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머니볼> 속 야구단장 빌리는 좋은 경기를 보고 나서 이렇게 말을 하지요.


“야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이런 승리는 팬들을 즐겁게 하지.”


하지만 이 말이 나오기까지 과정을 본다면 그가 내뱉는 짤막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영화 첫 화면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구단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실력 있는 선수들은 다른 구단에 뺏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구단주에 십여 년간 몸을 담던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하지만, 돈이 부족해 훌륭한 선수를 영입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부자 구단, 가난한 구단, 그 밑에 있는 애슬레틱스 구단은 아무리 애를 써도 이기기 어려운 불공평한 게임인 현실만을 직시할 뿐입니다.



그러던 중 사생활 문란, 잦은 부상, 최고령 등의 이유로 인해 과소평가된 선수를 영입해 그들의 능력을 끌어올려 불공평한 게임을 승리의 게임으로 이끌도록 경제학을 전공한 피터(브래드 피트 분)와 빌리(조나 힐 분)는 다음과 같이 전략을 짭니다.


It's about getting things down to one number. Using the stats the way we read them, we'll find value in players that nobody else can see. People are overlooked for a variety of biased reasons and perceived flaws. Age, appearance, personality. Bill James and mathematics cut straight through that.


하나의 숫자로 설명할 수 있어요. 우리 방식으로 그 수치를 해석해서 선수의 진가를 알아보는 거지요. 그간 나이, 외모, 성격으로 많은 선수의 능력을 간과했어요. 빌 제임스와 수학 통계가 그런 편견을 없애주었지요.


'그 방법으로'라는 의미의 the way


빌리와 피터는 출루율만으로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선수를 발굴하고자 했습니다. 다음 문장은 이런 뉘앙스를 잘 살리기 위해 ‘그 방법으로’라는 의미의 the way를 사용해 문장을 완성했습니다. 여기서 the way는 부사로 쓰였습니다.


Using the stats, the way we read them


야구는 수학이 아니라 경험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구단주의 선배들은 이 같은 빌리의 결정에 반대합니다. 여전히 빌리는 피터가 제시한 이미 다른 곳에 뺏긴 두 명의 훌륭한 선수 대신, 출루율이 좋은 세 명의 선수를 영입해 그들의 조합으로 승리를 이끌자는 전략을 밀어붙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여전히 성적이 부진했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어요. 야구 감독인 아트(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분)가 출루율이 좋은 해티버그를 1루 주자로 보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트 생각엔 페냐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출루율로만 따지는 새로운 방식에는 맞지 않았지요.


이에 빌리는 해티버그(크리스 프랫 분)를 1루로 내보내기 위해 페냐와 지암비를 다른 곳에 보내기로 합니다.


다음 장면은 만류하는 피터를 설득하는 장면입니다.


I think the question we should be asking is, do you believe in this thing or not? It's a problem you think we need to explain ourselves. Now, I'm gonna see this thing through, for better or worse.


우리가 이 방법이 맞는지 믿는 게 중요해. 우리의 방식을 설명할 필요가 없어. 잘되든 못되든 지금은 밀어볼래.


편견을 깨부수고 새로운 이론을 적용해 승리로 이끌 거라는 믿음으로 끝까지 밀어붙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빌리는 이론을 믿었고, 선수들의 능력을 재발견해 적재적소에 선수들을 배치했습니다. 그 결과 연속 20승을 이룩해낼 수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영화 <머니볼>은 실제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20연승이라는 최대 이변을 몰고 온 야구계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던 빌리 빈 단장의 성공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빌리의 말대로 우승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가난한 구단이 우승해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측 불가능한 요소 때문에 사람들이 야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거겠지요.


사진출처 : 다음영화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8250




글쓴이 김지현

미드를 보다가 애니와 영화까지 영어의 매력에 홀릭한 여자다. 영어도 충분히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금도 뻔하지 않은 수업을 하려 불철주야 행복한 고민 중이다.




※ 외부필자에 의해 작성된 기고문의 내용은 앰코인스토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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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장수철, 『산해경』, 현함사, 2005. p.12. 삽화 참고.


1. 산해경이란?


《산해경(山海經)》은 중국의 오래된 신화 경전 중의 하나로써, 다량의 신화, 천문, 지리, 동물, 식물 및 의약 등 다방면의 자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성은 모두 18권으로 되어있으며, 중국문화에 깊고 오래도록 영향을 주어 왔습니다. 특히, 신화(神话), 우언(寓言), 동화(童话)의 효시라고 볼 수 있으며, 그 저자에 대하여는 설이 분분한데, 과거에는 하(夏)를 건국한 우(禹)임금이 지었다거나, 혹은 그의 신하인 백익(伯益)이 지었을 것으로 인식되었는데,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전국(戰國, 기원전 5세기) 초기부터 서한(西漢, 기원전 2002년) 초기까지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에 의해 편찬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존하는 《山海經》은 18권으로, 원래 고본古本은 32권이었으나 전한前漢의 유흠이 지금 편제로 정리한 것이라 한다. 이러한 《山海經》은 《山經》과 《海經》 두 부분으로 나뉜다. 《山經》은 흔히 ‘오장산경’이라 부르는 5편을 일컫는다. 《山經》은 같은 서술 방식을 반복하며 꼬리에 꼬리를 물로 등장하는 천하의 명산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먼저 산의 위치를 설명하고, 보옥寶玉과 동철銅鐵등 산에서 나는 산물을 설명하고, 신의 이름을 들어 그 제사법을 쓰고 있다. 따라서 《山經》은 내용 면에서 다분히 지리서적인 성격을 띤다. 반면 《海經》은 《山經》과는 좀 다른 방식이다. 《海經》에는 먼 나라 사람들의 독특한 형상, 풍속과 사물, 영웅과 신들의 행적, 갖가지 괴물에 대한 묘사 등이 다양하여 신화적인 성격을 많이 띤다.

[주석] 장수철, 『산해경』, 현함사, 2005. p.6.


산해경을 처음 읽어보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그 기이함과 어떻게 그런 상상을 하여 썼는지 황당해도 너무 황당하다는 것을 쉽게 공감할 수 있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매우 독특한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형상이 기묘한 조류, 육상 동식물, 어류 등등, 생김새의 특별함과 함께 그 동물이 사람을 잡아먹거나 또 반대로 그런 동식물을 사람이 먹으면 어디 어디에 좋다든지 등등, 직접 읽어보지 않고서는 그 말도 안 되는 내용의 정도가 어떠한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이번 호에는 그 내용 중에서 첫 부분인 남산경(南山經)의 내용 일부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2. 성성이


남쪽에 있는 산계 중 제일 처음을 작산 산계라고 한다. 작산 산계의 첫 번째 산을 소요산이라고 하며, 이 산은 서해 가장자리를 따라 솟아있고, 산에는 계수나무가 무성하며, 금속 광물과 옥석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산 위에는 풀 한 종이 자라는데, 모양이 부추와 같으며 파란 꽃봉오리를 피운다. 이름은 축여라 하고 먹으면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다. 산중에는 나무 한 종류 자라는데 형태가 닥나무와 같으며 검은 나뭇결이 있고 그 광채는 사방으로 퍼진다. 이 나무는 미곡이라고 하며 꽃이 핀 것을 몸에 지니면 길을 잃지 않는다. 산중에는 또 야수 한 종류가 서식하는데 생김새가 원숭이와 매우 닮았으며 한 쌍의 하얀 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때로는 기어 다니거나 때로는 사람과 같이 서서 걷는데 성성이라고 부른다. 그 고기를 먹으면 나는 것처럼 걸을 수 있다. 여궤의 물이 여기서부터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큰 바다로 들어간다. 물속에는 많은 양의 육패(밀랍, 호박)가 있는데, 그것을 몸에 지니면 기생충병이 생기지 않는다.


원문 : 현대문

南部山系的第一组山系叫䧿山,䧿山组的第一座山叫招摇山,这座山耸立在西海岸边,山上盛产桂树,还蕴藏着丰富的金属矿物和玉石。

Nánbùshānxìde dìyīzǔshānxìjiàoquèshān,quèshānzǔdedìyīzuòshān jiàozhāoyáoshān,zhèzuòshānsǒnglìzài xīhǎiànbiān,shānshàngshèngchǎnguìshù,háiyùncángzhefēngfùde jīnshǔkuàngwùhéyùshí。


山上长有一种草,样子很像韭菜,开着青色的花朵,这种草的名字叫祝余,吃了它不会感到饥饿。

山中长有一种树木,形状像构树,有黑色的纹理,它的光华照辉四方,这种树的名字叫迷榖,把这种树开的花佩戴在身上就不会迷路。

Shānshàngchángyǒuyìzhǒngcǎo, yàngzihěnxiàngjiǔcài, kāizheqīngsèdehuāduǒ, zhèzhǒngcǎodemíngzìjiàozhùyú, chīletābúhuìgǎndàojīè。

山中还有一种野兽,长得很像猿猴却有一对白色的耳朵,它有时匍匐爬行,有时像人一样站立行走,这种野兽的名字叫狌狌,吃了它的肉就可以行走如飞。

Shānzhōngháiyǒuyīzhǒngyěshòu, zhǎngdehěnxiàngyuánhóu quèyǒuyíduìbáisèdeěrduo, tāyǒushípúfúpáxíng, yǒushíxiàngrényíyàngzhànlìxíng, zhèzhǒngyěshòudemíngzìjiàoxīngxīng, chīletāderòu jiùkěyǐxíngzǒurúfēi。

丽𪊨之水从这里发源,向西往入大海,水中生有大量的育沛,人们如果佩戴它,就不会生寄生虫病。

Lìjǐzhīshuǐcóngzhèlǐfāyuán, xiàngxīwǎngrùdàhǎi, shuǐzhōngshēngyǒudàliàngdeyùpèi,rénmenrúguǒpèidàitā,jiùbúhuìshēngjìshēngchóngbìng。


원문 : 고문

南山之首曰䧿山。其首曰招搖之山, 臨於西海之上, 多桂, 多金玉。有草焉, 其狀如韭而青華, 其名曰祝餘, 食之不饑。有木焉, 其狀如榖而黑理, 其華四照, 其名曰迷榖, 佩之不迷。有獸焉, 其狀如禺而白耳, 伏行人走, 其名曰狌狌, 食之善走。麗𪊨之水出焉, 而西流注於海, 其中多育沛, 佩之無瘕疾。

[주석] 贾立芳, 『中华国学经典精粹-山海經』, 北京联合出版公司, 2015, p.5. 현대문, 고문 참고.


金丝猴图片 사진출처 : 百度百科


3. 성성이 狌狌, 猩猩, 황금원숭이 金丝猴


고전에 따르면 성성이는 사람의 이름을 안다거나, 여자의 목소리로 말을 할 수 있다든지, 혹은 술을 좋아한다 등 여러 가지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시대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신화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전해지면서 과장되거나 허구의 사실이 첨가되었을 것입니다.


위의 인용된 내용에서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성성이는 원숭이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특히, 중국 서남부에 서식하는 금사후(金丝猴)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그 생김새의 닮은 것도 있지만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끼고 가족 관념이 비교적 뚜렷하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관련 고사도 다수 전해지며 비록 동물이지만 母子로 공감되는 이야기가 있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 첫 번째는 북송(北宋)의 「태평광기(太平廣記)」에 실려있는 내용입니다.


이름이 공각정보라는 사냥꾼이 그물과 활을 가지고 깊은 산속에 사냥을 나갔다. 때마침 원숭이 한 무리를 발견하자 바로 활을 쏘아 어미 원숭이 한 마리를 맞추어 상처를 입게 하였다. 다른 원숭이들은 놀라서 허둥지둥 도망갔다. 어미 원숭이가 상처를 입기 전에 품속에 어린 원숭이 한 마리를 안고 있었는데 화살을 맞은 후 어미는 어린 원숭이를 내려놓으면서 도망치게 하고자 하였다. 어린 원숭이는 얼마 가지 않아 또다시 어미의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어미 원숭이는 아픔을 참으며 다시 한번 어린 원숭이를 품에서 떼어놓으면서 도망가게 하였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것이 어린 원숭이는 울부짖기를 멈추지 않고 다시 어미의 품으로 달려들어 자신의 혀로 어미의 상처를 핥는 것이었다. 사냥꾼은 하는 수 없이 다시 활을 쏘아 두 원숭이를 같이 죽였다. 


원문 : 

一个叫公却证布的猎人带着网罟, 带着弓箭到森林打猎, 正巧遇见一群猴子, 便拉弓射击, 将一只母猴射伤。其他猴子受到惊吓, 惊惶而逃。被射伤前, 母猴怀里还抱着一只幼猴, 中箭后, 母猴将小猴放下, 示意其逃命。小猴走了不远, 又返回来投入母猴的怀抱。母猴忍着疼痛, 再次将小猴推出怀抱, 让其逃跑。没想到小猴哀号不止, 再次扑入母亲怀抱, 用舌头舔舐母猴伤口。猎人再次开弓, 将母猴和小猴一同射杀。

[주석] 王若冰, 《秦岭金丝猴:密林中的太白精灵》, p.169. 재인용.


두 번째로는 「세설신어(世說新語)」에 실린 내용으로써 단장(斷腸) 고사입니다.


환공이 촉을 공격하여 삼협에 이르렀는데, 부대에 원숭이를 잡은 자가 있었다. 그 원숭이 어미가 언덕을 따라 슬피 울부짖으며 백 여리를 따라오면서도 떠나지 않았는데, 마침내 배 위로 뛰어오르더니 곧바로 죽었다. 그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모두 마디마디 끊겨 있었다. 환공은 그 이야기를 듣고는 대노하여 그 원숭이를 잡은 이를 명하여 죽였다.


원문 : 

桓公入蜀, 至三峽中, 部伍中有得猿子者。其母緣岸哀號, 行百餘裏不去, 遂跳上船, 至便即絕。破其腹中,腸皆寸寸斷。公聞之怒, 命黜其人。

[주석] 劉義慶, 『世說新語』, 北京燕山出版社,p.162.


위의 두 이야기로 보건대, 원숭이의 母子 간 감정이라는 것은 어지간한 사람 못지않을 것이기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斷腸하면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반야월 선생이 작사한 <단장의 미아리 고개>인데, 어찌 되었든 단장이라는 어휘는 사람이 특정 이별에 대하여 느끼는 최상의 고통이나 그 정도를 비유할 때 쓰이는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이상으로 이번 호를 마치고, 다음 호에는 좀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오늘 기억해두기 


《단어》 

词语 (어휘):

拼音 (병음): zuò


《예문》 

位:자리, 这个剧场有五千个~儿。(이 극장에는 5천 개의 자리가 있다)

放在器物底下垫着的东西:기물 아래 받치는 물건, 茶碗~儿。(찻잔 받침)

:성좌, 大熊~。(곰 자리)

敬辞, 旧时称高级长官:경사, 옛날 고급 관리를 부르는 명칭, 军~。(군좌)

多用于较大或固定的物体:량사, 비교적 크거나 고정적 물건에 사용, 一~山。(산 하나)

姓。(성)


‘座’는 자리, 지위, 깔개 등의 의미로 현대 중국어의 합성어에 자주 쓰입니다. 특히, 수량사로 쓰이는 것이 HSK 등 시험에 자주 등장하니 잘 외워 두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주석] 座_词语_成语_百度汉语




WRITTEN BY 송희건

“君子以文會友, 以友輔仁.”
“군자는 배움으로 친구를 사귀고, 그 친구로써 인의를 다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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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가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원챈스>는 시작부터 한 아이의 어린 시절을 빗대어 오페라의 정의를 쉽게 설명해줍니다. 오페라를 사랑했던 한 아이는 오페라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바보’, ‘뚱보’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아이들에게 비웃음을 당했지만, 아이는 그럴수록 노래를 더욱 열심히 불렀다는 짤막한 에피소드를 보여주며 다음과 같이 오페라에 대해 정리하지요.


It was a seemingly endless drama full of music and violence and romance and comedy. Kind of like an opera. The opera of my life.


노래, 아픔, 사랑, 웃음이 가득한 드라마. 이런 게 오페라지요. 그리고 내 삶도.


이 아이는 커서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오페라 스타 폴 포츠(제임스 코든 분)가 되지요. 평범한 휴대전화 판매원이었던 그가 어떻게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오페라 스타가 되었을까 궁금해지는데요,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장기자랑 대회에 출전해 받은 상금으로 합격한 베니스음악학교에 등록하면서 점차 오페라 가수라는 꿈에 다가갑니다.


▲ 베니스에서 음악 연습하는 폴 포츠의 모습


하지만 폴 포츠는 그의 우상이었던 전설의 테너 파바로티와의 만남 이후 파바로티의 말에 자신의 꿈을 잠시 접습니다. 다음은 파바로티가 폴 포츠가 부른 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입니다.



Stop. Please, no more. You are very nervous, no? Very. I can hear it in your voice. You lack too much the confidence. Rodolfo could never run out of breath like this on che giova. To sing opera, you need to steal the heart of the audience, and you cannot steal unless you have the nerves of the thief. For me, you are not yet an opera singer. Not yet for sure. And maybe never.


그만 이젠 됐어요. 너무 긴장했네. 목소리에서 자신감 없는 게 느껴져. 자꾸 끊기는 호흡은 어떻고. 오페라는 관객 감성을 사로잡아야 하는데 자네 아직 아닌 듯하네. 때가 안 된 건지, 영원히 안 될 수도 있고.


다 써버렸다는 뜻의 run out of


긴장한 나머지 호흡도 끊기고 자기의 기량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폴 포츠가 보이네요. run out of breath란 숨이 다 떨어져 나가 숨이 차다고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우상인 파바로티 앞이었으니 긴장이 충분히 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파바로티는 바로 그러한 긴장을 이겨낼 자신감이 오페라 가수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이후 폴 포츠는 용광로 폐기물 청소하는 일을 하면서도 오페라 가수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본 영국의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 도전해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불러 전 세계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재능은 있었지만 항상 자신감이 부족하던 폴 포츠는 오디션 시작 바로 전까지도 긴장하고 있었는데요. 이런 폴 포츠의 마음 상태를 예상해 그의 아내는 다음과 같은 문자를 서둘러 그에게 보냅니다.


Pavarotti's an ass.

파바로티가 틀렸다는 것을 보여줘!



▲ 실제 폴 포츠의 모습


타고난 목소리,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그를 응원해주는 가족이 있었기에 오늘의 오페라 가수 폴 포츠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사진출처 : 다음영화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81260




글쓴이 김지현

미드를 보다가 애니와 영화까지 영어의 매력에 홀릭한 여자다. 영어도 충분히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금도 뻔하지 않은 수업을 하려 불철주야 행복한 고민 중이다.




※ 외부필자에 의해 작성된 기고문의 내용은 앰코인스토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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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相思夢》

相思相見只憑夢 그리워라, 만날 길은 꿈길밖에 없는데

儂訪歡時歡訪儂 내가 님 찾아 떠났을 때 님도 나를 찾아왔네

願使遙遙他夜夢 바라거니 언제일까 다음날 밤 꿈에는

一時同作路中逢 오가는 그 길에서 우리 함께 만나기를.

[주석] 장만식, 《황진이의 작품 속에 내재된 트라우마와 욕망 탐색,》 p.42.


林徽因 (中国建筑师、诗人、作家、教师)

사진출처 : 바이두백과 百度百科


서지마(徐志摩, 1897~1931)는 낭만시인, 풍류시인으로 불리는 중국의 20세기 초 인물입니다. 임휘인(林徽因)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하여 그녀와의 뜻한 바는 이루지 못하고 그 과정에서 본처와 이혼을 하였으며, 또 결국에는 남편이 있는 여인과 재혼하게 되는, 이른바 ‘사랑’에서는 상당히 곡절이 많은 인물이라 하겠습니다. 그는 유복한 가정환경의 요인도 있었지만, 일찍이 학업에 깊은 뜻이 있어 미국과 영국에서 유학하였는데, 그 당시로써는 동서의 지식을 두루 섭렵한 상당한 지식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부족함이 없을 것 같은 겉모습과 달리 그의 내면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결부되는 아픔 즉, 자기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었던 조금은 모순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우면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1. 임휘인(林徽因, 1904~1955)을 보고 첫눈에 반하다 (一见钟情)


1920년 서지마가 스물세 살이었고 런던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임휘인의 아버지인 임장민의 초대로 집에 가게 되는데 임휘인을 보고 첫눈에 반하고 맙니다.


임휘인과 서지마가 서로 알게 된 때는 임휘인이 막 16세가 되던 해였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임휘인이 막 사랑에 눈을 뜨기 시작한 아리따운 나이였으니! 그 날밤 서지마는 임장민의 초대를 받고 방금 전에 임씨의 집에 도착한 참이었습니다. 임장민은 위층으로 고개를 돌려 부르는데, “휘인아, 빨리 내려오렴, 손님이 오셨단다!” 하니, “알겠어요, 곧 내려가요”하는 맑고 깨끗한 음성의 대답과 함께, 계단에서 “또각또각”하는 힐 굽의 바닥 닿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마치 한 가락의 우아한 노래가 계단을 따라 굴러 내려오는 듯하였습니다. 계단을 내려서니 그녀의 흰색 치마가 바람에 하늘거렸습니다. 서지마는 고개를 돌려 큰 두 눈을 뜨니, 마치 천상의 선녀를 본 듯, 눈동자도 움직이지 못하고 임휘인을 보고만 있었습니다.

자료출처 : 民国美女林徽因 一个不食人间烟火的女子 百科TA说


그로부터, 서지마와 임휘인은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첫 만남에서 알 수 있듯이 서지마는 이미 임휘인에게 마음을 빼앗긴 상황이고, 임휘인은 사랑의 감정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존경하는 마음으로 서지마에게 호감을 표명하였습니다. 결국 서지마가 임휘인에게 고백을 하게 되는데, 이에 임휘인은 우선 현재의 부인 “장유의(张幼仪)와 이혼을 하고 오면 받아주겠다.”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당시 아직 미성년이었던 임휘인이 이런 말을 실제로 서지마에게 했다 안 했다의 의견이 분분한데, 어찌 되었든 서지마는 본처인 장유의와 다음 해에 결국 이혼하고 맙니다. 하지만 일이라는 것이 자기 뜻대로 되면 얼마나 무미건조한 삶일까요. 이 사실을 안 임휘인의 아버지 임장민은 서지마에게 실망하고 그에게 귀국 사실도 알리지 않은 채 임휘인과 귀국합니다. 임휘인의 귀국 사실을 나중에 안 서지마는 박사과정도 포기한 채 뒤따라 귀국하여 임휘인을 찾아가지만 그녀는 의외로 싸늘하게 거절합니다.

여기서 둘의 이런 어떻게 보면 비정상적 사랑의 배경이 있는데, 먼저 서지마와 장유의의 결혼은 집안의 정략에 의한 것이었는데, 그가 서양문화를 접하면서 자유연애를 간접 경험하였고, 이에 대한 실행이 장유의와의 이혼과 임휘인과의 재혼이었습니다. 역시, 임휘인도 서지마에 대하여 약간의 사람의 감정은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로부터의 현실 인식은 자칫 자신이 한 가정을 파괴한 파렴치범 정도로 세상에 인식된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스스로 허락할 수 없는 일이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 객관적인 판단하기에는 너무 어렸습니다.


林徽因 (中国建筑师、诗人、作家、教师)

사진출처 : 바이두백과 百度百科


2. 相思夢 (꿈속에서라도 볼 수 있다면)


그러나 서지마는 이런 싸늘한 그녀의 변화에 결코 의지를 쉽게 꺾지 않았습니다. 이에 임휘인도 서지마가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냉대했으며, 결국 1924년 아버지가 정해준 양사성(梁思成, 梁启超의 아들)과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곧 떠나는 임휘인과의 짧은 만남과 그 헤어짐으로 인한 단장(斷腸)의 애끓는 눈물을 흘리는 서지마.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이를 본 그의 친구는 서신이라도 전달해주마 말하는데, 다음은 그 내용입니다.


나는 진정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미 수차례 붓을 들어 쓰려고 하면, 매번 완성하지 못하니. 요 며칠 머리가 어지럽고 몽롱한 것이 눈을 뜨고 있으나 감고 있으나 엊그제 저녁의 모호한 달빛만 보이고, 우리가 원치 않았던 이별의 차량을 비추면서 천천히 거친 들판으로 사라져 가는군요. 이별! 어떻게 나에게 믿으라는 것인지요? 생각하면 바로 아파지겠지요. 이렇게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누가 좀 끊어주었으면? 눈앞이 또 암흑으로 변하는군요.

[주석] 王树荣, 《林徽因徐志摩的人间真情》, p.17.


나중에 임휘인도 호적(胡适)을 통해 고백한 바 있지만, 그녀 스스로 당시에는 너무 어렸고, 그래서 서지마의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냉대한 것을 이해해 달라고 전한 바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성인이 되고 보니 당시의 서지마의 자신에 대한 사랑이 진심이었으며, 그때는 너무 두려운 나머지 피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의 감정은 그 범위가 모호하여 오히려 성인 이전의 순수함이 성인이 된 후에는 이성에 묻혀 변질할 수도 있는 문제이기에 어쩌면 두 사람 사이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결과적으로는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회자하고 있는 원인인 듯합니다. 1931년 이미 양사성과 결혼하여 딸도 하나 있는 임휘인이 병으로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서지마는 열 일 제쳐 두고 달려갑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미련의 끈을 놓지 않았으며, 늘 마음 한구석에 아리도록 간직하고 있던 사랑에 대한 안위를 확인코자 떠난 그 설레는 여정이 안타깝게도 그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서지마를 태운 비행기가 도중에 기상 악화로 추락하여 34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이에 임휘인은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대성통곡하였습니다. 나중에 임휘인이 서지마와 케임브리지에서의 추억을 시로 표현한 것이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그날 밤 나의 배는 강 한가운데로 밀려갔다네. 영롱한 쪽빛 하늘엔 빼곡한 별이 널려 있었지.

그날 밤 너의 손은 나의 손을 이끌었고, 아득한 밤의 별은 겹겹의 우수를 잠재웠다네.

그날 밤 너와 나는 서로의 마음을 정하고, 삶의 방식을 이해하였네.

지금도 나의 배는 여전히 바다를 표류하고, 가냘픈 돛대는 수시로 파도 바람에 흔들리네. 

지금도 태양은 내 뒤에서 배회할 뿐, 층층의 음영만 내 주위를 지키는구나.

지금도 나는 아직 그날 밤의 하늘을 기억하니, 별빛, 눈물, 온통 끝없이 빛나던 강변의 모습도.

[주석] 高文翔, 《无辜的爱, 幸运的诗——林徽因与徐志摩的爱情经历及爱情诗写作》, p.55.


현실적으로 보면 분명 둘 간의 이런 교감은 결코 도의적으로 용납이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자는 「孔子家語」「禮運」에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何謂人情? 喜怒哀懼愛惡欲七者, 不學而能.” : 도대체 인정, 즉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무엇이냐? 그것은 기뻐하고, 노여워하고,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증오하고, 욕심내고 하는 일곱 가지 감정인데, 이것은 인간이 배우지 않고서도 매우 잘하는 것이다.

[주석] 도올 김용옥, 『중용 인간의 맛』, 통나무, 2018, p.79-80.


사랑은 단지 이런 칠정 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배우지 않고도 잘하는 이런 감정은 다른 말로 이해하면 본능인 것인데, 그 본능을 스스로 구속하면서 사는 것이 현실 사회입니다. 서지마의 임휘인에 대한 사랑의 감정 역시 당시 사회적 도의를 떠나 단지 본능적인 감정이었습니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도 아니고 임휘인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부지불식간에 생긴 감정이었으며, 이미 그의 마음에는 세속의 관념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습니다.

“남자는 사랑이라는 명분 앞에서 가끔은 과한 대가를 치를 만큼 맹목적이 될 수 있다.”라는 말처럼 또, 황진이의 相思夢 중의 내용처럼 꿈에서라도 해후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감정과 또, 현실 앞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의 고뇌는 우리들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결코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니라고 보며, 오히려 동병상련의 감정까지 느껴집니다.


이 세상에 상처 없는 영혼은 없습니다. 그 속에서 욕망하지 않는 인간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세상에 태어난 그 순간부터 삶이 끝나는 날까지 수많은 마음의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갑니다. 혹은 그 과정에서 일방적인 사랑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받게 됩니다. 자신과 상대의 비교를 통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자신과 상대를 통해, 미성숙한 자신과 상대를 통해 상처를 주고받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이 한편으로는 인격 장애를 갖게 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반성과 성찰을 통해 인격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즉 부정적인 영향 관계일 경우도 많지만, 긍정적인 경우도 많다는 것입니다. 결국 상처와 그 속에서의 욕망의 지향은 그 상처를 스스로가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인격적 성장과 발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주석] 장만식, 《황진이 작품 속에 내재된 트라우마와 욕망 탐색 》, p.37.


본문의 내용과 부합되는 듯하여 영화 노팅힐의 OST인 <She>의 URL을 공유합니다.



이상으로 서지마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으며, 다음 호에는 산해경의 흥미 있는 이야기로 소설로서의 신화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기억해두기 


《단어》

词语(어휘):一见钟情 (유사 표현 一见倾心)

拼音(병음):yī jiàn zhōng qíng


《예문》

一见钟情指男生或女生一见面就对对方产生了感情, 

“Yíjiànzhōngqíngzhǐnánshēng huònǚshēngyíjiànmiàn jiùduìduìfāngchǎnshēnglegǎnqíng, 

一见面就喜欢上他(她), 反之于日久生情, 

Yíjiànmiànjiùxǐhuanshangtā(tā), fǎnzhīyúrìjiǔshēngqíng

区别在于喜欢上对方的速度。”

Qūbiézàiyúxǐhuanshangduìfāngdesùdù。”

’첫눈에 반하다’는 남자 혹은 여자가 한 번 보고 바로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한 번 보고 그(그녀)를 좋아한다는 말인데, ‘오래되어 감정이 생기다’의 반대 표현으로써, 상대방을 좋아하게 되는 속도로 구별된다.

[주석] 一见钟情 (产生爱情的方式) 百度百科




WRITTEN BY 송희건

“君子以文會友, 以友輔仁.”
“군자는 배움으로 친구를 사귀고, 그 친구로써 인의를 다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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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기차에서 형을 기다리다가 잠든 사이 기차가 떠나버려 가족을 잃어버리게 될 줄 알았으면 집에 있으라는 형의 말을 듣지 않은 걸 후회했을까. 형하고 잠시라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아 낯선 곳까지 따라왔는데 한순간에 가족들과 25년간 긴 이별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으리라.


위 이야기는 2012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일로, 한 가정으로 입양된 인도 청년이 구글 어스를 통해 잃어버린 가족을 25년 만에 찾아간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영화 <라이언>의 이야기입니다.



다섯 살에 가족을 잃은 사루(데브 파텔 분)지만 운 좋게 사랑 많은 양부모님에게 입양되어 행복하게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가슴 한편에는 항상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힘들어했지요. 다음은 여자친구에게 하루하루의 소소한 즐거움조차 죄책감을 안고 느껴야 하는 심정을 토로하는 장면입니다.


You have any idea what it's like knowing my real brother... and mother spend everyday of their lives looking for me?

내 친형과 엄마가 하루도 빠짐없이 날 찾고 있다면 어떻겠어?


How everyday my real brother screams my name!

나의 형이 날 찾아다니며 얼마나 날 불렀겠어!


Can you imagine the pain they must be in for not knowing where I am?

그들이 얼마나 힘들어했을지 당신은 상상하기 힘들 거야.


25 years, Luce. 25!

25년이야. 25년!


영화 <라이언>에서는 사루가 잃어버린 자신 때문에 고통스러워했을 가족을 생각하며 가슴 아파하는 이야기와, 구글 어스로 예전 기억을 더듬어 자신의 고향을 기어이 찾아내는 모습이 구체적으로 잘 담겨 있습니다. 구글 어스로 가족을 찾는 모습과 어릴 적 사루의 가족과의 소중한 기억을 교차해주는 연출을 통해 사루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지요.




영화 <라이언>에서는 양어머니의 속내까지 다뤄 한층 이야기의 깊이가 깊어졌습니다. 다음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입양된 만토쉬가 약 문제로 말썽을 피우자 사루는 양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하며 위로합니다.


We... weren't blank pages, were we? Like your own would have been. You aren't just adopting us but our past as well. And I feel life quickened on you.


우린 백지상태로 같이 살게 된 게 아니잖아요. 엄마가 낳았다면 그럴 일이 없었을 텐데, 엄마는 우리 과거까지 함께 입양한 거니까. 우리가 줄곧 엄마를 괴롭혀온 것 같아요.


정말 놀라운 것은 그녀가 아이를 가질 수 있었음에도 낳지 않기로 하고 사루와 만토쉬와 함께 사는 삶을 선택했던 사실을 토로한 부분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as well’


자꾸 말썽을 부려 양어머니의 마음을 썩힌 만토쉬를 보며 사루는 양어머니가 자신들을 입양 안 했더라면 더 행복했을 텐데..라는 마음을 전하려 다음과 말하고 있지요.


You aren't just adopting us but our past as well.


이 문장에서 as well은 자신들을 입양하면서 이전 과거까지 입양했다는 표현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해주고 있습니다.


한순간의 실수로 25년간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했던 이야기와, 아이를 입양하고 사랑을 서로 주고받으며 친부모 이상으로 키워낸 양부모님의 이야기는, 잔잔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잘 전달해주었습니다.


사진출처 : 다음영화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02557




글쓴이 김지현

미드를 보다가 애니와 영화까지 영어의 매력에 홀릭한 여자다. 영어도 충분히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금도 뻔하지 않은 수업을 하려 불철주야 행복한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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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에서 이어집니다)


3. 사랑과 연정 사이


일반적으로 작가가 이른바 ‘사랑’ 혹은 ‘연정’을 모티브로 저작함의 목적은 극단적으로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첫째는 자신과 이루어진 사랑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로는 자신과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것입니다. 전자는 주로 그 내용에 있어서 달달하면서 서로 간의 무한한 사랑에의 속삭임이 자연스럽게 골간을 이룰 것이고, 후자는 분명 그 애틋함과 고통 그리고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절망과 좌절을 통한 결과물이라 하겠습니다. 아래 표는 그런 사랑과 연정이 담긴 네 인물의 짧은 요약입니다.



스탕달의 <연애론>에 보면 사랑을 미(美)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면서 네 가지(열정적인 사랑, 취미적인 사랑, 육체적인 사랑, 허영적인 사랑)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사랑의 성질이나 분류를 떠나 그것이 순수한 사랑이든 이성에 대한 연정의 감정이든 동일한 사랑의 범주로 보면서 다소 이성에 대한 연정에 치우쳐 논하고자 합니다. 그 논의는 괴테의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바탕으로 하고 스탕달의 <연애론> 중에서 적절한 문구를 인용하여 사랑이 시작될 때의 설렘과 사랑해 가는 과정에서의 고뇌, 그리고 사랑의 아픔 및 그 결과로서의 일종의 절망과 좌절 혹은 희망에 대하여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사랑이란 감정은 쉽게 형용하기 힘든 미묘한 고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랑이란 결코 우리가 지배할 수 없는 감정이라서 조심하면 피할 수 있지만 그것과 싸워 이길 수는 없답니다. 한 번 생기면 생명이 다하거나 희망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한 절대로 죽지 않은 감정이 사랑인 것이지요.’ - 스탕달 <연애론>


’사랑은 우리에게 거짓 희망을 주며 심지어 그것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에도 우리로 하여금 집착하게 만듭니다. 또 행여 잃어버린다 싶으면 더욱 격렬한 정열이 뒤쫓아 가뜩이나 쓰라린 심정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그런 감정입니다.’ - 스탕달 <연애론>


사랑이란 감정은 자기 자신도 모르게 부지불식간에 우리를 엄습해 옵니다. 엄습해 온다는 진행형보다는 오히려 엄습해 와 있었다는 완료형이 옳은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첫눈에 반했다 라는 표현으로 위 도표의 네 인물은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그렇게 자신들의 심장에 큐피드의 화살이 날아와 꽂혔습니다. 슐리만이 민나를,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괴테가 샤를로테를, 서지마가 임휘인을 그렇게 우연한 계기로 만나서 자신들도 모르게 사랑에 빠졌습니다. 물론 이 주인공들이 반드시 첫 만남부터 사랑의 감정을 가진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때로는 가랑비에 옷 젖듯 슬며시 젖어오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슐리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짝사랑이나 연정인데, 그들은 그 감정을 어느 순간 깨닫고 적잖이 놀랐을 것입니다. 설렘이나 혹은 기대감의 불명확한 그 무언가에 직면할 때 그 당사자는 참으로 난감합니다.


’나는 당신을 나의 유혹자, 나의 사기꾼, 나의 살인자, 내 불행의 원천이요, 내 기쁨의 무덤이며, 내 절망의 심연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 스탕달 <연애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러 가는 날 밤, 큰 행복을 앞에 두고 있으므로 그때가 오기까지의 1분 1초는 견뎌내기 어려운 것이 된다. 열에 들뜬 것처럼 각가지의 일에 손을 대었다가는 팽개친다. 줄곧 시계를 본다. 잠깐 보지 않은 동안에 10분이나 지나고 있다면 기뻐 어쩔 줄을 모른다.’ - 스탕달 <연애론>


이런 예기치 않은 사랑의 감정은 때로는 달콤한 상상을 하게 되지만 받아들이는 당사자의 상황에 따라 두려움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 감정을 억지로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감정은 인간에게 다분히 본능적인 감정이며, 때로는 마치 긴 시간 마음속으로 기다리고 있던 손님이 찾아온 듯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베르테르처럼 누구나 그 감정의 진위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검증하고자 합니다.


‘아아, 이 공허! 내 가슴속에서 뼈저리게 느끼는 이 무서운 공허! 단 한 번만이라도, 정말 꼭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그녀를 내 가슴에 안아볼 수만 있다면, 이 공허는 완전히 메워질 수 있으리라고 나는 가끔 생각한다.’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아아, 무의식중에 내 손가락이 로테의 손가락에 닿거나, 발이 탁자 밑에서 서로 부딪치기라도 할 때 내 혈관이란 혈관이 얼마나 마구 뛰고 치솟는지 모른다. 그러면 나는 불에라도 덴 것처럼 손과 발을 움츠린다. 하지만 곧 다시 신비로운 힘에 이끌려서 살며시 몸을 편다. 내 감각 전체가 현기증에 걸린 듯 어지러워진다. 오, 그런데 그녀의 순진한 마음, 거리낌 없는 영혼은 사소한 정감의 표시가 내 마음을 얼마나 괴롭히는지를 모른다.’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자비로운 사랑이여, 내게 허락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그 사랑이 같은 세상에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이 꿈뿐이라 내 꿈을 그대 발밑에 깔았습니다. 사뿐히 밟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 예이츠 <하늘의 천> 중에서


‘다정한 영혼은 어차피 힘으로 빼앗는 일은 할 수 없으므로, 사랑하는 사람의 ‘자비’에 의하지 않고서는 무엇 하나 얻을 수 없어 체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스탕달 <연애론>


‘거룩한 하늘의 영이 감돌고 있는 입술이여! 나는 감히 네게 입을 맞추겠다는 생각을 차마 할 수 없다. 그러나 그토록 굳게 맹세를 하건만 나는 도저히 단념할 수가 없다. 나는 미치도록 키스하고 싶단 말이다. 아, 아! 그것이 마치 둘로 갈라놓은 장벽처럼 내 마음을 가로막고 있다. 그 행복, 키스할 행운을 얻을 수만 있다면 몸을 파멸시키고 속죄를 받아도 좋다. 이것을 어찌 죄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사랑과 연정의 차이를 분명하게 구분해보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부득이 정의한다면, 전자는 일종의 순수함이 내재한 남녀 간의 교감이라고 하겠고, 후자는 베르테르의 로테에 대한 사랑, 즉, 도덕적 굴레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또 그것으로 말미암은 당사자만이 겪어야 할 아픔과 괴로움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연정도 사랑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기에 그리고 하지 못할 사랑은 없는 것처럼, 그러한 이성에 대한 연정의 감정을 단지 도의적 한계에 국한한다면 이런 훌륭한 문학작품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의 결과가 있기 전 그 긴긴 여정은 참으로 힘든 고행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그 여정 중의 아무리 어려운 고통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비교할 바는 아닙니다.


‘불행한 자여! 너는 정말 천치가 아닌가? 이렇게 미쳐 날뛰는 너의 끝없는 정열을 도대체 어쩌자는 것이냐. 나는 이제 기도라고는 그녀에게 바치는 기도밖에 모른다. 나의 공상 속에 떠오르는 것은 오직 그녀의 아리따운 모습뿐이다. 주위 세계 모든 것이 오직 그녀와 관련되어서만 내 눈에 비치는 것이다.’ - 단테 <신생>


‘나는 차가운 빗속에서 이 거리 저 거리로 돌아다닌다. 우연이-물론 이것을 우연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나로 하여금 그녀의 창문 아래를 지나게 한다. 해가 저물 무렵, 나는 눈물이 가득 고인 눈을 그녀의 침실 창문에 던지며 걷고 있었다. 갑자기 커튼이 살짝 열렸다가 곧 닫혔다. 마치 광장을 내려다보려는 듯이. 나는 심장 부근이 쿡쿡 쑤시는 아픔을 느꼈다. 서 있을 수가 없었다.’ - 스탕달 <연애론>


‘사랑하는 로테, 이 허탈의 물결 속에서 허우적거리기 있는 나의 꼴을 당신이 보신다면! 내 마음은 메말라질 대로 메마르고, 가슴속이 벅차도록 넘치는 순간이라곤 찾아볼 수 없으며 행복한 시간은 한시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아침마다 내가 괴로운 꿈에서 깨어나면 나는 헛되이 그녀를 향하여 두 팔을 뻗고 더듬는다. 그녀와 나란히 풀밭에 앉아서 그녀의 손을 잡고 끊임없이 키스를 퍼붓는 천진난만한 즐거운 꿈이 보람 없는 착각임을 깨달으며, 나는 밤마다 침대 속에서 안타깝게 그녀를 찾아 헤맨다. 아아, 그리하여 꿈결같이 잠이 덜 깨어 그녀를 향해 더듬다가, 마침내 정신이 들면 억눌린 가슴 속에서부터 눈물이 줄을 이어 쏟아져 나온다. 마음을 달랠 길이 없는 나는 어두운 앞날을 바라보며 울음을 그치지 못한다.’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처럼 연정이란 것은 반드시 아픔이 따르기 마련인 듯합니다.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왕비인 헬레네를 트로이로 납치한 파리스로 인하여 결국 트로이는 그리스 연합군 사령관 아가멤논에 의해 망하고 맙니다. 이렇듯 연정을 품고 연정의 감정을 실행에 옮긴 결과는 너무도 참혹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는 베르테르의 마지막 죽음으로의 결과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달콤한 꽃이다. 그러나 벼랑 끝까지 가서 그것을 꺾을 용기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남의 눈에 우스꽝스럽게 비치는 것은 제외하고라도 사랑은 연인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는 절망을 항상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인생의 다른 모든 일에 대해 죽음의 공허밖에는 남지 않는다.’ - 스탕달 <연애론>


사랑이든 연정이든 그 결과가 반드시 베르테르식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이 갖는 그런 특별한 감정이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강요한다고 갖게 되거나 강요하지 않는데 저절로 그 마음속에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위의 위대한 네 명의 인물처럼 스스로 그 아픔을 어디에 형상화하여 치유하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젊음의 때에 불같은 사랑의 단 한 번도 겪지 못하고 지나감은 스스로에 대한 무책임이다.’라는 혹자의 말처럼, 그 사랑의 감정은 매우 소중하며 비록 이런 유명한 인물이 아니어도 개인에게 있어서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젊음이라는 시간의 단위 자체도 극히 개인이 판단하는 것이라 더욱 그러하다고 하겠습니다.


‘열정적인 연애는 남자의 눈에 숭고하게 비치는 모든 자연을 마치 어제 새로이 창조된 형태로 제시한다. 그는 자기의 영혼을 향해 열린 이상한 광경을 왜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는지 놀라워한다. 모든 것은 새롭고 싱싱하기만 하여 가장 정열적인 흥취를 돋운다. 사랑을 하는 남자는 그가 만나는 모든 풍경의 수평 선상에서 사랑하는 여자의 모습을 본다.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 천 리 길을 가면 수목도 바위도 그녀에 관해 다른 것을 이야기하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가르쳐 준다.’ - 스탕달 <연애론>


‘신중한 남자는 언제나 주저한다. 믿을 수 없는 남자가 많음은 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여자 쪽에서도 잘못이 없는 남자에게는 언제까지나 한숨만 짓도록 버려둔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그녀가 주는 보물의 가치는, 그것을 맛본 자가 아니고는 알지 못한다. 그것은 값이 비쌀수록 놀라운 것이다. 사랑의 행복은 치른 고생에 의해 가치를 갖는다.’ - 스탕달 <연애론>


‘그녀는 나의 무절제한 생활을 나무랐다. 그러나 나무라는 그녀의 태도가 어찌나 사랑스러웠던지. 그녀는 내가 포도주 한 잔으로 기분을 내기 시작해서, 한 병을 몽땅 마셔버리는 버릇을 말하는 것이었다.’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나는 그리움에 못 이겨 이렇게 생각하곤 한다. 아아, 이렇게 벅차고, 이다지도 뜨겁게 마음속에 달아오르는 감정을 재현할 수 없을까? 종이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없는 것일까? 그리고 그대의 영혼이 무한한 신의 거울인 것처럼, 종이를 그대 영혼의 거울로 삼을 수 없을까?’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주석] 본문 원문: 《연애론》 홍신문화사 2013 스탕달 지음, 권오석 옮김. 《신곡, 신생》 동서문화사 1973 단떼 지음, 허연 옮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1999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각 책의 전체 내용 중에 인용 및 재인용 하였으며, Page는 기재하지 않음.


사랑이란 감정이 그때를 알고 그 예의를 알아 적절히 내게 찾아왔다면 이런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공감도 없었을 것입니다. 어찌 그 아픔을 단지 이런 몇 글자의 인용문으로 형용할 수 있겠는지요! Mary Hopkin의 <Those were the days>의 가사처럼 “세월은 빠르게 우리 곁을 지나가고 우리는 지난 일을 잊게 되겠지만, 만약에 우연히 그 선술집에서 너를 만날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 웃으며 지난 시절을 얘기하겠지.” 나중에 좋은 추억으로 남을 사랑의 상흔을 위하여!


다음 호에는 이번 호에 다루지 않은 중국인 徐志摩의 삶과 사랑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 기억해두기 


词语 (어휘): 绮罗 (繁体字 : 綺羅)

拼音 (병음): qǐ luó

例句 (예문) : 绮罗指华贵的丝织品或丝绸衣服。 《东周列国志》第八十一回:

Qǐluózhǐ huáguìde sīzhīpǐn huòsīchóuyīfu。 《dōngzhōulièguózhì》 dìbāshíyìhuí:

“勾践命范蠡各以白金聘之。服以绮罗之衣,乘以重帷之车,国人慕美人之名,争欲认识,都出郊外迎候,道路为之壅塞。”

“gōujiànmìngfànlǐ gèyǐbáijīnpìnzhī。 Fúyǐqǐluózhīyī, chéngyǐzhòngwéizhīchē, guórénmùměirénzhīmíng, zhēngyùrènshi, dōuchūjiāowàiyínghòu, dàolùwéizhīyōngsè。”


“기라(绮罗)는 화려하고 진귀한 명주실로 짠 직물 혹은 비단옷. 《동주열국지》 제81회에는 “월왕(越王) 구천이 범려에게 명하기를 백금을 들여 ‘서시(西施)’,’정단(郑旦)’을 초빙해오라고 하였다. 기라의 옷을 입고, 두껍게 가린 마차를 탔는데, 나라 사람들이 그 용모의 아름다움을 흠모하여 서로 다투어 보고 싶어 모두 교외로 나와 맞았는데, 도로가 다 막힐 지경이었다.”


기라라는 단어는 중국 고소설 부분에 자주 보이는 표현인데, 주로 아름다운 여인이 입는 옷을 뜻하면서 그 여인의 아름다운 용모를 은유하기도 합니다. 특히 그 가벼운 기라조차 버티기 힘들다는 표현으로 묘사되는 가녀린 여인의 모습은 천상의 선녀를 연상케 합니다. 중국 전기소설을 다룰 때 다시 부연 설명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WRITTEN BY 송희건

“君子以文會友, 以友輔仁.”
“군자는 배움으로 친구를 사귀고, 그 친구로써 인의를 다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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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7.03 19:4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흥미로운데, 일상회화와는 좀 거리가 멀어보여서 조금 아쉽습니다ㅠㅠ

  2. 송시치엔 2018.07.04 21:05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근 현대소설에서는 일상회화라던지, 백화문의 현대문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소설을 신화부터 언급하자니 당시의 글은 고문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으며, 저 스스로도 처음 쓰는 것도 있고 어색하거나 중국어와 동떨어진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앞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중국어 공부 하시는데, 가능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 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최초의 댓글 감사합니다.


슐리만 하일린츠(1822-1890)를 앞에서 언급하면서 그의 ‘트로이 전쟁’에 대한 사실적 고증에 대한 부분은 우리에게 상당히 고무적으로 다가옴을 느낍니다. 원래 신화의 정의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하게 다루어 보기로 하였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이번 장에서는 과연 슐리만이 왜 이렇게 신화에 대하여 고증하고 싶어 하였는지 그 원동력과 동기부여의 원천에 대하여 그의 자서전의 내용을 통해 간접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사랑의 아픔과 극복 (첫사랑 민나)


나는 1822년 1월 6일 메클렌부르크 슈베린(독일 북부에 위치한 대공국)의 작은 도시 노이부코프에서 태어났다. 목사이신 아버지가 이곳 안커스하겐에 부임하게 되어 나는 8년 동안 여기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특히 이곳 마을은 유령 이야기나 온갖 기괴한 사건들의 소문이 무성하여 신비스럽고 불가사의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쉽게 빠져드는 나의 천성에 열정의 불을 지피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문헌학자이거나 고고학자인 것은 아니셨지만 고대의 역사에 대해서만큼은 상당히 흥미를 갖고 계셨는데, 특히 호메로스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활약이나 트로이 전쟁 때의 사건들을 들려주실 때면 나도 모르게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어느 순간 나 역시 트로이에 대한 열렬한 옹호자가 되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이곳으로 이사 와서 새로운 나의 관심사에 빠져있을 때 나는 우연히 나의 첫사랑 ‘민나 마인케’를 만나게 되었다. 봄기운이 완연하다고는 하지만 한낮이 아니고서는 아직은 조금은 차가운 기운이 공기 중에 스며있는 4월 말 어느 날이었다. 책을 보고 있자니 오후의 나른함으로 기지개를 켜면서 문득 창밖을 보는데 희게 반짝이는 햇살이 나의 발걸음을 저절로 밖으로 옮기게 했다. 교회 주위를 산책이나 할 요량으로 거니는데, 앞산을 수원으로 해서 내려오는 가는 실개천의 물 흐르는 소리는 마치 영롱하고 청명한 옥구슬이 굴러가는 소리처럼 들려오면서 산새들의 지저귐 소리와 함께 마치 한 곡의 ‘봄의 왈츠’를 연주하는 듯하였다. 그렇게 물길을 따라 가늘게 나 있는 오솔길을 거닐기를 한동안, 문득 내 또래의 여자아이 둘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한낮의 봄기운을 만끽하고자 이렇게 나와 같은 길을 역으로 걸어오고 있던 참이었다. 처음 보는 사이라 서로 눈빛만 교환하였는데, 잠시 후 그 둘 중에 조금 더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너 혹시 여기 교회 목사님 댁 아들 아니니?” 하고 몸을 돌려 3~4m의 거리를 뒤돌아 오는데, 조금 전에는 잠깐 스쳐 지나가서 인식하지 못하였지만, 바로 내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보는 순간 나는 숨이 멎는 듯 가슴이 답답해 지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하얀 피부에 똘망똘망 한 눈과 눈동자, 앵두 같은 입술과 오뚝한 콧날, 이런 아름다운 이목구비가 전체적으로 잘 조화를 이룬 작고 갸름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머리카락은 조금은 브론디 하면서 누가 땋았는지 모르는 뒷머리는 뒤로 곱게 묶여 내려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기라(綺羅)와 같이 하늘거리면서 찰랑찰랑하고 치마에는 주름이 살짝 져 있는 원피스였는데 그것조차 힘에 겨워할 정도의 가녀린 몸매는 어디서 풍겨오는지 모르는 향기로운 봄의 내음과 함께 나로 하여금 천상의 선녀라면 이렇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후 계속된 만남으로 우리는 서로의 관심사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대화상대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비록 어린 나이의 순수함이었지만 애정이 싹트게 되었고 내 마음속에서는 민나를 영원한 사랑의 대상으로 맹세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짧은 유년의 행복은 어머니의 뜻밖의 죽음으로 큰 전환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복은 쌍으로 오지않고 화는 홑으로 오지 않는다는 말처럼, 아버지의 교회와의 불화와 함께 마인케 집안은 나와 민나의 만남을 더는 허락하지 않았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민나를 잃었다는 강한 충격과 슬픔은 어머니의 죽음조차도 잊게 하여 나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모든 미래에 대한 생각조차도 잊게 할 만큼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때 내가 깨달은 것은 비록 현재 나의 현실과 민나의 현실은 서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반드시 성공하여 나야말로 민나에게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리라는 굳은 마음속 다짐이 그것이다.

[주석] 본문 원문 : 《하인리히 슐리만 자서전-트로이를 향한 열정》 일빛 2004 하인리히 슐리만 저, 김병모 옮김 15-42쪽 편집 및 내용추가.


위의 내용은 하인리히 슐리만의 자서전 번역본의 앞부분인 <운명을 바꾼 어린 시절의 감동>과 <첫사랑의 떨림, 민나>의 내용을 기본으로 요약하고 필자가 민나와의 첫 만남 부분은 어느 정도 상상 및 각색하여 추가 편집한 것입니다.

슐리만은 자서전의 도입부에 첫사랑의 아픔을 이야기하였는데, 이렇듯 민나와의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의 아픔을 오히려 반드시 성공함으로 극복하고자 하였으며, 결과적으로 그 경제적 성공으로 인하여 ‘트로이’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보면 슐리만의 고고학적 성과는 아이러니하게도 민나의 도움이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사실적 내용이든 혹은 소설의 창작물이든 이런 일종의 극적인 이야기가 어느 정도는 상투적인 내용의 전개일 수도 있습니다. 첫사랑의 아픔으로 더욱 성장하여 성공한 그런 류의 내용 서사는 영화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영화 <시네마 천국, Cinema Paradiso>(1988)이 그 대표적 예라 하겠습니다. 그 내용 역시 ‘토토’와 ‘엘레나’의 첫사랑과 공교로운 사건으로 결국 인연이 되지 못하고, 이에 토토는 그 아픔을 유명한 영화감독이 됨으로 승화시킨 것은 내용 면에서 매우 닮았습니다.

상투적이든 일반화, 도식화되었든 상관없이, ‘첫사랑’이나 ‘연정(戀情)’이라는 텍스트는 상당수의 저명한 작가들로 하여금 그들이 스스로 겪었던 사랑의 아픔, 즉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은 일종의 핸디캡이라 정의한다면 그 핸디캡을 명저를 저술함으로써 해소하거나 혹은 저작의 주인공 내면에 자신을 투영함으로써 형상화하였는데, 그 예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셀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소설이 있어 그 줄거리와 함께 사랑과 연정에 대하여 부연(敷衍)하고자 합니다.


2.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부 : 로테와의 만남

젊은 베르테르는 그의 어머니의 유산정리를 위해 숙모님이 있는 동네에 오게 된다. 그곳에서 일을 처리하고 때로는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는 등의 전에 느끼지 못한 자유로움을 느끼고 모든 소소한 일까지도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빌헬름과 서신으로 교환한다. 그렇게 지내던 중 베르테르는 우연히 이 마을의 어느 무도회에 참석하는데 거기서 로테를 만나 첫눈에 반하게 된다.

6월 16일 : “빌헬름! 어떤 여인과 알게 되었는데, 그녀가 내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아 버렸다네, 해와 달과 별은 조용히 궤도를 돌고 있지만 나는 낮인지 밤인지도 분간 못하게 되었고, 온 세계가 내 주위에서 멀리 사라지고 말았다네.”


2부 : 로테에 대한 지독한 사랑

그녀는 여덟이나 되는 동생들을 잘 돌보는 다정다감하면서도 어렸을 때 소설을 좋아했던 나름대로 지식이 있는 매력적인 숙녀로서 약혼자가 타지에 있는 동안 베르테르를 대화 친구로서 자주 만나게 되고 서로 친해진다. 하지만 베르테르는 로테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녀에게는 이미 부모님에 의해 정해진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음을 까맣게 잊게 한다. 타지에 가 있던 약혼자가 돌아옴으로 인하여 베르테르는 심한 고뇌를 하지만 로테와의 만남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알베르트는 베르테르의 이상주의적 성격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매우 주도면밀하고 현실주의적인 사람으로 자신의 약혼녀인 로테에 대한 베르테르의 관심을 알고 있었지만 지성인으로서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대한다. 이에 베르테르는 친구 빌헬름의 권유도 있었지만 본인 스스로가 마음을 다잡고자 다른 도시의 공사 비서로 지원하여 떠난다. 그동안 로테와 알베르트는 결혼하고 이 사실을 베르테르는 얼마 후에 알게 되는데, 둘에 대한 왠지 모를 배신감이 전율하며 온몸을 휘감고 오히려 마음의 번뇌는 더욱더 커지게 된다. 결국 일을 그만두고 다시 돌아오는데 그때 그의 심리 상태는 이미 알베르트가 죽었으면 하는 마음마저 갖게 되는 극히 비정상적인 상태가 된다.


8월 21일 : ”내 마음은 손바닥을 뒤집듯 쉽게 변한다네, 알베르트가 죽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그녀는.... 그래“.

10월 30일 : “나는 벌써 몇백 번이나 자칫 그녀의 목에 매달릴 뻔했다! 이처럼 사랑스러운 사람이 눈앞에서 얼씬거리고 있는데, 손을 뻗칠 수가 없을 때 어떤 심정이 되는지 신만이 알 것이다. 손을 내밀고 붙잡는 것은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충동이다! 어린애들은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손을 내밀고 붙잡으려고 하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11월 21일 : “로테는 자기 자신과 나를 아울러 파멸시키는 독소를 스스로 만들고 있는 줄 미처 모르고 있다네.”

12월 6일 : “로테의 환상이 언제나 눈앞에 나타난다네, 눈을 떴을 때나 꿈을 꾸고 있을 때나 한결같이 내 마음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네.”


3부 : 절망, 죽음에 이르는 병

베르테르의 가슴속에는 쌓이고 쌓인 사랑에 대한 욕구 불만과 이에 따르는 좌절감이 점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서로 얽히고설켜서 그를 점차 병들게 하였다. 그의 정신의 조화는 깨어지고 마음속의 흥분과 격정은 이성의 힘을 모조리 무너뜨리고 더할 바 없는 불길한 결과를 일으켰는데, 결국에는 일종의 허탈감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절망감만이 그에게 남겨지게 되었다. 『죽음에 이르는 병』 1849년에 간행된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1813-1855)의 저서로써, 기술하기를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며 절망이란 신과의 관계 상실을 뜻하며 오직 신만이 치료할 수 있다.” - Desperation: 절망, 좌절, 자포자기, 필사적임.

즉, 로테에 대한 사랑이 우울증적 병태로 나타나 몸과 마음은 이미 은연중에 절망의 결과인 죽음을 내색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로 필사적인 삶을 갈구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그 치료 약은 베르테르에게 신과 같은 로테 뿐이었다.

12월 14일 :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또 아무것도 구하지 않소, 이제 나는 사라져 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알베르트의 품에서 당신을 빼앗는다는 것은 죄가 되겠지요. 죄? 좋습니다. 나는 그 형벌을 스스로 내리려 합니다.“

하인을 시켜 알베르트에게 가서 여행을 핑계로 권총을 빌려오게 한다. 베르테르는 로테가 그 권총을 건네주더라는 말을 듣고 미친 듯이 기뻐하며 그것을 건네받는다.

날짜 미상 : “이것은 당신의 손을 거쳐 내 손에 들어왔습니다. 당신이 먼지를 털어주셨다지요? 나는 수없이 그 권총에 입을 맞췄습니다. 당신이 만졌던 물건이니까요. 로테여! 실은 당신의 손에서 죽음을 받기를 원하였습니다. 아아, 이제 이렇게 받게 되었군요.”

“자아, 로테여! 나는 죽음에 취하는 이 차디찬 무서운 잔을 겁내지 않고 손에 들겠습니다. 당신이 손수 내어준 잔입니다. 나는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내 평생의 모든 소원과 희망이 이루어졌습니다. 죽음의 쇠문을 두들기면서도 이렇게 냉정하고 태연합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죽을 수 있는 행복을 누리다니, 로테여! 당신을 위해 나를 바칩니다. 그럼 로테여, 안녕!” (날짜가 없고 죽은 후 주머니에서 발견됨)


소설의 주인공이 마지막에 절망감으로 자살함으로 인하여 18세기 말의 유럽 전역에 만연해 있던 감상주의(sentimentalism)와 낭만주의(romanticism)를 저변으로 한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 즉, 일종의 자신과 동병상련의 관계가 있는 타인이 죽으면 따라서 자살한다는 반향(Syndrome)을 일으킨 그 유명한 괴테(1749-1832)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내용입니다. 번역본을 개인적으로 중요 부분만 날짜순으로 요약하여 서술하였는데, 내용 서사가 서간체 형식이면서 그 전개 속도가 빠르고 한 번 잡으면 순식간에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의 저작 배경은 괴테의 경험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실제로 ‘샤를로테 부프(Buff, Charlotte)’라는 다른 사람의 약혼녀를 사랑한 것과 친구의 죽음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슐리만의 자서전의 내용과 비교해 보더라도 본인의 경험을 제재로 한 것은 사실적인 측면에서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괴테 자신이 저작의 주체로써 스스로 감정을 주인공 베르테르에 전가한 것은 현실의 샤를로테에 대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고뇌를 이른바 희생양으로서 베르테르를 살해함으로 종결짓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과 고고학적 업적, 그리고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어떻게 보면 유사한 귀납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의 독특한 공통점이 있는데, 생애로 보면 독일의 19세기 초를 공유하면서, 둘 다 ‘호메로스’를 탐독하였고, 인생에 이성으로써 ‘민나’라는 이름의 여성을 깊게 좋아한 경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석] 본문 원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1999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원작 전체 내용 요약 인용함(특히, 문학사조 측면에서 보면 당시 정치, 사회의 배경 상 이데올로기의 전이로 인하여 18세기의 유럽의 문학사조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중국 ‘원앙호접파(鴛鴦蝴蝶派)’에 직접적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는데, 서침아徐枕亚의 소설 <玉梨魂, 1913>은 이른바 중국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少年维特之烦恼’으로까지 소개될 정도로 내용이나 구성 형식이 매우 닮아있다.)


(다음 편에 계속)




WRITTEN BY 송희건

“君子以文會友, 以友輔仁.”
“군자는 배움으로 친구를 사귀고, 그 친구로써 인의를 다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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