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안 여행 시리즈의 마지막입니다. 이번에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인 낙양 지역의 용문석굴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중국 삼대 석굴(대동의 원강석굴, 둔황의 막고굴) 중 하나인 용문석굴은 낙양에서 13km, 시안에서는 약 400km 떨어진 곳입니다. 용문의 석굴과 벽감은 중국 북위 후기에서 당나라까지의 가장 거대하고 가장 인상적인 예술작품의 집합체이며 이 모든 작품은 불교에 헌납된 예술품으로, 중국의 석조미술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석굴은 북위 5세기 말부터 청나라 시대 말까지 긴 시간 조성되었다고 하는데요, 석굴은 용문산 쪽부터 북위 때 조성을 시작하였고, 건너편 향산(香山) 쪽은 당나라 때 조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입장권에는 네 가지 코스인 용문산이 있는 서산석굴, 향산의 서산석굴, 향산사, 백원 이렇게 코스가 짜여있습니다. 향산과 용문산 사이에는 ‘이하’라는 강이 흐르고 있는데, 중간에 향산과 용문산을 이어주는 다리가 있습니다. 대부분 서산석굴→동문석굴→향산사→백원 순으로 관람하지만, 거꾸로 관람할 수도 있습니다. 용문석굴은 서산석굴로 시작해 1.5km에 걸쳐 2,345 석굴과 2,800개의 비석, 50개의 불탑과 13만여 개의 조각상을 볼 수 있는데, 불상은 10여m가 넘는 것부터 2~3cm 손톱 크기에 불과한 것까지 실로 다양합니다. 더구나, 제각기 다른 표정과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어 감탄사가 연발됩니다.



용문석굴을 관람하면서 석굴에 있는 불상이 파손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불상머리를 소장하면 복이 온다는 미신 때문이라는데요, 그래서 머리가 떨어져 나간 불상이 많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런 위대한 문화유산을 훼손하면서까지 불상머리를 소장하려 하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또 도굴단에 의한 불법 반출이나 1960년대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에 의한 파손 흔적도 뚜렷합니다. 물론 지금은 철저하게 관리가 되고 있습니다만, 관람하는 중에도 유적에 절대 손대지 말라는 방송이 계속 나옵니다.




용문석굴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봉선사동입니다. 강변도로에서 백여 개 계단을 올라가면 눈앞에 펼쳐지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장관에 저절로 탄성이 나옵니다. 용문석굴은 이곳 조각상 때문에 유명합니다. 그 유명한 봉선사의 대 노사나불입니다. 이 노사나불의 모델은 중국 최초의 여황제인 당나라의 측천무후라는 ‘설’도 있습니다. 노사나불은 당나라 시대 조각예술의 제일 대표적인 작품이고, 높이 17.14m의 좌상, 머리 높이만 5m, 귀 길이만도 1,9m 나 된다고 합니다. 불상 오른쪽으로는 다문천왕과 역사가 보입니다. 봉선사 조각은 당 황실의 조직을 묘사한 것이라는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노사나불은 제왕, 두 보살은 비빈, 두 제자는 문신, 천황과 역사는 무장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석굴 관람을 마치고, 향산사와 백원 쪽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향산사는 혁명가 손문(孫文, 쑨원)이 휴가차 쉬어가던 별장으로, 이곳 풍광이 좋아서 정치인이나 시인들이 많이 머물렀던 곳이라고 합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향산사는 계단으로 가는 높이가 어마어마합니다. 날씨가 너무나 무더운 관계로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멀리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백원으로 이동했습니다. 백원은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묘가 있는 곳. 시와는 거리가 먼 필자로서는 별다른 흥미를 갖지 못하여 이곳 역시 스쳐 지나가는 곳에 불과했지요.


청명절 연휴의 첫날이라 그런지, 관람을 마치고 쏟아져 나오는 인파와 상대적으로 너무 적은 대중 교통편 때문에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도 거대한 중국 예술의 극치를 다시 한번 감탄을 하면서, 이번 시안 여행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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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5월 5일은 단오절(端午節, 딴우지에), 중화권인 대만에서의 단오절은 한국과는 사뭇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일단, 국가에서 지정하는 공식 공휴일이고, 단오절이 가지는 명절의 의미는 가을에 있는 중추절(仲秋節)인 추석과 견줄 만합니다. 단오절에 먹는 음식인 쫑쯔도 있고 또한 드래곤 보트 행사도 있지요. 대만에서 쫑쯔(粽子)는 찹쌀과 고기, 대추, 땅콩 등의 가지각색의 내용물을 잎으로 싸고 줄로 묶어 판매합니다.


▲ 대만의 마트에서의 단오절에서 쫑쯔 판매 사진, 필자 촬영


이러한 쫑즈 모양은 어쩌면 삼각김밥처럼 생겼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 역사는 꽤 깁니다. (사보 초기에도 소개한 적 있는데) 굴원(屈原)이라는 유명한 시인의 역사와 관련되었지요. 굴원은 BC 343~BC 278, 중국 전국 시대의 초나라 사람으로, 곧은 성격과 충정으로 인해 결국 조국에 망조가 든 것을 분개해 호남성 멱라강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습니다. 그때 등장한 시가 어부사(漁夫辭)입니다. 몇 년 전 사보에 이미 소개한 시이기도 하지요.


간단히 다시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죄없이 추방되어 야위어진 굴원을 본 어부가 무슨 일로 오신 거냐고 묻기에, “온 세상 모두가 흐려 있는데 나 혼자만이 맑고 깨끗했으며, 뭇 사람들 모두가 취해 있는데 나 혼자만이 맑은 정신 깨어 있어서, 그만 이렇게 추방당한 거라오.” 이에 어부가 성인은 세상과 추이(推移)를 같이 한다 하는데 왜 스스로 추방을 불러 왔나요 라고 되물으니, “내 일찍 이런 말 들은 적이 있다오. 새로 머리 감은 이는 갓 먼지 털어 쓰고 새로 몸을 닦은 이는 옷을 털어 입는다고, 그러니 어찌 이 깨끗한 내 몸으로 저 더러움을 받을 수 있으리요? 차라리 상수(湘水) 물가로 달려가, 물고기 뱃속에 장사 지낼지언정 어찌 이 희고 깨끗한 내 몸으로 세속의 티끌을 뒤집어 쓸 수 있으리요?” 이후, 이날이 단오절이라 하여, 단오절만 되면 쫑쯔를 만들어 배를 타고 강가로 나가, 물고기가 굴원을 먹지 못하도록 쫑쯔를 강가에 던지는 데서, 쫑쯔를 만들어 먹는 것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대만 스타벅스에서도 단오절만 되면 쫑쯔를 판매하네요.


▲ 대만의 스타벅스 쫑쯔, 필자 촬영


앞서, 배를 타고 나가서 물고기들이 굴원의 시신을 먹는 것을 방해했다고 언급했는데요, 여기서 유래된 것이 드래곤 보트 행사입니다. 용선(龍船), 즉 드래곤 보트 행사는 지역마다 대표하는 도교사원이나 지방단체 모임 중심으로 한자리에 모여서, 어느 배가 가장 빠르게 도착점에 들어오느냐를 경주하는 행사입니다. 굴원 역사의 원래 목적대로 시끄럽게 운행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행사이기도 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단오절에 모여 행사를 치르네요.


또한, 굴원에 대한 우리나라에서의 또 다른 문학적 공유점이 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시 중 하나인 <사미인(思美人)>인데요, 우리나라 정철의 <사미인곡(思美人曲)>의 모태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정철의 <사미인곡>은 한 여인이 이별한 후 그를 그리워하는 형식을 빌려, 임금을 사모하는 정을 노래했는데, 이는 굴원의 사미인의 충군(忠君)적 내용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자세한 내용은 정철만의 독창성이 있다고 하는데요, 사보를 통해 굴원의 <사미인>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思美人》

作者:屈原  朝代:先秦 


思美人兮,攬涕而竚眙。

媒絕路阻兮,言不可結而詒。

蹇蹇之煩冤兮,陷滯而不發。

申旦以舒中情兮,志沉菀而莫達。

願寄言於浮雲兮,遇豐隆而不將。

因歸鳥而致辭兮,羌迅高而難當。

高辛之靈盛兮,遭玄鳥而致詒。

欲變節以從俗兮,媿易初而屈志。

獨歷年而離愍兮,羌憑心猶未化。

寧隱閔而壽考兮,何變易之可為!

知前轍之不遂兮,未改此度。

車既覆而馬顛兮,蹇獨懷此異路。

勒騏驥而更駕兮,造父為我操之,

遷逡次而勿驅兮,聊假日以須是時。

指嶓塚之西隈兮,與纁黃以為期。

開春發歲兮,白日出之悠悠。

吾將盪志而愉樂兮,遵江夏以娛憂。

攬大薄之芳茝兮,搴長洲之宿莽。

惜吾不及古人兮,吾誰與玩此芳草?

解萹薄與雜菜兮,備以為交佩。

佩繽紛以繚轉兮,遂萎絕而離異。

吾且儃徊以娛憂兮,觀南人之變態。

竊快在中心兮,揚厥憑而不竢。

芳與澤其雜糅兮,羌芳華自中出。

紛鬱鬱其遠蒸兮,滿內而外揚。

情與質信可保兮,羌居蔽而聞章。

令薜荔以為理兮,憚舉趾而緣木。

因芙蓉而為媒兮,憚褰裳而濡足。

登高吾不說兮,入下吾不能。

固朕形之不服兮,然容與而狐疑。

廣遂前畫兮,未改此度也。

命則處幽吾將罷兮,願及白日之未暮也。

獨煢煢而南行兮,思彭咸之故也。


필자는 이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登高吾不說兮, 入下吾不能。固朕形之不服兮, 然容與而狐疑。높이 오르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고, 속세의 흐름을 따름도 나는 할 수 없으니, 진실로 나는 본시 성품이 너무 곧아서, 주저주저 갈피를 못잡고 있도다.’


매년 오는 명절과 휴일이지만, 올해만은 역사적 사실과 배경을 보면서 지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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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에는 중국 시안(西安) 여행 2탄으로, 중국의 5대 명산 중 하나인 화산(華山)을 소개하고 합니다. 청명절 연휴를 이용한 휴가라 사람이 많을 것 같아, 화산을 첫날 일정을 잡고 서안 도착 첫날 아침 6시에 호텔에서 출발해 서안 기차역에서 화산행 기차에 올랐습니다. 중국은 역시 땅이 넓어서 시속 300km 이상인 고속열차로 1시간 30분 정도 가야 하네요.



멀리서 보이는 화산의 웅장함에 잠시 말을 잊지 못하는 사이, 사람들이 입구 쪽으로 걸어가자 우리도 그 행렬을 따라서 화산 안내센터에 도착합니다. 화산을 가는 방법은 입구에서 표를 모두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서 이동하는 표를 따로 구매해야 합니다. 먼저, 화산 안내센터에서 서봉 또는 북봉행 셔틀버스와 화산 입장표를 사고 난 후, 셔틀을 타고 서봉 또는 북봉 올라가는 케이블카 입구에서 올라가는 케이블카 표를 사고,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내려오는 케이블카를 사고, 내려와 입구에서 다시 내려가는 버스표를 사야 합니다. 중국 말이 서툰 필자에겐 너무너무 어렵고 힘든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화산(华山)은 중국의 오악(五岳) 중 서악(西岳)으로, 서안 동쪽으로 120km 떨어진 서안과 정주의 중간인 화인시에 있는데요, 고속도로와 기차가 잘 정비되어 있어 서안에서 2시간 정도면 갈 수 있습니다. 다섯 개의 주봉 중 가장 높은 것은 난봉(남봉 南峰)으로 높이는 2154.9m 정도 됩니다. 그 외에 조양봉(동봉 东峰 2,090m), 연화봉(西峰 서봉 2,080m), 운대봉(北峰 북봉 1,614m), 옥녀봉, 이렇게 다섯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으며, 험준한 산길과 가파른 계단길 등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곳을 지나, 정상에 이르는 산길 등을 케이블카에서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화산은 등급이 AAAAA로 최고 등급의 국가지정 풍경구, 즉 중국에서 인정한 최고등급의 관광지입니다. 참고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만리장성도 A가 다섯 개입니다.




서안 화산 서봉에 오르는 케이블카는 2013년에 개통했고, 산봉우리를 두 개나 오르고 내려가서 올라가는 코스입니다. 30분 정도 타는 거리이며 20km는 족히 되는 거리인 것 같습니다. 여태 타본 케이블카 중에서 가장 긴 것으로 다시 한번 중국의 스케일을 실감하는 만드는 인공 구조물인 셈이지요. 케이블카를 타고 바라보는 경관은 탄성이 나올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또한 산 아래에서 정상까지의 가파른 절벽과 산줄기를 따라 올라갈 때는 케이블카에서 봐도 아찔할 정도입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리자, 4월인데도 제일 먼저 우리를 맞은 것은 눈이었습니다. 아직도 녹지를 않고 쌓여 있는 정상의 모습이었습니다. 서봉을 출발해 북봉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등반 계획을 잡고 각 봉에 이르러서 보는 경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고, 그 많은 바위를 깎아서 등반코스를 만들 때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벽 아침 6시부터 준비해서 떠나온 화산 여행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충분하였습니다. 생각했던 만큼 사람들도 붐비지 않아서 화산의 많은 경치를 두 눈에 충분히 담아올 수 있었습니다. 중국인에게 있어 화산이란 단순히 큰 산, 험한 산이 아니라 이들은 중화민족이 화산에서 시작됐다고 믿었고, 황제들은 대대로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고 합니다. 중화(中崋)라는 단어에 화(崋)도 화산에서 온 글자라고 합니다. 화산 봉우리들을 보면 칼날처럼 날카롭게 서 있는 형상인데, 이들 중화민족이 화산에서 시작해 동서남북으로 퍼져 나갔다고 합니다. 이처럼 많은 역사와 많은 볼거리를 가지고 있는 화산 여행!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권하고 싶은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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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는 우기가 지나고 나서 여름이 옵니다. 필자의 경험으로 4월부터 시작해서 6월까지 중점적으로 비가 자주 왔답니다. 특히, 대만 수도인 타이베이 쪽은 중국 내륙과 바다와 맞닿는 대만 북쪽 지역이라 더 많은 비가 오는 것 같습니다. 비가 자주 오는 지역도 바다와 맞닿는 대만 북쪽 해안 지역인 지룽(기룽 基隆 Jīlóng)이라고 합니다. 필자가 아는 대만 지인은 이 지역에 화력 발전소가 세워진 이후로 바다와 땅 만나는 곳인 지룽 지역에 내릴 비가 타이베이로 이동했다고 하네요. 지룽에 세워진 화력 발전소 덕에 비를 머금은 대기가 따뜻한 대기와 맞나 비교적 내륙지역인 타이베이까지 이동해, 최근 타이베이에 비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개인의 의견입니다. 글을 쓰는 오늘도 회색빛 하늘이 사무실에서 보입니다.


▲ 대만의 회색 하늘


여행 때 비가 오는 것은 모두 바라지 않는 일이겠지요. 요즘은 전 세계 일기예보가 스마트폰을 통해 알려지고, 대만 기상청에서 일주일 혹은 시간 단위로 보여주는 일기예보 사이트는 여행자나 대만에서 생활하는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줍니다. 특히, 우기 후 여름에 오는 태풍에 대한 예보는 그 경로 및 강도를 미리 알 수 있어 아주 유용합니다.


▲ 대만 기상청 사이트

사진출처 : http://www.cwb.gov.tw/V7/forecast/


필자 세대에게 비가 오면 생각나는 한국의 정서는, 부침개와 막걸리가 아닐까 싶어요. 부침개 부치는 지글지글 소리가 비 오는 소리와 비슷해서 비 오는 날에 유독 생각난다고들 하는데요, 대만 친구들에게 비가 오면 먼저 생각나는 음식이 뭐냐고 물어보니 별다른 것은 없다고 하네요. 필자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부침개 같은 대만의 음식으로는 총좌삥(蔥抓餅 cōngzhuābing)이 있어서 그 대답을 기대했는데 말이지요. 총좌삥에서 총(蔥)은 파를 뜻하고, 좌(조, 抓)는 움켜쥐다 라는 뜻이고, 삥(餅)은 밀가루 전병을 뜻합니다.


보통 총좌삥은 손에 쥐고 먹는 밀가루 부침개로, 대만 여행객의 길거리 음식으로 유명합니다. 가격도 30원(우리나라 돈으로는 1,100원 정도)입니다. 굳이 손에 쥐고 먹지 않아도 되는데, 좌(조, 抓)대신 기름 요(유, 油)을 사용해서 총요삥(蔥油餅 cōngyóubing)이라고도 부릅니다. 송송 썰은 파와 함께 반죽한 밀가루를 부침개처럼 부쳐서 먹는데, 부침개 위에 달걀과 소스를 바른 후 말아서 먹을 수도 있고, 피자처럼 잘라서 먹기도 합니다. 또한 밀가루 대신 달걀로 부치고, 절인 무와 같은 것을 넣어서 만든 차이부딴(蛋)이 있는데요, 밀전병을 의미하는 삥(병, 餅) 대신 달걀을 의미하는 딴(단, 蛋)을 넣은 음식입니다. 이 또한 달걀 부침개처럼 길거리 음식이나 술 안주로 적절한 메뉴이지요. 아래 사진에서 보시면 위에 음식사진이 차이부딴이고, 아래 음식이 총요삥입니다.


▲ 차이부딴과 총요삥 사진


▲ 사내에서 먹는 총좌삥 사진


우기가 지나면 여름이 옵니다. 필자는 더운 여름을 좋아하지 않지만, 습습한 우기보다는 나은 편입니다. 어려운 시기가 지나면 좋은 시기가 오는 것처럼, 그런 좋은 시기가 올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는 하루입니다.




WRITTEN BY 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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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청명절 연휴에 가족들과 서안(西安, 시안)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예전 중국 당나라 시대의 이름으로 ‘장안’이라도 하는 시안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기원전 260~210년)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사실 진시황의 무덤은 발굴되지 않아서 일반 야산이나 다름없이 별 볼 것이 없습니다. 대신에 1.5km 떨어진 곳에 진시황의 무덤 부장품인 병마용은 세계적인 관광지로 그 위용을 자랑할 만합니다.



1974년 섬서성(陝西省)의 어느 마을에서 마을 주민이 우물을 파다 우연히 발견된 지하 통로로 총 4개의 방 중에 3개가 발굴되었는데, 8천 명의 실물 크기의 병사들과 5백 마리의 소조 말들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발견 당시에는 테라코타 군인들이 모두 채색이 되었으나 며칠 동안 햇빛에 노출되어 모두 현재의 회색빛으로 변했다고 하네요.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8천 명의 병사도 모두 각기 다른 얼굴과 표정을 짓고 있어서 실제 사람을 보고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들기도 합니다. 기원전 2세기 역사가인 사마천은 진시황릉은 세상의 축소판이었다고 하는데,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부장품인 병마용 갱이 이렇게 거대한 걸 보면, 실제 진시황릉은 어떠할지 상상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발굴된 3개의 갱은 1호, 2호, 3호를 각각 나뉩니다. 1호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큰 규모의 갱으로, 보병과 전차가 대형 장방형의 행렬을 보여줍니다. 중국의 유명 관광지들이 그러하듯 가장 전망이 좋은 입구 쪽은 사람들로 인해 발 디딜 틈도 없을 지경입니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테라코타 병사들을 더 가까이 볼 수 있는데요, 사람 크기의 진흙으로 구운 사람의 얼굴이 하나같이 다르고 병사들의 의복 또한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갑옷을 입은 군인, 장교처럼 보이는 병사 그리고 갑옷도 없는 병사 등, 아주 다양한 의복과 각기 병사들이 들고 있는 창이나 화살 같은 무기는 실제 무기를 들고 있었다고 하여 실로 문화적인 가치가 엄청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호와 3호 갱은 좀 더 작은 규모입니다. 기병, 보병, 전차들이 포진해 있는 갱으로, 2호 갱은 규모만 조금 클 뿐이지 아직 발굴이 진행되지 않아 아직은 그리 볼 것은 없습니다. 3개의 병마용 갱을 다 보고 나오면 마지막 진시관에는 갱에서 나온 몇 개의 테라코타 군인들을 전시해 놓았는데요, 2천 년도 훨씬 이전인 기원에 2세기경에 어떻게 이런 조소품들을 만들 수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또한, 이런 소중한 문화유산을 비교적 최근인 40여년 전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어 전 세계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준 어느 이름 모를 농민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안에서는 ‘부자가 되려면 땅을 파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고 합니다. 아직도 시안 어디엔가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또다른 위대한 문화유산이 땅속에 묻혀 세상의 빛을 볼 날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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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연구원 2017.04.26 08:4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아리가또...


▲ 대만 원주민의 전통적인 모습들

사진출처 : https://goo.gl/1jzUqO


우연히 제가 있는 이곳, 신추(新竹) 주베이(竹北) 공설운동장에서 원주민 체육대회가 있을 것이라는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지역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체육대회를 하는 것인데요, 이 계기로 대만의 원주민에 대한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 도로변에 걸린 체육대회 광고


포르투갈이 1590년 대만을 처음 발견했고, 그때부터 살고 있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불리는 대만의 원주민입니다. 이들은 오스트로네시아어족으로, 이스트 섬 모아이 석상으로 유명한 모아이 종족이라 합니다. 이스트 섬과 하와이 등으로 이동도 하였지만, 대만에 남아있던 원주민 부족은 포르투칼 이후 네덜란드의 지배 때부터 차 재배나 사탕수수 재배에 사역을 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 대만 원주민의 분포 지도

사진출처 : https://goo.gl/4xPi1x


그리고 중국의 명청(明淸) 때 정성공이 이끄는 명나라 사람들이 대만에 자리 잡게 되었는데, 이를 ‘본성인’이라 합니다. 인터넷 신문 등에서 보면, 이들도 오랜 시간 대만에 살게 되면서 원주민이라고도 하는데, 실제 원주민은 중국과는 다른 독특한 문화를 가진 대만에 고대부터 거주했던 모아이족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산당과의 패전 이후 내려온 국민당 중심의 중국 내륙 사람들은 ‘외성인’으로 분리됩니다.


본성인과 외성인, 그리고 원주민과의 간단히 관례성을 보면, 본성인은 원래 거주했던 원주민을 배척하고 산속으로 그들의 거주를 제한했다고 하며, 식민지 시대 때 일본은 본성인과의 친화 정책을 펼친 반면 산속의 원주민과는 배척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때 원주민의 일본에 대한 저항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습니다. <세디크 발레(Seedig Bale)>라는 유명한 대만 영화입니다. 대만 아카데미로 아시아권에서 유명한 대만 영화제인 금마장 영화제를 휩쓸기도 했고, 그 내용은 몇 년 전 사보에서 소개한 바 있지요. 역사에 관심 있는 분들은 일부러 찾아서 볼 만한 명품 영화입니다.

이후 일본이 패망 후 오게 된 외성인과 원주민 사이는 상대적으로 사이가 좋아 외성인들이 중심인 국민당은 원주민의 지지를 얻는다고들 합니다.


▲ 영화 세디크 발레

사진출처 : https://goo.gl/kntACr


몇 차례 언급한 본성인과 외성인의 갈등은 한 가지 역사적 사실이 대변하는데, 그것이 얼얼빠(2월 28일) 공휴일입니다. 일본 패망 이후, 중국 내륙에서 내려온 외성인의 압력에 대항하기 위해 본성인들이 봉기한 날을 추모하는 국가 공휴일이지요. 그래서 비슷한 날짜의 우리의 삼일절과는 사뭇 다른 역사적 배경인 것입니다. 이러한 상대적인 내부 갈등인지는 몰라도, 일본 지배시대의 경제 발전 등의 기억을 하는 세대들, 그리고 대만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본성인들은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은 편입니다. 하지만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일본에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지요. 여하튼, 대만 사람들에게 본성인과 외성인 분류에 대해 말하면 구체적으로 얘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다 잊어버린 역사적 과거일 뿐.


▲ 중부의 내륙 난터우현에 있는 구족문화촌(九族文化村) 테마공원, 대만의 관광명소

사진출처 : https://goo.gl/1jzUqO


현재 원주민은 공식적으로 분류되어 국가에서 관리합니다. 14개 부족이 있다고 발표했고, 49만 명으로 대략 2% 정도를 차지합니다. 인터넷 자료를 보면, 2015년 기준으로 본성인 84%, 외성인 14%, 원주민 2%로 분포하며, 학교 입학서류를 낼 때도 원주민은 그 종족을 명기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단일 민족으로 구성된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문화이기도 합니다.


대만은 여러 이해관계가 다른 종족이나 그룹이 있고, 이러한 상황이 선거에 반영되기도 합니다. 선거 후 남북으로 편이 갈라지게 되어, 북은 외성인 중심의 국민당(國民黨), 남은 본성인 중심의 민진당(民進黨)으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지요. 물론 현재는 여러가지 선거적 전략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지난 선거때는 지역 구분 없이 민진당이 압승하게 되어 정권이 교체되기도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한국도 여러 가지로 혼란한 상황이지만, 모든 상황이 잘 넘어가서 더 튼튼해진 땅에 모든 것이 새롭게 희망차게 자랐으면 합니다. 또한, 새롭게 시작하는 앰코코리아의 K5공장에도 좋은 기운만 가득하기를, 대만에서 바이바이(拜拜, 정성을 다해 기원한다는 뜻)합니다.


▲ 대만 아미족 공연단이 부르는 민요 老人飲酒歌

영상출처 : https://youtu.be/BbnnQl4ZHXA




WRITTEN BY 유민

강자에 대한 겸손은 의무, 동등한 사람에 대한 겸손은 예의, 약자에 대한 겸손은 숭고함이다. - 李小龍 / 겸손하게 대만문화를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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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그 넓은 영토만큼이나 많은 유명한 산이 있습니다. 땅덩어리가 좁은 우리나라도 수려한 장관을 보여주는 유명한 산들이 많으며, 주말이면 그곳이 사람들로 북적이고 건강과 레저를 위한 등산 인구가 천만이라고 합니다. 중국 또한 유명한 산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세계유네스코문화유산에 등록된 중국 안후이성 남동부에 있는 황산(黃山)을 이번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황산은 진나라 때에는 이산(移山)이라고 불렸고, 이후 당나라 현종 때 현재의 황산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전합니다. 총 둘레가 250km에 이르며, 2개의 호수, 3개의 폭포, 24개의 계류, 해발 1,000m가 넘는 72개의 봉우리가 있습니다. 봉우리는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산 중심부에 3대 주봉인 연화봉(蓮華峰 1,864m) · 광명정(光明頂 1,840m) · 천도봉(天都峰 1,829m)이 솟아있으며 연화봉이 황산의 최고봉으로 꼽힙니다. 또한, 아바타의 촬영지 중에 하나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산이 이렇게 크기에 등산 코스도 여러 가지이며, 우리는 짧은 1박 2일 코스로 이중 광명정으로 가는 코스밖에 보지를 못했습니다. 여느 중국 관광지가 그렇듯, 입장료 230RBM(약 39,000원)과 편도 케이블카 90RBM(약 15,000원)로, 만만치 않은 가격이네요.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산 정상 호텔에서의 숙박과 초 단위로 변화하는 운무로 덮인 봉우리들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시시각각으로 볼 수 있는 것에 비하면 그리 아깝지 않은 가격인 것 같습니다.



필자 또한 한국에서 근무 시 산악 동호회를 몇 번 따라가 본 적이 있었지만, 이곳 황산만큼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산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산 정상의 호텔은 여느 시내 4성급 호텔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시설이라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으며, 중국 역대 주석들이 모두 한 번씩은 들렸다는 북해빈관(北海賓館) 또한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산 정상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는 이름 모를 다른 호텔들은 흔히 말하는 대륙의 기질을 느낄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이른 삼월에 오른 등산이었지만 하루 동안 눈, 비, 안개, 그리고 쨍쨍한 햇빛을 다 볼 수 있는 날씨 또한 쉽게 경험하지 못할 자연의 경이함을 접할 수 있는 좋은 여행이 된 것 같네요.


등반 도중에 특이한 모양의 바위나 소나무 등에는 모두 나름의 설명이 적혀 있는데 이름과 유래를 읽으면 중국 사람들의 전설과 신화에 대한 사랑인지 단지 관광을 위한 광고 수단인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장황하게 설명해 놓은 걸 보면서 웃음이 절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중국 현지 여행사를 통해 중국 현지인들과 동행하는 여행상품으로, 우리 일행 또한 일종의 도전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툰 중국말과 나름 눈치로 큰 문제 없이 또 하나의 좋은 추억을 만들 것 같아 스스로에게도 만족할 수 있는 여행이 된 것 같네요. 이를 발판으로 중국의 5대 명산이라는 오악(五岳) 중의 하나를 다음에 도전해 볼 것을 기약하며, 이번 황산 여행의 소개를 마칩니다.




WRITTEN BY 김경수

드넓은 중국 대륙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생생히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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