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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일상다반사

[에피소드] 아름다운 모습

by 앰코인스토리 - 2015. 6. 30.


1978년, 제주도 여행도 못 가본 주제에 유럽 3개국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책을 통해서만 알았던 선진국의 문물을 20여 일 간 보고 들으며 신비로움에 감탄사를 연발했지만, 정작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런던 중심가에서 본 광경이었습니다.


해전의 영웅인 넬슨 제독이 44m 높이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트래펄가 광장에는 분수대와 조각상들이 있었습니다. 분수대 주변에서 아이들이 벌거벗은 몸으로 그것도 벌건 대낮에 물장구를 치면서 장난을 하고 사자상에 올라가서 목마놀이를 하는 모습이 우리와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 당시 우린,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창경궁이나 어린이대공원에서 잔디밭 주변에 접근만 해도 호루라기를 불면서 달려오는 경비원들을 어김없이 봐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하지. 저것은 안 돼.’하면서 자라는 내 아이들과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면서 자라는 이곳의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얼마나 다르게 변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이것 하나만 보고서도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가 너무나 크다는 것을 실감하고 출장 중에나 귀국하고서도 후진국인 우리의 현실을 가슴 아파했습니다.


37년이 지난 지금, 대중매체를 통해서 보고 듣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들이나 우리가 엇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젠 우리도 선진국의 문턱까지 들어선지라 그들과의 문화 차이가 거의 없어진 탓이겠지요. 한편으로는 아이들을 너무 제멋대로 키우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합니다.


그러던 차에 얼마 전 지하철 안에서 본 어떤 젊은 주부의 모습은 아직도 잔잔한 여운으로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아이의 기를 살려준답시고 철없는 행동을 해도 그냥 내버려두는 엄마들 때문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때가 많기 때문이지요.


“우와, 신 난다. 엄마, 나 잘 뛰죠. 그죠. 어우하하하!”

“그럼, 아주 잘하지!”

전철 안에서 마구 떠들고 귀가 따갑도록 소리를 질러도, 간혹 신발을 신은 채 의자 위를 펄쩍펄쩍 뛰어도, 심지어 옆사람의 발을 밟거나 몸을 툭툭 건드려서 피해를 주어도 그저 무심하게 쳐다보는 엄마들을 지금까지 수도 없이 보아 왔습니다.

“아이쿠, 아이 좀 조용히 시키라고요.”

“네. (흥!)”


그러던 어느 따뜻한 오후, 엄마들은 다 그럴 것이라는 편견이 한 번에 사라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지하철에서 쫑알쫑알 떠들자, 옆에 있던 엄마가 따끔하게 야단을 쳤습니다.


“현수야, 지하철에서 조용히 해야지. 다른 분들에게 피해 주면 안 되는 거지?”

“네, 알았어요. 엄마.”

그 엄마는 나돌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붙잡고 조용히 타이르기도 했습니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어요."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조심하는 빛이 역력했습니다.

“참, 요즘 보기 드문 엄마네.”


내릴 때가 되자 아이가 지하철 바닥에 흘린 과자부스러기를 휴지로 쓸어 담기도 했습니다. 다른 승객들을 배려해, 그냥 두어도 티도 안 나는 티끌 한 줌까지 말끔히 치우고 갔던 것입니다. 내리는 뒷모습을 차창을 통해 보고 있자니,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역내 휴지통에 과자부스러기를 버린 후 아이 손을 잡고 총총히 사라지는 모습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앉은자리를 말끔히 정리하고 쓰레기를 휴지통에 버리는 당연한 일조차도 보기 힘들어진 요즘,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예의가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아이엄마의 모습에 가슴이 따뜻해져 왔습니다.


글 / 사외독자 이선기 님