 좋은 성적을 유지하던, 아주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었던 부잣집 도련님이 워싱턴 중심부에서 정치력과 사교술을 익힌 촉망받는 차세대 정치 지도자가 된 것이다.



부목과 휠체어에 의지한 대통령


부통령으로 지명된 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프랭클린은 다음 선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의 정치 인생은 이제 막 꽃을 피우려 했다. 그러나 1921년 여름 프랭클린은 소아마비에 걸려 두 다리에 장애를 입는다. 당시 소아마비는 예방할 수 없는 장애였고, 소아마비 백신은 1959년에야 발명되었다. 프랭클린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고 192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 부목을 짚고 나섰다. 이 모습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남 앞에서 티를 내지 않던 프랭클린의 병세는 그의 사후에야 제대로 알려지게 된다.



▲ <사진 4> 1941년, 휠체어에 앉은 루즈벨트의 모습

출처 : www.en.wikipedia.org


1928년, 뉴욕 주지사에 당선되면서 프랭클린의 재기는 완전히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프랭클린의 개혁 정책은 환영을 받았으며, 1930년 재선으로 다시 주지사에 당선된다. 이때의 호평을 바탕으로 1932년에는 마침내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지명된다.


프랭클린이 대통령 후보가 되기까지는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1929년 뉴욕 주식시장이 붕괴하며 미국 자본주의는 종말을 고하는 듯 보였고, 소비 위축, 임금 감축의 공황 상태에서 국민들은 연방 정부의 신속한 대응을 원하고 있었다. 당내에서 4차까지 가는 경선 끝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된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국민의 열망을 안고 1932년 드디어 미국 대통령이 된다.



뉴딜 정책과 노변담화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경제 정책은 흔히 ‘뉴딜 정책(New Deal Policy)’이라고 불린다. 경제 부흥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섰고, 노동자 권리 향상, 테네시 계곡 개발 공사, 실업자 대책과 사회 보장책 등을 실시했다. 대외적으로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열강의 침략 반대, 그리고 국가 간 우호와 평화를 강조했다.


프랭클린의 경제와 외교 정책에는 여러 가지 평가가 따라붙는다. ‘뉴딜 정책’이 실제 일으킨 효과에 견줘 지나치게 칭송받아 왔다는 평가도 있고, 소련 스탈린 정권에 대한 과신으로 유럽과 한일문제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반짝 경기상승에 힘입어 1936년 재선을, 세계대전으로 인한 군수 증대와 경기 활성화를 등에 업고 1940년 3선을 통과한다.


1944년, 2차 세계대전은 이미 그 끝을 예비하고 있었고 프랭클린의 건강도 급격히 악화된다. 결국 4선 대통령이 된 프랭클린은 이듬해 독일의 패전 선언을 눈앞에 두고 뇌출혈로 숨을 거둔다.


프랭클린은 정적들로부터 인기 영합주의라는 비판을 들을 정도로 국민들과 소통을 중시한 대통령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노변담화(爐邊談話, Fireside Chat)’다. 프랭클린은 난롯가에서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처럼 국민을 상대로 라디오 연설을 했다. 라디오는 당시 최신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다. TV뿐 아니라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범람하는데도 국민과 소통하는 방법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오늘날의 정치인들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여담으로, 프랭클린은 취미 삼아 우표 수집을 했다고 한다. 함께 우표 수집을 했던 친구 제임스 A. 팔리를 재임 중에 우정장관에 임명한 적도 있다. 어머니날에 발행한 기념우표를 직접 도안하고, 시험인쇄에는 직접 서명을 넣기도 했다. 대통령의 모습이 담긴 우표도 발행되었다. 우표가 널리 쓰이던 시기인지라 이런 우표들은 세계대전과 대공황 와중에도 미국은 건재하다는 메시지를 주었다고 전한다.


프랭클린이 남긴 연설들은 단호하고 분명한 내용으로 유명하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첫 번째 대통령 취임 연설은 불안한 국민들의 마음을 잠재웠다. 3선 후 1941년 의회에서 발표된 연두교서에서는 이른바 ‘네 개의 자유’로 정국을 돌파했다.


▲ <사진 5> 라디오에서 노변담화를 하는 루즈벨트

출처: theweek.com


“우리의 영구적 평화는 다른 나라 국민들의 자유를 희생으로 하여 살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미래를 위해 애쓰고 있는 그 같은 세계가 네 개의 긴요한 인간 자유에 기초한 바탕을 두기를 고대합니다. 첫째는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의 연설과 표현의 자유입니다. 둘째는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모든 사람이 자기 방식대로 신을 믿을 수 있는 자유입니다. 셋째는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로, 세계적 관점에서 말한다면 이것은 세계 모든 지역의 모든 국가에서 그 주민들을 위한 건강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모든 국가에 확보하려는 경제 상호 이해를 의미합니다. 


넷째는 공포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생략) 이 국가는 신의 가호 하에 자유에 대한 신념과 수백만의 자유 시민의 손과 머리와 심장에 그 운명을 맡겼습니다. 자유는 어디에서든 인간 권리의 최고권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지지는 그들의 권리를 얻으려 하거나 혹은 그것들을 지키려고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갑니다. 우리의 힘은 우리의 적을 통일하는 데 존재합니다. 이 고귀한 개념을 향하여 승리를 제외하고는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영화 <명량> 흥행과 더불어 이순신 장군을 그리워하거나 방한 이후 프란치스코 교종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때아닌 장군과 교종의 인기를 통해, 이 암울한 시기를 한시바삐 타개하고 싶어 하는 우리 국민들의 희망과 기대를 읽어낼 수 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 대해 미국인들이 품고 있는 존경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루즈벨트 대통령 연설 동영상 보기


동영상 <The Four Freedoms - Franklin D. Roosevelt>

출처 : 유튜브 (http://youtu.be/5iHKtrirjlY?list=PL1Pup65lYiut_5PmSO6pLZbftM6qOsMS5)



글쓴이 김희연은 _ 사보와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자유기고가다. 사회, 문화, 경제 분야에 두루 걸쳐 갖가지 종류의 글을 쓴다. 글쓰기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행운을 얻어서 늘 고마운 마음을 품은 한편으로, 쓸데없는 글로 인해 웹이나 인쇄매체에 들어가는 종이와 바이트, 그리고 독자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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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노래,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소통(疏通)


영어 : communication, interaction

일어 : 疎通 (そつう)

중어 : 沟通 (gōutōng), 疏通 (shūtōng)


[명사]

1. 사물이 막힘이 없이 잘 통함.

2. 의견이나 의사 따위가 남에게 잘 통함.


[파생어]

소통되다, 소통하다


[비슷한 말]

왕래, 교류, 교통


[예문]

- 그 일이 응어리가 되어 두 사람 사이의 의사나 정의 소통이 예전처럼 부드럽지가 못한 건 벌써부터였지만 이번처럼 격렬하고 적나라하게 따진 적은 없었다.

(출처 : 박완서 「미망」)



Posted by  Mr.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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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들에게 물었습니다.

“시제를 보고 자유롭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4행시로 지어주세요.”

 

재치 있는 의견을 주신 일곱 분의 사원께는 힘이 아주 센 이동식 메모리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당 선 작


소 : 소중한 노사관계의
통 : 통합과 소통은
해 : 해무와 같이 어지러운
요 : 요즘 이 시대의 위기를 이기는 힘이 아닐까?
> 시설부문 김정학 과장

 

소 : 소리 없이 울려 퍼지는
통 : 통곡의 애가(哀歌)
해 : 해마다 찾아오는
요 : 요요
> 경영기획부문 심차민 사원

 

소 : 소리를 최대한 죽이고서
통 : 통금시간이 지나 집에 들어왔다.
해 : 해~햇(^^) 성공이다 안 혼나고 잘 수 있겠다
요 : (잡았다) 요놈!
> 기술연구소 연구1팀 강상구 사원

 

소 : 소원을 말해도 돼? 그럼~
통 : 통통한 내 몸매를 날씬하게 하여
해 : 해맑은 미소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요 : 요술 지팡이를 내게 줘~잉!
> K1 제조2팀 임용철 차장

 

소 : 소리만 친다고 해서
통 : 통할 리가 없는 소통
해 : 해맑은 미소로
요 : 요청하니 만사형통
> ICS부문 ICS팀 나선희 사원

 

소 :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
통 : 통 크게 웃어 젖히고
해 : 해시시 웃고 다녀라
요 : 요행이라도 좋은 일을 맞을지니
> 경영기획부문 심순용 과장

 

소 : 소중한 사람들이여
통 : 통기타의 잔잔한 음률과 리듬에 맞춰
해 : 해맑은 미소와 밝은 희망이 우리 모두 함께
요 : 요즈음 힘든 시기 잘 이겨내 보아요!
> K4 제조1부문 제조3팀 권정태 과장

 

 

우 수 작


소 : 소신에겐 아직 열두 킬로그램의 뱃살이 남아 있사옵니다
통 : 통 팬츠로 가려보아도
해 : 해마다 늘어나는 뱃살과 재검을 감당키 어려워
요 : 요원(遙遠)한 명량에서 삼십삼 퍼센트의 체지방을 격퇴하도록 하겠나이다
> K1 제조1팀 오진병 과장

 

소 : 소고기를 살짝 익혀서 먹으면 굿 (>_<)b
통 : 통통한 삼겹살도 쌈장에 찍어 먹으면 짱 (/*_*)/
해 : 해산물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_-)p
요 : 요즘 슬슬 나오기 시작하는 전어구이는 너무 좋아요 (^_^)
> 기술연구소 개발2팀 윤석우 대리

 

소 : 소중한 내 월급
통 : 통장에 찍히기만 오매불망하였거늘
해 : 해도 해도 너무하는구나
요 : 요놈! 뭐가 부끄러워 얼굴만 빼꼼 내밀고 사라지느냐!
> K5 TFT 심영우 사원

 

소 :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통 : 통하는 마음을 가진 당신은
해 :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못생겼지만
요 : 요리조리 살펴보면 미운 구석 없이 다 좋아요
> ATK 생산기획팀 홍인기 대리

 

소 : 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비에
통 : 통나무 장작은 적시어져 희나리가 되어가지만
해 : 해를 품은 캠퍼의 감성엔
요 : 요란한 연기와 불꽃이 되어 한 줌의 재만 남겨놓았네
> 기술연구소 연구1팀 김용준 과장

 

소 : ‘소원이 뭐에요?’라고 물으면
통 : ‘통일이요.’라고 귀엽게 말하는
해 : 해맑은 미소와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요 : 요정인 줄 착각하게 하는 우리 딸
> K1 제조2팀 박재규 과장

 

소 : 소리 나지 않게, 조심조심 현관 밖으로 나가서
통 : 통근 셔틀을 타고 오늘도 출근합니다. 퇴근길,
해 : 해맑게 웃으며 뛰어오는 우리 딸,
요 : 요거 요거~요놈 때문에 삽니다
> 고객만족1팀 최강진 과장

 

소 : 소고기를 먹어도 힘이 안 나고
통 : 통삼겹살을 먹어도 지친 늦여름에는
해 : 해 질 녘 한강공원에서 가족들과 함께
요 : [요기요] 앱으로 시원한 치맥 시켜먹고 힘내요!
> 기술연구소 연구2팀 김지훈 사원

 

소 : 소외된 이웃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봐요
통 : 통하는 점이 많을 거에요
해 : 해볼수록 서로 가까워짐을 느끼고 서로에게 위안이 될 거에요
요 :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내가 먼저 이웃에게 다가가는 건 어떨까요?
> K1 제조2팀 장경숙 사원

 

소 : 소대에 배치받은 이후에
통 : 통 소식이 없어 엄마의 마음이 애가 타는구나
해 : 해가 뜨나 해가 지나 네 생각뿐인데
요 : 요즘 가뜩이나 시끄러운 군 생활은 잘하고 있는지? 소식 좀 다오!
> ATK 생산기획팀 정철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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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들에게 물었습니다.

“시제를 보고 자유롭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4행시로 지어주세요.”

 

재치 있는 의견을 주신 일곱 분의 사원께는 즐거운 음악과 함께한 여름 보내시라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PISnet

 

 

< 당 선 작 >


특 : 특별하게 요구하는 것도 없고
급 : 급하게 해달라는 것도 없는데
칭 : 칭얼대기만 하는 우리 갓난아기
찬 : 찬찬히 들여다보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얼굴로 아빠를 바라보네
> 물류부문 K3 물류팀 권동원 과장

 

특 : 특별한 인생을 살고 싶으신가요?
급 : 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칭 : 칭찬을 해주세요 나 자신을 위해서
찬 : 찬스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니까요
> K3 TEST제조팀 김보경 사원

 

특 : 특별한 재주 없이 입사해 성실히 일을 배우고 있지요 때론
급 : 급한 성격에 일 처리가 미숙해 선배에게 혼나기도 했지요 하지만
칭 : 칭찬 한마디로 일의 보람을 느꼈고 이 과정들이 내가 성장하는
찬 : 찬스라 생각하며 입사 1년 차 더욱 열심히 해볼까 합니다
> K3 TEST기술팀 이선종 사원

 

특 : 특별한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급 : 급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같이 하는 동료들!
칭 :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칭찬합시다, 여러분!
찬 : 찬사를 받아 모자람이 없는 여러분을!
> K3 TEST기술팀 정진웅 차장

 

특 : 특별한 날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어도 마음대로 쉴 수 없고,
급 : 급하게 아이들이 병원 갈 일이 생겨도 함께 가줄 수도 없으며,
칭 : 칭송받을 만한 업무도 직급도 월급도 아니어서 늘 미안한 마음뿐이지만,
찬 : 찬찬히 기다려주며 나를 신뢰해주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기에,
내 인생은 여전히 찬란하기만 합니다
> K3 보안실 박주환 사원

 

특 : 특별한 회사
급 : 급속도로 성장해 나아가고
칭 : 칭찬이 만발한 회사
찬 : 찬란한 우리 앰코코리아입니다 ♡
> 물류부문 K3 물류팀 김선영 사원

 

특 : 특식이 나오는 날이면 가족이 생각난다
급 : 급하게 아침을 먹고 출근하는 아내에게 미안해진다
칭 : 칭찬에 인색하던 내 모습에 아들놈에게도 미안해진다
찬 : 찬란한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해 가족에게 봉사해야겠다
> 고객만족부문 고객만족1팀 이기원 과장

 

 

<우 수 작 >


특 : 특별히 관심 가져야 할 품질!
급 : 급한 마음에 인한 품질 사고보단 정확한 품질로 고객에게
칭 : 칭찬받아 고객에게 품질력이 강한 앰코의 좋은 인식을 주어
찬 : 찬란한 앰코가 될 수 있는 앰코인이 됩시다. 앰코, 파이팅!
> K3 TEST장비기술팀 김충만 사원

 

특 : 특별한 사람이었지요
급 : 급하게 나온 모습에
칭 : 칭칭 감아올린 긴 머리가
찬 : 찬 공기도 훈훈하게 만들었어요
> K3 TEST제조팀 박순원 사원

 

특 : 특별하게 할 일이 유난히 많은 날에는
급 : 급한 마음일랑 잘 가다듬어 심사숙고 후 행하면
칭 : 칭칭 묶어 있는 것 같았던 수많은 일이
찬 : 찬찬히 쉽게 해결된답니다
> K3 보안실 김태복 조장

 

특 : 특투툭 하루살이 유리창에 부딪힐 때
급 : 별주부 등짝사이 달빛이슬 맺혀갈때
칭 : 칭기즈 소설책을 옆에끼고 열차올라
찬 : 찬동한 마누라와 붉은빛깔 새벽여행
> 품질보증부문 품질보증1팀 백진호 대리

 

특 : 특별히 잘하는 게 없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급 : 급할 필요 전혀 없어요
칭 : 칭찬과 인정을 받지 못해도 괜찮아요
찬 : 찬바람이 불어오는 날씨에도 늘 우리 곁에 있어주는 가족이 있잖아요, 힘내세요!
> K3 TEST제조팀 이지행 사원

 

특 : 특별한 특출난 앰코인이 되어서
급 : 급여도 연봉도 많이 받고 싶습니다
칭 : 칭찬도 꾸중도 달게 받겠습니다
찬 : 찬란하게 빛나는 나의 젊음을 앰코와 하겠습니다!
> 물류부문 K3 물류팀 김현정 사원

 

특 : 특별하게 시작된 친구들과의 중국 여행
급 : 급이 다른 우리 우정
칭 : 칭다오 맥주 한잔으로 시원하게 마무리!
찬 : 찬란한 추억으로 남으~리
> 물류부문 K3 물류팀 유상희 사원

 

특 : 특별히 예쁜 구석이 없는 것 같은데
급 : 급하게 훑어봐서 그런가?
칭 : 칭얼칭얼 내 동기 세희
찬 : 찬찬히 다시 보니? 귀요미!
> K3 TEST기술팀 이지영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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