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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iconductor/스마트 Tip

[역사 속 엔지니어] 에이다,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

by 앰코인스토리 - 2015. 10. 6.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은 프로그래머들이 프로그래밍 언어로 짜서 만든 것들입니다. 스마트폰이나 데스크톱, 노트북 등에서는 손쉽게 구동되는 프로그램도 최초의 프로그래밍 언어를 살펴보면 어렵기만 할 뿐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한 가지가 아니듯 프로그래밍 언어도 여러 가지인데요, 그중에 ‘에이다(Ada)’라는 것이 있습니다. ‘에이다’는 200년 전 영국에서 태어난 여성의 이름에서 딴 것이고, 그녀는 남녀 통틀어 최초의 프로그래머로서 영원히 기억되고 있지요. 영국 컴퓨터협회(British Computer Society)는 지금도 매년 에이다 러브레이스의 이름으로 메달을 수여합니다.


그녀는 아름답게 걷는다, 밤처럼

구름 한 점 없이 별들이 빛나는 하늘

어둠과 빛의 모든 정수가

그녀의 얼굴과 눈 속에서 만나

부드러운 빛으로 무르익는다

번쩍이는 낮의 하늘은 받아들일 수 없는.

- 조지 고든 바이런 (George Gordon Byron)


영국 낭만주의 시인으로 유명한 바이런 시의 한 토막입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에이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 1815-1852)를 소개한다고 해놓고 시부터 나오다니 조금 엉뚱한가요? 조지 고든 바이런은 에이다 러브레이스의 아버지입니다. 이 재능 넘치는 부녀를 두고 에이다는 ‘기계의 시인’, 바이런은 ‘마음의 프로그래머’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요. 함께 산 적은 없지만 부녀 모두 만 36년을 살다 간 천재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에이다의 삶은 짧았지만 이러저러한 소문들이 얽혀 있지요. 그녀의 탄생부터 바로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명석하고 아름답던 젊은 시절


딱 200년 전, 영국 런던에서 어거스타 에이다 킹(Augusta Ada King), 훗날 러브레이스 백작부인으로 불리게 되는 여자아이가 태어납니다. 아버지 조지 고든 바이런과 어머니 앤 이사벨라 바이런 사이에서요. 아이의 이름은 고모, 즉 아버지의 이복누이인 어거스타 리(Augusta Leigh)에게서 따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어거스타가 아닌 에이다로 불렸지요.


▲ 아버지 조지 고든 바이런과 어머니 앤 이사벨라 바이런

이미지출처 : (좌)https://goo.gl/tZwcKw (우)https://goo.gl/pqXciB


에이다가 태어났을 때 이미 유명한 시인이었던 아버지 바이런은 여성들과의 연애사건도 여럿 일으켰습니다. 에이다가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바이런 부부는 별거에 들어가 결국 이혼하고 맙니다. 이혼 사유는 여러 가지로 추측되고 있습니다만, 에이다의 어머니는 아이에 대한 친권을 전혀 행사하지 않은 바이런을 평생 원망했습니다. 당시 바이런은 이복누이인 어거스타 리와 불륜관계였지요. 이래저래 에이다는 사교계의 입소문에 오르내리는 유명 인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딸에게 연락 한 번 하지 않던 아버지는 에이다가 여덟 살 때 그리스 독립전쟁에 나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안타깝게도 어머니 앤 이사벨라마저 에이다를 할머니에게 맡겨 두고 겉으로만 양육의 의무를 다하는 척했다더군요. 더구나 몸까지 약했던 에이다는 여덟 살 때 심한 두통과, 열네 살 때 홍역을 앓는 등 어린 시절 내내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16세쯤 되어서야 겨우 침대를 빠져나와 걸어 다니게 된 에이다는, 스무 살이 되기 전 수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가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을 에이다의 가정교사로 초빙했지요. 아버지 바이런처럼 에이다도 문학에 빠져들까 봐 일부러 수학과 과학 쪽으로 유도했다고 전해집니다.


▲ 수학자 드모르간(Augustus de Morgan)

이미지출처 : https://goo.gl/5Iv7u5


이때 에이다의 재능을 알아본 가정교사 중 한 명이 유명한 수학자 드모르간(Augustus de Morgan)인데요. 그는 ‘드모르간의 법칙’을 만들어 집합론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사람입니다. 머리 아픈 드모르간 법칙보다 우리에게 친근한 업적을 꼽아보자면 사선으로 분수 표시를 한 것이 있습니다. 드모르간 덕분에 분수 표시를 그리지 않고 ‘삼 분의 일’을 ‘1/3’이라고 표시할 수 있지요. 그러고 보니 컴퓨터에서도 나누기를 ÷가 아니라 /으로 표시하고 있네요.


스무 살의 에이다는 아름다운 처녀이자 런던 사교계의 명사였습니다. 문학과 과학에 걸쳐 인사들과 어울렸지요. 1835년에는 제8대 킹 남작인 윌리엄 킹과 결혼하여 남작부인이 됩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딴 아들 바이런과 어머니의 이름을 물려받은 딸 이사벨라를 낳았지요. 막내아들을 낳을 즈음에는 남편이 러브레이스 백작의 작위를 받아 에이다도 러브레이스 백작부인이 되었습니다. 어거스타 에이다 바이런이자 킹 남작부인이었던 그녀의 호칭은 죽는 날까지 러브레이스 백작부인으로 남았습니다.


컴퓨터가 생기기 전 프로그래밍을 예측하다


에이다가 살았던 19세기 초중반의 유럽에는 자본주의가 자리를 잡고 팽창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은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전후로 제국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고요. 문명의 진보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래서 과학이 유행하던 때였습니다. 에이다는 당대의 유행에 심취했고, 전기, 음악과 수학의 관계, 두뇌와 골상학 등에 두루 관심이 있었습니다. 자신을 스스로 ‘시적인 과학자(poetical scientist)’라고 불렀지요.


▲ 25세 때의 어거스타 에이다 킹 (1840년)

이미지출처 : https://goo.gl/WRxxqu


이제 에이다가 관심을 기울인 많은 분야 가운데, 어떻게 프로그래밍 분야에서 최초의 인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알아볼 차례입니다. 컴퓨터는 20세기나 되어야 최초라고 할만한 것이 발명되는데 말이지요. 에이다가 살던 시대 영국에는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라는 수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을 대신해 계산하는 ‘초기 컴퓨터’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에이다는 그와 학문적인 교분을 나누었습니다. 배비지의 제안으로 한 프랑스어 논문을 영어로 번역하게 된 에이다는 거기에 본문보다 긴 주석을 추가했습니다. ‘해석기관’을 주제로 한 이 논문의 주석 중에서 오늘날 프로그래밍의 원형이라 볼 수 있는 알고리즘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해석기관의 원리와 베르누이 수를 구하는 알고리즘을 설명하는 일은 생략하도록 하지요.


훗날 최초의 프로그래머가 에이다냐, 배비지냐,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에이다가 프로그래밍의 개념에 크게 이바지한 것은 사실입니다. 컴퓨터가 발명되고 나서 실제로 개념대로 작동되는 것도 확인되었고요. 배비지와 에이다가 주고받은 편지나 주변 사람들의 전언 속에서 에이다의 공로가 인정됩니다. 중요한 점은 에이다가 사용한 개념이 오늘날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시초라는 것이지요.


짧게 불타오르고 꺼져버린 생


▲ 에이다 러브레이스의 초상 (1836년)

이미지출처 : https://goo.gl/enNCSj


에이다는 과학적 업적 바깥의 사생활에서는 심한 구설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녀가 남자들과 사귄다는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실제로 연구를 위해 교류했던 과학자의 아들과도 사귀었고요. 이 남자 존 크로스(John Cross)는 에이다의 사망 후 유산 일부를 받기도 했는데요. 뜬소문 중 일부는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복잡한 연애관계보다 심각하게 수면 위에 드러난 문제는 ‘도박’입니다. 에이다는 수학적 재능을 경마 우승 확률 계산에 쏟았지만 끝내 빚을 지고 협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도박이란 얼마나 무서운지요.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도 도박판에서 판돈을 거둬들이는 수학적 모델을 개발하지 못한 것입니다.


불과 37세의 나이에 에이다는 자궁암과 잘못된 치료로 인해 세상을 떠납니다. 남편 러브레이스 백작은 죽음을 앞두고 과거 다른 남자와 혼외관계를 고백한 에이다를 용서하지 못했지요. 에이다는 영국 노팅엄 주의 한 교회에 묻힌 아버지 바이런의 무덤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어머니는 에이다가 스무 살 때까지 죽은 아버지의 초상화조차 보지 못하게 했으나, 그 노력은 소용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바이런에게는 다른 자녀들이 있었으나 정식 법률혼으로 낳은 자녀는 에이다가 유일합니다. 에이다는 만나보지도 못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살아온 것이지요.


▲ 피아노 앞의 에이다 (1852년, 생의 마지막 해)

이미지출처 : https://goo.gl/Uc394j


아낌없이 빠져들어 남김없이 불태우고 간 에이다의 삶이 어떻게 다가오시는지요?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 싶다가도 딱 한 번 살다가는 인생인데, 일과 사랑을 모두 화려하게 해내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일과 사랑, 삶 전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춰야 겨우 살아낼 수 있는 현대인의 삶이 어딘가 불쌍하게도 느껴지네요. 바이런의 시 한 편 놓고 갑니다.


이제, 우리 더는 헤매지 말자

이토록 늦은 밤,

여전히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하고

여전히 달빛은 사방으로 환하지만

칼을 쓰면 칼집이 닳아버리듯

영혼이 괴로우면 가슴이 닳아버리므로

심장도 숨쉬기 위해 쉬어야 하듯

사랑, 사랑에도 휴식을

밤은 사랑을 위해 있고

낮이 곧 돌아오지만,

이제, 우리 더는 헤매지 말자

흐르는 달빛 사이로.



글쓴이 김희연은_사보와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자유기고가다. 자기 과시에 지나지 않는 착한 글이나 빤한 이야기를 피하려고 노력하며 쓰고 있다. 경력에 비해 부족한 솜씨가 부끄럽고, 읽어주는 독자에게는 감사하며 산다.


※ 외부필자에 의해 작성된 기고문의 내용은 앰코인스토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