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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0.19 [에피소드] 자존심 셈법

 

요사이 우리 부부에게 웃음을 안겨주는 녀석은 손녀다. 손자는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용수철 같은 장난꾸러기가 손녀다. 손자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전화해도 “네, 네, 그래요.”라는 단답형으로만 되풀이하고 애교스럽고 천진난만하던 목소리는 어디로 갔는지 들으려야 들을 수가 없다. 손녀는 아내전화에 이렇게 말한다.
“할머니, 내가 막내로 태어나서 다행이야.”
“왜?”
“오빠보다 사랑을 많이 받아서.”
가족 삼대의 어릴 때를 되돌아본다. 남존여비 사상이 잔존했던 시대였기에, 나는 다섯 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난 것만으로 할아버지와 겸상을 하고 동생들과 달리 보리밥을 먹지 않아도 삼배 적삼과 솜바지를 입지 않아도 강요당하거나 꾸중을 듣지 않았다. 동네의 가난한 집 여자들은 식모로 나가거나 민며느리로 갔다. 일찌감치 할아버지가 손자들에게 재산을 증여하셨는데, 장손은 가계와 제사를 이어가야 한다면서 동생들과는 차이가 나는 분배를 받았다.
직장인이 되어서야 어머니가 “너는 많이 배우고 좋은 직장에 다니니 막내-증여할 시기에는 태어나지 않았다-에게 논 일부를 나누어 주어야 한다.”고 간청하는 바람에 말씀대로 양도해서 다른 형제와 비슷하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아들딸 남매를 두었는데, 키우면서 별다른 차별을 두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아내의 기억력을 인정한다면 동등하지는 않았나 보다.

 

손자손녀 세대는 남녀 차별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터라, 아들과 며느리도 그렇게 실행하고 있다. 다만, 손자가 먼저 태어났기에 관심의 차이가 어느 정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손자에게 이런저런 간섭이나 꾸중을 더 하고, 손녀에게는 덜하기에 어린 마음으론 그것을 더 많은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지난 토요일에는 손자손녀가 도착하자마자 숙제하기에 들어갔다. 손자는 이어폰을 꽂고 영어회화에 열중이고, 손녀는 산수문제를 풀고 있었다. 손자가 동생의 학습지를 슬쩍 보더니,
“그게 뭐야. 틀렸잖아.”
“뭐가 틀렸는데.”
“더하기, 빼기를 모두 더하기로 했잖아.”
학습지에는 8+1=9, 8-1=9라고 적혀 있었다. 돌아앉아서 조용히 무엇인가를 끄적이더니, 학습지를 내밀면서 “오빠, 안 틀렸잖아.”라고 소리소리 지른다. 그사이에 8-1은 8+1로 고쳐져 있었다.

 

손자하고는 세 살하고도 3개월 차이라 지는 게 당연할 법도 하련만, 어린 나이에도 자존심이 있는지 차이고 맞아서 눈물을 흘릴지라도 질 생각을 도통하지 않는다. 우리 부부는 손자가 그 나이 때 하던 애교를 손녀가 보여주길 원하건만, 따라쟁이라 즐거움이 반감되어서 서운하다. 그저께는 손자가 우리 부부의 전화를 받길 꺼리는 데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 전화기를 멀찌감치 들고서 손사래를 친다는 소식에 허탈감이 들면서도 또다시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내가 밉지만,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것을 어찌할까. 어쨌든 그들이 있어 웃을 일이 많아지는 현실은 어디에도 비견할 수 없는 우리의 복이 아닌가.

 

글 / 사외독자 이종훈 님(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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