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밤하늘을 올려다보시나요? 별을 보기 힘든 도시에서도 달만은 유유히 우리가 있는 곳을 비춥니다. 45년도 더 전에 인간은 이미 달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선녀도 옥토끼도 없었습니다만, 새침한 눈썹달도 넉넉한 보름달도 변함없이 어여쁘고 신비롭지요. 오늘의 주인공 닐 암스트롱은 인류 최초로 달을 밟은 사람입니다. 우주 비행사들은 적은 인원으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각자 항공 엔지니어링에 관한 지식도 갖추고 있어야 한답니다. 이번 기회에 닐 암스트롱의 생애뿐 아니라 그와 함께 달을 밟은 사람들, 그리고 아폴로 11호를 둘러싼 음모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우주 비행사로 이름을 남긴 닐 암스트롱은 평생 비행과 연관된 삶을 살았습니다. 1930년 8월 5일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전투기와 비행기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관련 진로를 선택해 퍼듀대학교에서 항공기관학을 전공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해군 비행학교에 진학, 해군 항공대 조종사의 꿈에 다가섭니다.


▲ Nils M. Solsvik Jr.

사진 출처 : http://goo.gl/B9kfB7


닐 암스트롱은 한국과도 인연이 있는 인물입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비행학교를 휴학하고 전투기 조종사로서 참전했습니다. 휴전까지 78번이나 출격했는데, 대공포에 격추될 뻔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훗날 아폴로 11호에 탄 세 명의 우주인들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고, 암스트롱은 미국 평화봉사단 자문위원으로 한 번 더 찾아옵니다. 다시 앞으로 이야기를 돌려, 암스트롱이 비행학교에 복귀해 1955년 졸업을 맞이한 때로 가보겠습니다. 암스트롱은 실전에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비행사였기에 1960년까지 고속비행기지에서 일하며 900회가 넘는 시험 비행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냉전, 소리 없는 우주 전쟁의 시기


닐 암스트롱이 활약하던 시기에는 미합중국과 소비엔트연방, 다시 말해 미국과 소련이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세계대전은 끝났지만 경제, 군사, 정치 모든 영역에서 미국을 위시한 자유주의 진영과 소련이 앞장선 공산주의 진영은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우주 정복’은 미국과 소련이 사활을 걸고 나선 분야였습니다. 우주 항공 분야는 최첨단 과학기술의 집약체였기에 여기서 이기는 나라는 명실상부한 최강국이 될 수 있었으니까요.


사진 출처 : http://goo.gl/o4yz4y


처음에는 소련이 앞선 것처럼 보였습니다. 1957년 10월 소련 당국은 인류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했습니다. 충격을 받은 미국은 부랴부랴 5개월 뒤인 1958년 3월 익스플로러 1호를 발사했습니다. 이때 미국항공우주국, 그러니까 우리 귀에도 친숙한 나사(NASA)가 설립됩니다. 최초의 우주 비행체 발사 타이틀을 소련에 빼앗긴 미국은 생명체를 우주에 보내는 계획에 착수합니다. 소련도 호락호락하지 않아 이 틈에 강아지, 원숭이, 새가 우주에 가게 됩니다. 어느 국가가 먼저 사람을 우주에 보내느냐의 경쟁에서 또 소련이 이깁니다. 1961년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지구궤도를 돌아온 것이지요. 미국도 한 달 뒤 앨런 셰퍼드를 지구궤도에 보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미국도 소련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엄청난 돈이 뿌려졌고, 과학기술이 집중되었고, 무엇보다 많은 생명이 죽기도 했습니다. 우주 전쟁의 최종 고지는 달 착륙이었습니다. 미국은 소련보다 먼저 달에 가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앨런 셰퍼드를 비롯해 우주인들을 비행시킨 계획은 ‘머큐리(Mercury)’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것입니다. 머큐리 계획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자 미 당국은 ‘제미니(Gemini)’ 계획으로 넘어갑니다. 제미니는 2인의 비행사가 우주 유영을 포함한 비행을 성공한 후 돌아오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계획인 만큼 최고의 우주 비행사들이 필요했고 닐 암스트롱은 이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4년간의 적응 훈련을 마친 닐 암스트롱은 제미니 계획에 투입되어 제미니 8호의 선장으로 처음 우주비행에 성공했습니다. 1966년 3월의 일입니다. 제미니 계획은 12호까지 진행되어 애초의 목표를 완수합니다. 그다음이 바로 아폴로 계획입니다. 1960년대에 달로 사람을 보내겠다는 케네디 대통령의 공언에도 사태는 순탄하게 흐르지 못했습니다. 아폴로 1호에 탑승한 세 명의 우주 비행사는 화재로 인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후 다행히 1968년 아폴로 7호 발사가 성공하면서 10호까지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위한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습니다.


위대한 비행사들, 버즈 올드린과 마이클 콜린스


▲ 버드 올드윈, 닐 암스트롱, 마이클 콜린스

사진 출처 : www.nasa.gov


1969년 7월 16일 닐 암스트롱은 버즈 올드린(Edwin E. Aldrin, Jr.),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와 함께 아폴로 11호를 타고 미국 플로리다 주에 있는 우주기지를 출발했습니다. 5일 후인 7월 20일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은 사령선인 컬럼비아호를 떠나 달 착륙선인 이글호를 통해 무사히 달에 도착합니다. 착륙 과정에서 암스트롱은 반자동으로 전환해 운전했고, 자칫하면 실패했을 수 있던 첫걸음을 뗄 수 있었습니다. 달에 도착한 인류가 처음으로 뱉은 말은 그리 멋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선장인 암스트롱이 아니라 버즈 올드린이 한 것이었고요. 그 말은 “접촉 등이 점등했다. OK, 엔진 스톱. ACA 해방.”입니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우리는 모든 것의 뒤에 기술이 있다는 사실을 잊기 쉽지요. ‘멋진 신세계’는 겉보기에는 안 멋진 기술자들이 떠받치고 있는 것입니다.


▲ 버드 올드윈의 발자국

사진 출처 : http://goo.gl/yZZqXu


달에 착륙하자 선장인 닐 암스트롱은 나사가 있는 휴스턴에 교신합니다. “휴스턴, 이쪽 고요의 기지. 이글은 착륙했다(Houston, Tranquility Base here. The Eagle has landed.)."라고요. 아마 독자들은 다음에 나오는 이 말을 더 많이 알 겁니다. “이 첫걸음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게 있어서 커다란 첫 도약입니다.” 이 말은 모든 것이 확인된 뒤 암스트롱이 달에 내리기 직전 한 말입니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제일 먼저 내린 것은 선장인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글호의 구조상 암스트롱이 나가야 버즈 올드린이 내릴 수 있기도 했습니다. 버즈 올드린은 영화 《토이 스토리》에 등장하는 우주인 장난감 ‘버즈’의 모델입니다. 유머러스한 성품으로 미국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고 하네요. 한편 아폴로 11호의 우주 비행사지만 달 착륙은 하지 않은 마이클 콜린스 역시 위대한 우주인이었습니다. 달 착륙을 한 비행사들이 지구로 살아 돌아와야 아폴로 11호가 성공했다 할 텐데, 그 핵심인 사령선 컬럼비아호는 우주 비행 경험자만이 맡을 수 있었습니다. 제미니 10호를 타 본 마이클 콜린스가 경험이 부족한 버즈 올드린 대신 남아야 했던 것이지요. 마이클 콜린스의 이야기는 국내에 「플라이 투더문」(뜨인돌 출판사)이라는 제목으로 나와 있습니다. 우주 비행사들이 하는 일을 재미있게 풀어낸 수필입니다. 한 대목을 옮기며 시간 날 때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1969. 7.)

사진 출처 : http://goo.gl/DfH4sh


“나는 매우 중요한 임무를 수행 중이며 내가 없다면 닐과 버즈가 무사히 지구로 귀환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닐과 버즈의 귀환을 기다리며 달 궤도를 비행 중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외로움뿐만이 아니라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강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달이라는 산에 오른 두 명의 등반가는 컬럼비아라는 베이스캠프가 있기에 안심하고 등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암스트롱은 달에 다녀오지 않았다?


달에 다녀온 후 닐 암스트롱의 여생은 평온하다 할 수 있습니다. 1975년에 나사에서 은퇴했고, 1979년까지 신시내티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로 일했습니다. 우주선 관련 사고 조사 위원회 같은 것이 있을 때마다 중책을 맡았고, 말년에는 항공 관련 기업 경영에도 관여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 여든이 넘은 나이에 심혈관계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인의 뜻에 따라 장례는 조촐하게 치러졌고 시신은 화장 후 대서양에 뿌려졌습니다. 닐 암스트롱은 우주 탐사의 절정기를 맨 위에서 경험했고, 개인적으로는 천수를 누리다 세상을 마감한 셈입니다.


암스트롱이 세상을 떠날 때 사실은 달에 가본 적이 없다는 유언을 남겼다는 음모설이 있어서 이번에는 그 이야기로 조금 더 하고 마무리할까 합니다. 정부가 신뢰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 세간에 음모가 퍼지는 법이지만, 현명한 시민으로서 유언비어의 진위를 가리는 훈련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소련을 이기려는 욕심에서 미국 정부가 달 세트장을 지어놓고 아폴로 11호 착륙 장면을 촬영했다는 것이 아폴로 달 착륙 음모설의 내용입니다. 진공 상태에서 성조기가 어떻게 펄럭이는가, 방사선대를 어떻게 통과했는가, 걸음걸이가 왜 자연스러운가. 음모설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질문은 이 밖에도 많습니다.


간단히 답을 하자면, 소련보다 먼저 달에 깃발을 꽂아 선전하고자 했던 미국은 성조기가 잘 보이도록 모종의 장치를 했고 조종사들 역시 비행만큼이나 걸음과 촬영 등의 훈련도 철저하게 받았습니다. 과학 기술적 결함들은 머큐리와 제미니 계획을 통해 보강해 나갔고요. 아폴로 11호 이후에 달 탐사는 왜 시들한가, 라는 질문은 왜 그렇게 달에 가려고 했는가, 라는 질문과 같은 것입니다. 소련에 앞서 달에 도착하고 그것을 전 세계에 광고한 미국에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달에 쏟아 부을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동영상 <First Moon Landing 1969> (1:44)

영상 출처 : 유튜브 (http://youtu.be/RMINSD7MmT4)


동영상 < 최초의 우주인 닐 암스트롱 별세> (1:30)

영상 출처 : 유튜브 (http://youtu.be/7vpiJ0wJxT0)


우리 사는 세계는 미지의 우주와도 같습니다. 어떤 위험에 처할지 알 수 없습니다. 한 번 사는 인생이어서 머큐리, 제미니, 아폴로 하는 식으로 시행착오를 겪어나갈 수도 없고, 이유가 어떠했든 우리에게 돈과 시간을 투여해 주는 후원자도 마땅히 없습니다. 달에도 다녀오고 일생도 다 살아낸 닐 암스트롱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밤하늘 달을 보며 우리가 속한 인류의 위대함과 어리석음을 견주어 보시길 바랍니다.

글쓴이 김희연은_사보와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자유기고가다. 자기 과시에 지나지 않는 착한 글이나 빤한 이야기를 피하려고 노력하며 쓰고 있다. 경력에 비해 부족한 솜씨가 부끄럽고, 읽어주는 독자에게는 감사하며 산다.


※ 외부필자에 의해 작성된 기고문의 내용은 앰코인스토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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